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유키와 레이>>
그날 하루종일... 커튼과 씨름하던 지나는 그날 저녁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나오는 것을 들어야 했다.
얼마나 정신없이 일했으면 날이 완전히 어둑어둑해지고 저녁식사 시간이 훨씬 지났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커튼을 모조리 갈아끼우는 것이 예사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레이의 손을 빌려서야 그나마 저녁에 일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야 욱신거리는 팔다리를 두들기며 저녁식사를 준비한 그녀는 레이 방으로 향했으나 아이는 이미 침대 위에 뻗어 자고있었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 종일 부려먹기나 하고 저녁도 못 먹이고 재우게 되어서...
그녀는 아이의 침대 발치에 앉아있는 보리의 머리를 곱게 쓰다듬어주고 나왔다.
아무래도 혼자 저녁을 먹어야할 것 같았다.
식사를 하기 전에 사토 유키의 저녁식사를 가져다줘야 했다.
수저를 챙겨서 쟁반에 조용히 내려놓던 그녀는 뚜껑이 덮힌 밥그릇을 내려다봤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그의 식사를 매일마다 배달해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결코 몸이 아픈 장애인이 아니며 노환으로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늙은 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사지가 멀쩡한 삼십 대의 젊은 남자였다. 단지 어두운 과거로 인해 받은 상처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남자일 뿐이었다.
그런 남자라면 더더욱 바깥 세계로 나올 수 있도록 해줘야만 했다.
바깥의 밝은 빛을 마음껏 쏘이며 성격을 바꿀 수 있도록 해줘야 했다.
'이렇게 애 밥 해다먹이는 것처럼 언제까지 오냐오냐 봐 줄 수는 없어!'
그녀는 오늘 저녁까지만 식사를 배달해주기로 하고 내일부터는 그에게 국물도 없음을 보여줄 것이다.
2층의 그녀 방과 복도 그리고 유키의 방과 서재의 커튼은 모두 그에게 부탁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부탁'이란 단어가 맞지만, 인상을 쓰며 투덜거리던 그의 입장에서는 협박으로 인한 중노동이었다.
그는 커튼을 달면서 내내 키스 20번은 아무래도 손해보는 짓이라고 투덜거렸다.
그와 달리 지나는 지금 생각해보니... 그의 조건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커튼을 달아놓음으로 인해서 어두컴컴하던 집안에 광명이 찾아들었고 그리고 그와 열 아홉 번의 키스를 마음껏 어느 때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유키의 방문을 두드렸다. 곧 그의 조용하고도 매력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늦었군?"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여전히 방은 어두웠지만 낮에는 커튼을 쳐놔도 환할 것이다.
"오늘 저녁은 굶기는 줄 알았소. 주긴 주는 모양이군?"
"아, 죄송해요. 아래층 일이 늦게 끝났거든요. 그래서 례이는 밥도 못 먹고 자요."
아들이 저녁을 굶고 잔다는 말에 유키의 짙은 눈썹이 올라갔다. 그녀는 일손이 부족해 허락없이 아이를 부려먹은 것을 사과했다.
"됐소. 굳이 사과하지 않아도 되오. 그것도 어쩌면 아이에게는 공부가 되었을 테니까."
그가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해줘서 그녀는 기뻤다. 조짐이 좋아보였다.
그가 작은 것 하나라도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주는 것만도 그의 변화에 작은 가능성이 자라고 있었다.
"들어... 오겠소?"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가 자신을 방으로 초대해 준 것이었다.
그의 표정은 약간의 여유있는 미소가 언뜻 보였고 그리고 분명히 진지했다.
"아, 저기... 아, 아뇨."
그녀는 얼른 들어가고 싶었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그와 단둘이 방 안에 있으면 또다시 서로간에 흐르고 있는 열정을 무시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저기, 할 일이 아직 남았어요. 아, 저기... 있다가 차 한잔 하시러 내려오시겠어요? 그 쟁반을 들고오시면 더 좋구요."
유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며 돌아서 떠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지켜봤다. 그녀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그녀는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열 아홉 번의 키스가 있는 한 그녀는 그를 뿌리칠 수는 없을 것이다.
식사를 끝낸 유키는 그녀 말대로 쟁반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바깥으로 해서 내려갈까했지만 레이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그와 마주칠 사람은 지나 뿐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시의 모습을 똑똑히 보여준 후로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게 되었다.
때문에 그는 전혀 그녀의 시선이 고통스럽거나 부끄럽지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길게 그어져있는 상처를 무시했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고집대로 2층 복도와 계단은 환했고 아래층조차 조그마한 조명 빛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에 천장에 달려있는 커다란 조명이 집안을 대낮처럼 환히 비추고 있었다.
"???"
지나는 거실에서 거둬 온 빨래를 정리하다가 계단을 내려오는 그를 발견하고는 놀랐다.
그가 진짜로 내려올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 했던 것이다. 그는 아래층이 어둡지 않고 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감하게 내려왔다.
"사장님! 그냥 놔두세요!"
그녀는 얼른 주방으로 가서 쟁반에 담긴 빈그릇들과 남은 음식들을 치웠다.
"금방 나한테 사장님이라고 불렀소."
"아, 그래요? 그, 그럴 리가요... 잘못 들으셨겠죠."
그녀는 그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그가 마실 차를 준비해서 거실로 가져갔다.
유키는 환한 거실에서 여느때처럼 행동했다. 주변의 변화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켜고 체널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지나는 그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생각이 바뀌신 건... 누구를 위해서죠?"
"여기 내려온 거 말이오?"
"레이를 위해선가요? 아니면... 자신을 위해서?"
그의 깊이 있는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 긴 다리를 자연스럽게 꼬고는 차를 홀짝거리듯 마셨다.
"내 맘이요."
"..."
"내가 내 집에서 맘대로 못 한다는 거요?"
"그런 게 아니잖아요. 전, 단지... 사장님께서..."
"계속 고집을 피우겠단 거군?"
"네?"
그의 목소리가 냉랭하게 들려왔다.
"하나 물어봅시다."
그가 찻잔을 내려놓고 그녀가 앉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한쪽 팔을 소파에 얹으며 몸을 편안하게 기대었다.
"언제까지 날 사장님이라고 부를 거요?"
"네? 아, 또 그 얘기군요? 전 여기 있는 이상 그렇게 부를 거에요. 친구처럼 다정하게 부를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럼 유스케는?"
그의 질문이 마치 질투에 휩싸인 남자같았다. 애인이 다른 남자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것에 심통이 난 애인같았다.
그녀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질문을 기억했다.
"아... 그거야, 경우가 다르죠. 전 사장님한테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가 있죠?
하지만 유스케와 저는 고용관계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분은 친구처럼 편안한데다, 저에게 잘 해주시거든요."
"편안하고 잘 해준다?"
지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자신의 말을 되풀이하듯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인지 이해가지 않았다. 애인 사이도 아닌데 갑자기 질투라도 난다 이건가?
그녀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친구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이 확실하다면... 자신이 다른 남자의 이름만은 허물없이 부르는 것을 기분나빠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저기... 사장님."
"아까 말씀드리려 했는데...지금이 좋을 것 같아요."
유키의 시선이 텔레비전에서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내일 아침부터 식사는 내려오셔서 하세요."
"..."
"이젠 위로 식사를 갖다드리는 일은 하지 않겠어요."
"..."
"물론 레이와 마주하시기 좀 이르다고 생각되시면... 레이보다 먼저 드시거나 아님 뒤에 드시거나 하시는 수밖에요.
그래도 이렇게 환한 거실에도 내려오셨잖아요? 그리고... 또... 사장님! 제 얘기 듣고 계세요?"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요?"
그가 고개를 갑자기 돌리며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약간 움찔했다.
"???"
"그러니까 내일부터 아들녀석하고 얼굴 맞대고 같이 밥먹으란 거요?"
"아...네..."
지나는 치마자락을 구겨질 정도로 긴장한 손으로 꼭 쥐었다. 그가 버럭 소리라도 지른다면 그녀는 참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하고 같이 밥먹는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해서 레이에게 방에서 먹으라고 할 수는 없질 않는가?
"좋소."
한참 후에야 그가 마른 침을 삼키며 두 사람 간의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를 깨트리며 대답했다.
"대신에..."
"또 대신! 또 대신에 뭐요? 조건이 있다구요? 아니 아래층에서 식사하는 건데 무슨 조건이 필요하죠?"
"..."
"뭐, 뭔...데요?"
그녀는 은근히 그가 꺼낼 조건이 뭔지 궁금하기도 했다.
유키는 덥수룩하게 기른데다 숱 많고 검은 머리를 뒤적거리듯 뒤로 쓸어넘기며 말했다.
"내 이름."
"네?"
"두 번 다시 '사장'소리 꺼내지 마시오. 유키라고 불러요."
"아, 사장님!"
"..."
지나는 속에서 뭔가 단단하게 응어리가 생기는 것 같았다.
자신도 고집이 세다고 생각했지만 사토 유키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절대 자신의 의사를 굽히지 않으려고 했다.
'그 자존심이라 이거지... 그것때문에 유치하게 나오시겠다?'
어떻게 보면 그가 스스로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게 아니라 하는 짓이 유치해서 있던 자존심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독하리만큼 무겁고 위엄있는 카리스마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떨 때 보면... 꼭 다섯 살짜리 애같다는 거 아세요?"
"뭐? 누가?"
지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찻잔을 들고는 돌아서기 전에 외쳤다. 그것도 미소를 반짝거리며...
"누구긴... 사장님이죠!"
유키는 잠들기 전에 레이 방으로 갔다. 요즘은 지나와 같이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악몽에서 벗어난 모양이었다. 가정교사와 함께 몇 번 잠을 자면서 그동안 괴롭혀왔던 악몽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는 그녀에게 여지껏 고맙다는 말을 못 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얘기를 해야했다.
아들의 공부를 가르치기 위해서 온 그녀는 가정교사가 아닌 아들에게 친엄마 그 이상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었다.
활달하고 적극적인 아들 레이의 모습... 언제부턴가 그 모습을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라고 기대를 접었었다.
그녀가 이곳에 온 뒤로 집안의 분위는 눈에 띄도록 달라졌음을 그는 인정해야 했다.
완전히 죽어있던 어둠 속에 쌓여있던 집안을 생기있고 밝게 만들어주었으니까 말이다.
그는 아이의 이마에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이 손이 꼼지락거렸다.
"...아버지?"
유키는 아들의 머리맡에 있는 스텐드의 불을 재빨리 끄려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그는 아들을 사랑했다. 어느 누구보다도...
"그래, 레이. 나 때문에 깼니?"
"아뇨. 꿈 때문에 깼어요."
그렇다면 아직까지 악몽을 꾼다는 건가. 그는 아들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음이 아팠다.
"꿈 속에서 아버지랑 같이 놀이공원도 가고... 같이 맛있는 밥도 먹었어요. 선생님이랑요. 그리고... 여기에..."
레이는 손가락을 자신의 이마를 가리켰다.
"여기에 아버지가 뽀뽀해주셨어요. 사랑한다고요..."
"..."
그의 가슴이 메어져왔다. 뜨겁게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구슬프게 울기까지 했다. 레이는 아버지 사랑에 목말라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악몽을 꾼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한 꿈을 꾸면서 너무나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하구나, 레이."
"아버지..."
아이는 손을 들어 가만히 그의 상처난 뺨을 만졌다.
그의 심장이 충격을 받았는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발밑으로 떨어졌지만 이내 아들의 부드러운 손길에 마음이 설레였다.
"전... 아버지를 사랑해요. 많이 보고싶었어요."
"레이..."
그는 목이 답답하게 막혔다. 아이의 말에 코끝 또한 시큰거려왔다.
레이는 씨-익 웃더니 졸음이 섞인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버지... 멋있어요. 아주... 세상에서 제일 멋있으세요."
아이의 손은 분명히 뺨에 길게 그어져있는 상처의 선을 따라 움직였다.
아이는 그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무서워하지 않고 아버지의 상처를 칭찬했다.
유키는 얼른 아이의 손을 살짝 거머쥐고는 메어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사랑한다, 레이."
그리고 그는 아들이 잠들기 전,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선물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네가 좋아할만한 선물일 거다. 잘 자라, 레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는 이내 눈이 스르르 감겼고 그는 스탠드를 끄고는 방에서 조용히 나왔다.
그는 나오자마자 문앞에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활짝 웃고있는 김 지나가 서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에게 아들과의 대화하는 모습을 들킨 것 같아 창피해 인상을 구겼다.
"엿듣는 게 취미요?"
"오늘부터 그럴까 해요. 부자간에 나누는 대화가 제법 재밌네요."
그녀는 키득키득거리며 주방으로 갔다. 유키는 그녀가 놀리는 것이 기분나빠 성큼 그녀 뒤를 따라갔다.
"놀리는 거요?"
"어머? 눈치채셨어요? 흐흐흐흠... 사장님한테 다른 면이 있는 지 몰랐거든요. 진작에 그러셨음... 레이가 얼마나 좋아했겠어요?"
식탁 위에 놓은 수건을 챙겨들고 그녀는 주방에 있는 뒷문으로 갔다. 하지만 유키가 더 빨랐다.
그는 문 손잡이를 먼저 가로채버렸다. 그리고 그녀 가까이에 다가서고는 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
"당신은 어때?"
"뭐, 뭐가요?"
놀라는 그녀의 눈은 아직까지도 웃음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그녀의 입술 끄트머리는 얄밉게 살짝 올라가 있었다.
"당신도 좋아했을까?"
"네?"
"내가 진작에 달라졌다면 레이처럼 당신도 좋아했겠냐고?"
지나는 놀란 얼굴로 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갑자기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소리란 것을 알고 얼굴이 화끈거려 얼른 그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긴장으로 굳은 목소리에서는 연신 딱딱한 말을 내뱉었다.
"사장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뻐할 거에요."
"..."
유키는 그녀가 뒷뜰에 있는 수영장으로 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실없는 웃음이길 바랐다.
그는 까칠한 턱을 매만지며 쓸데없이 던진 질문을 주워담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기분이 그렇게도 궁금했던가. 언제부터 그녀가 이렇게 신경이 쓰였고, 언제부터 그녀가 자신의 일부분인 것처럼 중요하게 여겨졌던가.
'사장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뻐할 거에요.'
그의 변화는 오로지 레이를 위한 것이란 말이군. 전혀 그녀 개인적으로는 기쁠 이유도 좋아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였다.
지나는 그의 질문을 곱씹어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돌아오는 대답이라고는 '그냥 호기심'이라는 것이다.
유키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녀의 기분을 물었던 것이다. 레이가 좋아하는 것처럼 당신도 좋아했겠냐고!
"그런 걸 질문이라고!"
당연히 그녀는 기쁘고 행복했을 것이다.
잔인하게 냉정하고 철저하게 어두운 베일에 가려져있는 남자보다는 자상하고 잘 웃는 남자... 그런 모습이었다면 그녀는 진작에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했을 것이다.
그녀는 아직까지는 능숙하지는 않지만 제법 많이 발전한 발차기로 물 속에서 움직였다.
예전처럼 쉽게 물에 빠지지는 않는 걸 보면 대단한 발전이었다.
그녀는 그다지 오래 수영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숨이 차올라 물 속에서 나왔다.
"유치하게 조건이나 내세우고... 솔직하게 말하면 어디가 덧나나? 나랑 키스하고 싶으면서 유치하게...
'조건 있소. 대신에 키스 스무 번.' 참나... 그냥 키스하고 싶다고 하면 될 걸..."
"지금 뭐라고 했소?"
"???"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싸늘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돌아다봤다. 바로 옆에 유키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래 위로 검정색의 옷을 입은 그는 영판 저승사자의 모습이었고,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한테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저승길을 안내하고있는 것 같았다.
순간 그녀의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식은 땀이 흘렀다.
그의 표정으로 봐서는 금방 자신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은 게 분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이걸 어째?!'
유키는 그녀 옆에 무릎을 세우고 앉더니 정면을 응시했다.
그의 검은 눈은 어둠 때문에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칼을 갈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었다.
"아, 저기... 저기 사장님, 있잖아요... 그게..."
"백 번을 해도 모자랄 거요."
"예? 뭐...뭐가요?"
"키스말이오."
"???"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옆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이내 시선을 서서히 그에게 돌리며 느긋하게 말했다.
"당신하고 키스를 백 번해도 모자란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지나는 그가 지금 키스를 하고싶다는 뜻으로 생각해도 되는 건지 궁금했다. 평온하던 그녀의 심장이 또다시 소란피워댔다.
"처음에 당신이 상상했던 조건이었으면 어쩔 뻔 했소?"
"아... 그, 그러게요..."
지나는 조금 욕심을 내도 되는지 자신에게 물었다. 그와의 스무 번 키스 중 첫번째는 이미 했고 열 아홉 번이 아직 남았다.
그녀는 마지막에 하는 키스가 절대 끝이 아니길 바라고 싶었다.
두 사람이 마지막에 나누는 키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으면 좋겠고, 그때는 서로에게 사랑이란 감정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열 아홉'이라는 숫자에서 조금씩 작아지는 대신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이 조금씩 커졌으면 했다.
다음 날 아침. 유키는 일찍 일어나 평소때처럼 산책과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은 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환한 거실에는 보리가 털인형을 이리저리 물어뜯고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보던 인형같은데 그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주방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고 깔끔하게 머리를 묶어올린 지나가 앞치마를 두른채 보글보글 끓고있는 냄비 앞에 서서 간을 보고 있었다.
그녀 모습은 너무 자연스러웠고 마치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요리를 하고있는 아내처럼 보였다.
슬리퍼 소리에 지나는 고개를 돌렸고 이내 그가 정말 약속을 지키러왔다는 것에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기뻐하는 것인지 단순히 충격만 받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유키는 괜히 그녀의 시선이 어색해 깔끔하게 면도한 자신의 턱을 만지며 신문가지러가겠다며 현관으로 나갔다.
지나는 얼른 레이를 깨우러 갔다. 레이는 졸음진 눈을 간신히 뜨며 침대에서 기어나와 욕실로 향했다.
"전날 아버지가 선물주신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아세요?"
씻고나온 레이는 주방으로 와서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오늘은 레이가 좋아하는 계란찜을 해두었다.
그리고 쟁반이 아니라 식탁에다 밥그릇을 하나 더 놓았다. 그리고 국과 수저를 놓았다.
아이는 놀란 눈으로 하나가 더 놓은 밥그릇을 보다가 현관에서 들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아... 아버지!"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거실에 들어선 유키를 향해 달려갔다.
밝은 곳에서 아이와 만난 사토 유키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지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아들을 품에 꼭 껴안았다.
"선물이... 선물이... 아버지였어요?"
"..."
"그렇죠?"
"그래."
"아, 아버지... 아아앙~"
레이는 그의 목에 매달리며 소리내어 울어댔다. 그리고 몇 번이나 믿을 수 없는지 확인하려고 유키의 뺨을 매만졌다.
유키는 이런 감정을 처음 겪는 것 같았다. 처음에 아들을 가졌을 때는 이렇게 기쁘지 않았다. 단순히 의무감만 앞서 자식을 키워오기만 했었다.
그리고 8년 전의 사건으로 인해 그는 완전히 부자지간의 경계선을 두껍게 그었고 그 위로 담까지 쌓았다.
그 담너머로 어린 아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 하고서 말이다.
교육상 필요한 돈만 높은 담너머로 던져줄 뿐이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아 '몹쓸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그는 품에 안긴 아들을 간신히 떼고는 등을 쓸어주어며 울음을 달랬다.
"이러다 해지겠다. 선물이 얼마나 좋은지 한번 봐야지?"
그는 아들을 주방으로 이끌었다.
지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거두고는 부자가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밥그릇과 수저를 다시 놓았다.
"이제 제가 레이랑 같이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겠죠?"
자리에 앉으며 지나가 가볍게 물었다. 그러자 유키의 눈썹이 질문을 던지듯 움직였다.
"레이 곁에 아버지가 있잖아요. 가정부가 아니라..."
"그렇다고 내 생각이 변하는 건 아니오. 변함없이 같이 식사하면 돼."
"하지만... 사장님..."
유키의 차가운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꽂혔다. 약속대로 그가 왔으니 그녀는 당연히 그에게 이름을 불러야 했다.
"유키...씨가 불편할까...봐서 그렇죠."
두 사람 사이에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특별한 긴장감이 존재하기에 쉽게 '유키'라고 부르기는 힘들었다.
"아니. 내가 아니라 당신이겠지."
"내가 불편하다고요? 아, 아뇨! 난... 그런 거 없어요. 레이만 좋다면요."
그녀는 긴장된 마음을 억지로 밥을 먹고있는 레이의 얼굴로 집중시켰다. 아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는 웃었다.
"셋이 이렇게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아이는 내내 반찬투정하지 않고 유키와 지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식사했다.
그리고 평소와는 다르게 아이는 아침밥을 두 공기나 먹어 두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더 생기가 있어서 좋네요."
지나는 짧은 미소를 그에게 던지고는 조용히 식사했다.
그녀는 마주편에서 식사를 하고있는 남자의 모습이 너무 신경쓰여서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조차 모를 만큼 사토 유키와의 식사는 난생 처음 겪는 쾌락의 일종이었다.
능숙하게 젖가락질하고 있는 그의 늘씬하고 긴손가락은 자유롭게 움직였으며, 잘 다듬어진 손톱까지도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언제까지 넋을 놓고 쳐다볼 거요?"
"네??"
"당신말이야."
지나는 깜짝 놀라 젓가락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는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을 몰래 쳐다보고 있는 그녀를 은근히 골려줄 참이었다. 그녀는 식사 내내 반찬은 안 먹고 밥만 떠먹고 있었다.
"맨밥이 그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소."
"..."
유키는 지나가 반찬을 집어먹으려할 때마다 방해를 해 결국 그녀는 그를 쳐다본 벌로 남은 밥을 그냥 먹어야 했다.
그날 점심과 저녁 또한 유키는 내려와서 식사를 했다. 레이는 식사 때만 되면 기뻐 날 뛰었다.
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식탁의 수저를 놓았고 지나를 거들어주기까지 했다.
아직까지 유키는 식사 외에 계속 위층에서 생활을 했지만 나름대로 그는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지나는 그가 이것만으로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했다라고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애정과 동시에 관심이 있어야 했다. 지나친 관심은 아이의 의견이나 자유로운 생각을 지우지만 적당한 관심은 반드시 레이에게 필요했다.
"레이."
"예?"
"날씨도 더운데 우리 수영하러 갈까?"
학습지와 방학숙제를 끝내고 수영장에 가기로 한 두 사람은 각자 방으로 가서 수영복을 가지러 갔다.
지나는 2층에 올라가 유키의 방문에 노크했다.
이제 그의 방 또한 낮에는 환해서 좋았다. 그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제법 바쁜 것 같아 아이와 함께 수영하러 가자는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졌다.
"저기... 유...키씨."
"...??"
그녀가 유키씨하고 부르자, 그는 시선을 들었다.
문간에 그녀가 서있었다. 어깨끈이 얇은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유키도 아니고 유키씨? 흠... 그래 무슨 일이오?"
"날씨도 더운데..."
"그래서? 수영하러 가면 되잖소."
"그건 알아요. 안 그래도 레이와 같이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유키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지나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는 돌아섰다. 그는 같이 갈 마음이 없었다.
"준비 됐니, 레이?"
아래층에 내려간 그녀는 거실에 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 대신 보리가 짖어댔다.
그녀는 레이와 보리를 데리고 뒷뜰로 갔다.
유키는 한참 일하다가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었다.
'날씨도 더운데... 안 그래도 레이와 같이 가기로 했어요.'
그녀의 표정이 언뜻 그가 상상하는 바라면... 같이 가자고 하는 의미일 것이다.
아까 글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던 그는 그녀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 했다.
유키는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서재에서 나와 창가로 갔다. 화사한 색상의 커튼이 마음에 들었다.
꼭... 때묻지 않은 김 지나의 순수함을 비춰주는 것처럼... 커튼은 깨끗했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밖에서 비춰오는 태양의 빛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방문이 부서져라 두드리는 소리에 그는 놀라 돌아섰다. 이어서 지나의 숨넘어갈 듯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오?"
유키는 방문을 열었다. 지나의 표정이란... 공포와 충격... 그 자체였다.
얼마나 정신없이 뛰어왔으면 수영복 차림에 물이 그녀 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고 뛰어오다가 넘어졌는지 무릎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오?"
"레이... 아, 아이가... 이상해요! 레이가..."
그녀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잔뜩 흐려져 있었다.
그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레이가 어딨냐고 소리치며 계단을 내려갔다.
"수영하다가... 갑자기 가라앉는 거에요! 장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식이..."
두 사람은 정신없이 수영장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
사토 유키는 수영장까지 어떻게... 무슨 정신으로 뛰어왔는지 기억하지 못 했다. 오로지 머릿속에 아들 생각 뿐이었다.
순간 공포가 온몸을 조여왔고 소름이 돋았다. 그의 맥박은 짓눌리는 공포에 발광이라도 하듯 몸부림쳐댔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막 그는 조금씩 햇빛을 보기로 했는데... 이제 막 어두운 동굴 속에서 한걸음 나왔는데... 이럴 수는 없었다! 절대로!
"레이! 레이!"
레이는 수영장 가쪽에 설치해둔 파라솔 아래에 그늘 진 곳에 누워있었다. 그는 아들에게 달려가 아이를 일으켰다.
"무슨 일이야! 레이! 정신 차려!"
유키는 아이를 일으키고 흔들었다. 그리고 뺨과 목을 만졌다. 맥박은 뛰고 있었지만 아이는 눈을 뜨지 않았다.
"레이!"
녀석은 수영을 잘 했다. 더 어렸을 때부터 아들에게 수영을 가르쳤다. 그런 녀석이 왜 물에 빠졌단 말인가.
지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레이를 내려다봤다.
"레이... 어떡해... 레이! 아버지 오셨어! 눈 떠! 어떡해요! 어쩜 좋아?! 흐흐흐흑! 레이..."
유키는 그녀의 목 놓아우는 소리를 들으며 아들에게 인공호흡을 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입술이 닿기도 전에 아이가 눈을 떴다. 두 사람은 그자리에서 숨을 멈추었다.
"레, 레이..."
유키는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며 쉰 듯한 목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아이는 눈동자를 소리나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아이의 얼굴이 천천히 웃고있었다. 두 사람은 아이가 정신을 차린 것이 너무나도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전 알았어요... 아버지가 오실 줄..."
"뭐...?"
그는 유키의 뺨을 쓸었다. 지나는 수건으로 아이의 젖은 얼굴을 닦아주었고 혹시나 싶어 옷을 덥어주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이렇게 하면... 오실 줄 알고..."
"???"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유키는 감히 아들을 나무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있는 심장은 요란하게 뛰고있었다.
공포에 몸이 굳어있던 그의 몸은 얼른 아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옆에서 지나가 레이의 얼굴을 감싸며 울먹거리며 물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때문에... 그랬던 거야?"
"..."
레이는 대답대신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곧 떨어질 불호령을 기다리듯 곁눈질로 유키를 쳐다봤다.
"저기... 유키씨... 레이는... 단지..."
"당신은 입 다물어요."
"아이를 나무라지 말아요! 그럼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거에요!"
지나는 레이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유키를 노려보며 말했다.
"제발... 아이를 이해해줘요."
"당신은... 먼저 들어가시오."
"...?? 시, 싫어요. 같이 가겠어요."
유키는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가 빨갰다. 그는 맹세하듯 조용히 말했다.
"화 내지 않겠소. 화 내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소."
"...저, 정말이죠?"
"그렇소. 그러니 먼저 들어가요."
지나는 레이에게 안심하라는 의미로 부드럽게 웃으며 한번 끌어안았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고는 그곳에서 물러났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몇 번이고 유키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유키는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레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이는 일어나 앉아서 젖은 머리를 닦고있었다.
고개를 숙였지만 아이의 얼굴에서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본 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는 수건을 아이 손에서 빼앗았다. 그리고 대신 아이의 젖은 머리와 몸을 닦아주었다.
"흐흐흐흑..."
레이는 계속 울먹거렸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당연히 유키가 화가 났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키는 레이에게 화가 난 것은 전혀 없었다. 화가 난 것은 맞지만 아들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화가 났던 것이다.
그는 레이의 얼굴을 들었다. 아이의 뺨은 가득 젖어있었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아아앙~ 아버지 죄송해요! 으으으아아아앙~!"
유키는 우는 아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며 아주 천천히 자신의 가슴에 끌어당겼다. 그리고 조그마한 아들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레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넌 모를 거다.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줄 알고... 너무 무서웠다..."
그는 목이 메였지만 힘겹게 목구멍에 응어리진 슬픔과 두려움을 삼키며 계속 말했다.
"레이, 널 잃을까 봐..."
"아, 아버지..."
레이는 계속 죄송하단 말만 되풀이하며 그의 옷이 흠뻑 젖을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유키는 아들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등을 부드럽게 쓸다가 가볍게 두드리기를 반복하며 기다렸다.
얼마나 무서웠던가... 지나의 새파래진 얼굴을 보면서 그의 등골에서 공포가 쓸고 지나갔으니까.
수영장까지... 레이에게까지 향해 가는 동안 수십년이 흐른 것 처럼, 너무나도 먼 거리를 뛰어온 것 처럼 느껴졌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그의 세포를 건드렸고 그의 심장을 건드렸다.
몸 속에 있는 장기들이 있는 힘껏 꼬이고 비틀리는 기분... 몸의 일부분이 잘려나가는 기분...
유키는 조금 전에 겪었던 그 공포를 생각하면 또다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하지만 절대 아들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레이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자기 세상에 쳐박혀 어둠과 함께 살며 자식놈이 어찌되건 신경쓰지 않았던 바로 그가 잘못이었다.
"미안하구나, 레이..."
유키는 아들의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고는 이마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맞춤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해주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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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글에서는 잠시나마...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감정을 표현해 봤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받지 못 해서 어쩌면... 좀 어설프게 표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전... 저에게 아버지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있을까, 아버지는 날 사랑하는 것은 맞나? 하는 그런 생각들을 참 많이 했죠.
제 결혼식을 보지 못 하고 돌아가셨을 때는 그런 생각을 조금은 적게 합니다.
이제 반대로 생각이 들었거든요.
난 아버지께 어떤 존재였는지, 아버지를 얼마만큼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런 생각을 지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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