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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4...(이게.....뭐지?")

초록물고기 |2005.01.19 19:17
조회 1,717 |추천 0

 

호경의 말에 취기 오른 눈을 벌겋게 지켜 뜬 태수가 다시 동준을 노려보았다.

 

  “말이 너무 심해......저 새끼한테는 그 말도 아깝다....저 새끼 유부녀 만나고 다니는 거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 저 새끼가 여자 가리는 거 봤어....유부녀 만나 클럽 차리고 친구 여자 넘어뜨려 재미보고....그런 놈한테 ...말이 심해......”

 

순싯간에 태수의 주먹이 동준에게 날아들었다. 비틀거리며 자신에게 걸어오는 태수의 몸짓을 동준이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 날아드는 주먹에 입술이 터져 금방 핏물이 턱을타고 흘렀다.  달려든 친구들이 태수의 어깨를 붙잡았고 호경이 비틀거리며 의자 옆으로 쓰러진 동준을 부축해 세웠다. 여전이 분을 참지 못하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동준을 노려보던 태수가 남은 독을 뱉어냈다.

 

  “더러운 새끼....너 그렇게 살다가 언젠가는 칼 맞는다....”

 

 입술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낸 동준이 여전히 냉정을 잃지 않은 채 태수의 시선을 맞받았다.

 

  “다했냐....애인 뺏긴 놈이 이 정도로 분이 풀리겠냐.....?”

  “이 새끼가.....”

  “니 말대로 내 손에 걸리는 여자 가리는 거 없이 논다.....근데 ....눈물바람으로 삼류소설쓰는 여자는 다행히 내 취미가 아니라.....”

 

순간 태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슨.....개 소리야.....”

  “이렇게 아까운 여자였냐? 이렇게 드라마 찍을 만큼 아까운 여자면 좀더 잘해주지 그랬냐. 넌 딴 데보고 재미 봐도 괜찮고 니 여잔 그러면 세상을 뒤집어 업을 일이 되는 거냐? 한밤중에 술 취해 눈물바람으로 전화해서 죽고 싶다는 여자.....내가 가리는 거 없이 노는 놈이라도 흥미 없는데...그냥 하던 데로 니가 가져라.”

 

 말을 잃은 채 마른 침만 삼키고 선 태수를 뒤로 하고 동준이 술딴지를 나왔다. 뒤따라 나온 호경이 동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한잔 더 하자.....”

 

 굳이 묻지 않고 대답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짐작하는 두 사람이었다. 아마도 동준이 태수의 여자

를 가졌다 해도 마지막엔 그의 뒤에 서 있을 호경이었다.

 가까운 술집에 다시 들어간 두 사람이 편한 잔을 기울였다. 한층 가라앉은 분위기속에서 술잔을 비우던 동준이 불현듯 그 꿈을 떠올렸다.

  “너.....같은 꿈을 계속 꿔 본적 있냐?”   

  “뭔 뜬금없는 꿈....”

  “요즘 계속 같은 꿈을 꾼다.....”

  “무슨 꿈인데.....”

  “사극 같기도 하고.....사약을 마시고 죽어가는 것 같은데......”

 

 호경이 피식 웃으며 내심 신기한 얘기나 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준의 얼굴을 건너다 봤다.     

 

  “니가......요즘 정재 없이 잠 설치고 일해서 개꿈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그 놈은 어떻게 된 거야. 벌서 며칠 째야?”

  “이번에 오면 진짜 가만 안 둔다....그 새끼....?”

 

 동준이 다시 그 장면을 떠 올려 자신도 모를 싸한 한기를 느꼈다. 매 순간마다 눈앞에 펼쳐진 일인 냥 심장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동준이 다시 한잔을 비우며 작게 흘리듯 말했다.

 

  “근데....그게 ...꼭 내 느낌같이 느껴져.....그 피가.....정말 내 목에서 토해져 쏟아지는 것 같이.....그랬어.”

  “드라마도 잘 안보는 놈이 왠 사극을 꿈씩이나 꾸고 그래?”

 

동준이 다시 잔을 비우며 혼잣말처럼 중얼 그렸다.

 

  - 사람이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응...뭐라고 했냐?”

  “아니다....마셔라.”

 

호경이 몇 잔을 비우고 동준의 감정이 가라않기를 기다려 태수의 일을 꺼냈다.

 

  “처음부터 말을 하지......왜 맞고 있냐.”

  “그것 말고도 나한테 맺힌 게 많은 놈이다. 한대는 맞아줘도 억울할 거 없다.”   

  “참....너 아까 새로 온 애 얘기 하려던 거 아냐?” 무슨 말인데 그렇게 실실거리고 웃어.“

 

 동준이 빙긋이 웃었다. 좀 전의 무거운 기운이 삽시간에 그 얼굴에서 밀려나고 있는 듯 말을 내놓는 목소리가 가벼웠다.

 

  “사무실에 눈만 댕그란 여자애 하나가 왔었거든...대뜸 일하겠다고 하는 거야....”

  “너 또 사람 아쉽다고 이러저런 생각 안하고 무조건 오케이 한거 아냐?”

 

 동준이 또 다시 혼자웃음을 흘렸다.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이 자신의 무거운 것들을 밀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엔 급한 불이나 끄자고 생각했는데....의외로 괜찮을 것도 같아.”

  “하루보고 어떻게 알아?”

  “글쎄.....그런 생각이 드네.”

 

 동준이 열시에 눈을 떠 30분 째 시계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는데도 몇 번 선잠을 깨 결국 깊은 잠을 포기하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다 문득 아주 잠시 가졌던 어렴풋한 꿈 한 조각을 돼 뇌여 보았다.


마주한 두 사람의 얼굴에 달빛보다 은은한 미소가 내려앉아 있었다. 서로를 담은 가슴이 이미 하나의 세상이 되어 다른 그늘을 거둬내고 있었다.  

 

 [마음 아파하지 마라.

  몸에 상처는 아물면 그만인 것이다. 위험한 것은 마음을 베이는 것이니,

  이제 더 이상은 내게 흐르는 그것을 막지 마라.

  그냥 흐르는 데로 느껴지는 데로 그렇게 너를 두어라.

  편치 않으면 그 불편함을 내보이고 싫으면 그것 또한 그대로 보여라.

  왜 자꾸 그 속에 뭉쳐두려 하느냐?”]

  [불편하다.

   나도 불편한 것은 싫어한다.

   내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자꾸 나를 읽으려 드는 니가 불편하다.

   그러니 너무 그렇게 애쓰지 마라.]

      

 불쾌했던 그것들이 어느 듯 몸에 익어가고 있어 짧은 느낌 몇이 전부인 그 밤이 차라리 서운해지고 있었다. 다시 꾸게 되면 아픈 전율을 그대로 가져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마음이 잠을 방해해 깊은 잠속에 빠져들지 못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던 동준이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서두르고 있었다. 굳이 정해진 시간이 아닌데도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클럽에 도착해야 할 것 같은 분주함이 그를 재촉하고 있었다. 면도를 하면서 하룻밤에 두 사람에게 가격당한 자신의 얼굴을 잠시 멍하니 응시했다.

 간밤의 일이 가슴을 휘젓고 지났으나 핸들을 잡은 손이 가벼웠다. 시원스럽게 빠지는 차들의 행렬만큼이나 기분이 걸릴 것 없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늘 가라앉아 자신조차 질릴 것 같은 무거운 그림자들이 조금씩 흩어지고 있는 듯 느껴져 동준이 자신도 의아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아이가 말없이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어제 혼자 힘들지 않았어요?”

  “괜찮았습니다.”

 

 아무런 조사도 덧붙이지 않은 짧고 간단명료한 한마디를 내뱉은 아이가 다시 보고 있던 신문에 눈길을 돌렸다.

 

  “우리 아직 통성명도 못했는데.....”

  “윤진서입니다.”

  “일하기 어때요?”

  “어려울 것 같진 않습니다.”

 

 나이답지 않게 격을 갖춘 딱딱함에 동준이 불현듯 그 나이가 궁금했다. 전혀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 스무을 갓 넘은 듯 앳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몇 살이에요. 같이 일할 사람이니 이런 거 물어도 신례는 아니죠?”   

  “스물 네 살입니다.”

  “보기보다 많네.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상경한 초병 같아 보이는데.........”  

 

 동준이 딱딱한 분위기를 바꿔보려 농담을 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받는 진서의 표정은 이도 안 들어가는 나무토막마냥 딱딱했다. 동준이 머쓱한 기분이 들면서도 그 반응이 재밌어 웃음이 났다.

 

  “점심 먹고 방에 있는 짐 치워 줄게요.”

  “제가 대충 치웠습니다. 컴퓨터는 제가 좀 쓰면 안 될까요?”

  “꽤 많았을 텐데 힘들게 뭐 하러 그랬어요....”

  “.........”

  “컴퓨터는 편한 데로 해요. 일하던 놈이 말도 없이 잠수를 타서 한동안 좀 어수선 했어요. 다음부턴 불편한거 있으면 혼자 하지 말고 말해요.”

 

 진서가 대답대신 엷은 웃음을 보였다. 습관인지 불필요한 대답은 그렇게 소리 없이 표정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동준이 커피를 타며 신문을 보고 있는 진서를 건너다보았다. 전날 샤워 실에서 나와 삐줏저리든 머리가 손질이 되지 않은 형태 그대로 쭈빗쭈빗 솟아 있었다. 동준이 커피를 타면서 또 다시 실없는 웃음이 세어나고 있었다.

 

  “커피 할래요.”

  “아뇨...”

  “근데.....”

 

 동준이 첫머리를 내놓고 말을 쉬자 진서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이 너무도 사무적으로 예의를 갖추고 있어 동준이 하려든 농담을 내놓지 못하고 말꼬리를 돌렸다.

  “.....점심 뭐 먹을래요.”

진서가 시계 쪽으로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겨우 열한시가 조금 넘고 있었다.

  “.....여기 앞에 쌈 밥집 괜찮은데 있는데.....쌈밥 좋아해요?”

  “네.....”

 

 진서가 보던 신문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몸을 일으켜 사무실 문으로 몇 발짝을 옮겼다. 문을 열고 나서려는 진서에게 동준이 하지 못하고 남겨뒀던 농담을 슬쩍 던져 보았다.

 

  “근데....그런 머리는 어디가면 해주는 건가....그게 원래 그 머리 스타일인가?”

 

 빙긋이 웃고 있는 동준의 시선과 마주친 그 눈 속에 당혹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만져보던 진서가 아무대답도 못하고 문을 닫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러면서도 동준의 시선을 의식해 벽면의 거울에 곁눈질로 자신의 머리를 비춰보고 있었다. 동준이 의자에 등을 깊숙이 묻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12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동준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쿼시 레슨을 하고 있는 진서를 손짓으로 불러냈다.

 

  “점심....”

  “아직 시간이......”

  “그 집 늦게 가면 자리 없는데....”

  “옷 갈아입고 올게요.”

  “그대로 가도 되요....멀지도 않고....”

  “잠시 만요.”

 

 동준의 말에 아랑곳없이 진서가 탈의실로 가 옷을 갈아입고 왔다. 삼복더위에 긴 바지와 셔츠로 무장을 하고 나온 진서를 본 동준의 표정에 또 다시 웃음이 번졌다.

 

  “아니....무슨 점심한번 먹는데......이런 날씨엔 팬티만 가려주면 예의는 지키는 건데..”

 

 동준의 짙은 농담에 잠시 눈이 커지든 진서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다. 앞서 걷던 동준이 클럽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지윤을 보았다. 순간 그 표정이 제빛으로 굳어지다 다시 풀리고 있었다.

 

  “내가 시간 맞춰 온 모양이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이지?”

  “어쩐 일이에요. 연락도 없이...?”

 

아무 일 없는 듯 웃고 있는 지윤의 얼굴이 동준을 더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어젠 내가 좀 심했던 거 같아서 너 맛있는 거 사 줄려고.”

 

동준이 뒤에 서 있는 진서를 돌아보며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의 싸늘한 말을 던졌다.

 

  “미안해요. 오늘 점심 혼자 먹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지윤이 처음 보는 얼굴에 약간의 경계를 섞어 동준에게 물었다.

 

  “누구....?”

  “정재대신 새로 일한 사람 구했어요.”    

  “그럼 다 같이 가면 되지 뭐.....”

 

 지윤이 진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너무도 노골적으로 들어나 있어 진서의 표정이 불편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노골적인 지윤의 시선보다 더 싸늘하고 차가웠다. 

 

  “아뇨. 불편합니다. 저는 불편한 식사.....싫어합니다......두 분 다녀오세요.”  

 

 지윤이 놀란 눈으로 진서를 보았다. 정면으로 자신의 눈을 받아치는 그 당돌함이 지윤의 신경을 긁고 지나갔다.

 

  “당돌한 아가씨네......그래요. 그럼....”

 

차에 올라탄 동준이 그 제서야 입을 열었다.

 

  “사람을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상대방이 난처해하는 건 생각 안 해요.”

 

 지윤이 동준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처음 보는 자신에게 너무도 서늘한 눈빛을 던진 그것도 마음에 걸리고 있었지만 동준이 그 아이를 싸고도는 것이 못마땅했다. 

 

  “내가 그렇게 쳐다보는 건 신례가 되고 건방지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불편하다는 말을 하는 그 태도는 괜찮은 거니.”

 

동준이 순간 뜨거운 것에 대인 듯 심장이 뜨끔거렸다. 진서의 말이 간밤의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해 알 수 없는 당혹스러움이 스치고 있었다.

 

 - 불편합니다.....저는 불편한 식사 싫어합니다.

   불편하다....나도 불편한 것은 싫다.

   불편합니다.....불편하다......

 

운전을 하던 동준의 얼굴이 넋을 놓은 듯 딴생각을 하고 있어 지윤이 그를 불렀다.

  “내 말 듣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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