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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준씨 이상형은 어떤 스타일이에요? 문희 언니 스타일이 정말 용준씨 스타일이에요?”
“저 제 스타일은 말이죠······.”
“얘, 너는 초면에서 못하는 말이 없구나. 그런 걸 물으면 곤란하잖아. 나 없을 때 물으면 모를까 내 앞이니 솔직한 대답을 못한 것은 뻔한데.”
대답을 하려던 용준씨의 말을 잘랐다. 상대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쉽게 들통이 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내가 실례한 거야? 죄송해요. 너무 궁금해서 그만.”
“실례도 큰 실례를 한 거지.”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그냥 질문인데요. 뭘.”
혜림이 편을 드는 용준씨. 의도한 바로 흘러가는 것은 좋았지만 면전에서 다른 여자 편을 드는 남자를 보는 일은 속 터지는 일이었다.
“우리 오늘은 술 마음껏 마세요. 용준씨 우리 술 사줄 거죠?”
“그럼요. 예쁜 숙녀 분들이 있는데 당연한 일인 걸요.”
“와. 정말 화끈한 분이세요.”
모든 말을 칭찬으로 끝내는 혜림이. 너무 노골적이라 들키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했다.
“우리 혜림이 좋은 남자 있으면 소개시켜 주세요. 남자들이 좋아할 스타일인데 남자 친구가 없어요.”
“그래요?”
용준씨의 눈은 한층 더 빛나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문희 언니가 괜한 말을 하는 거예요. 전 남자들이 싫어하는 스타일인가봐요. 인기도 없는 걸요.”
“왜 그런 말씀을. 전 겸손한 여자 좋아하지 않는데요.”
‘웃겨. 자기가 겸손한 여자를 싫어한다는 말을 왜 하는 거지?’
“그래요? 남자들은 겸손한 여자를 싫어해요?”
순진하게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한 혜림이.
“다 그런 것은 아니죠. 음. 어떤 스타일이 좋으려나? 혜림씨를 슬프게 만들지 않을 그런 남자를 소개시켜 드려야 하는데.”
“용준씨 정도면 좋겠는데.”
“너무 칭찬을 하시네요. 저는 그리 좋은 남자는 아닙니다. 문희씨 속을 썩였는 걸요. 오늘도 용서를 빌러 나온 자리에요. 혜림씨에게 좋은 남자를 소개시켜 주면 그 대신 문희씨 화 푸는 것 좀 도와주세요. 문희씨 화나면 정말 무섭거든요.”
‘왜 이래? 마지막 예의는 지켜주겠다는 거야? 아니면 정말 혜림이에게 흔들리지 않는 건가? 그럼 친절은 예의상?’
“예. 대신 용준씨만큼 멋있어야 해요.”
혜림이도 작전상 후퇴를 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이후 용준씨는 우리 문희씨, 타령을 하면 내게 목을 맨 사람처럼 굴었다. 하기 싫다는 데도 혜림이 앞에서 러브샷을 끝내 권하는 가 하면 내 칭찬을 줄줄이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의 마음이 진심이었음이 확인되는가 싶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혜림이가 일어서 나갔다.
“문희씨 이제 화 풀린 것 맞죠?”
“음. 어느 정도는요.”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화가 났다면 이 자리에 있는 것을 설명하기 힘든 일이니까.
“싸우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커플은 없을 거예요. 우리도 싸울 수 있는 거구요.”
“······.”
“문희씨, 왜 화가 난 건지 말해 줄 수는 없나요? 한 편이 화가 난 이유를 상대가 고치면 아무 문제 없는 거잖아요.”
“그런 말은 다음에 하기로 해요. 오늘은 동생이랑 술 마시면서 즐겁게 놀고 싶어요. 우리 둘 얘길 하게 될까 동생도 데리고 나온 건데······. 어, 잠깐만요.”
혜림이의 전화였다. 화장실에 갔던 애가 내게 전화를?
“예?”
- 언니. 말하지 말고 내 얘기 들어요. 지금 용준씨에게 들리는 것은 아니죠?
“예.”
- 용준씨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제 생각도 그러네요.”
-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언니랑 저랑 싸우는 거예요. 그러다 언니는 화난 듯 먼저 가시고, 저랑 용준씨 둘이서 얘길 해보겠어요. 어때요?
“좋으실 대로 처리해 주세요. 그 생각이 좋을 것도 같네요.”
- 알았어요. 지금 들어갈게요.
“그렇게 알고 이만 끊겠습니다.”
‘혜림이 정말 대단하다. 치밀한 작전을. 용준씨 끝을 보겠다는 거겠지?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퇴근 후에도 일 하는 거야?”
둘만 있다고 은근히 다시 반말을 하는 용준씨.
“예. 거래처 전화가 왔네요.”
“바빠서 힘들지?”
용준씨의 손이 내 무릎에 올려져 있던 손을 잡았다.
“힘들긴요. 직장인들 다 그렇지요.”
은근슬쩍 손을 빼냈다. 그가 손을 놓아 준 것은 혜림이가 들어온 것과 동시였다.
“언니! 나 없는 동안 뭐했어요?”
“하긴 뭘 하니?”
“음. 혹시 없는 동안 둘이 뽀뽀한 것 아닌가 해서요.”
혜림은 장난기가 어린 표정으로 말했고, 난 그것이 시비를 걸어오라는 신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넌 참 말을 교양 없게도 한다!”
“언니, 교양이 없다뇨. 말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니에요?”
“내 말이? 네 말이 심한 거겠지. 직장상사에게 뽀뽀를 했냐고 물어보는 네 말이 심하지 않다는 거야, 지금?”
“여긴 회사가 아니잖아요. 절 훈계할 자리로는 마땅하지 않아요.”
“회사는 아니더라도 내가 네 회사 선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회사에서는 얌전한 척 혼자 다하더니 밖에 나오니 아주 제멋대로구나. 그리고 너! 아까부터 용준씨에게 꼬리치는 것 같은데. 내가 용준씨랑 뽀뽀를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걸 너에게 보고해야할 의무라도 있다는 거야?”
“맞아요. 저야 상관이 없죠. 그럼 용준씨에게는 미안하지만 먼저 일어나겠어요. 두 분은 하시던 것 하세요.”
혜림이는 벌떡 일어섰다.
“뭐야? 하던 거라니?”
“두 분 하던 뽀뽀요.”
“너 진짜 이상한 애로구나. 우리가 언제 했다는 거야? 그리고 건방지게 먼저 일어나겠다는 건 어디서 배워 먹었어?”
“선배가 늘 하던 걸 배운 거죠. 회사에서도 기분대로 일어나던 건 선배였던 걸로 아는데요. 저 가볼게요.”
“야!”
혜림은 가방을 챙겨서는 성큼성큼 나가버렸다.
‘어,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하더니 먼저 나가버리네. 내가 뭐 잘못한 걸까?’
“용준씨. 죄송해요. 저 혜림이 좀 보고 올게요.”
“문희씨!”
“잠깐이면 될 거예요. 미안해요.”
나도 가방을 챙겨서는 혜림이를 뒤쫓아 나왔다. 용준씨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밖에 나가보니 혜림이는 가지 않고 날 기다리고 있었던 듯 했다.
“대리님! 대리님이 안 나오시는 건 아닌가 조마조마 했었어요. 그런데 나오셨네. 역시 눈치는 빠르셔.”
“무슨 일이야? 내가 먼저 가기로 했던 거잖아.”
“생각해보니 대리님이 먼저 나오면 당연히 용준씨가 따라 나올 거고. 그래서 제가 먼저 나왔어요.”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데?”
“대리님이랑 저 밖에 나와서 또 싸운 거예요. 대리님은 화가 나서 집에 가신 거고. 저는 용준씨에게 그 사실을 전하러 다시 들어가는 거죠.”
“우리가 잘 하는 걸까?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생각 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보기엔 용준이란 사람 순 바람둥이 같아요. 아마 대리님이랑 만나는 사이라고 해도 말리고 싶을 만큼이요.”
“그래? 안 좋아보였어?”
“절 한 번 믿어주세요. 제가 다시 들어가서 아무 일도 없으면 그 때 용준씨가 바람둥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해도 늦지 않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왠지 꺼림직 해.”
“대리님이 착하셔서 그래요. 누굴 속이는 것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속을 수 있다는 생각도 못하세요. 저번에도 속으신 건 대리님이시잖아요.”
“그건 맞아.”
“한두 시간이면 될 거예요. 집에 가 계세요. 전화를 드릴게요.”
“그래. 알았어. 혜림씨만 믿고 갈게.”
내가 집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본 혜림이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말리는 것도 늦은 감이 있었다. 그저 될 대로 되라지 하며 집으로 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
‘왜 전화가 안 오는 거지? 두 시간이 넘었는데.’
집에서 인터넷으로 친구들에게 안부 인사를 남기면서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혜림이의 전화가 너무 기다려졌기 때문이었다.
‘만약 용준씨가 혜림이에게 넘어가지 않았다고 해도 나를 향한 마음이 진실 되었음이 증명이 되는 것일까? 용준씨 취향이 혜림이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고.’
마음속으로는 용준씨가 혜림이에게 넘어갈 가능성은 거의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가 넘어가지 않은 후에도 그의 진심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하던 참이었다. 화가 난 상태로 만나긴 했지만 용준씨를 보니 다시 만나고픈 생각이 조금 생기기도 했던 것이었다.
‘일부러 날 속였다고 해도 날 헤칠 목적도 아니었고. 내 마음을 얻기 위해서였던 건데 그냥 용서해줘도 되지 않을까? 용준씨 말처럼 불만을 말하고 그걸 고쳐만 준다면 별 문제는 없을 것도 같은데 말이야.’
마음이 용준씨에게 조금씩 기울고 있을 때쯤 혜림에게 전화가 왔다.
“혜림아! 어떻게 됐어? 헤어졌니?”
- 예.
혜림이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떻게 됐는데?”
- 대리님이 가고 나서 제가 가게로 다시 들어갔잖아요.
“응.”
- 저는 들어가자마자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정말 서러운 듯이. 용준씨는 언니 걱정을 하면서도 자기 앞에서 여자가 울자 당황을 해서는 위로를 해주더라구요. 그렇게 한 시간을 울었어요.
‘그래서 용준씨에게 전화도 없었던 거구나. 정신이 없었겠지.’
내가 그렇게 돌아가 버렸는데도 전화가 없는 것이 이상했는데 그 정도 상황이라면 전화를 걸 수 없었을 거라고 용준씨가 해야 할 변명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너 힘들었겠다.”
- 조금은요. 나중에는 눈물도 나오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용준씨 품에 기대 울었어요.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구요.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널 밀쳐내지도 않고?”
- 밀쳐내긴요. 그 다음이 중요해요. 용준씨 손이 제 눈물을 닦아주었어요.
그리고 혜림이는 말을 잇지 않았다. 말하기 곤란한 일이 있었다는 뜻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끝이야?”
- 아니요. 용준씨는 대리님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바람둥이가 맞더라구요.
“어떻게 했다는 건데? 말을 해줘야 알잖아.”
- 그게. 저······.
“혜림씨. 나 괜찮대두. 어차피 헤어질 사람이었는데 뭘.”
머뭇거리는 혜림이를 다그쳐 물었다. 혜림이는 한 참 뜸을 들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