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앓이 by 키라라]
"그...그럼...?"
난우형이 더듬거렸다.
"응..집안 재산이 모두 세휘네 집으로 가니까...앙심을 품은거래...하지만 내가 크면서 생각 해봐도 그건 아니었어. 다른 원한이 있었던 거지. 그날...얘네 할아버지 생신 잔칫날, 나랑 은영이네 가족 모두가 초대 됐었어. 우린 집안 어른들까지도 배꼽 친구거든...다들 몰랐지? "
...............
세내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어수선해진 주변이 조용해 질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아침부터 시작한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었지. 기념 사진을 찍으며 즐겁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많이 본 아저씨가 얘랑...얘네 오빠인 후란 오빨 붙들고 고함치기 시작했어.
왜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시냐는 원망 섞인 내용이었는데 아마도 할아버지에게 하는 말 같았어. 모두 웅성거렸고...어른들이 후란 오빨 놔달라며 사정을 했어. 아직 어린데 그럴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제발 후란일 놔다오!!'하며 울었지. 정말 우린 어린데...그런 모습을 보게되니까 하늘이 노랗더라. 어찌해야 할지 몰랐어."
하늘이 노랗더라는 세내의 말에 눈 안이 뻑뻑해졌다.
"작은 아버지라는 사람이 외쳤어. 시끄럽다고 말이야...하아...어른들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대충 기억할 뿐이지만 아직도 귓가에 생생해. 후란인 이 집 대들보니 그만 놔달라는 말은 물론이고 이러면 문제만 더 커진다고...그때 작은 아버지가 말하더라. '이왕 일이 이렇게 틀어졌으니 둘 중 하나는 데리고 가겠습니다. 만일을 위해서입니다. 제 뒤를 따라 오거나 신고를 하신다면 되려 크게 집안 망신을 당할 터이니 절대로 날 찾지 마십시오' 라구....."
"그래서 조카 둘을 납치한거냐..."
난우형이 물었다.
"아니..."
세내가 크게 숨을 내쉬며 바람빠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응?"
그녀의 너무나도 담담한 말에 세사람이 놀랐다.
"작은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말했지. '이번엔 누구를 택하실 겁니까?! 아버님이 그렇게도 싫어하시던 여자의 소생인 후란입니까..아니면 형수님의 소생인 세휩니까...? 그렇게도 싫어하신 나머지 쫓아낸 그 여자가 낳았어도 아들이니까 후란일 택하시렵니까?!!! 왜 대답을 못하십니까!!!! 예전에 아버님이 저와 누이를 버리셨듯 이번에도 딸인 세휠 버리실겁니까?!!! 쓸모없는 여자이니 말입니다!!!!'라며...절규했지..."
뭐?
세내의 침착해진 목소리에 되려 내가 놀래버렸다.
내가 모르고 있는 기억 속 분위기에 비하면 너무 엄청난 소리니까.
"근데...아무도 몰랐던 일이었나 봐.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아 그냥 서 있었을 뿐 아무 조치도 못 취했어...심지어는 우리 엄만 너무 놀라 기절하셔 버렸으니..."
"세내 넌 알았다면서?"
수진과 난우형이 동시에 외쳤다.
"아니...내가 알았다는 것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겠는지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휘유....그만두자..."
"그...그때가 몇 살이야?"
난우형이 물었다.
나 역시 놀래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말할게...세내 넌 그만 앉아."
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알고 있는 내 어렸을 때 이야기...?
나도 잘 기억 안나는데?
"......세휜 여덟살, 오빤 15살일 때 일어난 일이래...세휘 아버님께 들은 이야기니까...정확 할...거야. 작년에 머릴 한번 다쳐서 수술했을 때...아버님께서 우시면서 하신 말씀이야."
"그랬구나."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난우형의 말에 세내가 중얼거렸다.
"충격이 꽤 컸을거야...버려진 느낌이 강했거든."
"누굴 택했어? 응? 설마 오빨 택한거야? 아들이니까?"
수진이가 의자를 소리나게 당겨 앉으며 물었다.
"응...애는 또 낳으면 된다고... 세휘네 할아버지가...'네 뒤를 쫓진않으마. 그 아일 데리고 가거라..그리고 다시는 내 눈에 띌 생각하지도 말거라..'하셨어. 작은 아버지가 얠 데리고 나갈 때 후란이 오빨 앞으로 세게 밀었고 세휠 들쳐 업었어. 많이 망설이셨던 것 같았는데 결국 세휘를 데리고 가버렸지. 나중에 우리 부모님들 하시는 말씀이 신고도 안한 것 같더래. 세휘네 할아버지...그만큼 체면이 중요했나 봐. 당연히 체면이 중요했겠지..."
난 전혀 모르는 일이다.
어째서 어릴 때 일이 기억에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앨범 속 내가 이렇게 컸구나...
하는 평범한 생각을 하며 아주 단순한 유년 시절을 보냈을 뿐이었다.
가족들이나 후란 오빠 역시 내게 아무 말이 없었다.
그냥 내가 해달라는 모든 일을 다 해 줬으니 당연한 일인 줄 알았었다.
"어떻게 얠 찾았대?"
난우형이 다시 물었다.
이젠 그들의 침 삼키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집안 경호원들이 두 사람을 찾아 냈을 때 작은 아버진 이미 자살하고 난 뒤였대. 납치된지 20여일만의 일이야. 집에 온 뒤로 말수도 줄어들고 그 뒤 그리 쾌활한 편이 아니었어."
"그럼...있잖아..."
수진이가 눈치를 보며 끼어 들었다.
"뭔데?"
세내가 일어서자 바람이 생겨 콧잔등을 간지럽혔다.
"이런 말 하기 좀 그렇긴 하지만 말이야...그럼...김세휘 엄마가 두번...째니?"
수진의 물음에 나를 비롯한 나머지 세사람이 숨을 들이켰다.
엉뚱한듯 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다.
"그...그건..."
뜻밖의 질문에 세내와 준수가 더듬거리며 제자릴 왔다갔다 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난우형의 들어 오라는 소리와 함께 북적대는 소음이 났다.
"아...!!!"
수진의 입에서 황홀해 하는 탄성이 들렸다.
"세내 와 있구나..."
카리스마 있는 중저음의 목소리...
오빠다.
우리 오빠...그래서 수진이가 숨넘어가는 소릴 낸 거야.
나와는 다르게 준수만큼이나 잘생긴 외모를 자랑하는 후란 오빠의 등장으로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세내 너, 뭐 좀 먹었니?"
"어라? 준수도 있었구나?"
이 목소린 은영이와 재호 목소리다.
그리고 세내의 연인인 은영이 쌍둥이 오빠 김준영.
이들이 들어오자 병실 안이 좁아서 안되겠다며 재호와 난우형이 잠깐 담배를 핑꼐로 밖으로 나갔다.
"오빠, 나두 가요. 내가 음료수 사올까?"
세내에게 묻던 수진이 역시 그들을 따라 나갔다.
세내와 은영이까지도 잠깐 바람을 쏘여야겠다며 나가버렸다.
한동안 어색하게 있던 준영이 준수에게 다들 왜 몰려 나가는지 물었다.
"어?...어....그게..."
잠시 소근대는 소리가 들리고 후란 오빠의 저음이 들렸다.
"누구도 두번째일 수가 없어. 나도...내 동생도..."
자존심 강한 오빠의 말에 준영이 당연하다고 맞장구쳤다.
"원래 내 부모님은 돌아가셨어. 두분 다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하셨다더군."
어라?
오빠도 아는 이야기야?
[가슴앓이 by 키라라]
"어렸을 때...지금의 어머님이 조용히 내게 알려주셨어. 어린 내가 난 왜 쌍둥이 동생이 없는지 시샘내며 물었을 때 날 껴안아 주시며 그 이율 말씀해 주셨지. 예전에도 날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날 사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실거라는 말과 함께.
너무나도 자상하게 대해 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비뚤어지지않고 잘 커온거야. 그런 말씀이 있은 뒤에 두 분이 아일 갖기 위해 애를 많이 쓰셨지, 꽤 오랫동안. 외롭다는 날 위해서 아버진 퇴근 시간을 앞당기셨고 일주일에 다섯 번은 해외나 지방을 가셔야 하는 잦은 출장을 반으로 줄이시면서까지 가족을 챙기셨어. 정 출장을 가셔야 한다면 나와 어머닐 동반 시키셨지. 가족 여행이라는 명분을 만들어서 말이야."
오빠 입을 통해 알게된 우리 아빤...정말 멋진 분인것 같다.
아들이 남자 대 남자로서 평가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근사했다.
"우리 어머닌 말이야...새벽마다 날 데리고 교회엘 가셨어. 내게 동생을 만들어 주시라는 기도를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해서 낳은 아이가...내 동생 세휘야. 참 멋진 분들이시지...안그래? 몇 년만에 곧 동생이 생길거라고 말씀하셨던게 아직도 생생해. 그때 축하 파티도 했었어."
오빠가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럼 형...친 부모님은요?"
준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의 물음에 날 만지던 오빠의 손길이 잠깐 멈췄으나 곧 냉정하게 대꾸했다.
"내 친 부모님은 내가 백 일도 채 못되서 돌아가셨다더군. .....지금의 아버지께서 할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날 찾아 오셨대. 호적에도 없는 날 본인들의 장자로 올려주셨고, 또 날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주셨어.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동생이 태어났을 땐 정말 그 어린 나이에도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 들었지. 다른 사람들은 모를껄? 내가 세휠 얼마나 사랑하는지..."
후란 오빠의 회상에 질투하고도 남을 준수의 모습이 상상됐다.
"나 역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 잊어버리고 지냈는데...얘네들 중1 때 그 사건을 떠올릴 또 다른 일이 생겨버렸어. 휴~ 얜 왜이리도 자주 다치고 상처 받을 일만 생기는지...다 내 탓인것만 같고...아니...다 내 탓이지."
잠시 뜸을 들이던 오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가슴앓이 by 키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