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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예감 - 제 3 장 - 원수,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 [7]

유즈나 |2005.04.08 16:38
조회 418 |추천 0

 
4

 

 


 “정말 재미있는 친구더군.”

 

 나를 집에 데려다 주며 지섭 오빠가 말했다. 에? 그 녀석이 재미있다고? 성격 파탄자에 사악하기 그지없는 그 녀석이? 나는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표정으로 오빠를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아? 설마 아영이처럼 그렇게 게임에 열을 내는 사람이 또 있을 줄이야……. 아주 두 사람, 이글이글 불타오르더군. 무슨 결투라도 하는 것처럼…….”

 

 아하, 제대로 보긴 봤군. 그것은 분명 결투였다. 그것도 오랜 세월 쌓여온 원한과 집념이 서린, 아주 처절한 결투였던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 앙숙이었던 거야? 그 친구, 여학생이나 괴롭히고 다닐 것 같은 타입은 아니던데.”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니까요. 정말 나도 걔가 왜 그렇게 나를 괴롭혔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아, 내 고등학교 시절을 지옥으로 만든 그 녀석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이건 정말 악몽이야.”

 

 “뭘 어떻게 괴롭혔기에 씩씩한 아영이가 그렇게 치를 떠는 거지?”

 

 “말로 다 못하죠. 말하자면 입이 다 부르틀 거예요. 음, 내 도시락을 뺏거나 숨기는 정도의 유치한 행동은 언급할 것도 못되죠. 그쯤이야 기본이라 생각하고 넘어가 줄 수 있어요. 내가 숙제 못해온 건 어떻게 항상 귀신같이 아는지, 꼭 지능적으로 선생님한테 들키게 만들고……. 애들 앞에서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선생님이 시키셨다며 엉뚱한 일을 하게 만드는 등……더 이상은 묻지도 마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하하, 정말 굉장한 사이였구나. 그래도 은근히 취향이며 성격이 비슷한 것 같던데? 게임하는 걸 보니까 말이야. 앞으로 은혜를 봐서도 잘 지내야 하지 않겠어?”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악연이야.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남자 중에 그 녀석이랑 사귈 게 뭐람? 이건 잘 지낼 게 아니라, 뜯어 말려야 할 일이라고요.”

 

 “쉽지 않을 걸? 은혜 걔가 착하고 얌전해 보여도, 어려서부터 한 번 결심한 건 누가 뭐래도 밀고 나가는 애거든. 보기보다 고집이 보통 아니지.”

 

 “정말 의외에요. 은혜가 먼저 남자한테 대쉬했다는 것도 그렇고……상상도 못했어요.”

 

 “그렇게 시작했으니 스스로 마음이 변하기 전에는 절대 헤어지는 일 없을 거다. 은혜가 원래 그런 애야.”

 

 “조용한 사람이 더 무섭다더니, 정말 그런가 봐요. 오빠도 그래요?”

 

 “내가 조용한가? 안 그런 것 같은데…….”

 

 “오빠도 부드럽고 착한 면이 은혜랑 비슷한걸요.”

 

 “글쎄, 모르지. 화나면 무섭다는 소리는 들은 적 있다. 그러니까 나 화나지 않게 조심하라고.”

 

 “치, 화나면 누구는 안 무서운가? 오빠나 나 화나지 않게 조심해요.”

 

 “나야 언제나 아영이 기분 맞춰 주려고 노력하는걸. 이만하면 100점짜리 남자친구 아니야? 이런 나한테 화낼 일이 뭐가 있어?”

 

 이야기를 하노라니 눈 깜짝할 새에 집 앞에 도착했다. 지섭 오빠에게 가벼운 작별인사를 건네려다가, 무심코 내 방 창문을 확인한 나는 몸이 굳어졌다. 내가 아무리 덤벙거린다고는 해도 대낮에 형광등을 켜놓고 나왔을 리는 없는데, 지금 내 방 창문에서 형광등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나의 굳은 표정에 나를 따라 내 방 창문을 확인한 지섭 오빠의 얼굴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설마……도둑이 든 건가? 훔쳐갈 것도 없는 내 집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목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현관문까지 다가갔다.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려 보았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안에 도둑이 들었다면……초인종을 눌러 보는 건 집주인 입장에서 우스운 일이겠지? 어디선가 강목을 주워 들고 온 지섭 오빠가 손짓으로 내게 열쇠로 문을 따라고 시켰다. 그리고 내가 조용히 문을 따자 자신의 몸으로 나를 막은 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 작은 방에서 맞닥뜨린 사람을 향해 강목을 휘두르며 용감하게 소리쳤다.

 

 “꼼짝 마!”

 

 다음 순간,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이 나의 귀를 멍하게 했다. 아니, 비명을 질러야 할 사람은 난데……누가 이렇게 선수를 치는 거야? 응? 그런데 그 비명소리는 어쩐지 범상치 않았고, 낯익은 느낌마저 주었다. 그제 서야 지섭 오빠의 등 뒤에서 나와 비명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니……그것은 바로 엄마였다. 눈의 흰자를 드러내며 숨넘어갈 듯이 길고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시는 우리 엄마. 그 폐활량을 보니, 엄마의 건강에 대한 걱정은 한참동안 접어 둬도 괜찮을 것 같다.

 

 “누, 누구요! 도둑이야!”

 

 이번에는 화장실에서 뒤늦게 나오신 아빠가 가세하신다. 붉어진 얼굴로 격투 자세를 취하며, 강목을 든 지섭 오빠와 대치한 땅딸막한 우리 아빠. 이건 코미디가 따로 없군. 더 이상 소동이 커지기 전에 내가 나서야 할 차례이다.

 

 “아빠, 도둑이 아니라 저예요. 엄마, 비명 좀 멈추시고요. 머리가 다 울려요.”

 

 그제 서야 찾아온 침묵. 침묵이 이토록 달콤한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침묵은 결코 오래 가지 않았다. 금세 작렬하는 통증이 내 등짝을 강타했던 것이다.

 

 “간 떨어질 뻔 했잖아, 이 계집애야! 왜 그렇게 쥐새끼처럼 살금살금 들어오는 거야?”

 

 “아야, 엄마도 참……저야말로 집에 도둑 든 줄 알고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연락도 없이 웬일이에요?”

 

 “부모가 딸년 집에 오는데 연락하고 와야 하니? 그리고 계집애가 뭐하고 싸돌아다니다가 이렇게 늦게 들어와?”

 

 또 다시 등짝이 화끈해졌다. 자신의 손이 얼마나 매운지 모르는 엄마의 습관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 곁에 있으면 불쌍한 등짝만 모질게 학대당하는 것이다. 나의 등짝에 조용히 애도를 표하는데, 지섭 오빠의 헛기침 소리가 나를 구원했다. 엄마의 비명에 혼이 빠져, 지섭 오빠를 잠시 잊고 있었군. 그는 손에 든 강목을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쩔쩔 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뒤늦게 발견한 엄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미묘한 빛을 띤다.

 

 “그런데……이 총각은 누구라니?”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지섭 오빠가 깍듯이 인사를 했다.

 

 “아영이 남자 친구 신지섭이라고 합니다.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죄송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남자……친구라고?”

 

 부모님의 눈이 놀랄 만큼 커다래졌다. 그리고 갑자기 사근사근해진 태도로 지섭 오빠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나이, 직업 등등의 기초적인 조사에 착수하신 거다.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거의 취조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에 차츰 두려움이 느껴졌다고, 그 두려움은 기우가 아니었다.

 

 “뮤직비디오를 찍는다고요? 말하자면 감독 아니우? 어머, 젊은 사람이 굉장한 일을 하네.”

 

 “생긴 것도 아주 잘 생겼구먼.”

 

 “아영이가 어디가 좋아서…….”

 

 부모님들의 표정은 거의 ‘이게 웬 떡이냐’의 수준이었다.

 

 “음, 우리 아영이가 좀 덜렁대기는 해도 몸 하나는 건강한 편이에요. 적어도 나중에 병원비 많이 들 일은 없을 걸요.”

 

 엄마는 지금 저걸 딸에 대한 어필이라고 생각하고 하시는 말씀일까? 아빠는 더 기가 막힌다.

 

 “신서방, 앞으로 자주 놀러 오게.”

 

 아니, 지섭 오빠를 언제부터 봤다고 그 새 신서방이 된 거지?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지섭 오빠는 넉살도 좋게 적응하며 따르고 있다.

 

 “네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이거……아무래도 우리가 괜히 찾아 온 거 아니에요? 젊은 사람들끼리 좋은 시간 보낼 거 방해한 거 아닌지…….”

 

 엄마가 묘한 눈웃음을 치며 하시는 말씀에 나는 기가 막혀 사레가 들릴 뻔 했다. 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 의미심장한 말은……딸의 남자 친구 앞에서 엄마라는 사람이 할 소리란 말인가? 아예 당장 나를 덜렁 포장해서 지섭 오빠에게 넘기시지? 물론 부모님의 표정으로 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운 것 같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엄마, 아빠, 지섭 오빠는 돌아가려다가 내 방에 불이 켜져 있기에 걱정 되서 들어와 본 것뿐이에요. 피곤해서 빨리 돌아가야 하니까, 더 이상 잡지 마세요.”

 

 “아영아, 난 괜찮은…….”

 

 지섭 오빠가 나를 말리려다가 살인적인 내 눈빛을 보고는 뜨끔하여 입을 다물고 만다.

 

 “어머, 아영이가 벌써 저렇게 신서방 피곤할까봐 챙기는 거 봐요. 기특하기도 하지.”

 

 “그러게. 신서방, 피곤하면 어서 돌아가게. 다음에 언제 술이라도 한 잔 하며 얘기를 나누지.”

 

 “아영아, 신서방 배웅해야지. 천천히 얘기 나누다 들어오렴.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거의 질질 끌다시피 지섭 오빠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갑자기 마구 화가 났다. 배신감 때문이었다. 어쩌면 부모님은 나를 저렇게 헐값에 팔아넘기려고 하신담? 아니, 팔아넘기는 정도가 아니라 웃돈이라도 얹어 처분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모습이지 않은가! 난 괜히 죄 없는 지섭 오빠한테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당황했으면 미안해요. 그런데 오빠도 그렇게 장단을 맞출 것 까지는 없잖아요.”

 

 “뭐가 어때서? 난 아영이 부모님이 날 괜찮게 보신 것 같아 기분 좋은걸.”

 

 솔직히 오빠를 괜찮게 봤다기보다는 나를 처분할 기회가 왔다고 기뻐하시는 거겠지. 하지만 그런 말까지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도……우리 부모님이 너무 이상한 건 사실이에요. 보자마자 신서방이라고 부르지를 않나…….”

 

 “아주 재미있는 분들이시던데 뭘. 그리고 이상한 게 아니라, 특별하신 거야. 당연하지. 우리 아영이 부모님이신걸. 난 아영이 부모님, 너무 좋은 분들 같아서 기쁜걸. 그래서 아영이가 이렇게 밝고 개성 있게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의 말이 내 기분을 조금 풀어 주었다. 모든 것을 좋게만 보는 너무 착한 지섭 오빠.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괜히 부모님한테 섭섭해 하기 없기다? 부모님은 아영이를 사랑하고, 또 믿기 때문에 네가 사귀는 남자에 대해서도 좋게 보시는 거야. 그러니까 그건 감사해해야 할 일이지, 화낼 일이 아니잖아? 알았지, 아영아?”

 

 “알았어요. 피곤할 텐데, 그만 가서 쉬어요.”

 

 “그래, 아영이도 잘 자. 참, 글 다 쓰면 꼭 보여줘야 해.”

 

 글? 무슨 글? 앗, 그 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는 오늘부로 공식적인 작가지망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큰 소리 떵떵 쳐놨는데……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것이다. 아, 부담감이 천만 톤 단위로 나의 몸을 짓누른다.

 

 “알았어요. 이제 시작 단계니까, 너무 재촉하지는 말아요. 조심해서 운전하고요.”

 

 충동적인 기분으로 그의 이마에 재빠르게 입을 맞췄다. 나의 갑작스런 행동에 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애정 표현에 무척 서툴렀고, 스킨십에 대해서는 거의 유치원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유치원생들이 나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그의 놀란 표정은 잠시 후 귀엽기는 하지만 조금은 바보 같은 헤벌쭉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입이 도무지 다물어지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허공을 둥실둥실 떠다니는 듯 몽롱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며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내 입에서도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진작 해줄 걸 그랬나?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왜 이렇게 빨리 들어왔니? 천천히 들어오라고 했잖아.”

 

 다시 집에 들어서자마자, 부모님이 무섭게 달려드신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저런 남자를 낚을 줄이야…….”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인물도 훤한 게……솔직히 너한테는 아깝다.”

 

 “너 어디 가서 저런 남자 다시 못 만난다. 꽉 잡아!”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니? 너무 빨리 진행하는 건 좀 헤퍼 보이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잡아 두려면…….”

 

 아악, 더 이상 못 참겠다! 날 믿고 사랑해서 부모님이 좋게 본 거라고? 이건, 이건 아니다!

 

 “그만요, 엄마아빠. 정말 너무들 하시는 거 아니에요? 지금 그런 말이 딸한테 할 말 맞아요?”

 

 “우리가 오죽하면 이러니? 너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데, 시집이라도 잘 가야 할 거 아냐. 누가 너 같은 사고뭉치 데려가나 걱정했는데, 기회가 있을 때 빨리 잡아야 하지 않겠니? 오래 끌어 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다. 그나마 나이라도 어리고 예쁠 때 잡아야지.”

 

 “신서방 같은 사람이 데려가준다면 우리야 고맙지.”

 

 나는 격분하여 소리쳤다.

 

 “딸내미에 대해 겨우 그런 믿음밖에 없어요? 저도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고요. 저도 제 일로 성공해서 독립적인 커리어우먼이 될 거란 말이에요.”

 

 그러나 부모님의 반응은 냉담했다. 말은 안하시지만 ‘네가 하는 일이 어련하겠니?’하는 표정……. 맥이 빠진다.

 

 “됐어요. 집은 어떻게 하고 오신 거예요? 방도 하나뿐인데, 여기서 주무시게요?”

 

 “집에 가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여기에서 자니? 우린 그냥 네가 전화도 잘 안하고 집에 들르지도 않기에, 잘 지내나 해서 와본 거지. 이렇게 잘 지내는 거 알았다면 우리도 굳이 와볼 필요 없잖아. 뭐, 그 덕에 신서방 얼굴 봐서 좋긴 하다만…….”

 

 “그래도 괜히 왔어요. 우리가 없었더라면 젊은 혈기에 그렇게 돌아가지는…….”

 

 내가 다시금 소리쳐서 엄마의 말을 가로막았다.

 

 “엄마아빠, 늦었는데 가세요. 멀리 못나가요.”

 

 거의 쫓아내는 것에 가까운 나의 말에 부모님들은 목소리를 낮춰 서로 뭐라 중얼거리며 집을 나가셨다. 북적거리던 작은 방에서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잠시 공허함이 감돈다. 그 때 멍멍이가 다가와 내게 몸을 비벼댄다.

 

 “그래, 네가 있었구나!”

 

 갑자기 멍멍이의 존재가 너무나 반가와, 녀석을 끌어안으며 바닥에 미끄러지듯 앉았다. 그러나 멍멍이는 귀찮다는 듯이 내게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먼저 와서 몸을 비비며 아양 떨 때는 언제고…….

 

 “쳇, 밥 달라는 거였냐? 난 너한테 그냥 밥 주는 사람인 거야?”

 

 괜히 멍멍이한테 심통이 나서, 부루퉁한 표정으로 쏘아보았다. 사실 멍멍이가 먹을 것만 밝힌다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 그런 일로 짜증이 날만큼 나의 기분은 저조했다. 진이 다 빠진 것 같았다. 내게는 너무 힘겨운 하루였던 것이다. 수년 만에 원수와 상봉한데다가 부모님과의 대면도 만만치 않았다.

 

 기분이 울적해졌다. 부모님이 나를 서둘러 처리해야 할 짐짝 정도로 여긴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랬고, 원수 녀석을 앞으로도 쭉 봐야한다는 생각도……나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우울함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쳇, 승우 녀석……말이야 바른 말이지 길에서 봤다던 희진이 말마따나 후광이 비치도록 잘나기는 잘났더군. 잘 나가는 녀석이 인물까지 그렇게 번듯하다니……. 세상은 부익부빈익빈의 논리로 진행되나 보다. 여러모로 잘난 지섭 오빠에 이어 그 녀석까지……. 물론 두 사람은 흑과 백처럼 상반된 이미지다. 흰 피부에 밝고 따뜻한 느낌의 지섭 오빠와 어둠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강승우. 세상에서 지섭 오빠가 제일 멋있는 줄만 알았는데, 솔직히 승우 그 녀석도 만만치 않잖아? 앗, 방금 그 생각은 취소다! 어디 비교할 게 없어서 지섭 오빠를 승우 따위와 비교하는 거야? 지섭 오빠가 알면 기분 나쁠 일이다.

 

 ‘오빠, 미안. 오빠는 그 녀석이랑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 최소한 백만 스물다섯 배는 더 멋있으니까.’

 

 서둘러 마음속으로 오빠에게 사과를 하고, 진절머리 나는 그 녀석이 차지했던 머릿속 공간을 지섭 오빠 생각으로 메웠다. 지섭 오빠……. 나에 대해서라면 모든 지 좋게만 보고, 다정하고 로맨틱하고 멋있는……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자. 아마도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그런 남자친구 아닐까? 그런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니, 이건 정말 최고의 행운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도 전처럼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그 정도로 해소가 되기에는 나의 우울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가 보다.

 

 ‘이게 다 그 녀석을 만났기 때문이야.’

 

 다시 녀석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그와 동시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섭 오빠를 만남과 동시에 내게서 멀어졌던 불운이 그 녀석의 등장과 함께 다시 찾아오는 건 아닐까?

 

 “아냐, 그럴 리 없어! 지섭 오빠의 사랑은 나의 행운부적인걸!”

 

 주먹을 불끈 쥐고, 호기 있게 소리쳤다. 신념을 담아, 스스로를 납득시키려는 듯이. 나의 외침에 멍멍이도 따라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알았어, 밥 주면 되잖아.”

 

 기운차게 일어나 멍멍이의 밥을 준비하는 나의 뇌리에, 짧은 불안감이 스쳐지나갔다. 과연……강승우라는 강력한 불운 앞에서 행운부적이 힘을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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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지난 번 연재했던 연재분이 모두 끝났네요.

다음편부터는 새로운 글이 여러분을 찾아가겠지요.

반갑게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즐거운 주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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