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결혼한 지 10년 가까이 되는 중년 남자입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낳고 서울 변두리에 내 집 마련도 해서 그런대로 안정기에 접어든 시기입니다. 회사일도 승진이 좀 쳐진 것 말고는 별 탈 없이 다니고 있습니다. 주변 상황에 대체로 만족하는 것 같은데도 요즘 들어 계속 심사가 꼬이고 있어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엊그제 장모님 생신이어서 처갓집에 다녀온 뒤로 그런 것 같습니다.
제 처는 2남2녀 중 장녀이고 위로 오빠가 있고 아래로 여동생, 남동생이 있습니다. 4남매 모두 결혼을 한 상태이고요. 제가 처갓집에 다녀오고 심사가 뒤틀린 이유는 아주 사소하지만 그 동안 불만이 누적되어서 이제는 정말 사소하지 않은 상황으로까지 커졌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처갓집, 특히 장인어른께서 일종의 특혜랄까 권리랄까 하는 부분은 철저하게 아들 위주로만 생각하시고 출가한 딸은 그저 집안 행사에 불러다 사역이나 시키고 사위는 얼굴마담이나 시키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결혼할 당시에 처가 쪽은 양친이 다 생존해 계시고 형제자매들도 다 대학까지 나온(둘째 처남은 대학생) 전형적인 중산층이었고, 우리 집은 조실부모한데다 저를 제외하고는 형제들이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형편이었습니다. 누나 둘은 출가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형과 동생은 조실부모한데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해 번듯한 직장도 못 잡았었고 아직까지도 미혼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는 양가집에서 곱게 자란 지금의 아내가 제 형편에는 과분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4년 했지만 부모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한 형편이니 전세자금도 제대로 없어서 전세금 융자를 받아 신혼집을 구해야 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마침 그 때 처갓집에서 큰 처남 명의로 된 집이 전세가 끝나게 되어 우리가 시가보다 조금 싼 가격에 그 집에 전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보리쌀 서 말만 있어도 처갓집 신세지지 말라고 했는데 그 때는 생각이 짧았나 봅니다. 당시에 저는 일류대학(자랑 같아 쑥스럽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니 양해바람)을 나와 그런대로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아내는 지방대학 나와 부업으로 애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처갓집에서는 제가 집안은 별로지만 출신 학교나 직장이 안정적이어서 저 하나를 믿고 딸을 내준 것 같았습니다.
결혼 초기에 큰 처남은 유학 중이었고 처남 처제는 아직 미혼인데다 어려서 우리가 처갓집 온갖 대소사에 쫓아다녀야 했습니다. 저희는 부모님이 안계시니 친척간의 왕래도 별로 없고 형제들도 어울리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성격들이 아니어서 거의 8:2 정도로 처갓집 행사가 많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결혼을 하면 친인척이나 형제들 간의 왕래도 늘리고 제사나 고향의 선산도 제대로 관리해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처갓집 행사에 또 일요일이면 아내를 따라 교회에 가야하고 해서 우선 내 몸이 피곤하니 형제들은 더 멀어지고 교회에 다닌다는 핑계로 제사도 미혼인 형 집에서 음식도 출가한 누나가 준비해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은 결혼 전에 제가 아내에게 한 약속이고 또 제가 차남인데 굳이 우리 집에서 제사를 모셔야 하느냐 해서 형 집에서 모시게 된 것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처갓집 대소사에 피곤했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았습니다. 장인어른이 저를 자랑스러워해서 친인척 분들에게 소개하고 데리고 다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죠. 장인어른께서는 차남이신데 서울로 오셔서 초기에 사업이 잘돼서 형제자매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기 때문인지 장인 장모 생신 때에는 형제분과 그 식솔들 해서 30여명이 모였습니다. 저는 그 분들한테 얼굴마담 격이었고요. 그런데 IMF 시절에는 동생한테 5억인가를 사업자금으로 빌려줬는데 동생이 완전히 말아먹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큰 처남이 귀국해서 결혼을 하게 되서 제가 전세 살던 집을 쫓기듯이 비워주게 되었습니다. 그래 저희는 아예 융자를 받아 집을 사기로 하고 집도 알아보고 자금도 구하게 되었습니다. 융자금이 3천5백이 필요했는데 장인어른께서는 당시까지 금융관계 일을 하셔서 혹시 좀 도움을 받을까 했는데 끝까지 모른 체 하시더군요. 뭐 우리한테 그렇게 불가능한 돈도 아니고 허리띠 졸라매고 모으면 어렵지 않게 갚을 수 있는 돈이라 그냥 융자받아 집을 샀습니다. 그런데 결혼 전에 장인어른이 사업상 제 처 명의로 집을 한 채 가지고 있었는데 90년대 말 무렵만 해도 조합주택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유 주택이면 조합원 자격이 없기 때문에 저는 아내 명의의 집을 팔던지 명의를 이전하라고 아내에게 몇 번 말했지만 아내는 친정에 제대로 말을 못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집을 사니까 제 처 명의의 그 집을 바로 둘째 처남 명의로 바꾸더군요. 처음에는 전세 끼고 있는 집이라 차액도 얼마 안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들으니 이미 전세금 다 돌려주고 월세를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둘째 처남은 다른 곳에 전세를 얻었고 그 집에서 월세를 받고 있고요.
제가 처갓집에 섭섭한 것은 아들 둘에게 집 한 채씩을 사줄 정도의 형편이면(큰 아들에게는 유학자금도 다 대주고) 큰 딸에게도 집 살 때 융자금 중 다만 천만 원이라도 보태 주셨으면 그래도 제 생각에 제 아내가 친정에서 대우를 받고 있구나, 그리고 사위를 잊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아예 외면을 하셨습니다. 뭐 천만 원이 저 살아가는데 그렇게 도움을 줄 돈도 아니고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게 아들딸을 차별했으면 적어도 처갓집 집안행사에 딸을 불러다 사역시키지 말아야 하고 사위를 이제는 얼굴마담 노릇 시키지 말아야 하는데 여전히 집에 행사가 있으면 제 처는 불려가고 저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자리만 지키다 옵니다.
거기에 처제는 직장에 다닌다고 툭하면 애를 우리 집에 맡기러 오는 상황이고요. 입사 10년 기념으로 회사에서 10일 휴가를 준다고 하길래 차 살려고 모아 둔 돈으로 유럽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내와 단둘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낸 적도 없는 것 같고 회사 동료들도 차보다는 이 기회에 외국여행 한 번 다녀오는 게 나중을 위해서도 좋을 거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어찌어찌 해서 결국은 못 가게 되었는데 이유가 우리 애들을 잠시 맡길 곳이 없어서였습니다. 장모님, 큰 처남댁, 처제(방학)..... 먼저 눈치를 보다가 얘기도 못 꺼내는 아내를 보고 더 이상 말을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이제 저는 몇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우선 장모님 보험은 들어주면서 형편 어려운 형제들 보험 하나도 내 맘대로 못 들어주는 상황이라 이제부터는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든 돈 관리를 제가 할 생각이고요. 교회는 10년 째 다녀도 신앙이 생기지 않는 그 낯선 곳을 아내와의 약속 때문에, 단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더 다닌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요. 조금 더 노력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처갓집 출입을 최대한 줄이고 그리고 처갓집 친인척이 몰려 살고 있는 이 동네를 떠나려고 합니다. 같은 서울이라도 거의 반대편 정도로 가서 먼 거리를 핑계로 처갓집 출입을 줄일 생각입니다.
엊그제 장모님 생신모임을 큰 처남 집에서 한다길래 갔더니 제 처는 음식 준비에 정신이 없고 처제는 아프다고 누워있고, 둘째 며느리는 맨 나중에 와서 제 처와 큰 처남댁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먹더군요. 무슨 대학원을 다니는데 공부 때문에 늦었다고요. 친정에 며느리 둘 들어오면 친정 사역은 안하다던 아내는 여전히 그 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또 예 그 장인어른 형제 남매 분들 총출동하여서 모든 게 다 처갓집 어른들 위주고 저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어디 구석에 쳐 박혀 있다가 왔습니다.
제가 부모님이 안 계셔서 저희 집안을 너무 무시하는가 아니면 제 처가 친정에서 무슨 식모 대접 받으면서 자랐나 그 것도 아니면 김유정의 “봄봄”에 나오는 머슴 주인공 대하듯 저를 돈 한 푼 안들이고 처갓집 집사노릇하는 머슴 쯤으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장모님 생신 자리(회사의 만사 제쳐두고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 분위기임) 처갓집 어른들도 많은데 하도 속이 상해서 말도 않고 있다가 왔더니 그 쪽 어른들이 제 눈치를 조금 보는 것 같아 기분도 안 좋고 저의 옹졸하고 속좁음 증상이 또 발동하는 것 같아 꾹 참으려 했는데 이렇게 글을 쓰니 조금은 누그러지네요. 아무쪼록 좋은 충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