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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20> 나를 깨워 이 암흑에서 일어서게 해다오.

초록물고기 |2005.04.09 21:40
조회 1,205 |추천 0

 

 

긴 게으름이었습니다.

거친 글빨 따숩게 안아주며 정은 나누던 님들께 참으로 면목이 없습니다 그려....

(슉~) 쥐구멍으로 도망갔음...^^

한번에 두 가지를 못하는 가슴이 온통 다른 곳에 가있어 한줄 글조차 허락하지 않았음을 변명으로 내놓습니다...(넘 구차한가...ㅠ..ㅠ)

흐린 먹빛에 길들여진 가슴.....

그런 가슴으로 사는 거 견디는 하루만큼 말라 들어갔지만 적당히 아프고 쓰라린 그 삶이 글을 하기엔 좋았지요.

심장을 쥐어짜는 갈망이 있어 흐르는 눈물 한줄기도 그대로 한줄 아픔으로 뱉어낼 수 있었지요.

그 먹빛을 걷어내고 나니 거칠고 붉은 피를 뿌려대던 그것들이 가슴에서 떡하니 달라붙어 나오려 하지를 않더이다...

그 생선 참으로 간사하고 요사스럽다 하면 그대로 받을 것이고...

무책임한 비린 생선 회를 떠 초밥으로 올리겠다 하면 살점 한점 때어드리리다...^^

한번도 뜨거운 피를 받은 적 없던 가슴이 손을 대면 데일만큼 열이 올라 있지요...

열받은 생선은 식용으로는 그리 적당치 않을 걸로 압니다...(그냥 또 한번 따숩게 보듬어 주시지요)

여기는 온천지가 벚꽃으로 꽃이불을 덮었습니다.

햇살 좋은날은 차라리 잔인할 정도로 아름답지요.

오늘 같이 흐린 날 또한 다른 색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잠시 비나리는 꽃길을 달려보고 왔습니다.

그리워하기 좋은 날입니다.

 

살고 싶습니다.

살아보고 싶습니다.

뜨겁게 꿈틀되는 이런 가슴으로 숨쉬는 모든 날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내 가슴에 그 사람 심장이 있습니다.

그 가슴에도 내 것이 뛰고 있을 겁니다.

긴 부제의 이유입니다.

 

 

동준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몸으로 지윤을 안았다. 그 몸짓 속에 붉은 슬픔이 묻어 있었다. 이미 그 몸에 각인된 한 사람의 흔적이 더 이상 다른 전율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푸른 떨림이 여전히 심장을 조일 듯 되살아나 지윤을 안으면서도 그 얼굴을 보려하지 않았다. 지윤이 애타게 그 목을 감싸며 입술을 포개왔지만 동준이 다른 감정을 싫지 않으려 더욱 격렬히 몸을 움직일 뿐이었다.

 

- 붉은 슬픔

  보고 싶다...진서야!

  미안하다.

  그런데도 니가 날 용서해 줄 거라는 그 하나 믿음뿐이다.

  내 어떤 허물도 그 가슴에 품어 안아줄 것을.....

  지금 이순까지도 나는 한점 의심치 않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여야 하는 이유다.

  이제 나를 살릴 수 있는 것도....

  또 숨 줄을 끊어내 마지막 생명의 불씨를 거두어 갈 수 있는 것도 오직 너 뿐이다.

 

몸을 때어내며 가슴에서 지윤을 풀어낸 동준이 아무런 미동 없이 천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머릿속에서 희뿌옇게 가려진 채 형체를 숨기고 있는 검은 원흉을 조심스럽게 자신에게로 끌어내고 있었다. 심장에서 뜨거운 피를 거두어내야 하는 일이었다.

 

지윤이 자신을 안은 동준의 느낌이 달라져 있음을 여인의 미세한 본능으로 느끼고 있었다. 깊은 사랑으로 품어가진 것은 아니라 해도 분명 그 속에 사람을 향한 연민이 담겨 있었다. 본능을 쏟아내듯 싸늘한 한기를 주었던 예전과는 달라 있었다. 지윤이 동준의 가슴위에 얼굴을 올려놓으며 울컥 북받치는 감정을 흘려냈다.

 

“사랑하게 만들 거야....결국 니가 나를 사랑해서 나를 가지고 싶도록 그렇게 만들 거야.”

 “..........”

 

동준이 여전히 말없이 시선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다. 사람으로서 가져지는 지윤에 대한 모든 연민을 자신의 심장에서 발기발기 찢어내 형체도 없이 날려버리고 싶었다.

 

“떠나면 뭘 하고 싶은지 생각.....”

 

동준이 지윤의 말을 더 듣지 않고 몸을 일으키며 낮게 내려깔린 목소리를 열었다.

“여행가요.”

“그래. 떠나기 전에 한번 다녀오는 것도 좋겠다. 언제 갈까?”

“지금 별장 가서 간단하게 짐 챙겨 첫 비행기타고 제주도 가요.”

 

갑작스러운 동준의 말에 지윤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늘 움직임이 없는 호수처럼 그 파동을 읽을 수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꾸 다른 모습을 만들고 있어 지윤이 낯설어하면서도 가슴이 벅찼다. 그토록 원했던 사람을 가져 그가 자신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으로 다른 모든 의문과 불안감을 떨쳐내고 있었다.

 

“점심 먹고 오후에 출발해도.....”

“아뇨. 지금가요. 당장 떠나고 싶어요.”

“갑자기 왜 이렇게 서두르니?”

 

동준이 물끄러미 지윤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눈 속에 다정함을 싫어 경직돼 있던 목소리를 풀었다. 천천히 그 말을 내놓는 눈과 입이 완벽하게 다른 얼굴을 만들고 있었다.

 

 “.....당신이 늘 원했던 거야. 그래서 지금 당장 가고 싶어.”

 

지윤이 손을 내밀어 동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 같은 위험한 도박처럼 아스라함이 느껴졌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듣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가지지 못했던 바램이었다.

 

“고마워....동준아!.....나한테 와줘서 너무 고마워..”

 

동준이 애써 그 말을 외면한 채 몸을 일으켜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며 거울속의 남자를 응시했다. 진서를 떠나온 그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쉬어보지 못한 영혼이 힘겹게 지쳐가고 있었다. 독한 기운을 뿜어내려 애를 쓸수록 그 속에 숨은 두려움이 자신을 잠식하고 있었다. 목숨 같은 그 하나가 아니라면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을 만큼 가혹한 형벌이었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온 동준이 지윤을 먼저 차에 태우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주머니 속에서 계속 만지작거리던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지금 출발한다.”

 

전화기 너머로 경직된 듯 낮게 내려깔린 남자의 음성이 절재 된 염려를 조심스럽게 흘려냈다. 고교시절의 그 일로 소년원에서 연을 이은 김병태였다. 드러내 놓지 않는 형태의 만남들이었으나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 변하지 않는 빛깔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동준이 그 험한 밤 생활에서도 표 나지 않게 움직이며 한필중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 또한 그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서로의 등을 지켜주는 일에 그 어떤 이유나 대가가 필요치 않는 오직 존재 그 하나의 믿음으로 마음을 취해 가진 친구였다.

 

 “조심해라. 동준아!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정신 놓으면 안 된다.”

“......나중에 보자.”

 

도시를 벗어나 도로위로 차를 올린 동준이 끝도 없이 뻗어진 앞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나는 모든 형체들이 눈 속에 들지 못하고 흩날리고 있었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그 손끝이 축축이 젖어 들었다. 지윤이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한없이 편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 사이드 위에 올려진 동준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 올려놓았다. 경직된 얼굴이 미세한 근육의 경련을 가져올 듯 굳어있던 동준이 금방 얼굴을 바꾸어 낮고 부드러운 말을 흘려냈다.

 

“벨트 풀고 어깨에 기대요.”

 

지윤이 동준의 팔목을 어루만지며 또 다시 벅찬 감정에 휩싸였다. 불현듯 너무 좋은 것이 한꺼번에 자신에게로 밀려와 두렵기까지 했다. 벨트를 풀고 동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그 체취를 깊게 호흡했다. 동준이 심장에서 번진 뜨거운 줄기가 눈가로 번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당신.....내가 끝까지 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나 놓았을까?”

 

지윤이 감은 눈을 살며시 열어 입가에 반쯤 미소를 걸었다. “아니....난 너 포기 안 해. 그래서 이렇게 가졌잖아. 어차피 살아갈 의미도 없는 삶이었어. 그래도 악착같이 버틴 건 너 하나 탐낸 욕심 있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내가 죽기 전에는 널 놓는 일은 없어.”

 

동준이 핸들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무엇을 더 확인하려 지윤에게 그것을 물었는지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길을 찾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이리라. 독백처럼 입 밖으로 나오면서 부서지는 그 말이 동준의 가슴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 당신이 날 보지 말았어야 했어.

   보았어도 가지려 하지 말았어야 했어.

   당신이 가졌다 믿는 그 순간도......

   내 모든 영혼이 한사람의 심장에 박혀 있어.

 

동준이 큰 도로를 벗어나 별장으로 가는 외곽 길을 타면서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산을 깎아 만든 굽이치는 급커브길이라 평소에도 사고가 잦은 곳이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핸들을 꺽은 차의 진동에 지윤이 놀라 몸을 일으키며 동준을 보았다.

 

“조심해. 이길 위험한거 알잖아.”

 

자신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앞만을 응시한 동준의 눈이 싸늘하게 식어있음을 느꼈다. 지윤이 한순간 섬뜩한 기운에 사로잡혀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너......너 왜 이르니. 속도 줄여.”

 

또 다시 급커브로 돌아든 차가 한쪽으로 심하게 밀리며 가까스로 가드레인을 피했다. 지윤이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문 쪽으로 어깨가 쏠리며 비명을 질렀다.

 

“무슨 짓이야. 너 미쳤어. 속도 줄여. 줄이란 말야.”

 

동준이 이미 두려움을 넘어선 사선의 곡예에 마취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담지 않은 듯 그 시선이 공허해 보였다. 오직 짐승의 본능 같은 그것에 핸들을 맡긴 채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온 신경이 피부를 뚫고 터져 나올 것 같은 그 긴장감 속에서도 그 얼굴이 눈 속에 내려앉아 꿈을 꾸게 하고 있었다.

 

  - 진서야!.........진서야!.......진서야!.......

    내 손 놓지 마라.

 

지윤이 눈에 붉을 핏대를 세운 채 동준에게 악을 쓰고 있었다. 비로소 그가 갑작스럽게 모든 것을 바꿔가며 행동한 이유를 보고 있었다. 지윤이 심장을 후벼 파내는 통증으로 혼미했다. 그렇게 쉽게 믿어버린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고 그 잔인한 두 얼굴에 이를 갈아 대고 있었다.

 

“나쁜 새끼....이거였니? 이럴여고 그렇게 연기하면서 날 가지고 놀았니.”

“나.....용서하지 말아요."

“나쁜 놈...나쁜 새끼.....내가 너 절대 용서 안할 거야...지옥 아니라 어디라도 끝까지 너 끌고 갈 거야.”

 

동준이 여전히 앞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싸늘한 한기만을 흘리고 있었다. 숨을 내쉬면 그 호흡 속에 자신의 두려움이 들어날까 굳은돌처럼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생에 마지막 지옥이 그것으로 끝나기를 붉은 심장으로 간절히 바라며 또 다시 진서의 이름을 대뇌였다.

 

동준의 시선이 이미 모든 것을 놓고 있음을 안 지윤이 손을 뻗어 동준의 팔을 잡았다. 순간 지윤의 손을 피해 급하게 돌리려든 핸들이 재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앞 범퍼로 가드레인을 긁으며 산이 삼키고 있던 새벽의 적막을 깼다. 날카로운 쇠 소리가 동준의 살 속으로 파고들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던 긴장된 몸에 소름을 돋게 했다. 지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모든 이성이 마비될듯한 그 아수라의 정신 속에서도 동준이 미리 표시해 두었던 지점을 찾고 있었다. 이미 중턱을 지나 그 지점을 가까워 오고 있음을 온몸이 느끼고 있었다. 핸들을 잡은 손이 흥건하게 젖어 감각을 느끼지 못할 만큼 무뎌가고 있었다. 여전히 악을 쓰며 비명을 질러대는 지윤의 목소리조차도 먼 환청처럼 몸에 닿지 않고 있었다.

 

오직 하나의 가슴과 하나의 눈빛만이 동준을 살아있게 하고 있었다. 눈 속에 내려앉아 연푸른 미소를 뿌리며 웃고 있는 진서를 담아 동준이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붙잡고 있던 핸들에서 손을 놓았다. 순간 진윤의 비명이 절정에 다닳았고 벨트를 하지 않은 몸이 그대로 앞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거칠게 언덕 아래로 내려 꽂히던 자동차가 비탈에 들어나 있던 바위에 부딪혀 심한 충격으로 튕겨나며 한바퀴를 굴러 계곡 아래로 떨어졌다. 동준이 머리와 어깨를 문에 부딪치며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암흑의 동굴 속으로 아득히 내려앉던 동준이 무의식속에서 조차 놓을 수 없는 그 하나의 염원으로 자신을 깨우고 있었다.

 

- 움직여야 한다.

  깨어나야 한다.

  여기서 이대로 저 암흑 속으로 빠져든다면...

  나는 또 다시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못하는 붉은 바람이 될 것이다.

  몸을 잃어 너를 가지지 못해도.....

  너를 놓지 못하는 내 영혼이 서러운 바람이 되어 천년을 떠돌게 될 것이다.

  내가 스쳐가는 그 향기를 너만을 느낄 것이고....

  너 또한 그 세월을 나와 같이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유황불에서도 나를 죽지 못하게 할.....

  피를 짜내고 살을 저며 내는 고통이 될 것이다.

  내가 없는 곳에 너를 둘 수 없다.

  너를 놓고 내가 살 수 없는 그것에 이유가 없다.

  같은 심장으로 우주를 깨워 마주한 사람이다.

  나를 깨워다오.

  그 긴 세월을 나를 기억해 가져온 니가 아니냐.

  나를 느낄 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어 내 몸과 가슴이 통증하고 염원하는 모든 것을......

  너는 바람으로 가져가 피 속에 녹일 것이다.

  나를 깨워 이 암흑 속에서 일어나게 해다오.

  진서야....!

  효원아....효원아....!

 

동준이 끝없이 내려끌리던 그 무게에서 몸을 돌려 한줄기 빛을 받았다. 미세하게 돌아온 정신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던 몸이 조금씩 감각을 느끼며 깨어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려다 깊게 퍼지는 어깨의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지윤을 보았다. 온통 붉은 피로 뒤덮인 얼굴이 이미 주검처럼 축 늘어져 섬뜩한 기운이 스멀거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그 몸이 동준을 붙잡아 끌어당기듯 차를 빠져나오는 그 짧은 순간이 한참처럼 길고 두려워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동준이 재대로 말을 듣지 않는 어깨를 한손으로 붙잡아 겨우 차를 빠져나오던 그 순간 등 뒤에서 그 붉은 주검이 스르르 눈을 떠 동준을 불렀다. 몇 발짝을 때놓던 동준의 몸이 한순간 그 자리에 뿌리를 박아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동준아!.....가지마.....동준아......”

 

이미 날이 밝아 오고 있어 주위의 형체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동준의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얗게 비어버린 머릿속이 몸을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움직여 보려 해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질긴 생명 줄이 조금씩 호흡을 가다듬어 더 선명하게 동준을 부르고 있었다. 가늘고 음산한 목소리에 그 어떤 마력이 실려 동준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동준아....무서워....가지마.....무서워......제발......”

 

-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지금 돌아보면 다시는 내손으로 놓지 못할지 모른다.

  그냥 걸어야 한다.

  걸어야 한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저것은 살아서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동준이 뿌리를 내린 듯 꼼짝도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한 발짝을 내놓았다. 마른 침을 삼키며 또 다시 다른 발을 옮겨놓으려 할 때 작은 스파크의 불꽃소리가 들렸다. 바싹 말라 들어가던 입술이 헉하고 뜨거운 호흡을 내쉬며 자신도 모르게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력을 가진 붉은 눈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동준의 시선을 잡아챘다. 주검처럼 널브러졌던 생명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번뜩이는 시선이 동준을 이끌고 있었다. 이미 앞쪽에서 시작된 불길이 번져 스파크와 함께 차안으로 자욱한 연기를 보내고 있었다.

 

“동준아.....움직일 수가 없어....꺼내줘....무서워.....혼자 두고 가지마.”

 

동준이 그 눈을 보고 말았다. 온 영혼을 싫어 사람을 놓지 않을 그 눈을 보고 말아 더 이상 다른 길이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 이미 모든 것을 단념하고 있었다. 보고는 돌아서지 못할 것을 그 눈을 보는 순간 알아가고 있었다.

 

지윤이 앉은 조수석의 문을 열려다 비탈에 박힌 바위에 문짝이 꼼짝도 않는 것을 확인하고 운전석 쪽으로 돌아와 지윤을 끌어냈다. 이미 불길이 차를 삼키고 있어 통증으로 마비되고 있는 어깨의 고통을 그대로 참아내며 지윤을 부축해 차를 빠져 나왔다. 동준이 자신을 버리고 가지 않은 것에 안도한 지윤이 차를 빠져나오는 순간 다시 정신을 잃었다.

 

축 늘어진 지윤을 힘겹게 부축하던 동준이 어깨가 찢어져 나갈듯한 고통에 걸음을 더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등 뒤의 화마가 더욱 맹렬히 기세를 태워 동준이 다시 안간힘을 쓰며 지윤을 부축해 몸을 일으켰다. 순간 둔탁한 폭음과 함께 차에서 터져 나온 뭔가가 동준의 머리 뒤로 날아들었다. 너무도 짧은 찰나에 온몸의 기운이 스르르 연기처럼 빠져나가고 그 몸이 종이 장처럼 가볍게 지윤의 등위로 내려앉았다.

 

목 줄기로 뜨겁고 끈적한 것이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음을 어렴풋한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통증도 없는 편안한 기운이 점점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더 섬뜩하게 동준을 휘감았다. 온몸의 피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듯 순식간에 싸늘한 한기가 몸을 굳게 하고 있었다.

 

- 끝까지 저를 용서할 수 없는 겁니까.

   제 몸속에 그 사람의 심장도 함께 뛰고 있습니다.

  저를 이렇게 거두어 가시면.....

  그 사람 살지 못합니다.

  끝까지 이리도 잔인하십니까.

  이 한번이 그리도 어려운 일입니까.

  이리 갈수는 없습니다.

  이리는 안 됩니다.

  저를 용서하지 않아 거두시는 당신을....

  저 또한 끝까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 사람....

  그 사람 심장이 제 것과 같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살아야 합니다.

 

동준에게서 흘러내린 피가 지윤의 등을 축축이 적시고 있었다. 이미 그 정신이 몸을 놓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경계를 지나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그 마지막 전율 속에 죽어서도 놓지 못할 그 하나의 서러운 염원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잠을 깬 진서의 눈가가 축축이 젖어있었다. 악몽이었다. 그를 떠올려 단 한번이라도 따스한 미소를 담은 그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꿈속에 찾아든 그의 모습은 너무도 처절한 하나의 고통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붉은 피를 토해내는 그에게 아무리 다가서려 해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서러운 눈물만 흘려내다 잠을 깼다. 그토록 간절히 자신을 부르고 있는 그에게 얼어버린 몸으로 손을 내밀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고 원망했다. 꿈속이긴 했으나 분명 그 눈 속에 가득한 두려운 공포를 보았었다. 본능적으로 동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예감했다.

 

꿈속의 그 몸서리쳐지던 두려운 느낌이 깨어난 한참이 지나도록 진서를 떠나지 않고 있어 그 예감을 더욱 확신하게 하고 있었다.

 

- 지금 내 심장의 반이 싸늘하게 전율하고 있어.

   하지만....

   당신이 내게 했던 그 말만을 믿어.

   당신이 없는 곳에 나를 두지 않겠다고 했던 그것만을 믿을꺼야.

  세상이 뒤집혀 아무것도 살아있지 않은 날이 와도.... 

  나는 당신 믿어.

  내 앞에 우뚝 서 그 넓고 따스한 세상속으로 나를 끌어안아 줄것을 한점 흔들림 없이 믿어.

  내가 믿고 있는 한 당신은 그 어떤 곳에서도 나를 놓지 못해.

  

급하게 숲길로 들어선 차에서 김병태와 젊은 사내가 황급히 내려 주위를 살폈다. 불길에 휩싸인 자동차를 발견한 김병태의 얼굴에 불안한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몇 발짝 더 다가서 지윤을 감싼 채 썰어져 있는 동준을 발견한 그 눈이 두려움으로 어른거리고 있었다.

 

- 바보 같은 놈, 결국...

  이러자고 목숨 걸고 뛰어들었니.

  돌아서겠 했으면 눈감과 귀를 닫아 앞만보고 걸었어야지.....

다급히 달려가 업어져 있는 동준을 바로 눕히려다 온몸을 적시고 있는 붉은 피에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목 줄기에 손을 가져다 대본 후 서둘러 사내를 불러 동준을 차로 옮겼다. 그리고 눈짓으로 사내에게 뭔가를 지시하자 사내가 트렁크를 열어 길게 묶어진 자루를 들어냈다.

 

 “일 빈틈없이 마무리 해라.”

 

핸들을 잡은 김병태의 시선이 지윤에게 잠시 멈추었다. 결국 녀석은 그녀를 버려두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오랫동안 녀석을 보아온 김병태였다. 싸늘하고 잔인한 듯 쉽게 감정을 드러내놓지 않지만 결코 차가울 수 없는 심장이었다. 거칠게 숲길을 빠져나와 도로에 차를 올린 그가 잠시 망설이다 뒷자석의 동준을 돌아본 후 핸드폰을 열어 누군가의 이름을 찾았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린 후 차분하고 정돈된 음성이 건너왔다.

 

“서정재입니다.”

“......동준이 친구 되는 사람입니다.”

 

김병태의 목소리에서 이미 다급함을 읽어낸 정재가 먼저 상황을 물어왔다.

“무슨 일입니까?...형한테 무슨 일 생긴 겁니까?”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습니다.....아직은 숨을 쉬고 있지만.....잘 모르겠습니다...머리를 크게 다친 것 같고....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지금 어디쯤 입니까?”

“이십분 안으로 도착할겁니다.”

 

막연한 불안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그 실체가 결국 그렇게 정재 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멍하니 앉았던 정재가 몸을 일으키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호흡으로 조절하고 정신을 수습했다. 내과 과장에게 직접 집도를 부탁하고 대기 팀과 함께 응급실 앞까지 나가 불안함을 숨기지 못하고 서성이하고 있었다. 잠시 후 급하게 자가용한데가 응급실 주차장으로 밀려들었고 김병태가 차에서 내렸다.

 

오래전에 한번 본 기억으로도 정재가 단번에 그를 알아봤다. 대기하고 있던 팀들이 서둘러 동준을 침대에 옮겨 병원 안으로 들어가고 함께 들어가려던 정재를 김병태가 잠시 불러 세웠다.

 

“잠깐만 할말이 있습니다.”

“나중에....하십시오. 지금은....”

 

김병태가 다급히 말문을 꺼냈다.

 

“살려도......죽은 사람입니다. 동준이...”

 

돌아서려던 정재가 다시 몸을 돌려 김병태를 보았다.

 

“그게.....무슨 말입니까?”

“이미.....죽은 사람입니다. 이 병원에 들어온 사람은 이동준이 아닙니다.”

 

김병태의 시선을 잠시 그대로 받은 정재가 비로소 그 말뜻을 알아가졌다. 동준이 끝까지 말하지 않으려 했던 그것이리라. 자신을 걸고 뭔가를 바꾸려 했던 것이리라.

 

이틀째 연락이 없던 두 사람의 행방이 조금씩 불안해지고 있던 한필중에게 실탄이 심장을 관통한 충격이 날아들었다. 자신의 귀로 듣고 있으면서도 그 말이 한번에 머리까지 전해지지 않고 귀전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동준이 형이.....사고로”

“....얼마나 다쳤냐?”

“......주...죽었습니다.”

 

잠시 동안 멍한 충격에 사로잡힌 한필중이 그 말을 다시 되뇌었다. 문득 사흘 전 자신 앞에 앉았던 그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너무 쉽게 그 의지를 꺾어버린 눈빛이 계속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그 앙금이 불편하면서도 차라리 그대로 믿어버리고 싶었던 가슴에 또 다른 충격이 더해져 의문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죽었다........이동준이 죽었다.... 지금 그걸 나한테 믿으라는 거냐?”

“전소된 차에서....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사고 지점이 어디냐?”

“별장으로 가는 국도에서....”

 

말을 전하던 어깨가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이었다.

 

“차에 사모님께서 함께 타고 계셨습니다. 다행히 전소되기 전에 빠져나오셨던 모양입니다. 머리를 다치신 것 같습니다. 종두형이 먼저 가서 수속 밟고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연락 왔습니다.”

 

한필중이 아무 곳에서도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들고 있던 술잔이 가늘게 떨려오고 있었다.

 

“시신을 발견했다고 했나?”

“예.”

“차 대기시켜라.”

 

한필중이 병원으로 향하는 차속에서 수만은 생각의 고리를 연결시키고 있었다. 결코 그렇게 떠나버릴 녀석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보게 될 그것에 두려움을 키우고 있었다.

 

- 이동준!

   너는 늘 나를 긴장시키는구나!

   니가 이렇게 떠날 놈이 아니라는 건 내가 더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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