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10
불면증이다.
최민수의 그녀에게 그렇게 모진 말을 한 죄 값을 치르듯
그날 이후로 꼬박 3일을 앓고 난 후
일주일째 불면증이다.
긴 긴 밤을 끝없이 생각만 했다.
학교도 가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그렇게 생각만 했다.
슬퍼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만 했다.
그렇게 딱 열흘이 되던 날 밤에 지나가 집으로 찾아왔다.
“야! 너 미쳤냐? 죽고 싶냐?”
지나는 다짜고짜 나를 보고 고함을 질렀다.
“너 병신이야? 남자가 그 놈 하나야?”
난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다.
지나는 계속 소리 지르다가 한참을 가만히 있다.
“아파트 놀이터에 그 놈 와 있어.
얘기 좀 하제. 너 전화가 안 된다고 .
알아서 해라. 난 말 전했으니까 간다.“
지나가 나가고 한참 뒤에도 난 그렇게 생각만 했다.
그러다 갑자기 최민수가 몹시 그리워졌다.
그래서 뛰어갔다.
“오빠”
놀이터 구름 사다리 아래에 담배를 물고 있는 그가 보인다.
“얼굴 많이 상했다.”
“네”
막상 대답을 했지만 최민수의 얼굴이 더 상했다.
너도 힘들었니... 사랑받는 너도 힘들었구나..
사랑하는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아련하게 그를 보는데 그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오빠?!”
그가 눈물을 흘렸다.
“오빠?!”
“너 가영이 만났다면서...솔아 ... 솔아...
나 사실 너 많이 좋아했었다.
귀엽고 솔직하고 .......
가영이 한테도 은근슬쩍 니 말 많이하게 되고...
좋아하는 마음 잘 안 숨겨지니까 가영이도
그 감정 조금은 짐작하고 있었고...“
나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너도 내 생각했구나..내가 너를 생각한 그 만큼을
아니더라도 너도 내 생각했구나...
“근데 ...솔아....한솔아...
나는 가영이를 사랑한다...
나는 가영이 없으면 안된다..
가영이가 헤어지제...
가영이가 나를 놓겠대...
니가 가영이한테 말해주라.
니가 니 마음 접어주라...
니가 우리 아무 진짜 아무 사이 아니라고 말해주라“
최민수의 이런 모습 상상도 못했다.
최민수의 이런 모습 싫다.
항상 당당하고 항상 여유롭고 항상 무관심한 듯
절실한건 없는 듯 ...그게 최민수였다.
하지만...사랑 앞에서 그는 최민수가 아닌 한 남자로
보편화되버렸다.
아무것도 아닌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자기를 사랑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그는
나만큼이나 잔인하다..
그녀를 아프게 했던 만큼 내가 받는구나...
최민수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나는 불면증에서 회복됐다.
그날 바로 잠자리에 든 후
내리 24시간을 자고 일어난 후
그녀의 집 앞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최민수는 당신만 사랑한다고..
그녀에게 내가 한 말은 잊으라고...
머리를 숙이고 또 숙였다.
최민수는 나를 좋아했지만
나는 최민수를 사랑하므로 어쩔 수 없었다.
그날 밤,, 최민수가 내게 무릎을 꿇던 그날 밤..
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고
사랑하기는커녕 호감도 없었다고 했다면
그를 절대로 놓아주지도 않았을 거고
그녀에게 찾아오는 일 따위는 절대로 하지않았을 거다.
“자존심도 없어요?”
그녀가 진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네”
“네?”
“네. 없나봐요”
그렇게 뻥쪄 있는 그녀를 뒤로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지나를 불렀다.
피자 라지 한판을 시켜서 혼자 꾸역꾸역 먹으면서
거짓말처럼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내 ego가 만들어 놓은 완벽한 방어기제..
.loss of memory..
나는 정말 거짓말처럼 다 잊었다.
그렇게 아무일 없었다는 듯
학교도 나가고 기말 시험도 치고 여름방학을 맞았다.
방학 내도록 지나랑 히히덕거리며 있었다.
소개팅도 하고 여행도 가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그 날도 소개팅 한 사람과 영화를 보러 가는 중이었다.
한 영화가 내 눈을 잡았다.
“청풍명월”
주연배우 최민수....
옆에서 재미없다고 툴툴되는 소개팅 남을 뒤로하고
나는 최민수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슬프지도 않은 영화의 엔딩 자막이 흐를때
눈물이 났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저 배우 -최민수의 영화가 나오고 드라마가 나올때 마다
계속 보게 될 것 같다 . 그리고 계속 마음이 시릴 것 같다.
계속 눈물이 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