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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2) 화요일 오후 2시

온단테 |2005.04.26 09:53
조회 191 |추천 1

2.  화요일 오후 2시

 

 가끔씩 일상 속의 작은 발견들은 우리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줍니다. 사물은 태어날 때 모두 개별성을 지니고 이 세상에 나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개념이라는 틀 속에 묶여버리고 맙니다. 지금 눈길 위에서 뛰어다니고 있는 창 밖의 개는 사실 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개도, 요크셔테리어도, 또는 은비라는 이름도 아닌 그 어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편하게 호칭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의 생각을 설명하기 참 어렵네요. 아무튼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한번 즈음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니지만 갑자기 일상의 풍경중의 하나가 재미있게 느껴질 때 말입니다. 언제나 다니던 길에서 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재미있는 간판을 발견한다던가, 방안에 붙어있는 벽지의 동그라미 무늬를 세어보니까 그것이 정확히 나의 생일과 같은 수였던가, 떠먹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뚜껑을 열었더니 뚜껑에 웃고 있는 사람의 얼굴 같은 무늬가 나온다던가. 그냥 간판, 벽지, 아이스크림 이라고 생각했으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 속의 톡톡 튀어나옴. 조금 여유를 가지고 천천친 뜯어보면 세상은 제법 재미있게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커피우유 소녀에게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발견하기 이전에는 그저 매일 들락거리는 무수한 소녀들 중에 하나였었지만 그녀의 특징을 기억하게 된 이후 부터는 매일 아침 커피우유를 마시고 학교로 향하는 그 모습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매일 같은 시간, 같은 회사의 커피우유를, 같은 자세로 마시고 가네요. 아마도 커피우유라는 것은 그녀에게 삶의 낙이면서, 일상의 에너지원인가 봅니다. 그러니 그것이 없다고 화를 내는 것도 이해가 갔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모습을 관찰하게 된지 6번이 되는 날 오후 2시였습니다. 나는 편의점 카운터에 앉아 ‘마그리트’의 화보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편의점이 문이 열리면서 커피우유 소녀가 문을 빼곰이 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기억과 생각들이 맞물려지면서 여러 가지 의문들이 떠올랐습니다.

 

 ‘지난주 화요일에도 이곳에 온 것 같은데?’

 ‘평일 오후 2시에 왜 이곳에 온 거지?’

 ‘아침에 등교하는 것을 봤는데 지금 수업 중이 아닌가?’

 ‘매주 이 시간만 수업을 땡땡이 치는 것인가?’

 

 궁금증이 생겨서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지만 난 애써 참으며 책에 의식을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한쪽 눈은 마그리트의 그림을 한쪽 눈은 곁눈질로 그녀의 뒷모습을 쫓고 있었습니다.

 

 “얼마에요?”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다르게 소녀는 과자 한 봉지와 생수 한 병을 내밀었습니다.

 

 “천육백원 입니다.”

 

 난 이렇게 대답하고 묵묵히 상품들의 바코더를 스캐너로 찍었고, 그녀는 노란색 지갑에서 이천원을 꺼내 건네주었습니다. 사백 원의 거스름돈과 궁금증을 그녀에게 건네면서 난 그녀와의 짧은 만남에 작별을 고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아직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는지 한 손에는 과자, 한 손에는 생수를 든 채 편의점 한곳에 마련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스낵 바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한숨을 돌리고 가방에서 약봉지와 검은색 노트를 꺼내더니 약봉지에서 알약을 꺼내 생수와 함께 먹으며, 과자의 봉지를 뜯고 노트를 펼치더니 과자를 아삭거리며 먹으며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난 멀뚱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더 이상 관심을 가지면 사생활 침해 일 것 같아서 다시 화보집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난 마그리트라는 화가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무언가 신비로운 듯 하면서 몽환적이고 그렇다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닌 기발하고 유쾌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현실이라는 세계에 묶여있지 않고 먼 미지의 세계로 차원이동을 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나와 작가 사이에 어떤 비밀인 냥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그냥 이상한 그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가 내게 보여준 세계를 상상하며 빙그레 웃게 됩니다. 난 공중에 떠있는 성의 그림을 보고 또다시 그런 상상에 빠졌습니다. 과연 성 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아니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아무튼 그 위에 있는 존재들은 어떤 기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러나 이런 나의 의식의 흐름이 별안간 끊기게 되었습니다.

 

 “아저씨 이 그림 뭐에요?”

 

 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커피우유 소녀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화보집의 표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그림이네……화가 이름이 뭐에요?”

 

 “으……음, 르네 마그리트라고 해요.”

 

 난 나와 작가 사이의 비밀이 노출된 것 같아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책을 덮으려고 하였습니다.

 

“잠깐만요 나 이 책 좀 봐도 되요?”

 

 소녀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습니다. 난 마지못해 책을 건네 였고 그녀는 감탄 어린 시선과 키득거리는 웃음과 함께 핸드폰의 카메라로 몇몇 그림들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하하하! 인어다! 인어!”

 

 그녀는 ‘공동의 창작’이라는 그림을 보다가 박장대소를 터트렸습니다. 그녀는 그 후에 화보집을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하고 얼굴에 가까이 들이대어 보기도, 멀리 떨어져서 보기도 하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더니 그녀는 화보집을 내게 돌려주었습니다.

 

 “고마워요 아저씨.”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했습니다. 손에는 커피우유를 든 채로 말입니다.

추천수1
반대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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