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처음 “21세기 나 홀로 여행” 을 보았을 때 단순한 여행을 위한 지침서인줄만 알았다.
얼마 전에 유럽여행을 가기위해 배낭여행관련 정보 책을 두루 섭렵했다고 믿었
던 터라 자신감을 가지고 이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 나갔다.
그런데 흑백에 그림보다는 글 위주의 책이라 여행을 위한 책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여행기는 여행준비를 위
해 필요한 준비물과 여행지까지의 길을 알려주었지 여행을 떠나는 이의 마음가
짐에 관해 이렇게 길게 서술한 적은 없었었다. 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충격
에 휩싸여 글을 읽어나갔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는 전에 한번 읽은 적이 있었다. 얇은 책이라 단숨
에 읽고는 별생각 없이 지나쳐버렸었다.
이번 리포터를 계기로 두 권의 책을 같이 비교해 가며 읽게 되었다.
전에는 느끼지 못한 많은 생각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단락을 읽을 때 즈음엔, 나도 모르는 새로운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겨남을 느꼈다.
2. 20C 라는 사라져 버린 치즈에 대한 미련
21C의 시작 그것은 내게 대학 입학과 더불어 찾아온 것이었다. 텔레비전에 나
오는 밀레니엄 아이의 탄생처럼 나도 이제 의젓한 대학생으로의 재탄생임을 믿
었다. 그러나 그때 난 스스로는 전혀 변화할 생각이 없으면서 주위의 변화를 원
하고 있었다. 내 앞에 향기롭고 새로운 치즈가 놓이기만을 바랄 뿐 움직여 찾으
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초, 중, 고 ,12년의 노력으로 내 인생의 전부를 보상
받은 줄만 알았고 대학생활이 내게 무한한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이라 믿었다. 헴
과 허가 C 창고의 치즈가 영원할거라는 생각처럼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평생
을 보장 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식 사고방식으로 대학생활에 적응하려 했고 그것에서 오는
괴리감으로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헴이 새로운 치즈를 찾아 빈번히 막다른 길
에서 텅 빈 창고를 바라 볼 때의 심정으로 나또한 스스로의 한계를 하루하루 느
끼는 날의 연속이었다. 점점 더 고등학교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집착
하게 되었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사라져 버린 치즈에 대한 미련을 가
득안고서는 새로운 치즈가 나타나지 않음에 한탄만 한 것이다.
“나 홀로 여행” 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이치에 비유하여 이러한 시작과 끝의
중요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나 또한 21C의 시작에 부푼 꿈은 안고 있었지만
20C를 끝내는 것 에 대한 미련으로 새 천년이 오는 기쁨을 잊고 말았다.
첫 키스의 좋은 시작과 함께 끝내라는 교훈을 좀더 일찍 알았다면, 책을 좀더
빨리 읽었다면 그 때의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나는 존재한다. 고로 치즈가 있다.
나 스스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토론 내용을 읽기 전까지 허
와 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난 헴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믿었다.
불안하기 짝이 없던 대학생활에서도 이제 익숙해지고 있다고 생각 했을 때 돌
아보니 어느새 졸업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다시금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
다. 나또한 “토론”에 나오는 이들처럼 자신을 인정하기는 참 힘들었다.
21C 적응정도 테스트의 결과도 썩 나쁘지 않은 84점 이었다. ‘사회에 얽매어
과감하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설마…….’ 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가
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당장 내일을 걱정하고 내년을 걱정할 뿐 바뀌려고 시
도 해본 적이 언제였던지 기억이 잘 나지도 않았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달이 뜨면 잠을 자는 것이 아닌, 내가 일어났으므로 해가
떴다는 생각으로 내일을 준비해보아야겠다.
4. 파도를 타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을 때 이부분의 페이
지가 접혀 있었다. 아마 내가 읽기 전에 읽은 사람이 감명을 받아서 접어놓았으
리라…….
이미 “21세기 나 홀로 여행” 의 본문에서도 책의 내용을 인용하여 변화의 중요성을 시
사한바 있었다. 치즈가 꿈을 실현하기 위한 직장임을 말하며 이 치즈는 평생 안
정되어있지 않고 변해 감을 치즈가 상하고 사라지듯이 직장도 20c의 평생직장
의 개념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그 외의 많은 부분에서 "누가 내 치즈를 옮겼나" 에서 시사하는 부분과 같은 부
분을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다.
꼬마인간과 생쥐의 가장 큰 차이점은 큰 두뇌에 있다. 스니프와 스커리는 단순
한 직관에 의지하여 치즈를 찾지만 인간은 생각하고 과거의 자신의 경험을 살
리는 능력에 의존한다. 이는 교육에 해당하는데 인간이 받은 교육은 인간을 발
전시키기도 하는 반면 새로운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날 때의 허의 모습에서 이는 잘 나타난다.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직관만 믿고 달린 생쥐에 비해 허는 새로운 치즈를 찾아 여행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의 치즈 창고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치즈를 새로 찾지
못할까 두려움에 휩싸여 있기도 한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현실의
생황과 경제적 여유를 생각하다보면 매번 포기하고 만다. 이는 여행은 물론 다
른 새로운 도전을 하기 전에도 해당된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음을 알고 가끔은 직관을 믿고 행동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내일은 스스로 스니프와 스커리가 되어 직관
을 믿고 행동해 보리라 다짐해본다.
5. 내가 찾는 것은 과연 치즈일까 - 선택의 기로에 서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의 생쥐와 꼬마인간은 단지 치즈를 찾기 위해서만
노력하고 있지만 인간의 가치관은 이처럼 하나의 치즈를 행해 돌진할 수없다.
치즈가 절대적 진리임을 우리 현대 사회에서는 보장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래서 단지 꼬마인간 허가 치즈를 찾기 위해 한곳을 찾아 달렸지만 현대 사회에
서는 치즈를 찾다가도 어느새 다른 치즈를 찾아야 할지 아니면 햄을 찾아야 할
지 무엇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시간은 오
래 걸리고 두려움은 커지는 것 같다.
이러한 무수히 많은 선택의 폭은 치즈가 어디 있냐를 떠나 과연 치즈를 찾는
것이 맞을까 라는 물음마저 던지고 만다.
“선택의 자유를 누리자” 에서 선택의 홍수에서 살아남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예정된 결정과 예정되지 않은 결정을 통해 이 곳을 지나면 치즈가 나올까 안나
올까 하는 예정되지 않은 결정도 있지만, 내가 찾는 것이 치즈라는 예정된 결정
을 믿는 신념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본다.
6. 헤어짐은 또 다른 치즈를 찾기 위한 시작이다.
치즈가 사라진 것을 사라져 버린 치즈에 대한 미련을 버릴수록 새 치즈를 빨
리 찾을 수 있다는 허의 교훈은 헤어지는 연습을 위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세
상이 변화하는 속도에 발맞춰 옛것을 버리는 것이 어려움을... 또한 내가 그것
을 일구어 내기 힘들었다면 더더욱 그것을 버리기는 힘들어진다. 대학에 합격
하기 위해 12년간 교육을 받은 내게 대학이란 절대적 치즈였던 것이다. 그것을
버린다는 것은 지금도 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어쩌면 진정 필요하지 않았을까
라는 물음을 가져본다.
여행은 인간에게 세상에 치즈는 많음을 또한 지금가진 치즈를 두고 새로운 치
즈를 찾아 떠날 수 있는 초연함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열쇠인 것 같다. 누구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초연함…….
운동복과 신발은 단지 치즈를 찾기 위한 수단임을, 도한 지금의 치즈를 버리
지 않으면 결코 새 치즈를 발견하지 못함을 우리는 잊지말아야한다.
7. 에필로그
"21세기 나홀로 여행"의 중의 "1일째 앨리스 여행"은 한마디로 변화이다.
모든 것이 변화해 감을 알고 끝나는 것에 미련을 갖지 말고 시작하는 것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이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책의 전면에 깔린 교훈과 일맥상통
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변화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음자세이다.
3월의 마지막 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즐기며 내일
을 준비하기를……. 이 모든 것은 바로 내 자신에게 달려있음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