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강-28
복도를 따라 걸어오는 지영의 발걸음은 무거울수밖에 없었다.
면회오겠다는 그녀를 그렇게 돌려보냈다는 죄책감보다 아직도 자신을 잊지못하고 힘들어하는 진아가 너무 바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회색빛 콘크리트와 철창으로 어느곳하나 자유롭지 못한 이 삶속에서 그나마 생각만이라도 자유롭고 싶었는데...그래서 그토록 그리웠던 혜영을 잊어가고 있었는데...이제 또 한명의 여자가 나타나서 자신의 가슴과 머리속을 멍들게 하는것 같아 견딜수가 없었다.
연신 바보같은 년이라고 쏘아붙여보지만 그때마다 그런 자신과 진아에게 미안스러웠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아버리기엔 너무 어린나이에 진아를 만나서 교회라는 울타리를 핑계로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그렇게 중고등학생의 시절을 보낸 그들이었다.
진아가 상고에 진학하고 서울로 전학을 가게되면서 비교적 만남의 횟수도 점차 줄어들게 되었지만, 언제나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교회를 핑계로 만나고 그런 시간이 쌓여 둘다 교회를 떠나 성인이 되어서도 서로 연락하고 그렇게 사랑하고 있던 그런 사이가 된 것이었다.
언제나 버리는 쪽은 지영이었고, 그때마다 말없이 지켜보기만 하던 진아였다.
사건이 일어나기 몇일전도 진아는 지영에게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었다.
부산으로 둘 만의 여행을 가기로 했던날.
[미안..내가 너무 늦었지?]
[좀 늦긴 햇네..]
[갑자기 회의를 한다고 해서 빠져나올수가 없었고, 오늘따라 차가 너무 막혔어]
[응. 무슨 일이 있을거라고 생각은 했어.]
2시에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어쩐 영문인지 10분이 지나고 30분이지나고 급기야 1시간에 지나도록 진아가 나타나질 않는 거였다.
예전같으면 언제나 진아가 먼저 나와서 지영을 기다리고 있었던터라 그날따라 늦고있는 진아가 내심 걱정도 되고 있었다.
3시간에 지나서야 진아는 부랴부랴 뛰어오기 시작했다.
[근데 내가 아직도 기다릴꺼라고 생각하고 나온거야?]
[응 난 자기가 기다릴꺼라고 생각햇어]
[대단한 배짱이네, 만약 내가 가버렸다면?]
[그런 생각은 안해봤어. 단지 난 자기가 기다릴꺼라고 믿고있었고...]
[그리고?]
[아냐. 아무것도. 어쨋든 늦어서 미안해.]
[우리 그냥 가지말까? 어디가서 영화나 한편보고...]
[시러..나 집에다 오늘 안들어 간다고 말하고 나왓단 말야]
[나 사실 기분이 좀 그래..너 기다려서 그런게 아니고..]
[무슨일 있었어?]
[아니...그냥 가자..모르겠다...]
둘은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아침부터 피곤해서 였던지 진아는 버스에 오르고 몇분 지나지않아 이내 잠들어버렸다.
지영의 어깨에 머리를 가져다대고 쌔근대는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지영은 고속버스가 목적지인 부산에 도착할때까지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무의미한 시선과 눈빛으로 쏜살같이 지나는 풍경만 스치울뿐이었다.
[어 다왔네? 깨우지 그랬어]
5시간여동안 그렇게 잠을 자서 미안했던지, 진아는 얼굴을 붉히며 지영에게 미소지었다.
[너무 곤하게 자서 그럴수가 없었어. 잘잤어?]
[응 오늘 자기한테 내가 너무 실수만 하네.]
[실수는 무슨 사정있어서 늦은거고. 피곤해서 잤겠지]
[그래도...]
[덕분에 창밖구경 실컷했어. 어여 내리자.]
고속버스에서 내린 두 사람은 해운대로 향했다.
한화콘도....
해운대의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아침의 일출이나 저녁의 일몰을 보며 자신을 되돌아보기엔 충분하리라고 생각되었다.
둘은 객실로 향햇다.
이미 진아가 예약을 해둔터라서 간단하게 숙박부에 이름만 기재한후에 키를 건네받았다.
객실안은 깨끗했다.
거실 옆으로 2개의 방이 나란히 배치된곳이었다.
진아는 안방으로 지영은 작은방으로 향햇다.
[일단 머 좀 먹자 배고파 죽겠다.]
[그래, 내가 먹을거좀 사올께..쉬고있어]
지영은 거실앞 통유리를 활짝 열어젖혔다.
시원한 바람이 방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크게 쉼호흡을 해보았다. 도시의 공기와는 다른 시원한 바람이었다.
베란다 앞으로 걸어갔다.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희미한 가로등 밑으로 몇몇의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나이 어린 몇몇은 늦은 시간인데도 바닷속으로 들어갔나 나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선 술을 마셔서인지 큰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있었다.
[분위기 좋지?]
한보따리의 먹을것을 챙겨들어온 진아가 지영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응 그렇네]
[춥다. 문 닫고 일루와]
[그래..근데 뭐사왔어?]
[맥주 2병하구. 삽겹살하고, 햇반.]
[햇반? 그게먼데?]
[아 이건 그냥 전자레인지에 대워서 먹는 밥이야.]
[그런거도 잇어?]
[응 그냥 3분이면되.]
둘은 그렇게 식사를 했다.
평소 술을 못마시는 지영이였고 그건 진아도 마찬가지였다.
둘이서 맥주 2병을 나누어 마셨을뿐인데 둘은 적당히 붉은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 피곤해 자야겠어]
[그렇게 자고도 또 졸려?]
[응. 일단 나 싰고 올께]
진아는 수건이며 칫솔이며 간단한 세면도구를 챙겨서 욕실로 들어갔다.
취기를 없애기 위해서 인지 지영이 다시 베란다로 향했다.
아직도 물에들어가고 술마시고 노래부르고 걷고....주인공만 바뀌었을뿐 그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해운대의 풍경이었다.
지영이 담배를 꺼내물었다.
허전함이 밀려들어왔다.
혜영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어쩌면 울고 있을런지도..... 지영은 담배를 멀리 던져버렸다.
어느샌가 진아가 그렇게 서있는 지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언제 나왔어?]
[응 방금...근데 무슨 생각했어?]
[아무 생각도 안햇어. 나도 싰고 올께]
지영이 욕실로 들어가자 진아가 베란다 앞 지영이 서있던 자리에 섰다.
그다지 아름답지도 신기할것도 없는 그런 평범한 바다였다.
단지 사랑하는 남자와 같이 있다는 설레임만 머물뿐이었다.
한참동안 진아는 그렇게 서있었다.
[저 사람은 여기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저 사람은 여기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욕실문이 열리는 소리에맞춰 반사적으로 진아가 등을 돌렸다.
[나 작은방에서 잘께]
진아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안방에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이오지 않았다.
벼게를 들고 작은방으로 향했다.
몇개의 담배를 피운건지, 방 안 가득히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너구리잡어? 담배냄새...]
[안잤어?]
[응 잠이 안와서. 자기는 왜 안잤어?]
[청바지를 입어서인지 잠이 안오네]
부산을 내려올때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침대에 누워있는 지영이었다.
[나 여기서 잘래.]
[그러던지.]
[참 옷 안가져왔지? 난 가져왓는데..]
반바지에 흰색 티를 입고있는 진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알어..그러니까 그옷을 입고있겠지]
진아가 스르르 침대 옆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나 이상하게 생각하지마..]
[뭐를?]
[잠깐만...]
진아는 입고있던 바지를 벗었다.
검은색 팬티가 지영의 눈에 들어왔다.
지영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흰색 티도 벗어던졌다.
하얀 진아의 피부와 검은색 브래지어가 지영의 눈을 어지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