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 자신을 보는 있는 눈동자가 싸한 한기를 내보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창문을 부셔버릴 듯한 폭풍우가 동준의 혼란한 머릿속으로 그대로 불어 닥쳤다.
“이건 정신수양용인데......직접 사람을 때려보긴 처음이네요.”
“.....이럴 때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하네......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놀라지도 않고...”
진서가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고 동준을 보고 있었다.
“금방...나한테 물은 거 무슨 말이에요?”
“아냐....잠깐 다른 걸 생각했었어..... 한잔....할래?”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은데... ”
“그런가....너무 늦은 건가?”
돌아서지 못하고 있는 동준의 얼굴을 지켜보던 진서가 다시 말을 바꾸었다. 아마도 혼자라도 술을 할 동준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럼 간단하게 여기서 한잔해요.”
“잠깐 있어. 내려가서 사올게.”
동준이 편의점에 가 맥주와 안주를 사왔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그것이 이상했다.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그 눈도 낯설지 않을 만큼 사람을 긴장시켜 동준이 애써 피하지 않고 맞받았다.
싸하게 목을 타고 넘어간 맥주가 위를 훑어 동준의 놀랐던 가슴이 그 제서야 진정되고 있었다.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 킨 진서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왜 그렇게 사람을 빤히 보니?”
“...온통 지래 밭이네요.”
"무슨 뜻이니?"
"나 여기 왔던 다음날...얼굴에 멍자국 입술에 터진 상처 뺨에 긁힌 자국.....다양하게 만들어 왔었는데.."
동준이 피식 웃었다. 냉냉하게 눈길한번 맞추지 않던 그 눈이 자신을 열심히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에 싫지 않은 웃음이 세어나고 있었다.
"자세히 관찰했네."
"찾아오는 사람.....전화받는 사람.....누구도 반가운것 같진 않던데.....그만하면 지래깔린거 아닌가?"
"원래 남자들 그렇게 노는데..."
"쌈박질하고 놀 나인 지난것 같은데..."
“언제 배운 거야?”
“어려서 시작했다...한참 만에 다시 잡아봤어요.”
한 캔을 비운 진서의 얼굴에 홍조가 돌고 있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그 얼굴에 드리워진 미소가 한결 더 편하게 풀려 있었다.
“상당히.....복잡하게 사는 사람이네요.”
“그날.....함께 식사하자고 했던 그날....”
동준이 말을 하려다 머뭇거렸다. 자신이 뭘 물으려 하는지조차 난감해 하면서도 자꾸 마음에 걸려 한번은 물어보고 싶었다.
“뭔데요....말해보세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불편해서 싫다는 말........다른 사람들은 쉽게 하지 못할 말인 것 같은데....”
“그 여자 분이 많이 화난 모양이네요. 이렇게 따져 묻는걸 보니.”
“그래서 묻는 거 아냐. 그냥....”
“누가 그랬어요. 불편하고 싫은 거 참지 말라고.....그래서 참지 않는 것뿐이에요.”
동준이 들이키던 맥주 캔을 입에서 때어냈다. 목을 넘기던 한 모금이 뜨끔하게 걸려 사례가 들린 듯 따가웠다.
“누가.....그런 말을 했는데?”
동준의 물음을 흘려버린 채 진서가 다시 한 모금을 마신 후 잊었던 것을 기억해낸 듯 말했다.
“참...나 내일 오후에 시골집에 좀 다녀와야 하는데....”
“그렇게 해......어딘데?”
“고성 시골 동네에요.”
“....어쨌든 아까일은 고맙다고 해야하는 건가? 근데......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잘한 거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니 말대로 내 주위에 지래가 깔려 있는 거 부정하지 않는다. 이번같이 여기까지 불똥 튀기지 않게 하겠지만....혹시 그렇다 해도 다시는 그러지 마라.”
“.........”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흔들림 없이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 자신에게 아무런 경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진서의 눈이 한순간 동준의 마음을 야릇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것이 여자를 품고 싶은 욕망에서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떨림이 낯설고 당혹스러워 동준이 자꾸 캔을 비우고 있었다.
어느 듯 맹렬하게 퍼붓던 비바람이 그 기세를 죽여 잔잔한 빗줄기를 뿌리고 있었고 이미 시간이 두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좋아하지 않으면서...... 왜 그렇게 살아요?”
“......가끔 지나치게 건방진 거 알고 있나?”
"내가 건방진거 불편해 하지 안잖아요."
진서가 피식하고 웃었다. 그 얼굴에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여유가 묻어있어 동준이 자신도 모르게 무거웠던 무게들을 풀어버리고 있었다.
“꼭 나를 다 아는 듯이 말을 하는구나.”
“오래 본다고 해서 많이 알아지는 건 아니에요.”
“그 말은.....잠시 일주일 보고도 나를 알겠다는 투구나.”
진서가 또 다시 대답대신 예 그 특유의 웃음을 흘렸다. 부드럽게 올라간 입 꼬리가 술기운이 돈 동준의 가슴을 묘하고 흔들고 있었다. 동준이 남은 캔을 따다 무심하게 진서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너 들어가라. 이것 마시고 문은 내가 잠그고 갈게.”
“같이 시작했는데....마저 마셔요.”
자신을 보고 있는 진서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있던 동준이 남은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가라.”
진서가 채 한마디를 하기도 전에 싸늘하게 사무실 문을 닫고 나와 버린 동준이 클럽을 나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러나 한참동안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문을 잠그지 못하고 있었다.
- 꿈 때문인가...
아니면 새삼스럽게 사람이 그리운 건가...
왜 이른 거지.....
왜 보잘 것 없는 작은 여자에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파란대문 앞에 잠시 멈춰선 정재가 길게 호흡을 가다듬고 문을 들어섰다. 대문 안으로 들어선 시선 속으로 더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낮게 둘러쳐진 담 너머로 호수가 그대로 쏟아져 들어와 작은 시골집에 들어온 느낌을 잊게 하고 있었다.
“계십니까.......?”
집안에서 인기척이 없자 정재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어 마당으로 들어섰다. 작은 연못 속에 연잎이 싱싱하게 키를 재며 소담스레 담겨져 있었다. 아직 잎을 열지 않은 봉우리 두개가 엷은 분홍빛을 뿌리며 그 초록 잎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모습이 한 폭 속에 담긴 그림처럼 단아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주인이 없는 집인데도 불안하거나 들어서면 안 될 것 같은 경계가 없었다. 조심스레 담장으로 다가서 펼쳐진 호수를 내려다보던 시선이 마루로 옮겨져 벽에 걸린 그림에 멈추었다. 무엇에 이끌리듯 그 그림에게로 다가선 정재의 시선이 한참동안 그곳에 꽂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옛 복장을 한 남자가 달을 등지고 선채 검을 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 흐릿하게 머금고 있는 그 미소를 본 정재의 심장이 몸을 휘감고 있는 열기보다 더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흐.....흑........
한참동안 그림에 머물던 시선이 액자 뒤 접혀진 메모에 옮겨져 조심스럽게 그것을 꺼내 펼쳤다.
-큰 스님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혹시 오늘 오실지 몰라 메모를 남겨둡니다.
급한 일로 서울에 올라갑니다. 아마도 주말에 내려와질 것 같습니다.
손님방을 치워두었습니다.
바쁘지 않으시다면 이곳에서 잠시 머무시면서 편한 시간 가지십시오.
마을이 크지는 않지만 주위에 돌아볼 것이 많은 곳이라 며칠 머물러도 괜찮을 것입니다.
마루에 앉아 길지 않은 쪽지를 여러 번 읽어보던 정재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늘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익숙해진 삶이여서 그런지 쪽지의 느낌이 조금은 생소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떨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그 곳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다 작은 방의 문을 열어보았다. 가방을 내려놓던 정재의 시선이 얇은 화선지 속으로 내비치는 초록의 그것에 멈추었다. 벽지위에 손을 가져가 본 그가 벽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화선지 안쪽에 푸른 대나무 잎이 함께 덧대어 발라져 있었다.
그 입이 아직 푸른빛을 그대로 가진 걸로 봐선 화선지를 바른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듯 보였다. 손바닥으로 그것을 스쳐보다 호수 쪽으로 내진 작은 문을 열었다. 시원한 산바람이 호수를 돌아 방안으로 들이쳤다. 여러 가지 색을 가진 집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음을 가라앉히는 그 평온함이 정재의 가슴을 사로잡고 있었다.
집을 나와 마을을 돌아보던 정재가 노인둘이 장기를 두고 있는 작은 가게 앞에 멈춰 섰다. 그 제서야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 생각나 속이 불편했던 이유를 알아챘다. 절에서 내려와 곧바로 지도를 펼쳐놓고 다섯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와 이미 점심시간이 훨씬 넘어가고 있었다. 정재가 가게 앞으로 다가서자 두 노인이 장기를 멈추고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정재가 겸연쩍어 하며 인사를 건네자 노인이 촌부의 인심 좋은 웃음으로 반겨주었다.
외딴 곳이라 외지 사람의 출현이 거의 없어 젊은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을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었다. 가게로 들어서자 오십대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쪽방에서 누웠던 몸을 일으켜 정재를 맞았다.
“저 혹시....뭐 식사 될만할걸 먹을 수 있을까요.?
부드럽게 도시 말씨를 구사하는 정재의 얼굴을 잠시 훑어보던 여인이 그 사정을 알아챈 듯 파란 슬리퍼를 끌고 나와 탁자 앞에 플라스틱 자리를 하나 끌어다 주었다.
“않으이소. 외지에서 왔는 갑네예. 마땅한 건 엄꼬 라면이라도 잡술끼모 하나 꺼려드리지예.”
“예. 감사합니다.”
여인이 쪽방 옆 부엌으로 들어갔다. 문밖으로 두 노인을 보라보고 있던 정재가 부엌 쪽으로 고개를 돌려 여인에게 물었다.
“마을을 다 돌아봐도 노인 분들 외에는 보이질 않네요.”
“이런 촌에 젊은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꺼. 다 도시로 떠나뿌고 없지. 근데 여기는 머슨 일로 오신는지...누구집 손님입니꺼?”
“예...저기 파란대문 집.”
“아.....진서 손님입니꺼...”
“예.”
여인이 고개를 빼 꼼이 내다보며 정재와 시선을 맞추어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그 집에 지금 아무도 엄슬낀데....진서 서울 다녀온다카고 갔는데 아직 안왔을낀데..”
“예. 압니다. 주말에 온다는 얘기 들어었습니다.”
“그 아가 많이 아프고 나서 마이 변했지예. 병원가도 원인도 없다 캐서 신병 걸맀다꼬 한동안 굿도 하고 해쌌는데....”
여인이 별 생각도 없이 주섬주섬 흘려 데는 말을 전해들은 정재가 놀라 다시 되물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팠었던 겁니까?”
“의사도 모른다 카는데 우리가 우째 알겠는교. 그냥 쉬엄수엄 앓터마는 아가 멀건이 넋나간거 메이로 그랬는데....식구들 다 이사가고 진서는 무슨 절에서 불공드리고 있다카는 소식을 들었는데 갑자기 봄쭘에 지 혼자 다시 저 집에서 와서는 뭣을 하는지 마당을 파내고 무슨 쪼깨난 연못을 하나 만들어 놨더마는 담장도 다 흘고 동네 영감들한테 부탁해서 낮은 흙담으로 해도라 카고, 올라가기 전에도 한참 뒷마당에 애기정자 놓는다꼬 옳은 일꾼도 안되는 영감들하고 생난리를 치다가 갔거마는...”
라면그릇을 반쯤 비운 정재가 큰나무아래 노인들을 다시 보고는 여인에게 말을 했다.
“막걸리 좋아하십니까?”
정재가 눈짓으로 노인들을 가리키자 여인이 내심 반가운 듯 입 꼬리를 올렸다.
“소주나 막걸리나 다 좋아하시지예.”
“적당한 안주꺼리하고 드실 만큼 드리세요.”
“젊은 사람이 촌 동네 인심도 알고....아이고 영감들이 좋아하것네.”
여인이 분주히 안주꺼리를 만들어내 조촐한 술상을 마련해 노인들에게 내다 날랐다. 노인들과 여인이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한 노인이 손을 들어 정재를 불렀다.
“이리 온나. 술을 냈으모 한잔 같이 해야지.”
노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동네 사정을 듣고 진서의 이야기도 몇 마디 귀동냥을 한 정재의 가슴이 알 수 없이 애잔해지고 있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 대한 그 어떤 연민이 마당을 서성이는 정재를 목마르게 했다.
작은 연못의 연잎을 바라보던 정재가 가게집 여인의 말이 생각나 집을 돌아 뒤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생각보다 넓은 뜰이 있었고 작은 정자가 뼈대만 세워진 채 온통 자재들로 뒤덮혀 있었다. 급하게 떠난 듯 연장들조차 재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자재들 아래 깔려있었다. 대패와 몇 가지 연장들을 주워 옮기던 정재가 뒤뜰 마루 한편에 놓여진 스케치북을 보았다. 주워들어 몇 장을 넘겨보던 그 얼굴이 하얗게 굳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술을 아느냐.
사람을 아느냐.
술을 두고 마주앉은 사람이 눈 속에 내려앉는 그 애절함을 아느냐.
시간은 그 마음의 형태에 따라 흐르는 체감을 달리한다.
기다리는 이의 하루는 일 년처럼 더디어 하룻밤에도 백발이 될 듯이 애간장을 녹이고…
마주앉은 사람이 눈 속에 내려앉은 이의 그것은 차라리 칼날 위를 걷는 섬뜩함이다.
평생을 염원처럼 가지고 가야할 이 애통함이 겨우 한 잔 술에 채워져 있다.
볼 수 없는 눈과 말하지 못하는 입으로 마시는 술에 향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움직일 수 있는 건 술잔뿐이니 그 속에 전부를 실어보는 것이다.
이리도 어리석은 염원이 있느냐.
나는 세상을 죽여 지금을 정지시키고 싶다.
가지면 안 되느냐.
나는 이런 염원을 가지면 안 되느냐.
술이 과해 부질없는 욕심이 생기고 있다.
너를 두고 마시는 술은 늘 이리 나를 시험한다.
보는 것만이 진실인 이 세상에……
너를 품을 내 자리는 없다.
아느냐.
하룻밤에도 수없이 백발이 될 듯이 살을 녹인 날들을……
보느냐.
칼날같이 섬뜩하게 흐르는 지금을 잡지 못해……
이리 또 술 속에 정신을 놓아버리는 내 서러움을……]
-당신이군요.
그렇지요.
보지 않아도...느낍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그토록 알려주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내가 알아 볼 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동준이 집으로 돌아와 잠들지 못하고 독한 술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늘 온몸에 독처럼 퍼져있는 그 허무감이 일시에 다른 것으로 변하는 듯한 기분에 좀처럼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작은 계집아이 앞에서 자꾸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그 낯설음이 동준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여자로 품어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몸짓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곤두서 다른 것을 잊게 하고 있었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자신을 질책하며 거침없이 당당한 시선을 던지는 그 당돌함이 동준의 어깨에서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던 힘을 거두어 가고 있었다.
- 이상하다.
널 보고 있으면 나를 잊고 쉬고 싶다.
그 눈이 내 허물을 모두 덮어 낼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오게 한다.
[비익조를 그려다오.
왜…… 그것을 내게 그리라 하느냐?
그 새는 슬픔이다.
평생을 서러움만 품고 가는 비통함이다.
어째서 그것을 네 도포에 담으려 하느냐?”]
[그리움이다.
평생을 아프게 품어도 서럽지 않을 그리움이다.
그 반쪽을 만나 창공을 날아오르면 수천 리를 한 번에 품어 가질 그리움으로 견디는 새다.
그러니 그려다오.]
문밖으로 피를 토할 듯한 남자의 절규가 새어나왔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그 처절한 울음소리에 숨을 죽였고 산사의 고요함마저 그 아픔을 품어가지지 못했다. 하룻밤 꿈처럼 내려앉아 사람의 영혼을 취해 가버린 그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오열했고, 자신을 두고 떠나는 가슴이 얼마나 원통했을지 그 고통이 사무쳐 울분을 토해냈다.
동준이 온몸이 땀으로 헌 건히 젖어 잠에서 깼다.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한사람을 놓지 못한 채 서러운 눈물을 쏟아내던 그 얼굴이 비로소 뿌연 안개 속에서 선명하게 명암을 드러냈다.
비익조를 말하며 마주앉은 사람이었다. 웃음 속에서도 피 끓는 눈물을 스미게 했던 그 사람이었다.
-내 몸이 아니었다.
내 몸처럼 아팠던 너였다.
그토록 뜨겁게 토해졌던 그 피가...
온몸을 녹여 오열하던 그 눈물이...
내 것이 아니었다.
내 것이 아니어도 내 몸처럼 찢겨나가는 고통이 되어 내속에 가득 찼던 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