사랑은 꿀이다.
그 맛에 한번 빠지면
다시는 다른 맛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그런...꿀...
[가슴앓이 by 키라라]
아...아...머리가 아프다...
강의실 밖으로 나오면서 두통을 느낀 내가 복도 끝 자판기 쪽으로 걸어가자 친구들 모두 따라오기 시작했다.
"너 괜찮아?"
지나치던 재호와 어깨를 부딪히자 그가 힘없이 넘어지려는 날 붙잡아 주며 물었다.
딱히 할말이 떠오르지 않아 말없이 손을 휘휘 저어 보인 후 자판기 옆 의자에 앉아 한숨만 내쉬었다.
며칠 전, 세내가 했던 말들 때문에 몇 날이 밝도록 한숨도 못 잤다.
거울을 보니 눈 밑은 이미 푹 꺼질대로 꺼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많은 양의 린스를 발라줘도 푸석푸석하게 변해 있었다.
며칠간의 고민이 사람의 외형을 이렇게 바꿔버린 것이다.
다 귀찮고 싫었다.
거기에다 아무에게도 말 못하는 고민 한 가지 더.
그날...내가 작정하고 사고치기로 한 그날.
윤성희의 침대 사다리에 뼈빠지게 파라핀을 칠해놨건만 그 이튿날부터 오늘까지 유난히 기운 팔팔하게 뛰어 다니는 그녀를 봐서 더 열이 받아 버렸다.
마징가 제트처럼 넘치는 기운을 주체 못하는 윤성희는 그 넘치는 기운을 나만의 왕자님을 쫓아다니는데 소모하고 있었다.
제기랄... 뭐가 이래...
난 책장만 넘겨도 손가락이 베이고 조금만 넘어져도 무릎이 까지는데...
대체 쟤는 뭘 먹었길래 저렇게도 팔팔할까.
쟤만큼 운이 좋은 얘도 없을거야.
영활 보면 잘도 죽거나 다치더구만...
속이 상했다.
그래서 오늘도 아침을 굶은 채로 바로 나와버렸다.
에잇.....에잇.....젠장...
의자 뒤로 머릴 젖히고 눈을 감았다.
아까 강의실에서 수군대는 소리를 들은 바에 의하면 경찰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뭐가...이래....왜 이리 꼬이는 거야...
"어라? 열은 없는데?"
언제 왔는지 준수가 옆에 앉으며 내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음료수 빼 줄까?"
대꾸하는 것도 싫었다.
"뭐 속상한 일이라도 있어?"
대답 대신 눈을 질끈 감았다.
한참 동안 내 기분을 맞춰주려고 애를 쓰던 그가 지쳤는지 입을 다물었다.
곁에 두기만 해도 가슴 벅찬 그를 두고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이제 풀렸어?"
아마도 내가 자신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화난 거 아니야."
분위기를 바꾸려고 입을 열었는데 예상외의 심통 난 목소리가 나와 버렸다.
"미...안..."
당황한 내가 사괄했다.
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나도록 계속 그 자세로 서 있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화가 난 걸까?
무릎 위에 손을 얹고 올려다보았다.
"너 이런 모습 처음이라 기억 해 둘려구 보는 거야."
그의 말에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드...들어가자...강의 시작했어..."
당황되자 강의를 핑계로 일어섰다.
"안 들어가면 안돼?"
그가 내 팔을 채어 잡고 붙들었다.
애교스러운 그의 웃음을 모르는 척하며 실습실로 향했다.
그의 따뜻한 손을 뿌리치긴 했지만...
나도 여자인지라 이런 상황에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작은 심장은 그 어떤 드러머가 두드려도 이처럼 큰소리는 나올 수 없다는 결론이 나게끔 격하게 뛰고 있고 호흡은 멈춘거나 다름없이 들이 쉰 숨을 참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숨막혀...
으윽...인공호흡이 필요 해...
매달리다시피 내 손을 붙잡고 있는 그를 잡아 이끌고 귀금속가공 실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키가 180cm가 넘는 그와 이제 겨우 160cm가 될까 말까한 내가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우리 두 사람에게 집중됐다.
잠시 조용해진 실습실 안이 자연스러운 그의 행동으로 인해 곧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내 작업대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의자에 앉아. 다들 쳐다보잖아."
공과 내 친구들이 손가락 질 할까 봐 고갤 숙였다.
준수를 마음에 두고 있는 여학생들이 지금 이 장면을 보고 그냥 넘어갈리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거기 앉으면 네가 더 부담스러워지잖아. 네 곁에 바싹 앉으면 나야 좋긴 하지만, 그럼 아마도 넌 호흡 곤란으로 죽을 걸? 너 지금도 숨을 참고 있잖아."
그가 한쪽 눈을 크게 올려 뜨고 복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내 작업대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여전히 쭈그린 채로...
"내가 인공호흡 해줄까? 너 자꾸 숨참는거 버릇되면 정말 산소 부족으로 큰일 난다.."
그는 빙글거리며 애써 자신을 무시하고 일을 하려는 내 손에서 실습용 은덩어리 몇 개를 가로채 갔다.
"나 작품 시험 준비해야 돼. 이따 오후엔 얼굴 못 볼 거야. 그러니까...어...어..어?...야~아?!!!"
턱을 괴고 내 말을 듣던 그가 갑자기 손을 뻗어 날 자신의 무릎 위에 앉게 했다.
그리고는 손끝으로 내 귓바퀴를 더듬었다.
"뭐...뭐하는 거야? 다 쳐다보잖아..."
"가만히 있어 봐..이런 러브러브한 장면이 날이면 날마다 연출되는게 아니니깐."
"뭐어?"
귓바퀴를 더듬어 대니 정신이 없었다.
부랴부랴 그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엉거주춤하게도 그의 길다란 손가락만 쥐게되었다.
"뭐 어때~ 교수님도 안 들어 오셨는데... 이따 못 볼 거니까 실컷 봐야~쥐~"
싱긋 웃으면서 자꾸 머리칼을 만지작 거리는 그의 손을 뿌리치느라 진땀이 다 났다.
"내가...사랑한다고 말...했던가...?..."
그가 다시 손을 뻗어 내 뒷통수를 끌어당기며 아주 나즈막히 속삭였다.
다시 호흡곤란이 된 내가 숨을 들이킨 채로 얼굴을 붉히자 그가 소리없이 웃으며 내 귓불을 슬며시 잡아당겼다.
"저녁 때 봐."
그는 귀까지 빨개진 날 그대로 남겨둔 채 자신의 전공 실인 보석가공 실로 향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귀금속 가공 실습실과 보석가공 실습실이 붙어있다.
그가 사라진 문만 바라 봐도 가슴이 설레었다.
[가슴앓이 by 키라라]
..
며칠 동안은 시험 준비 때문에 다른 일을 생각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경찰이 날 찾는다는 소릴 수진이와 미숙이에게 들었다.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공과장실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고 있을 때 다른 애들에게 이야길 들었는지 세내와 은영이가 숨을 몰아 쉬며 뛰어 왔다.
"뭐하니? 같이 들어 가자."
"얘 좀 봐라~얘 좀 봐~ 또~ 손톱 뜯네~?"
두사람 모두 똑같이 혀를 차며 내 어깨를 건드렸다.
세내가 노크를 했고...
은영이가 내 어깨에 팔을 걸치면서 공과장 사무실 안으로 이끌었다.
사무실 안엔 경찰 여러 명과 학과장을 비롯한 다른 교수님들이 앉아 계셨다.
표정을 보니 꽤나 심각했다.
"앞으로 와서 앉게."
"감사합니다."
바닥에 붙은 것처럼 잘 떨어지지않는 발걸음으로 다가가 우릴 주시하고 있는 그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준비 된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몇 가지 질문만 하고 돌아가겠다며 여러 가질 물어 왔다.
어차피 평상시에 예상했던 질문들이어서 대답하기가 쉬웠다.
그러다 박 형사라는 사람이 날카로운 눈으로 날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질문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만 있었다.
"아저씨, 얘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세내가 앙칼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그가 세내와 내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질문했다.
"애인 있습니까?"
"예?"
"뭔 소리여?"
우린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누구요? 얘~요. 쟤~요? 둘 다 있는데...왜요?"
엉겁결에 사투리를 사용해 이미지 구겨진 세내를 대신해 은영이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동네 바람 난 여자 이야기라도 튀어나올 분위기에 흥미를 느낀 그녀가 키득거리며 내 옆구리를 찔렀다.
"가만히 좀 있어 봐."
짖궂은 은영이의 손가락을 뿌리치며 작게 속삭였다.
"흠... 애인 좀 만나보고 싶군요. "
박 형사가 뭉툭한 코 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예 ?"
그의 어이없는 말에 우리 셋은 동시에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아~ 박형사님~"
이에 당황한 공과장이 나서려고 했다.
그의 질문에 놀란 교수들이 웅성거렸다.
"애인은 몇 살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신경쓰지도 않는군...
웃기는 놈이야...
박형사가 이번에 귀를 만지작거렸다.
거슬려...
뭔가 숨기는 행동...
거슬려....
남자들은 흔히 거짓말을 하거나 신경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 할 때면 습관적으로 저런 행동을 한다던데...?
"그게 지금 이 사건과 관계 있는 질문입니까?"
교수님 중 한 분이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중요하죠...아주..."
빙글거리는 그의 웃음에 소름이 돋았다.
'왕...재...수....'
은영이의 손끝이 테이블 아래 내 허벅지에 몇 자 끄적였다
"원하신다면 만나게 해드리죠."
은영이가 차갑게 대꾸했다.
"헌데..."
그가 말끝을 흐리며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잔뜩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사무실 내 모든 사람들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김세휘씬...왜 자신의 이야긴데 직접 대답하질 않습니까?"
뭐야...저 치....재수없게...
공과장실 안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몰리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이번엔 내가 대답했다.
"제 이름을 거론하면서 질문하신 건 지금이 처음이지 않습니까...?"
한 방 먹었다는 듯 잠시 숨을 들이쉬는 그를 보며 마지막 뒷말을 이었다.
"그러니 제게 질문하신 거란 생각이 안 들었었습니다. 그게 큰 문제가 됩니까? 무슨 문제 있습니까?"
[가슴앓이 by 키라라]
아아...짜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