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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이 오면.....

안혜진 |2005.02.27 04:10
조회 54,253 |추천 0

저는 한집안의 아내, 혹은 엄마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40대
평범한 아줌마입니다.
남편과 같이 새벽같이 출근해 밤늦게까지 회사에 매달려
있어도 여지껏 변변한 제집 하나 없는 무능력하다면 무능력하고
초라하다면 초라한 인간일 뿐입니다.
가끔 올해 23살의 뽀얗고 환한 딸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뿌듯한
마음보다는 저것을 어찌해야 하나싶어 한숨이 먼저 나오고
맞벌이를 함에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에 세상 한구석 어디 한곳도
우리 한가족 편히 쉴곳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곤 합니다.
10년 전 남편이 욕심부려 하던 사업이 실패를 하고 이미 강산이
한번쯤은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럼에도 그 세월속에서 변한 것은 우리 부부 이마의 주름과
딸애의 성장 뿐입니다.
깨진 독에 물을 부어봤자 모이는 것은 없이 죄다 빠져 나가니
생활은 늘 지겹고 고단하기만 했습니다.
딸아이는 어느새 커서 조금있으면 아마 시집도 보내야 할텐데....
시어머님은 자꾸 여기저기 아픈곳만 늘어나고 사업을 할 때는
그렇게 왕래가 좋던 시댁 식구들도 형편이 기울자 1년에 한번
볼까말까 합니다.
곱던 얼굴 흔적없이 나이만 먹어버린 것이 그래서 가끔은 너무
억울하고 한심할때도 있었습니다.
몇 개월 전 딸아이가 자격증 공부를 하겠다고 58만원을 제게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졸업후 이렇다할 직장없이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는 제 스스로가
아마 본인도 많이 답답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벌어도 벌어도 모이는 것 없는 무능력한 월급쟁이, 말일이
다된 마당에 생활비 남은것도 없고 60만원돈이 있을리 없었습니다.
괜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무데나 취직해서
일이나 하라고 호통을 치고 말았습니다.
딸아이는 보기에도 안쓰러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방에 들어가
훌쩍거리고 남편은 남편대로 마음이 좋지 않아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고 한숨만 쉬었습니다.
남편이 안방에서 뒤돌아 앉아 담배를 피는데 저야말로 정말 울고
싶은 심정 이였습니다.
그 이후 딸아이는 여기저기 취직시험을 보러 다니는 듯 했고 나이
40이 넘은 이 나이에도 뭐 가릴것이 있다고 미안하다는 내색 한번
못한채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와 냉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화해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던 제게
어느 날 딸 아이가 먼저 안방으로 들어와 반갑게도 말을 건냈습니다.
"내일 아빠랑 시사회 하나 보고 올래?" 라고 말입니다.
영화를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제게 대체 무슨 엉뚱한
소린가 싶어 쳐다보니 딸아이는 '꽃피는 봄이 오면' 이란 영화라며
"출현 배우도 직접 인사온대. 오랜만에 아빠랑 데이트 좀 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갑작스런 일이긴 했지만 행복했습니다.
버벅 거리며 자리를 찾아 들어가 앉자 배우들이 인사를 했고 저는
최민식씨를 실제로 본 것이 신나 한참을 흥분해 있었습니다.
영화는 시작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이 났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저는 오랜 시간 앉아 있어 엉덩이가 다 아프다고
투덜댔지만 남편도 저도 모처럼 세상만사를 다 잊고 즐거운 저녁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무겁게만 느꼈던 현실을 그래도 아직은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고 사지육신 멀쩡한 몸뚱이가 있으니 희망적이란 생각을 가졌습니다.
벚꽃 휘날리는 따스한 봄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결코
아니였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의 겨울은 영화속 도계중학교 관악부 아이들의
연주로 봄눈 녹듯 녹아 내렸습니다.
사는 것이 마냥 지치고 힘든 순간이 있습니다.
사실 그 순간은 너무 잦고 또 너무 깁니다.
하지만 극장밖으로 나와 오랜만에 남편 팔장을 끼고 걷는 길목...
또 남편의 배를 만지며 우스갯 소리로 던진말에 오랫동안 보지못해
저조차 어떤 모습 이였는지 잊었던 웃음을 남편이 보여주었을 때....
저는 행복이 뭐 별건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백두산만한 당신 배가 오늘따라 섹시하네~"
이 사소한 한마디에 아주 크게 웃어주던 남편이 있고 이제 제법 커서
엄마에게 멋지게 화해하는 법을 아는 딸 아이가 있습니다.
가지지 못한 것이 아직 많지만 제가 가지지 못한 그것들은 이미 제가
가진것들 보다는 보잘 것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남편과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먹으며 집에 돌아와 딸아이에게 흥분에
들떠 영화 애기와 배우 최민식의 얘기를 하고 잠자리에 누워 아주 늦은
새벽까지 남편과 도란도란 수다를(주로 저혼자 떠들었지만 말입니다)
나눌 수 있음이 바로 행복이였습니다.

1월 1일 새벽.........
올해 처음 남편과 딸아이와 해돋이를 본다고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났습니다.
"해가 저렇게 뜨는거구나" 라며 졸립다, 춥다 연신 불평만 늘어 놓던
딸아이는 감탄에 감탄을 했습니다.
조촐한 저희 세 식구 한해의 첫날 힘차게 떠오르던 해를 보며 속으로
중얼중얼 해대던 소망안에 저는 한가지만 담았습니다.
"행복하게 해주세요.
물질이 많아서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알기에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올해도 보살펴 주세요"
그날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꾸벅 꾸벅 졸면서도 연신 신나게 재잘대던
딸 아이는 소원 빌것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남편과 저는 각자 알게 모르게 웃었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주세요"
아마도 딸 아이는 아빠의 건강, 엄마의 건강, 자신의 건강을 모두
비느라 많이도 힘들었던가 봅니다.

꽃피는 봄.....인생에 있어 봄은 어쩌면 매순간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4년 사귄 남친, 결혼얘긴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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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마늘.|2005.02.28 14:44
어머니의 글을 읽고 새삼 자식은 경제적인 넉넉함으로만 키워지는게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넉넉한 가슴을 가진 분의 따님이니 곧 그 됨됨이를 알아보는 좋은 곳에 취직 하실거에요~~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족의 이야기를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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