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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는 경북 울진 작은 마을 박금이라는 동네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배움이 없는 외조부모님은 어머니가 태어났을 때 출생신고를 마을 이장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마을 이장님이 그때쯤 바람이 난 관계로 어머니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셨죠.
어머니 밑으로 남동생이 한분이 계셨는데 외삼촌도 출생신고는 늦게 하셨지요 .
아들이란 이유로 외삼촌은 학교에 들어갔지만 어머니는 남의 집으로 가셔 일을 했지요 물론 그때까지도 출생신고는 없었고 외삼촌이 중학교 학교 관계로 호적을 고치는 과정에서 어머니 출생신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출생신고를 했지요 물론 어머니는 외삼촌 동생으로 만들어 놓았지요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어머니는 한글을 읽을 줄 모르십니다.
22살 성인이 되어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결혼을 해서 잉꼬부부로 소문이 날 정도로 다정하게 살던 부인이 자식 4명을 낳았지만 모두 죽고 네번째 자식을 낳다가 세상을 떴습니다.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 지금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결혼한 사실을 모르고 중매로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어머니 호적 나이를 고쳐주기로 하고 결혼을 했지만 아버지는 빚이 감나무 감열리듯이 빚이 많아 어머니 호적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무척 돈이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한글을 모르는 어머니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남의 집으로 떠 돌아 다니신 어머니는 살림도 못하시고 일 밖에 모르는 어머니 깔끔하지 못한 어머니는 늘 아버지의 구타를 견뎌야만 했지요
자식이 없는 집에 아들을 낳았지만 호적이 늦어 자식으로 올 릴 수도 없고 전처 호적에 올렸답니다. 그땐 사망신고가 안 되어 있었기에 그리고 딸도 또 아들도 그렇게 올렸답니다 막내 아들만 어머니 호적에 올라가 있답니다.
어머니는 달밤에 추수를 할 정도로 부지런했지만 늘 아버지 구타는 여전했지요 하지만 아들셋 딸하나그들 인생을 생각해 참고 또 참고 하셨답니다.
외할아버지는 자식 넷 딸린 여자와 재혼을 하셨지만 재산만 탕진하고 외삼촌이 사시는 서울에서 행방불명되셨고 외삼촌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일가 친척하나 없는 고아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 어머니한테 아버지는 전처 즉 전 장모님을 비록해 그들 형제자매를 친정으로 생각하고 사시라고 어머니는 무슨 마음이였는지 지금도 그들 형제자매하고 언니 동생 오빠하고 살아가고 있답니다.
어린 난 정말 싫었지요 물론 지금도 싫답니다.
91년에 아버지는 성남으로 이사를 하시고 어머니는 시골에서 셋째와 네째를 위해 시골에서 농사 일을 하면서 학교를 시켰지요 2년을 온갖 수모를 견디면서 사시다 93년도에 성남으로 이사를 해 공사판 막노동 지금은 청소 일을 하고 계십니다.
4년전 아버지가 현장에서 추락사로 돌아가시고 지금은 오빠를 의지하고 오빠를 남편처럼 의지하고 사시는 데 옆에서 보기에는 걱정이 앞 섭니다 장남한데 너무 부담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정도 오빠 역시 지금 36살이 되었는 결혼을 못한 상태 선은 무척 많이 보았지만 인물도 학벌도 좋지 않고 직업은 지게차를 하는데 어머니는 늘 장남이 잘 되어야 밑에 자식을 보살핀다고 장남 장남 하시는데 다른 자식들은 안 중에도 없고
어머니는 요즘 야학에 나가고 계십니다 글자가 머리에 들어 오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밤마다 공부하려 갑시다.
아침 첫 차를 타고 일을 해야 하시는데 저녁 7시부터 11까지 공부를 하고 계십니다.
한글을 한자 두자 깨우치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알고 계신것 같습니다.
자식들 보면 이자 좀 가르쳐 주라 그래도 딸이 가르쳐 주는 것이 머리에 잘 들어 온다고 토요일마다 와서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반찬을 못 하시는 어머니는 늘 자식들 한테 미안하신지 밥 사주는것이 낙인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을 어머니는 잘 관리를 못 하지만 그래도 자식들은 어머니 편입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20살에 32살의 남자를 만나 2명의 자식을 낳아 14살인 딸은 엄마한데 10살인 아들은 아빠하고 이혼해 떨어져 살고 있는데 자식을 보면서 나의 어머니가 무척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딸은 새아빠 새아빠 어머니 (할머니)하고 살고 아들은 새엄마 고모부 집에서 혼자서 견디고 있고 25분거리에 있지만 몇 번을 찾아갔지만 힘든 것은 아들 인 것 같아 지금은 찾지 않고 있습니다
34살 지금의 제 나이 혼자 5년을 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데 정말 행복이 이런것이구나 생각이 든답니다
한편으로는 아들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옵니다.
아들 딸을 서로 만나게 해주고 싶지만 전 남편이 싫다고해 남매는 서로 못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방학때 친가쪽에 보내 보름 동안 서로 지냈지만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딸은 동생을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데리고 오고 3년을 그렇게 했습니다 청소 일을 하는 저는 아침 첫 차를 타고 저녁 파트타임으로 식당 일을 했기에 딸이 힘들게 동생을 본 적이 있지요 친정 어머니가 다리 골절 될 때 여름 방학이라 아이들 세끼 모두 굶는 것을 볼 수 없어 두 아이 김포 친가에 보낸 적이 있는데 그때 아들 5살 딸은 9살 딸은 학생이라 데리고 오고 아들은 할머니한테 밥이나 먹어라고 그냥 두었는데 그 이후 못 만나고 작년에 딸아이가 동생을 찾기에 찾아보니 강동구청역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아빠가 재혼을 해 새엄마하고 둘이 살고 아들은 새엄마 고모부 집에서 혼자 견디고 있는 것을 보고 아들을 보내라고 했지만 아들이라는 이유로 전 남편이 보내 주지 않더군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은 작년에 만나 같이 살고 있는데 아들도 데리고 올 수 있으면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내가 아들을 만나것을 알고 그 여자가 아들을 못 살게 구는지 아들이 찾아 오지 말라고 합니다 새 엄마한데 혼난다고 나중에 커면 찾는다고 합니다.
지금 시어머니도 남편도 모두 잘 해 줍니다 물론 딸아이한테도 손녀가 없으니 친 할머니처럼 할머니라고 부르라고 하고 용돈도 주고 잘 먹여야 키 큰다고 먹을 것도 잘 사주시고 68살이신데 아직도 직장을 다녀 생활비에 보태라고 저한테도 15만원씩 매달 주시고 세금도 내 주시고 젊은 시절 고생 한것을 지금 다 보상 받는 그런 기분이 들 정도 입니다.
하지만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늘 아픕니다
옷이나 용돈을 친가쪽에 보내 주지만 명절이 되어야 받을 수 있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