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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76. 주인 집 아줌마 루시아

무늬만여우... |2005.01.10 14:35
조회 2,578 |추천 0

주인 집 아줌마는 덩치도 좋고 키도 큰 미인이었다. 이름은 루시아다.
아무래도 소련계쪽 피가 흐르는 것 같아서 물어보니 그렇댄다. 여기 사람들은 보통 대여섯 민족의 피가 마구 뒤엉켜있다. 할아버지는 독일 할머니는 프랑스 그 위 할아버지는 소련 할머니는 스페인 대충 이렇게 흘러간다.

앞마당을 공유하고 있는 집이 네 집이었는데, 알고보니 한 할머니는 루시아 시어머니이고 그 옆집은 친정 어머니였다. 남편은 재작년에 돌아가셨단다. 루시아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는 창문 너머로 우리 애들과 내가 노는걸 구경하는걸 재미삼아 사는 것처럼 보였다. 항상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사시니 말이다.

끼니 때가 되면 그들은 창문가에 식탁을 놓고 각자 혼자서 식사를 하곤했는데, 난 그게 참 이상했다. 다 한 식구나 마찬가진데 다 각자 해먹는다. 할머니들은 과자 굽는 솜씨도 좋아서 소금을 넣지않은 딱딱한 소다 과자를 잘 만들어 드셨다. 난 그 과자가 고소해서 잘 얻어먹었는데, 그들은 그 과자를 고기랑 잘 먹었다.

내가 가끔 한국 음식을 해서 갈비찜이나, 잡채를 해서 나눠주면 너무들 좋아했다.

80 넘은 머리 하얗게 센 두 할머니는 그 연세에도 허리띠를 하고 집에서 하이힐을 신고 지내셨다. 아침이면 머리를 구리프로 이쁘게 말고 다니다 점심때가 지나면 빨갛게 루즈를 바르고 마실을 나가시곤했다.

주인집 아줌마 루시아는 주말이면 차를 몰고 주 경계선에 있는 카지노를 갔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댄다. 남편이 유산으로 물려준 돈을 은행에 넣어놓고 야금야금 카지노를 다니며 다 쓰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사는 재미가 그거라는데 할 말이 없었다.

50살 정도 된 루시아 아줌마는 아직 여성적인 매력도 넘쳐보였다. 풍만한 몸매를 자랑하며 마당가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는데, 우리 아버님에게 관심이 지대했다. 처음에는 그저 우리 아버님을 눈여겨 본다 싶었는데, 날 보면 항상 아버님에 관한 정보를 케내려 했다. 이거저거 물어보는게 심상치않았다. 나중에 랑에게 그 말을 했더니 되게 재미있어했다.


우리 아버님이 사실 나이 드시기 전 사진을 보면 탤런트 저리가라로 잘 생기셨는데 나이드시고 마르셔서 그게 별로 표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멋이라곤 부리지 않으시니 도무지 다른 여자가 쳐다보리라곤 생각도 안했는데 그 루이사는 이 동양의 노신사가 맘에 들었나부다.

아버님이 들어오실 시간이 되면 괜히 야한 홈드레스를 입고 마당가를 서성거리고 우리 집을 기웃거렸다. 전화로 이 사실을 농담삼아 어머님께 말씀드렸더니 친구삼게 잘 다리를 놓아드리랜다. ㅎㅎ 그래도 그렇지 내가 누군가 며느리니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루시아 아줌마는 가끔 티타임에 날 초대해서 차마시길 즐겨했는데 갓 구운 과자와 마떼차는 날 기분좋게 했다. 내가 마떼차를 같이 나누어 마시는걸 즐겨 안하니까 아예 내 마떼잔을 가져오라고 해서 난 내 마떼잔을 갖고 다녔다.

그녀는 자기가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는걸 대단한 자랑거리로 여겼다.
아르헨티나는 사위가 장모를 모시는 풍습이 있어서 친정 어머니 모시는건 당연한거지만 시어머니 모시는건 대단한 거로 인식되나부다.

이 나라에서 시집살이는 주로 사위가 당하는데 장모에게 온갖 시집살이 당한다고 하소연들을 하곤한다. 이 풍습도 시골에서나 있지 사실 도시에서는 개인주의가 발달한 아르헨티나에선 별로 보이지 않기도 하다.

어쨌든 두 할머니를 모시며 사는 루시아가 대단해 보이긴 했다. 하긴 같이 산다해도 밥도 따로 잠도 따로 자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집이니 그저 아프면 보살피는게 다다. 그래도 나이드신 분들은 의지는 될꺼다.

루시아네 거실은 좋은 가구로 가득 들어차서 도대체 다니기도 힘들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원래 루시아가 거처하던 집인데 내게 세를 주고 자긴 사랑채로 자기 가구를 다 갖고 갔기 때문에 그렇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멋진 콘솔이 있는데 그 콘솔 위에는 대리석과 보석으로 장식된 멋진 성당 조각품이 하나 있었다.

그 조각품은 정교해서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그런데 그 조각이 다름아닌 보석함이라는데 놀랐다.
성당 지붕은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는 루시아네 남편 유골이 모셔져 있었다.

자기는 남편과 산대서 난 맘적으로 그런 맘을 품고 사는지 알았는데 그렇게 거실에 유골을 모시고 살 줄은 몰랐었다.
내게 유골을 보여주며 만지작 거리며 남편을 회상했다. 눈물을 글썽이며 자기를 얼마나 이뻐해줬는지 사랑해줬는지 얘기를 해주는데 난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하고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다.

그 뒤로 난 그 집 거실엔 되도록이면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고했다.
가면 그 유골을 등지고 앉게 되는데 대단한 겁쟁이인 난 괜히 머리카락이 쭈빗 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라도 부슬부슬 오는 날은 아예 안마당 쪽 문을 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무서운걸 우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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