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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그녀{#4사랑을 가르쳐준 사람}

이야기 상자 |2005.04.30 01:35
조회 1,262 |추천 0

 "아! 인생 정말 꼬인다."
 아무리 그리려고 노력해 보아도 디자인은 요나가 원하는 데로 진전이 되지 않았다. 사무실 안에는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팀장과 아니꼽게 바라보는 직원들 때문에 편히 쉴 수도 없어서 요나는 복도에 나와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 회사 무너지겠니?"
 지금 뿐만 아니라 어느 장소에서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너하고 상관없잖아. 네 회사도 아닌데."
 요나는 항상 단정하게 올린 머리를 하고 정장을 입고 있는 미진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요나 역시 미진의 사악한 면을 모르는 채 그녀의 말을 다 믿을 정도로 순수해 보였지만 요나는 미진의 실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너 때문에 우리 이사님이 얼굴을 못 들고 다니시니까 문제지."
 우리 이사님이라고?
 "정말 너 짜증난다. 너나 잘해.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이모는 네가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이곳 저곳 다니며 쓸데없는 데다가 신경 쓰고 다니는 거 아시니?"
 "뭐. 걱정해주었더니."
 요나는 정말 어의가 없어 혀를 찼다.
 "그딴 걱정 필요 없으니까 제발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요나는 뒤돌아 가 벼렸다.
 만약에 그곳에 유신이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 있었고, 그걸 안 미진이 그에게 눈물을 겨우 참으며 상처받은 연기를 하고 있었던 걸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였지만 그녀는 뒤에서 미진이 무슨 거짓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오늘도 유신을 승강이에서 만났다.
 "설마 또 멈추는 건 아니겠죠?"
 요나는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우스개 소리를 했지만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이 인간 오늘은 분위기가 더 무겁네.....
 유신은 오늘은 바로 집으로 들어간다면서 요나를 태워 주었다.
 "손미진씨를 알면서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면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지, 비서라는 존재는 하찮아 보인다는 건가?"
  요나는 기분도 별로 좋지 않았느데 그의 차를 타고 가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어서 들뜬 기분이 말도 되지 않는 억측에 축 꺼져버리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할말을 일었지만 요나도 이제는 당하고만 살수는 없었다.
 "난 비서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미 알고 있어요. 그에 비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연필가지고 끄적거리는 것만 아는 난 하찮은 존재라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싫은 거 좋다고 하지는 않아요. 아니요. 솔직히 말하면 그런 거 이제는 하지 않아요. 그 잘난 손미진씨가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난 손미진씨하고 한 회사 안에 있는 것도 싫은 사람이에요."
 잘못도 없이 변명 따위는 하기 싫었고, 과거의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사를 유신에게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려줘요."
 "뭐?"
 요나는 그의 차에서 당장 내리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할지 자신도 종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요구에 어의 없어하는 걸 알았지만 그녀는 유신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다.
 "들었잖아요. 설마 귀에 이상 있으신 건 아니시겠죠."
 "원하시는 데로 해드리지."
 그렇게 말한 유신은 요나를 한번도 말리려 하지 않고 길가에 차를 세워 요나가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이래서 사람 속은 모르겠다는 걸까? 요나는 막상 내리려하자 자신을 붙잡지 않는 유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자존심은 다리 한가운데 그녀의 발을 내리게 했으며 그의 차를 떠나보내도록 했다.
 "쫌팽이. 말미잘. 해삼. 멍게 같은 인간 같으니라고. 가다가 확 펑크나 나버려라."
 사고는 나지 말고.
 이 시간에 빈 택시가 다리를 다닐 리가 없었고, 히치하이킹을 하기에는 그녀의 베짱이 작아서 요나는 하는 수 없이 발 품을 열심히 팔며 긴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본 광고에서 남학생 세 명이 다리가 길다면서 밤까지 달리는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 했었는데, 밤에 혼자 이렇게 걷다 보니 그 광고가 정말 실감이 났다.
 "아직도 끝이 안보이잖아. 이 쫌생이 같으니라고 그런다고 그냥 가냐. 아이고 다리야. 이 놈의 입이 방정이지 왜 내린다고는 해가 지고는."
 빵빵
 요나는 승용차가 옆에 다가오는 기미가 있더니 경적을 울리자 유신이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가 다시 그녀를 데리러 왔다는 생각에 좀 전 까지 그를 욕하던 것이 미안해져서 요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속 깊은 내가 용서해줘야지.
 "저기... 정말 요나 맞네."
 그러고 보니 유신의 차 색깔이 완전한 검은 색인데 비해 그녀의 앞에 멈춘 차는 진한 권색을 띠고 있었다.
 "넌?"
 상연이었다. 3년 전 한국을 떠날 때는 다시 그의 얼굴을 다시 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만상 그의 얼굴을 보자 그리 많이 아프지 않아 그녀는 그를 보고도 미소를 띄울 수 있었다.
 단지 그의 얼굴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안타까움이었다. 좀더 노력해서 그녀의 결백을 밝혔어야 했다는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무슨 짓을 했어도 그녀에 대한 오해를 풀었어야 했었다.
 "오랜만이네."
 "어서 타. 한국에 언제 들어왔어?"
 상연은 언제나처럼 세련된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다.
 "며칠 됐어. 그동안 잘 지냈지."
 "그럼."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할 말도 생각나지 않는 어색함이 차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머리 스타일 때문에 못 알아보고 지나갈 뻔했어."
 요나는 손바닥으로 머리의 볼륨을 조정했다.
 "어울리지."
 "개성 있다."
 상연의 말에 예전의 그녀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그녀의 예전 모습은 그 나이 때의 다른 여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유행에 따라 옷을 입고 화장도 고쳐 보았지만 톡톡 뛰는 개성은 없었다. 요나는 상연에게 파혼 당한 이유를 생각하다가 믿음보다는 그녀의 일관적인 모습에 식상해 있던 상연이 미진의 당당한 자신감과 섹시함에 반하지 않았나 하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시간에 왜 다리 위에 있어?"
 "그럴 사정이 좀 있었어."
 그들은 세월이 나은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럼 지금 디자인 실에서 일하는 거구나. 넌 그냥 그림 그리고 싶어했잖아."
 요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생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잖아."
 상연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지는 않아 보였지만 지금은 3년 전에 볼 수 없던 남자다운 뭔가가 더 있어 보였다.
 "왜 결혼하지 않았어?"
 상연의 표정은 씁쓸해 보였다. 왠지 말하고 싶지 않는 것 같아 그녀는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말라고 했다.
 "아니야. 너에게는 이야기해야지."
 상연은 단 한번도 길을 묻지 않고 그녀를 집 앞에 내려다 주고 떠났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상연도 피해자였다.
 "우리 가족은 미진이가 천사라고 생각했어. 모든 걸 갖추었지만 참 겸손한 사람이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런 미진이가 우리 집안 사업이 흔들리니까 본성을 들어내더라. 처음에는 우리를 생각해주는 것처럼 결혼식을 미루자고 하더니 나중에는 집에 발길을 끈기 시작했어. 처음엔 우린 여기 저기서 터지는 사건을 막느라 정신이 없어서 처음에는 그런 미진의 행동을 눈치 못 챘었어."
 상연은 그 때의 상처가 체 아물지 않았는지 차를 도로 한편에 세웠다.
 "그래도 사방으로 뛰어다닌 덕분에 완전한 부도는 막을 수 있었지만 가세가 예전 같지가 않았어, 어느 정도 집안 일이 해결이 되자 난 미진이 하고 결혼을 하려고 마음먹었어. 그런데 그녀의 감정이 변한 거야. 아니 그렇게 말했지만 처음부터 나에 대한 감정은 없었던 것 같아.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탐나서 날 좋아한 척 한 것뿐이지. 난 그것도 모르고 그녀의 손안에서 바보처럼 휘둘렸던 거고."
 그의 어깨가 이처럼 작아 보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에 그녀는 상연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미안해. 널 믿지 않아서, 그게 제일 마음에 남더라."
 "이제 다 지나간 일인걸. 그런데 그거 아니 미진이가 우리 이모 비서인 거 있지. 그 애랑은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어서 자꾸 만나게 되는 걸까?"
 
 유신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 보다 먼저 돌아왔다는 것보다는 그가 늦는 이유가 뭔지가 궁금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여자와 데이트가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미진이를 만나러...
 
 유신은 그렇게 그녀를 내려놓았지만 집으로 향할 수가 없었다. 한참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그녀를 데리러 가기 위해 먼길을 돌아서 그녀를 내려놓은 다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폭탄 머리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혹시나 놓쳤지 않나 싶어 다시 한번 주위 깊게 다리 위를 둘러보았지만 이 문제덩어리 여자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었다.
 유신은 그녀가 없다는 걸 모든 신경이 감지하자 그녀에게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싶어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차에서까지 내려 그녀에게 연락을 해보려고 했지만 그녀의 핸드폰 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신이 해주고서는 건성으로 전화번호를 듣는 바람에 아무리 짜 맞추려고 해도 하나의 번호가 되지 않았다.
 지난번에 그녀가 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가르쳐 주지 않은 게 이처럼 후회될 줄 알았다면 열 번이고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우선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했다. 이미 집으로 돌아와 있을 지도 모르는데 괜히 전화해서 집안 식구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요나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운전자에게 뭐라고 말하면서 환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그 모습에 화가 났지만 그는 그것이 그녀가 그에게 걱정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유신은 차가 떠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요나를 내려준 차의 주인공은 요나가 가라는 손짓을 했지만 그녀가 집에 들어갈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더니 그녀가 집에 들어가자 그 자리를 떠났다.
 유신은 요나 나이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차의 주인이란 걸 눈으로 확인하자 자신도 모르게 운전대를 꼭 쥐었다.
 
 똑똑
 "네."
 향미 이모가 거의 새벽에까지 일을 하는 그녀를 위해 간식을 가지고 온 거라고 생각하고 요나는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주어 대답을 했다.
 "어떻게 집에 들어온 거야?"
 물어보지 말자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궁금해서 그녀의 방으로 찾아왔다.
 그녀가 그 남자에 대해서 말해주길 기다렸지만 절대 알고 있다는 뉘앙스는 풍기지 않았다.
 "남이사 어떻게 들어오던지 말던지 무슨 상관이에요. 인정머리 없이 다리 한 가운데 다가 버리고 간 사람이."
 유신의 표정은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사람의 것이었지만 요나는 새치름하게 눈을 흘길 뿐이었다.
 "내려 주라고 한 사람이 누군데 그래."
 "그렇다고 남자가 쪼잔하게 여자를 길에 버리고 가요."
 이 여자가 지금 나한테 쪼잔하다고 한 거 맞아.
 유신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할 말 없으면 빨리 나가요. 전 아시다 시피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손이라도 열심히 움직여야 갰으니까요."
 그녀의 말에 유신이 처음으로 그녀가 앉아 있던 책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많은 종이와 디자인에 필요한 갖가지 도구가 쌓여 있었다.
 그런 것을 보자 그녀가 정말 많은 노력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기분이 상해 있는 그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는 상처받은 것이 역력하지만 씩씩해 보이려고 애쓰는 그녀를 보고 미안했다.
 "꼭 공부 못하는 사람이 가방도 무겁게 가지고 다닌다지. 도구만 그렇게 많다고 해서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요나의 가슴은 눈에 띄게 들썩거렸고,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정말 인정머리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인간 같으니. 당장 나가요."
 유신이 나가고 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은 요나는 침대 위에 놓은 곰인형을 못살게 굴었지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독불 장군님. 두고 보자고요. 내가 그 높은 코를 언젠가는 납작하게 해드릴 테니. 그때 나한테 사정해도 국물도 없을 줄 알라고요.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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