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유진이라는 여자아이
나는 짤막하게 소녀에게 나의 이런 과거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난 기억상실증 환자이고, 아직도 어릴 적 기억은 돌아오지 않는다고요. 그러자 그녀는 눈을 치켜 뜨면서 “말도 안돼요!”
하고 말하더군요.
“그래도, 그게 사실인걸……”
난 그녀의 반응에 투덜거리며 얼굴을 찌 뿌렸습니다.
“미안해요. 저……그런 이야기는 드라마 속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어요. 나를 속이려고 그런건줄 알았어요.”
소녀는 아직도 의심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나에게 사과하였습니다. 난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정리하려고 하였습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나의 사진이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고, 자신에 대한 여러 가지 억측들이 난무한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하고 피곤해졌습니다. 거기다가 자신에 대해 그녀에게 설명을 하면서 이방인의 손이 자신의 목 끝까지 닿는듯한 거부감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난 여자아이를 쫓아 보낼 심산으로 그녀에게 약점을 건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 여기서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어도 괜찮아요? 학교에서 수업 받고 있어야 할 시간이 아닌가?”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니 그녀는 잠시 움찔하는 듯싶더니 나의 속셈을 간파했는지 이내 씩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상관없어요. 외출증 끊고 나왔는데요 뭐. 아니 이대로 집에 돌아가도 선생님은 암말도 안할꺼에요.”
“그래요? 사실은 뭐 땡땡이 치거나 한 것이 아니고요?”
난 불청객을 쫓아버리기 위해서 집요하게 그녀를 공격했습니다.
“사실 매주 화요일마다 병원에 다녀와야 해요.”
“병원?”
그때서야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그녀는 병원에 가기 위해 화요일마다 자유시간을 얻었던 것입니다. 난 잠시 그녀의 안색을 살폈습니다. 똘망똘망한 눈, 발그스레하게 혈색 좋은 뺨, 붉은 입술까지 어디를 보아도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왜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봐요? 병원에 다닌다니까 뭐 심각한 병 같아요?”
소녀는 실실 웃으면서 말하였고, 잠시나마 이 여우 같은 여자아이를 걱정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뭐, 치과나 피부과 같은데 다니는 거 아니겠어요.”
난 관심 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아저씨 아까 전에 30살 정도 되었다고 했지요? 그런데 왜 나한테 존댓말 써요?”
“그야 손님이니까요.”
“그래도 이제 서로 안면도 텄는데 편하게 말해요. 나도 아저씨 같은 아저씨한테 존댓말을 들으면 왠지 늦다리가 된 것 같아서 기분 나쁘단 말이에요.”
여자아이는 나를 골려 먹는 것이 재미있는지 계속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자……자. 어서 학생은 빨리 학교에 돌아가서 공부나 해요.”
난 유치원생을 타이르는 선생님처럼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과자 봉지를 뜯더니 아작아작 씹어먹기 시작했습니다.
“이거라도 다 먹고 가야지요. 그리고 난 머리가 좋아서 수업 받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차피 과외로 다 배운 내용이기도 하고.”
그녀는 이번에는 목이 말랐던지 커피우유 팩을 뜯더니 꼴깍거리며 마셨습니다.
“커피우유가 그렇게 좋아요?”
난 우유를 먹는 그녀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서 이렇게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습니다.
“예? 어 이거……아…… 맛있잖아요.”
그녀는 입가에 과자부스러기와 우유방울을 묻힌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작 아작....... 아저씨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해요?”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일해요.”
“꼴깍꼴깍…… 힘들겠다. 그런데 별로 돈은 많이 못 받지요?”
“뭐, 나 혼자 먹고 살만은 해요.”
“아작아작……에이 왜 자꾸 존댓말 써요. 그냥 반말로 하라니까요.”
“내 맘이에요. 그것도 강요하는 거에요. 이게 내 스타일이고 난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고집불통이구나. 성격이 꽉 막힌 사람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줘야겠다. 꼴깍꼴깍.”
“아이구. 이제 귀찮으니까 그만 물어요.”
“싫어요. 이게 내 스타일이고 난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녀는 키득거리며 나의 말투를 따라 하였습니다. 그녀를 떼어버리려면 단체 손님이라도 들어와서 가게가 번잡스러워야 하는데 벌써 삼십 분 동안 사람들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난 그녀를 피해서 고개를 돌리고 책을 읽었고, 그녀는 카운터에 찰싹 달라붙은 채 음식들을 먹으면서 나의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그 책 정말로 읽을 수 있는 거에요? 그림만 보는 것 아니에요?”
“……”
나는 대답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헉! 진짜구나! 그림만 보는 거에요?”
“에휴……”
난 더 이상 집중을 할 수 없어서 책을 덮어버렸습니다.
“손님 더 이상 영업 방해하시면 안됩니다.”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자못 심각하게 말하였다.
“알았어요. 좀 심심해서 같이 놀아달라고 그런 건데 되게 딱딱하게 구네요.”
마침 그녀는 과자를 다 먹었는지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움직일 기색을 하자 나는 한숨을 돌리며 다시 자리에 걸터 앉으려고 하였습니다.
“아저씨! 악수!”
소녀는 나에게 별안간 손을 내밀었고 난 과자의 기름기로 미끈거리는 손을 마지못해 잡아주었습니다.
“아저씨 내 이름은 이유진이에요. 앞으로 화요일마다 놀러 올 테니까 잘 부탁해요.”
그때서야 그 소녀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유진이라는 여자아이는 예상과는 달리 조금 뻔뻔스러운 커피우유 소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