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사랑의 씨앗>>
유스케는 지나가 핸드폰을 조용히 핸드백 속으로 밀어넣는 것을 봤지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무슨 고민이 있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내내 불안함과 초조함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습관적으로 몇 번이나 아랫입술을 깨무는 행동을 보였다.
유스케는 고민거리가 있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 하는 그녀의 오래된 버릇이란 걸 진작에 알았다.
그녀가 누굴 생각하는지 화는 났지만 그녀를 쉽게 보내줄 마음은 결코 없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알고 있는한 더욱.
유스케는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나씨는 가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기다리지 않는게 좋을 거야.'
그는 그녀와 영화를 보고나서 술을 마실 작정이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그녀에게 말할 것이다. 같이 일본으로 가자고.
그들은 영화관으로 갔다. 재미와 감동을 주는 로맨스영화였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영화에 집중하지 않았다.
지나는 여기까지 따라온 자신을 마구 원망했다. 지금쯤 혼자서 생일을 보내고 있을 남자의 얼굴이 커다란 스크린 위에 가득 메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릴때면 의례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이 영화가 너무나도 재미있는 것처럼.
유스케의 따스한 손이 넘어와 그녀의 무릎에 올려진 그녀의 손을 거머쥐었다. 녀는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그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성의를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까지 했다.
극장에서 나온 그녀는 영화의 내용이나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상태를 아는지 유스케는 영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에 술 한잔 하자고 말했다.
"급한 일이라도 있어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거절해야 했다. 당연히. 하지만 어느새 그녀의 다리는 그의 차가 있는 곳으로 걷고 있었다.
그가 데리고 간 곳은 고급 양주 바였다. 지나는 난생처음 와보는 술집이라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가 술을 따라줄 때 지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뱃속에 있을 아기 생각이 났던 것이다.
임신한 상태에 술을 마셔서는 안 되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가 아니던가.
그런데 여기까지 따라와놓고서는 술을 안 마시겠다고 하면 그 이유를 뭐라고 설명한다?
유스케가 따라주는 붉은 와인은 잔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한 모금정도의 적은 양인데다 여성이 마셔도 그다지 취하지 않을 정도로 부담없는 술이라며 그가 말했다.
벗어날 방법이 없는 그녀는 눈 딱 감고 한 잔만 마시기로 하고 그와 건배했다.
"맛이 어때요?"
"그, 글쎄요. 워낙 처음 마셔보는 거라... 괜찮은 것 같기도 해요."
괜찮기는... 술에 대해서 문외한인 그녀가 와인 맛을 어찌 알겠는가.
그리고 그녀는 살짝 혀만 축일정도로 맛을 봤을 뿐, 잔을 그대로 내려놨다.
유스케는 그녀가 그 한 잔으로 자신과의 시간을 벌자 기분이 상했다.
여기서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딴 세상에 가있는 사람처럼 눈동자가 선명하지 못했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은 누군가를 은밀하고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어 그와의 시간을 즐기지 않았다.
그가 다시 두번째 잔을 권했다. 지나는 얼른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
"미안해요, 유스케. 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런 술은 안 맞나봐요."
그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거절했다. 그는 억지로 술을 권하지 않았다.
시간이 열 시 이십 분을 막 넘기고 있었다. 일어나야할 시간임에 불구하고 유스케는 그녀와 헤어지기 싫었다.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하루라도 그녀를 잊어본 적이 없을 만큼 그녀가 그리웠다. 그런데 또다시 그녀와 헤어져야하는 순간에 화가 났다.
두 사람은 대기하고있는 그의 차로 갔다. 운전석에는 대리운전기사가 앉아있었다. 뒤에 탄 그가 목적지를 말해주자 차는 이내 움직였다.
김 지나는 불안한 눈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의 불빛들을 바라봤다. 이대로 집으로 갈 순 없었다.
'하지만... 이 시간에 그가 돌아와있을 수도 있어.'
그러나 그가 집으로 왔는지를 확인하려면 전화를 걸어야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지나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유스케는 한동안 그녀가 입을 다물고 창밖만 보고있자 그녀의 턱을 살며시 잡아 자기 얼굴쪽으로 돌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촉촉하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대체 무엇때문이지? 그는 화가 났다.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그녀 마음 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의 얼굴이 그녀의 입술로 다가갔다. 지나는 놀라 벗어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의 입술이 애타게 그녀를 찾고있었다.
막 그의 혀가 입술 사이로 나와 그녀에게 접근하려할 때였다. 지나는 그의 가슴을 밀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떨리는 음성으로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요, 유스케."
유스케는 그녀 입에서 매번 유키의 이름을 듣는 것도 싫었지만 거리감을 두는 것처럼 '미안하다'라는 말은 더 듣기싫었다.
"뭐가 미안하다는 겁니까?"
"그냥... 전부요."
"미안하다는 말을 할 만큼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당신 의사도 묻지 않고 키스한 내가 미안해야겠죠."
그녀는 두 손을 꼭 모으고 그를 쳐다봤다. 그러자 유스케는 그녀의 턱을 감싸듯 가볍게 받쳤다.
"적어도 나한테 기회를 줘야하는 거 아닙니까?"
"유, 유스케..."
"내가 지나씨를 사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당신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녀는 대리운전 기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말했다.
거울을 통해 기사가 뒷자리를 힐끗 쳐다봤다. 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곧 도로변에 멈췄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 뒤따라 유스케는 옆문으로 내려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돌아서서 가는 그녀의 팔을 붙잡아 세웠다.
"지나씨!"
그녀를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어제 일본으로 돌아갔어야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 있는 지나를 놔두고 갈 수 없었다.
적진이나 마찬가지인 이곳에 그녀를 놔두고 가다간 불안해 미칠 것 같았다.
이곳에는 굶주린 늑대 한 마리가 있다. 그녀는 그에게 있어 맛있는 먹이감이었다.
오랫동안 굶주려있는 늑대는 맛있는 멋이감을 얼른 먹어치우지 않고 이리저리 젖은 혀로 핥아댔다.
"전, 가봐야해요. 급한 일이 있어서..."
"유키에게 가려는 겁니까? 그의 생일이니까?"
지나는 놀란 눈을 들었다. 유스케는 오늘이 사토 유키의 생일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있었다.
어쩌면 그가 영화와 술까지 마시자고 한 것은 계획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키를 못 만나게 하려는...
"보내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의 팔을 잡고있는 유스케는 그녀의 마음을 붙잡고싶은 심정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좀 더... 우리가 일찍 만났더라면 적어도 나에게 기회가 있었을지 모르겠군요. 그랬다면 당신이 날 사랑했을까요?"
"아, 아뇨. 그렇진 않았을 거에요."
그의 눈에서 재빠르게 실망감이 스쳐지나갔다.
"왜?"
"처음부터 유스케와 난 먼저 만날 수 있는 운명이 아니었을 거에요. 그게 우리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학교를 그만두고 교장이 말해준 가정교사 자리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레이와 함께 일본으로 가지 않았다면 유스케를 만날 수가 없는 운명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를 만날 기회가 없었을 테니까. 그녀가 그 집에서 레이와 유키를 먼저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기다리죠. 그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유스케... 그러지 마세요! 전... 지금 가보지 않으면 안 될 거에요."
"타요. 어디까지 가려는 건지 모르지만 가는 곳까지 태워드릴게요."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민안해서 그래요. 오늘 저 때문에 기분 망쳤잖아요. 그럴 수 없어요. 미안해요, 유스케."
그녀는 다시 한번 그에게 상처를 주고도 남을만큼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조심해서 가라고 말한 후, 어디론가를 향해 달려갔다.
유스케는 조금 전에 그녀의 팔을 잡고있었던 자신의 손을 힘없이 내려다보고는 돌아섰다.
정중하게 그녀의 마음을 얻기란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무력을 사용해서 그녀를 가지고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후회할 것이다. 자신이 아닌 사토 유키를 선택한 것을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유키에게 받은 상처로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그는 불쌍하게 그녀가 당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유키는 주인에게 한 잔 더 달라며 빈 잔을 내밀었다. 주인은 망설이지 않고 양주를 살짝 따라주었다.
가게 안은 아무도 없었다. 주인은 오늘 오전에 전화 한통을 받았다. 가게를 통째로 예약을 할테니 다른 손님을 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돈은 얼마든지 상관없다고 해서 주인은 서슴치 않고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저녁 때 온 사람은 이름만 들었던 유명한 소설가 사토 유키였다. 주인은 그가 쓴 소설을 거의 다 읽었을 정도였다.
독자의 정신을 완전히 글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이 그에게 있었다.
주인은 열성적으로 읽은 책의 저자를 직접 만날 수 있어 감격스러웠다.
얼굴에 그어져있는 커다란 상처는 비록 어떤 과거의 아픔을 전해주었지만 그의 글은 완벽 그 자체였다.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닙니까?"
주인은 유리잔을 마른 행주를 열심히 닦아댔다. 바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 남자의 어깨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유키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어차피 그는 여기서 하룻밤을 머무르고 갈 생각이었다.
술에 취해 골아떨어지는 것도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어느정도는 잊게 해줄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은 더이상 입을 다물었다.
고급스런 인테리어로 꾸며져있는 실내에는 알록달록한 조명빛이 은은하게 감돌고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흐르고있었다.
유키는 이곳에 혼자가 아니라 그녀와 같이 오려고 했었다. 아주 거의 8년만에 외출이 아니던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일부러 가게 손님도 받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나갔다. 그의 심장으로 들이닥치는 서운함과 실망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내가 그정도로 그녀에게 빠진 건가?'
하지만 결코 사랑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감정은 아니었다. 실패는 한번으로 족했다.
그 한번의 실패가 몇 년 동안 그의 심장을 갉아먹고 있지를 않는가.
유키는 독한 양주를 한번에 털어넣었다.
사랑이라고?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고 겁도 없이 밝혔다. 자신을 사랑해주지도 않는 남자와 한 집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가 떠나라고 매몰차게 밀어내도 그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었다.
그런 그녀가 떠난다고 말을 했을 때... 그는 미치는 줄만 알았다.
떠나라고 해도 떠나지 않던 그녀를 은근히 곁에 있어주기를 믿어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 입에서 나가겠다는 말을 했을 때의 그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단지 레이때문에 그녀가 머문다고 해도 그는 싫었다. 그녀가 남아있는 이유가 아들 때문이 아니라 자신때문이기를 원했다.
왜냐면 그는 아직도, 지금도 그녀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나 질투만해대는 속좁은 남자이기 싫었다.
유스케가 그녀에게 보낸 CD에서 들었던 사랑의 노래와 고백은 두고두고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그는 김 지나에게 느끼는 이런 감정들이 그녀에게 향한 욕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무리 자신을 사랑한다 해도 그는 그녀를 책임질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랑 같은 것은 믿을 수 없는 요망한 감정이었고 지옥을 느끼게 했다.
오랫동안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기에 갖는 욕구일 뿐이며, 단순한 호기심일 뿐이라고 그녀는 알고 있어야 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꼭 짚고넘어가야 했다. 착각하지 말라고,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는 것이 없다고.
그리고 만약 있다면 그들 사잉에는 육체적인 열정 뿐이라고 제발 그녀가 인식을 해야했다.
두 사람이 공유할 만한 것이 없었다. 성격도, 자라온 환경도 그리고 사랑에 대한 과거도 달랐다.
죽은 아내, 아니 죽은 그 요망한 계집과 유일하게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레이 뿐이었다.
아들 레이가 없었다면 그들은 일찌기 남남이 되어버리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 계집은 죽었다. 사랑을 배신하고 가정을 배신한 죄로 벌을 받은 게지, 암... 그럴 땐 신은 공평했다.
그런데... 그런데 우리에겐 뭐가 있지? 나눌 수 있는 어느 것도 없었다.
아무런 공감대도... 차라리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몰라도 말이다.
두 사람을 이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앞으로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유키는 심장이 뛰고있는 가슴을 꾹 누르고는 매만졌다. 이런 통증이 여태 없었건만.
마치 사랑을 앓고있는 남자처럼 가슴이 아팠다. 장이 뒤틀리는 것 처럼, 뼈마디가 녹아내릴 것처럼 몸이 아팠다.
'이건 절대 사랑이 아냐! 절대! 그럴 리가 없어! 그 여자를 단순히 원하는 것 뿐이야.'
하지만 단순한 흥분과 호기심이라면 아들녀석에게까지 질투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그의 애인도 아내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녀가 누구에게서 무슨 선물을 받건, 사랑고백을 듣건 상관없었다.
그녀의 육체만 원하는 것으로는 부족한듯, 그녀의 심장과 머릿속까지 차지하고 싶은 욕망을 어찌하란 말인가!
죽은 아내를 원했을 때보다 더 간절한 것을 도대체 어찌 하란 말인가!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내가? 말도 안 돼!'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믿기지 않았다.
갑자기 그의 뇌가 누군가에게 한방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생명력없던 싸늘한 그의 심장이 어디론가 급격하게 달려가듯 마구 뛰기 시작했다.
김 지나는 S호텔 근처에 있는 <로즈마리>에 도착했다.
산 속에 위치하는 이곳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아담하면서도 고풍스런 3층 건물이었다.
밤이라 외부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실내로 들어선 그녀는 감탄을 연발했다.
색색의 아름다운 조명과 거기서 뿜어져나오는 빛이 흘러나오는 음악과 아름답고도 은은하게 연출하고 있었다.
"누구 찾으세요?"
지나는 소리나는 곳으로 돌아섰다. 바에 앉아있는 남자는 키가 작고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다. 아마도 이곳의 사장인 것 같았다.
그녀는 이름을 말하려다 상대가 이름을 들어도 모를까봐 유키의 겉모습을 설명했다.
"키가 크고 운동선순처럼 체격이 아주 좋아요. 그리고 까만 머리는 덥수룩하게 자라있지만 결은 아주 좋구요. 그리고 얼굴은..."
"길다란 상처가 있고. 맞죠?"
"네? 아, 네..."
주인은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
"20분 전에 여기서 나가셨습니다."
"네? 나갔다구요?"
지나는 힘없이 근처 의자에 주저앉아버렸다. 이럴 줄 알았다. 그녀가 너무 늦게 온 것이다.
혼자서 이곳에 이 시간까지 그가 있을 리가 없었다.
오는 길에 전화라도 할 걸 그랬어.'
괜히 유스케 따라서 고급 술집까지 따라간 것 같아 스스로를 원망하며 꾸짖었다.
"따라오세요."
남자는 입구를 나섰다. 지나는 놀라 잠깐 망설이다가 그를 뒤따라갔다.
그가 간 곳은 건물 3층이었다. 2층부터 별장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특히 3층은 넓은 테라스가 있었고 그곳에 나무로 만든 테이블까지 있었다.
심플하면서도 은은한 조명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어 분위기가 멋졌다.
주인은 실내를 통하는 출입문을 가리켰다. 지나는 사토 유키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저기, 죄송한데요. 부탁하나 드려도 될까요?"
지나의 부탁을 들은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주인이 사라지고 혼자 남은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수십만개의 작은 불빛들이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들어갈까 망설여졌다. 그가 뭣때문에 왔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한단 말인가.
그가 아까 그녀에게 저녁에 시간이 되냐고 물었던 이유가 바로 이곳에 같이 오려고 했던 것이다.
그가 같이 가자고 한 곳이 여기었던 것이다. 지나는 입술을 깨물며 또다시 자신의 잘못을 탓했다.
"뭐라고 하지? 유키씨 생일 축하해요. 진심으로. 아냐. 너무 촌스럽고 따분한 멘트야. 그럼... 유키씨! 깜짝 놀랐죠? 생일인데 혼자서 무슨 궁상이에요? 내가 같이 놓아주죠."
지나는 이내 고개를 거칠게 저었다. 조금 전 것은 너무 건방지고 촐랑거렸다. 유키의 차가운 성격에 절대 어울리는 축하멘트가 아니었다.
"그럼 뭐라고 하지? 에휴..."
"그러다 땅 꺼지겠소."
지나는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사토 유키가 언제 나왔는지 그녀의 몇 걸음 사이에 두고 서있었다.
그것도 상체에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는 벗은 모습이었다.
아랫쪽은 간신히 내려가지 않을만큼 아슬하게 청바지가 걸쳐져 있었지만 단추를 채우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벗은 상반신에 저절로 시선이 가자 그녀는 그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오우, 제발!'
그녀는 다시 심장이 미치도록 뛰는 소리가 들리자 그에게 안 들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유키가 걸음을 떼어 그녀에게 다가왔다. 조금 전 혼자서 중얼거린 꼴을 그가 보지 않았기를 바라며 마른 입술을 혀로 적셨다.
"여긴 어쩐 일이오?"
"아, 그게..."
지나는 그래도 자신이 나타나면 뜻밖에 반가워해줄 것이라 기대했었다. 기대한 만큼 실망이라고 하는 건가.
유키는 자신의 혀를 깨물고 싶었다. 그 말을 꺼낼 생각이 아니었다.
머리는 '당신이 와서 무척 기쁘오'라고 말했지만 그의 혀는 제멋대로 놀렸다.
"할 얘기가 있어요."
"뭐요?"
그는 끝까지 냉정한 말투와 시선으로 그녀를 상대했다.
"우선 앉으라고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유키는 먼저 하얀 나무 의자에 앉아 긴다리를 엇갈려 꼬았다. 그리고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 뭐요?"
"아, 저기... 우선 미안하단 말 드리고싶어요."
"무슨 의미에서?"
"전, 레이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오늘이 유키씨 생일인지 몰랐을 거에요. 무, 물론 일개 가정부에게 생일축하를 기대는 안 하셨겠지만 말이에요."
지나는 속으로 얼른 주인이 오지 않아 마음이 초조했다. 마치 유키에게 무슨 큰 죄를 지어서 그 앞에서 집행을 받고 있는 죄인같은 느낌이었다.
이때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주인이었다. 그의 두 손에는 여러개의 촛불이 켜져있는 케익이 있었다.
주인은 그들 사이에 있는 작은 흰색 테이블 위에 케익을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혹시 꺼진 초가 있는지 확인했다.
지나가 먼저 생일축하곡을 불렀다. 뒤따라 주인이 합세해 손뼉을 치며 불렀다.
사랑하는 유키씨... 생일 축하합니다. 지나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를 사랑하는 것도 진심이었고 그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도 진심이었다.
조용히 불러주는 지나의 축하노래가 유키의 얼었던 마음을 부드럽게 녹이고 들어왔다. 그는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촛불 끄셔야죠."
그가 촛불을 한번에 꺼버리자 두 사람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그리고 축하한다는 말을 빠트리지 않았다.
주인이 떠나고 두 사람만이 남았다. 다시금 그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움직였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피해 핸드백 속에 포장된 작은 상자를 꺼내 유키 앞에 놓았다.
"뭐요?"
"선물...이에요."
"이런 건 해주지 않아도 되오."
"제가 하고싶었어요.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의 딱딱한 음성에 그녀는 얼른 대답했다. 그리고 포장을 풀어보라고 했다.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어요. 다급하게 준비하느라 좋은 걸 못 해드렸어요. 하지만 그 사람 말이 그건 부적같은 거래요.
음... 어디라고 하더라? 필리핀? 무슨 부족이라던데... 악귀를 쫓고 행운만을 가져다주는 부적이래요.
남녀사이에 영원함을 맹세하는 증표로 쓴다는데 그건 그 나라 얘기겠죠, 뭐. 어쩌면 그 사람이지어낸..."
"마음에 드오."
지나는 주절주절 얘기를 늘어놓다가 그의 말에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이미 선물을 꺼내 손에 들고있었다.
"근데 이건 뭐요? 빨간게... 돌도 아니고."
"아, 그거요? 씨앗요."
"씨앗?"
유키는 가죽 끈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빨간 씨앗을 문질렀다. 어떻게 보면 씨앗같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거죠."
"부적이라..."
사실 유키는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를 싫어했다. 구속당하는 기분에 목이 콱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딱 한 번도 목걸이를 했다가 후로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는 모처럼 용기를 내어 목에 한번 걸어봤다. 그녀의 말로만으로도 진짜 몸에 부적하나를 달고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목걸이를 보면서 느슨한 끈을 짧게 줄이는 것이 더 멋스러울 것 같았다.
"왜, 주고나니 아깝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끈을 한번 줄여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목걸이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보다 못한 그녀가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끈 양쪽에 있는 매듭 부분을 잡고 반대로 서로 잡아당기면 늘어나게 되어있었다.
"이렇게... 양쪽 다 당겨주면 길이조절이 되요. 이제 됐어요."
지나는 돌아서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어느샌가 유키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끌어당겼다. 자칫 넘어질 것 같아 그녀는 한 손을 그의 어깨를 짚고 중심을 잡아야 했다.
손 아래로 그의 맨살이 느껴졌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당연히 유키는 엄지아래에서 팔딱팔딱 힘차게 뛰고있는 맥박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애무하듯 맥박이 뛰는 그 자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자신과의 이런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그녀는 흥분하다니 왠지 모르게 기쁨과 욕구가 생겼다.
"난 당신이 오리라 전혀 생각지도 못 했소."
이곳은 레이가 아닌 그의 운전기사만이 알고있었다. 아마 그가 말해줬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 놀랐소."
잠이 오지 않아 가볍게 샤워를 하고 자려했던 그는 캔맥주를 들고 잠깐 테라스로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멋진 야경이 아닌 은은한 조명빛에 서있는 김 지나였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를 덥썩 끌어안고 싶었다.
유키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서 그녀를 바짝 끌어당겼다. 그에게서 향긋한 비누향이 맡아졌다.
그리고 그가 속삭일 때마다 그의 숨결이 전해와 지나의 세포를 들뜨게 했다.
그의 손이 올라와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지나의 부드러운 뺨과 입술을 차례대로 만졌다.
"또 다른 선물은 없소?"
"네? 아, 아뇨. 없는데요."
그녀는 속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가 받은 선물이 너무 조촐한 것 같았다.
씨앗으로 만든 목걸이는 의미는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도 가격은 의외로 저렴했다.
다른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싸고 화려한 것을 선물했지만 그녀는 유키에게 뭔가 특별한 의미와 기억이 될만한 것을 주고싶었다.
"미안해요."
"그 말은 안 들은 걸로 하겠소. 대신에 내가 답례를 하고싶은데.
"아, 그러실 필요없어요."
"내가 그러고싶소."
"..."
그가 말한 답례란 바로 키스였다. 스무 번의 키스 중 몇 번째였더라. 열 여섯? 열 일곱번 남았던가.
그녀의 뇌신경은 오로지 그의 진한 키스에 빠져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에게서는 맥주 맛이 살짝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에게서는 희미한 와인 맛이 느껴졌다. 유키는 잠깐 입술을 떼고 속삭이듯 물었다.
"와인 마셨소?"
"아... 네..."
그녀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기를 가져놓고선 술 마셨다고 대답한 것도 속상했다.
유키는 그녀에게 한 잔 더 하겠냐고 물었다.
"아, 아뇨."
아무래도 그만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유키는 이곳에 하루를 묵을 예정인 것 같았지만 그가 초대하지 않았는데 마음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은근히 그가 같이 있자는 말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달랐다.
"그럼 돌아가시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라 그녀는 큰 실망을 맛보고 말았다.
유키는 일어나 청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로 건물로 걸어갔다.
"저기..."
그녀의 부르는 소리에 그가 문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녀가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쉽게 말문을 열지 않았다.
그가 등을 돌린 채 조용히 차분하게 말했다.
"난 오늘밤 돌아가지 않을 거요. 나와 밤을 보낼 생각이 아니라면 돌아가요."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쳐다봤다.
그 순간... 뒤에서 그녀의 향기와 더불어 그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자신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듯 그녀가 팔로 껴안는 것이다.
상체에 옷을 입지 않아 얇은 그녀의 가슴이 그대로 닿았고 허리를 꺼안은 그녀의 따스한 손이 그의 단단한 배를 만졌다.
"곁에... 있고싶어요."
그녀는 그의 등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그가 '훅'하고 숨을 거칠게 들이마셨다.
그녀의 입맞춤과 손길에 그는 재빨리 돌아서서 그녀의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고는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소리요?"
지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키는 그녀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가만히 껴안았다.
그녀가 떠나지 않고 있어준다는 말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같이 있어줘서 고맙소."
그는 누군가에게 좀처럼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만은 꼭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녀를 꼭 껴안은 채 평소와는 다른 들뜬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당신은 날 너무 자극시키오. 그래서 당신을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군."
지나는 그의 몸을 조금 밀어 고개를 치켜들었다. 금방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제가 당신을 자극시킨다고요?"
"그렇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 좋아하신다고요?"
비록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들은 것처럼 행복했다.
"당신같은 여자를 싫어할 남자가 어딨겠소?"
"..."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다를 수도 있지만 그녀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의 말 뜻은 그녀가 원하는 쪽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어떻든 그가 좋아한다고 말한 것은 사실일테니까.
지나의 몸 속은 용암이 끓고있는 것처럼 너무나도 뜨거웠다. 그들은 밤 사이 두번 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몸은 곧 달아올라 서로를 깊이 원했다. 그의 남성이 들어오기도 전에 그녀의 질 속은 촉촉히 젖어있었다.
그의 손이 부드러운 그녀의 젖가슴과 배를 지나 아랫배로 차츰 내려와 검은 숲을 헤집고 들어갔다.
뜨겁게 달궈진 그녀의 몸은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몸을 틀었고 거침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입술은 쉴새 없이 그녀의 입술과 부풀대로 부푼 가슴을 오르내렸고 때로는 다른 한 손의 존재를 일깨우기라도 하듯 젖가슴을 감쌌다.
마치 희롱하듯 그의 손가락이 유두를 건드릴때면 지나는 참을 수 없어 발을 바둥거리며 비벼댔다.
유키는 잠시 애무를 멈추고 그녀를 안아들고 자신의 몸 위로 올렸다. 단단한 그의 남성이 그녀의 은밀한 곳을 서성거렸다.
그녀가 놀라 엉덩이를 들려고하자 유키는 장난끼가 발동했는지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를 애무하는 기분이 어떨 것 같소?"
"예?"
그가 빤히 쳐다보고 있어 지나는 얼굴을 더욱 붉혔다. 그의 손이 자신의 젖가슴을 거머쥔 채로 유두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한 번 해봐요."
"???"
"어서."
남자를 애무하는 방법을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섹스를 해본 것도 이곳에서 그와 처음이었고 키스도 서툰 그녀였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몸을 만져보라고 말했다. 그녀는 힘겹게 침을 삼키고는 그의 얼굴에서 아래쪽으로 점점 시선을 내렸다.
조각같은 그의 단단한 육체가 지나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제일 먼저 그의 배에 손을 얹었다.
차츰차츰 손가락과 손바닥을 이용해 그의 피부를 만지던 움직임이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재미를 느꼈는지 조금씩 위로 올라왔다.
그의 가슴에 도달한 그녀는 어느새 자신도 그를 만지는 동안에 흥분해 빠른 숨을 몰아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더욱 용기를 내어 과감하게 그의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건드려봤다.
그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희미하게 들렸다. 갑자기 그녀는 그곳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난 미쳤어!'
다른 생각이 밀고들어오기 전에 그녀의 얼굴이 그의 가슴으로 떨어졌다.
남자의 젖꼭지는 여자 것과 비교했을 때 무척이나 작았다. 하지만 그것을 애무했을 때의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유키는 연신 거친 숨과 신음을 터뜨렸고 동시에 그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내 그가 누운 상태로 그녀의 몸 속으로 들어왔다.
"아아!"
곧 그가 리드미컬하게 천천히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욕망에 꿈틀거려 더욱 검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몸 아래에서 관계를 가졌던 지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고 또다른 쾌감이었다.
그가 그녀의 엉덩이를 감싸며 같이 율동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녀의 엉덩이는 위 아래로 그의 동작과 맞추어 춤추듯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그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음... 너무 좋은데?"
"너무... 아... 이상해요...으음.."
그가 더욱 깊숙히 파고 들어와 그녀를 탐했다. 그의 부드럽고 감각적인 동작은 너무나도 능숙했고 그녀를 자연스럽게 리드하고 있었다.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어느새 두 사람의 몸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당신이 조금 더 움직인다면 기분이 더 좋을 거요."
그녀는 마약을 삼킨 여자처럼,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동작보다는 그녀의 동작이 더욱 컸고 빨랐다.
유키의 말이 적중했다. 그녀는 신음을 쉴 새 없이 토해내며 그의 엉덩이를 움직였다.
믿을 수 없을만큼의 쾌감과 환희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손이 그녀의 젖가슴을 애무해주어 더욱 그녀는 열정에 물들어갔다.
그들의 속도는 빨라졌다. 욕망에 목 말랐던 유키조차 참을 수 없어 힘을 쏟아부었다.
빠른 속도는 그녀의 입에서 '조금만 더'라는 '조금 더 세게'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그녀는 울부짖으며 그에게 매달렸다. 그녀 또한 그의 빠르고 거친 동작에 엉덩이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신음이 탄성에 가까운 비명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그들은 서로의 몸은 눈앞의 절정에 도달할 때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오히려 더욱 몰아세웠다.
솟아오르는 오르가즘에 비켜갈 수 없었던 것이다. 욕망에 물든 그들은 서로의 몸을 힘껏 껴안았고 마지막까지 정절에 끝을 경험했다.
그들은 한동안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빠른 숨을 내쉬기만했다. 헉헉거리는 그들의 숨소리는 섹스의 끝을 알렸다.
유키는 땀으로 젖은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넘겨주었다.
섹스를 끝내고 절정에 도달한 지나의 얼굴은 매우 도발적이고 섹시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하하... 하... 또 하고싶은데?"
지나는 놀라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엉덩이를 들었다. 그러나 유키의 손이 그녀의 엉덩이를 누르고는 두사람의 위치를 바꿨다.
"이대로... 잤으면 좋겠어."
그녀는 몸을 숙여 그의 입술에 서툰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자 그가 반응했다.
"아, 안돼요!"
"음? 왜지?"
"이러다 두 사람 다 지쳐쓰러지고 말 거에요."
그가 소리내어 웃었다. 좀처럼 듣기 힘든 그의 웃음소리였다. 그녀가 빤히 쳐다보자 그가 웃음을 멈추었다.
"왜? 왜 그렇게 보는거지?"
"행복해서요. 당신이 소리내어 웃으니까 행복해요."
"당신 때문이지."
그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꼭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지나는 살며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마주봤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을 사랑하게 된 거... 후회하지 않아요."
"..."
그가 사랑해주지 않아도 좋았다. 이대로 이 순간만은 꿈 속에 있는 것처럼 행복하고 기뻤다.
"생일 축하해요..."
유키는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고는 대답하기라도 하듯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그녀의 뺨을 손등으로 가볍게 쓸며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다해도... 날 사랑한다는 거요?"
"..."
그의 질문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을 지도 모른다. 지나는 눈가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웃었다.
"날 미워해도 당신을 사랑해요."
유키는 아주 깊고 그윽하게 그녀의 입술을 가졌다. 오직 입술로만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조금씩 두 사람의 숨소리가 커져갈 때였다. 그가 갑자기 입술을 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럼..."
그는 그녀의 허리를 조금 더 강하게 끌어안아 자신의 엉덩이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나와 결혼합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