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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17> 좋으냐. 웃었느냐.

초록물고기 |2005.03.07 00:11
조회 4,698 |추천 0

동준이 호흡조차 멈춘 듯 그림을 보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머리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산란하게 겉돌고 있었다. 이제 자신의 일부분처럼 익숙해진 그 사네가 진서의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어떻게....?”

 

하얗게 비어버린 머릿속으로 찾아들던 통증마저 밀려나 멍하니 선 동준을 정재가 불렀다.

 

“형, 들어가서 누워.”

 

동준이 불현듯 정재가 하려던 그 말을 떠올렸다. 알 수 없이 아픈 시선을 던지며 뭔가를 토해내지 못해 힘겨워 하던 그것이 어쩌면 지금 자신이 보고도 믿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닿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준이 진서를 먼저 방으로 들여보냈다.

 

“진서야, 얼굴 안 좋다. 들어가서 쉬고 있어. 정재하고 잠깐 얘기 좀 하고 들어갈게.”

“누워있어야 하잖아요.”

“금방 들어갈게.”

 

진서가 들어가고 힘겹게 마루에 앉은 동준이 어두워진 마당에 시선을 둔 채 정재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아마도 미친놈이라고 할거다..너.”

“형! 저 방으로 들어가자. 그렇게 앉아 있으면 안 된다.”

 

동준을 데리고 자신이 묶었던 방으로 들어선 정재의 눈길이 벽지속의 대나무 잎에 잠시 멈추었다. 처음 왔을 때 보다 색이 많이 바래있었다. 그 청록의 푸른빛이 처음 그곳에 왔던 자신과 같았고 또 그렇게 색을 잃어 말라가는 그것 또한 지금의 자신과 닮아있었다. 아이러니한 일치감. 심장이 더 깊이 쓰라리고 있었다.

 

-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거니?

 

동준이 벽에 등을 기댄 채 무슨 말을 꺼내려 하자 정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 내말부터 들어라. 형이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니가...어떻게 안다는 거야.”

“그러니까 내 말부터 들어. 듣고 나면 형이 하려는 그 얘기도 더 편할지 모르지. 아니면 더 불편할지도.”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르고 동준의 눈에 의문이 가득한 채 정재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찾고 있다는 사람...”

“그래. 찾았다고 했잖아. 그렇게 막연하게 사람 찾는 거 불가능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용케도 찾았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림 한 장으로 찾겠다는 그 사람...”

 

정재가 하던 말을 멈추고 동준의 눈일 깊이 응시했다. 한순간 싸늘하고 시린 그것이 동준의 가슴에 전해져 뭉클한 전율이 온몸으로 번졌다. 다 듣지 않아도 그 눈이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임을 동준이 본능으로 받아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입을 열어 묻는 말끝이 흔들렸다.

 

“설마........그 사람이.....”

“그래. 진서야.”

 

말을 잊은 채 어이없는 헛웃음을 흘린 동준이 정재를 빤히 보았다.

 

“........왜 말하지 않았니?”

“내가...뭐라고 하면 되는데?”

“하나부터 열가지 이상한 것투성이라 나조차도 혼란스러웠는데....너마저 그 속에 있구나.”

“형 곁에 있는 진서 보는 순간 나도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어.”

“나한테 왔던 그때 클럽에 오지 않고 밖에서 만나자고 했던 그때니?” “응.” “진서는....어떤데?”

“형이 지금 봤던 그 그림....진서가 그린거야. 형 꿈속에 찾아왔던 그 사람들 진서한테도 다른 형태로 찾아왔었어.”

 

동준이 퍼뜩 이해를 하지 못하고 정재를 보았다.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지금까지 자신에게 불어들었던 이해할 수 없는 그것들이 찰나처럼 스쳐 지나갔다. 진서를 보아 너무도 당연한 듯 자신에게 온 거라 믿어졌던 그 감정들이 그랬고 어느 순간 꿈속의 그들과 진서가 한선위에 서 있는 듯 느껴졌던 그것 또한 그랬다.

 그 모든 것들이 우연이 아님을 정재의 입으로 듣고 있었으나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동준이 쉽게 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가슴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진서한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그것들이 모두 그 어떤 인연의 고리로 얽혀있어 그런 거라면 어째서 그것들이 지금의 자신에게 찾아들었는지, 또 왜 진서에게 남아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것은 분명 사람이 태어나 죽고 떠나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것이 분명할 것이었다.

 

“니 말대로라면....수 백 년이 흘렀을 그들의 흔적이....어째서 지금의 나를 찾아왔을까?” “수 백 년이 지난 지금도 형 꿈속에 찾아들어 그 심장을 뜨겁게 데울 만큼, 그 가슴을 저 며 낼 만큼 놓을 수 없었던 게 있었다면, 우주의 섭리를 다 뒤엎고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면서까지 다시 찾지 않고는 안 될 무엇인가가 있었다면....”

 

정재의 그 말에 동준이 자신의 목 줄기로 넘어오는 듯 심장이 타들어가든 그 고통이 다시 되 살아났다. 까맣게 꺼져가는 생명의 마지막 한 줄기를 오직 하나의 염원으로 눈을 감던 그 사내의 핏빛 절규가 동준의 몸을 전율하게 했다. 수없이 맴돌던 사내의 흘림들이 온통 뒤섞여 동준을 찾아들고 있었다.

 

  - 염원이 깊으면 하늘이 길이 열어 나를 너에게 보내줄 것이다.

    남은 세월 나를 품어 살지 마라.

    너는 기억할 필요 없다.

    나만이 품어도 우주를 채워 너를 찾을 것이니....

 

동준이 넋을 놓은 듯 혼자 말처럼 그것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사람....정말...그 사람이 그 염원을 우주에 흩뿌려 잊지 않고 나를 찾은 것이라면...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내 꿈속에 찾아들었던 그것만으로도 그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데 지금 이런 나를 찾아 뭣하겠니...차라리 다 잊고 편한 곳에 있어야 할 것을....“

 

들릴 듯 말듯 한 동준을 그것을 흘려들은 정재의 눈가가 흐릿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애써 동준에게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으나 이미 그 흔들림이 동준이 보고 있었다.

 

“내가 모르고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너는.......누구니? 그토록 오랫동안 진서를 찾아 해맬 만큼 그 모든 것에 확신을 가진 넌 도대체 어떤 사람이니?”

 

정재가 말없이 방을 나가 한참 후에야 돌아왔다. 그 손에 오래된 서책하나가 들려있었다.

 

“어떤 것을 기억해 가져왔다 해도 지금의 이 삶보다는 중요하지 않아. 형 말대로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릴 수 있다면, 부정할 수 있다면 나조차도 그렇게 하고 싶어. 백지위에 시작한 인연이라면 절대로....절대로 내가 놓지 않을 테니까. 아마 내가 이걸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사는 형한테 진서....놓아주지 않았을지도 몰라. 더 이상 힘들게 하지마라. 혼자 있게 하지도 말고...그런 공포 서러운 밤 다시는 겪게 하지 마. 아주 오랜 그때도 그 사람 삶은 온통 핏빛이었어.”

 

정재가 새벽길을 떠나고 동준이 한참동안 서책을 만지지 못하고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 보아버리고 나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이 혼란스러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두려움이 동준을 붙잡고 있어 선뜻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다 진서의 방으로 건너간 동준이 이미 잠들어 있는 그 얼굴을 하염없이 보라보았다.

 

  - 왜. 무엇하러 그 아픈 것들을 기억해 가져왔니.

    그렇게 힘겨운 삶이였으면 모래알 하나만큼의 흔적도 없이 다 버려야 할 것을...

    니가 틀렸다면....

    나를 찾아온 니가 틀린 것이라면...

    그래서 다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그때는 또 무엇으로 그걸 막을래..

    내 것처럼 뜨겁게 심장을 역류하며 토혈하던 그가 나를 품어 떠난 너였다면...

    세상 빛을 놓는 그 순간까지 그 하나 서러운 염원으로 나를 가져간 너였다면...

    나는 하늘을 용서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니 눈과 니 심장을 막아 나를 보지 못하게 해야 했다.

 

한필중이 잠시 스친 얼굴이긴 했지만 동준을 태워간 정재를 알아봤다. 느닷없는 그의 등장에 의아한 느낌을 가졌으나 그보다 무거운 것들이 산처럼 버티고 있어 잠시 그 일을 미루었다. 거실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몇 시간을 버티고 있는 종두를 없는 존재인 냥 무시한 채 태수가 가져온 결재를 마치고 룸으로 들어가 술을 마셨다.

 

한필중이 처음 동준의 눈빛을 보았던 그때를 떠올렸다. 허리가 꺾여 썰어질망정 무릎을 굽히지 않을 것 같은 거친 천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 느낌이 한필중을 사로잡았었다.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만큼 오래두고 볼 사람임을 한 번에 알아가졌었다. 이상하리만치 닮아있는 그 계집아이의 존재가 그때처럼 깊고 강하게 한필중을 붙잡고 있었다. 하나의 존재를 보는 듯 같은 느낌으로 전해지는 그것이 무겁고 두렵게 각인되고 있었다. 술이 반병쯤 비어갈 때 가정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사무실 아이들에게 상황을 전해 듣고 발작 증세를 보이며 병실을 난장판으로 뒤엎은 후 병원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퇴원을 한 지윤이 집으로 와 술잔을 비워대고 있었다. 낮에 일로 한필중의 심기를 건드린 태수가 운전을 하는 내내 살얼음판을 걷듯 눈치를 보고 있었다.

 

“너하고 동준이 뭐가 다른지 아나?”

“낮에 일은 제가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한필중이 담배를 피워 물고 생각을 구르고 있는 태수를 읽고 있었다.

 

“그게 달라. 지금 너처럼 수십 가지 살길을 찾아가며 계산하는 놈이 아니지. 그놈 행동은 곧 그놈 자체다. 쉽게 움직이지 않지만 한번 발을 내 딛었으면 그 앞에 누가 있던 상관하지 않는 그 무모함. 니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 그놈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는 모양인데...내 밑에 있는 한 다시는 이런 일 용납 못한다. 어차피 그놈은 다시 돌아오게 돼 있다.”

 

벌써 네 번째였다. 팔목에 붕대를 감은 채 술잔을 채우고 있던 지윤이 한필중이 들어서는 것을 보자 얼른 몸을 일으켜 눈을 치켜떴다.

 

“당신 미쳤어. 나한테 대려다 달라고 했지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 동준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내가 가만 안 있겠다고 했지.”

 

한필중이 짜증스러운 듯 지윤의 팔목을 잡아채며 거칠게 말했다. 며칠 동안의 피로가 그 얼굴에 먹구름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이래가지고는 안 되지. 여러 번 했으니 당신도 알잖아. 이래가지고는 죽을 수 없다는 거...”

 

지윤의 눈이 이글거리며 경멸하듯 한필중을 노려봤다.

 

“그렇게 보지마라. 우리 서로 닮아 있는데 당신이 그렇게 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데려와요. 빨리......지금 당장 내 앞에 데려와요. 당신이 얼마나 괴롭혔는지..얼마나 짓밟아 놨는지 내가 봐야 갰어요. 데려와요.”

 

지윤이 한필중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소리를 질러댔다. 한필중이 싸늘하게 그 손을 때어 내며 소파에 앉았다.

 

“정말 모르고 있는 거니.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니. 그 놈을 정말 괴롭히고 있는 게 누군지.......”

“뭐야 당신? 동준이한테 질투라도 하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그렇게 했어.”

 

한필중이 지윤이 놓아둔 술잔을 급하게 털어 넣었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그 굴레에 염증이 생기고 있었다.

 

“당신...정말 지독한 여자군. 차라리 나한테 놓아달라고.....매달리지 그랬어. 당신이 손목을 그은 이유가 그거였다면 내가 놓았을지도 모르는데....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안해봤어. 근데...당신은 그러지 않았어. 즐기고 있었어. 내 옆에서 괴로워하는 그걸 내게 보이며 나를 짓눌렀고 그것으로 동준을 곁에 두려 했어. 당신 잊고 있는 모양인데...아직 네 와이프야.”

“그게....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어요?”

“의미가 없다 해도 아직은 내게 권한이 있다는 한 가지 의미는 남아 있지.”

“내가 갖지 못하면 아무에게도 줄 수 없어. 그 계집에......내가 죽여 버릴 거야.”

“미쳤군....당신은 미쳐가고 있어.”

 

지윤이 흐릿한 눈동자로 조소를 만들며 술잔을 채워 단숨에 비웠다.

 

“몰랐어요. 이미 오래전에 미쳐가고 있었는데.....이제 그 끝을 보고 있는데...당신은 그걸 이제 안 모양이지.”

“내가.......그놈 놓아주겠다고 하면....당신 어쩔 건데?”

 

지윤이 한순간 섬뜩한 것을 느꼈다. 한필중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아 그 심장이 차갑게 떨려오고 있었다. 빈껍데기라 해도 동준의 존재 하나로 버티고 있는 자신의 삶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지윤이 머릿속을 돌고 있던 술기운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짧은 찰나에 모든 것을 염두 해 자신을 움직이고 있었다. 술잔을 내려놓은 지윤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거짓말처럼 그 눈에서 독기가 살아지고 애처롭고 여린 여인의 서러움이 온몸을 채우고 있었다.

 

“동준이......보지 못하면 당신도 나 볼 수 없어요. 영원히 볼 수 없게 될 거에요.”

 

지윤이 한필중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몸을 떨며 애원했다. 한필중이 또 다시 심장이 무너져 힘겹게 붙잡고 있던 차가운 이성을 그 눈물 속에 놓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 마음 전부 가지려 한거 아니에요. 빈껍데기라도 제 앞에 있게 해주세요. 그래야 내가 살아요. 함께 떠나게 해주세요. 다 잊고 떠나면 분명 나 쳐다 볼 거예요.”

“당신.......아직도 그 놈을 모르니?”

“아뇨....분명....나 쳐다볼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만들게예요.”

 

집으로 돌아온 정재가 무거운 얼굴로 서규식과 마주 앉았다. 들어가 얼만 되지도 않은 병원일까지 팽개쳐두고 며칠이나 연락도 없던 정재의 얼굴이 예전의 그것처럼 굳어있어 서규식이 혹시 또 다시 그 혼란이 정재를 찾아 온 것이 아닌가 염려하고 있었다.

 

 “한필중이라는 사람......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냥 사업상 필요한 관계일 뿐이다. 니가 신경 쓸 거 없다. 그런데....왜 그걸 묻는 거냐?”

“제가 그 사람을 좀 압니다.”

 

서규식이 짐짓 놀라며 머뭇거렸다. 어쩔 수 없이 한필중의 힘을 비러 위험한 고배를 넘기는 했으나 그 자신도 앞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적지 않을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런 터에 정재가 한필중을 꺼내 그 마음이 더 불편해지고 있었다.

 

 “.......니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안단 말이냐?”

“집 나가 있을 때 일하던 곳이 그 사람 소유의 휘트니센타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일하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오래 함께 할 사람은 아니니 너는 그런 걱정 말고 병원일이나 신경 쓰라.”

“어떤 형태로던 그자와 끈이 닿으면 의지와 상관없이 더 깊숙이 빠지게 되고 일이 엉켜들게 됩니다. 그런 방법으로 지금의 부를 축척했고 숙주를 찾아 피를 빠는 기생충 같은 자입니다. 원주가 생명을 다 잃고 말라 썰어질 때까지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그런 자입니다. 더 이상은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그래. 이번일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마는......그자와 경계를 두마.”

 

서규식이 정재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아 불안함이 더해지고 있었다.

 

 “혹시 너 그곳에서 일하면서 그 사람과.......”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니 염려하지 마세요.”

 

태어나 단 한번도 그런 삶을 생각해 본전이 없었다. 사람의 가슴에 그런 것이 숨쉬고 있다는 것조차 낯설고 기이한 일이었다. 한 사람 담아 가지는 일에 전부를 걸고 자신의 심장을 태워 세상을 버릴 수 있다는 그것에 동준의 온몸이 시렵게 떨려왔다.

 

자신의 꿈속에 찾아 들었던 그 사내의 붉고 뜨거운 삶이 고스란히 서책 속에 내려 앉아 있었다. 재대로 가지지 못한 몸이 평생 그 삶을 무겁게 짓눌러 은혜하는 사람을 품은 가슴조차도 열어 보일 수 없었던 서러움이 살을 애이는 비통함으로 동준의 가슴에 전해졌다. 자신의 심장처럼 자신의 고통처럼 그 아픔들이 살 속으로, 피 속으로,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다.

 

  - 너를 만나 나를 쉬었다.

    한줌 바람처럼 자유로워 보았다.

    네 얼굴위로 번지는 그 미소만큼 내 심장이 따스하게 데워졌고...

    그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물결 같은 말속에 내 무거움을 싫어 흘려보냈다.

    세상에 이런 사람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평생토록 원망하며 한을 쌓아 토해냈던 하늘이....

    너를 담아 보는 지금 비로소 푸른 것을 알았구나.

    너는 내게 세상 빛을 바로 보는 눈을 열어주었다.

    너는 내게 살아 있는 심장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게 해 주었다.

    너는 내 심장에 은혜 함을 가지도록 허락하게 해 주었다.

    너는....이제 내가 되었다.

    이제 내 심장을 뛰게 하고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더이상 내가 아니다.

 

 

   - 좋으냐. 웃었느냐.

     나 또한 좋구나.

     나 또한 웃게 되는구나.

     니가 좋은 것은,  니가 웃는 것은 무엇이든 나도 그리 된다...!!

     왠지 아느냐..?

     내가 너를 가슴으로 보기 때문이다.

     세상에 유일한 완전한 네편.

     그게 나다.

     나는 너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다.

     내가 없는 곳에서 아픈 너를 용서할 수 없다.

     그러니 니가 살아가는 모든 속에 내가 있어야 한다.

    그게 내 사랑의 방법이다.

 

 

당신을 보내시고 정신을 놓아버린 그분을 지켜보는 일이 지옥의 유황불처럼 뜨겁고 아픕니다. 살아 견디지 못할 고통인 것을 알아 차라리 아픈 것을 담지 않으려는 그대로 놓아두려 생각도 했습니다. 허나 세상 빛을 놓는 그 마지막까지 그분의 남은 날과 그 고통을 염려하던 당신의 뜻을 알아 그리 둘 수 없어 또 다시 생살을 저미듯 그날의 상처를 꺼내 놓습니다. 혼절을 거듭하며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그 처절함에 저 또한 무너집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이 저보다 더 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오늘 그분께서 당신을 보낸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당신께서 남기신 그 그림위에 온 심장을 녹인 오열을 토해내셨습니다. 그 영혼의 절규가 너무도 처절하고 애통하게 울려 퍼져 산사의 적막함을 삼켰습니다. 온전한 하나의 고통과 슬픔으로 무너지는 그 심장이 살속에 피속에 녹아들었습니다. 당신을 보내던 그날 이미 제 심장 또한 죽어 화석이 된 냥 아픔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허나 여기 또 하나의 주검 같은 고통이 제 앞에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찌하면 당신의 그분을 살게 하겠습니까. 어찌하면 저 지옥 같은 그리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리 두면 아픔에 몸을 죽일 것이고 그리움에 영혼을 죽일 것인데...도대체 어찌하면 남은 날을 견뎌 살라 하겠습니까. 당신이 제게 부탁했으니 그 길 또한 알려주십시오.

 

동준이 어느 한순간 그 속에 동화되어 자신을 담았던 그의 가슴을 느끼고 있었다. 끝도 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추려 하지도 않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없는 아픔을 흘려냈다.

 

- 눈물보다 서럽고 피보다 붉은 너의 가슴이 느껴진다.

   낯설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보다.

   나를 기억해 온 너의 가슴이 이토록 애달고 간절했으니....

   기억하지 못한 내 영혼마저도 깊게 흔들어 깨웠나 보다.

   이토록 맑고 푸른 영혼으로 염원을 품어간 니가 찾아 온 이가...

   나라는 사실이 이 순간 너무도 아프고 저리다.

   바로 살지 못했던 내 삶이 너무도 한탄스러워 허물어진다.

   제대로 너를 기다리지 못한 내가 너무도 부끄러워 통곡한다.

   이런 내가 또 어떻게 너의 그 사랑을 가지겠니.

   또 다시 너를 지켜내지 못하게 될 것이 심장을 베어낼 듯 두렵다.

 

이른 아침 눈을 떤 진서가 곁에 누워 자신을 빤히 응시하고 있는 동준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왜, 벌써 일어났어요.”

“응....그냥 깼어.”

 

동준의 눈가가 불그스름하게 상기돼 있는 것을 알아챈 진서가 동준의 얼굴로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댔다.

 

“울었어요. 밤에 많이 아팠어요.”

 

동준이 그 얼굴에 눈동자를 고정한 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댄 진서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 올렸다.

 

“응....너무 아파서 울었어. 너무......아프더라.”

“깨우지 그랬어요....어린애처럼 아프다고 우나.”

“진서야, 나는.... 세상에 이렇게 아픈 게 있다는 거 몰랐다. 너무 아파서.....소리도 낼 수 없고, 울어지지 않는....그런 게 있다는 거 나는 몰랐다.”

 

평소답지 않은 그의 이상한 행동에 진서가 그 눈을 동그랗게 떠올려 동준을 보았다.

 

“오늘 이상해요. 꼭 딴 사람 같으네.”

“딴사람...”

 

동준이 진서의 말을 다시 대내이며 혼잣말을 흘렸다.

 

- 그래. 나도 될 수만 있다면 니가 기억하는 그 사람.....되고 싶다.

  너를 영혼까지 안식하게 했던 그 사람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동준이 진서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가져다 대며 작게 물었다.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니.”

“말하면 다 해주게요.”

“응.”

“그럼 상처 다 낳아야 하는데..”

“너무....길게 기다려야 하는 거 말구.....지금 할 수 있는 거.”

 

동준의 말속에서 왠지 모를 불안함이 느낀 진서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제 내가 아무데도 안 보낼 테니까 길게 기다려도 상관없어요. 그 상처 다 낳으면 그때 같이 할래요.”

 

동준이 진서의 시선을 더 받지 못하고 눈을 감아 팔을 괘 올렸다. 감은 눈 속으로 뜨거운 열기가 번졌다.

 

“새벽에 깨서 피곤하네. 자야겠다. 진서야, 맛있는 거 해주라.”

“뭐 먹고 싶은데요?”

“아무거나.....니가 하는 거면 다.”

 

진서가 방을 나가고 잠시 후 팔을 올려놓은 동준의 눈가에서 주르르 한줄기 눈물이 뺨 옆으로 흘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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