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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의 달콜쌉싸름한 초콜렛(14) 비 온 뒤에 땅은 더 굳는다.

瓚禧 |2005.05.10 11:20
조회 2,339 |추천 0
 


(14) 비 온 뒤에 땅은 더 굳는다.




“언니 누구 기다려요?”




진아의 말에 신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딱히 누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필요한 날이기는 한 것 같았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도 느껴지는 지독한 외로움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신애는 핸드폰을 들었다. 벌써 1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독했던 그와의 10년간 사랑이 고작 하루 만에 없어지고, 항상 옆에 있을 것 같은 한 강이 하루아침에 그녀의 삶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잊혀진다는 사실이 우스워 졌다. 신애는 기계적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한 강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나 웃어줄 것만 같아 신애는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그는 없었다. 기분 좋은 그의 웃음도, 달콤한 캐러멜 향기의 목소리도 없었다.




“신애야!”



신애의 집 앞 현관 앞에서 윤정이 맥주가 든 비닐봉지를 흔들며 그녀를 맞이했다. 둘은 나란히 편한 추리닝 차림으로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신애는 진지한 표정으로 윤정에게 그동안의 일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연락이 없다고?”




오징어다리를 씹으며 윤정이 정리를 하자, 신애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박신애. 너 네가 말실수 한건 알고 있어?”

“응?”

“너 말 실수 했잖아. 모르는 거 아니었잖아. 한 강이 왜 그렇게 화내는 지 말이야.”



윤정의 말에 신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정의 말처럼 신애는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근데 거기서 네가 화를 내면 안 되는 상황이었잖아. 그를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왜 그랬어?”

“그가 날 못 믿는다는 사실이 화가 났어. 나도 화난 상태에서 그의 입장을 이해하기는 힘들었다고…….”



신애가 같이 오징어다리를 물며 말했다.



“그래도 네가 잘못한 게 있잖아. 그러니깐 네가 먼저 연락해.”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 내가 먼저 해볼까? 하다가도 전화기를 덥게 돼.”

“쓸데없는 자존심이라고.”




윤정이 신애를 나무라듯 말했다. 신애도 알고 있었다. 쓸데없는 자존심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한편 그 시각 한 강은 채민석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형, 그만 마셔!”

“놔둬!”



술병을 빼앗아 드는 채민석의 손에서 기어이 술병을 다시 빼앗아 들었다. 작은 양주잔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예 병째로 입에 들이 붙고 있는 한 강이었다. 그런 한 강에게 강압적으로 채민석이 술병을 빼앗아 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모르겠다. 나도. 내가 미치게 싫다.”

“뭐가? 그 여자랑 잘 안돼?”



채민석의 말에 한 강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한 강의 웃음에 채민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형, 이상한거 알아? 형답지 않게 왜 그래?”
“나 다운게 뭔데?”
“여자한테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 아니었어? 그 여자랑 안 맞으면 헤어져! 그럼 되는 거잖아. 뭐 하러 이렇게 힘들게 자신을 괴롭혀!”

“네일 아니라고 쉽사리 떠들지 마! 그렇게 쉬운 건줄 알았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아!”




한 강의 말에 채민석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아니면, 가서 말해! 잘못했다고, 실수했다고......”

“그래. 몇 번이고 그 근처에 갔지만, 입이 안 떨어져. 볼 면목이 없다.”

“..........”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

“뭐?”
“고통사고라도 났으면 좋겠어. 그러면 와줄꺼 아니야. 어떻게 서든 날 봐줄 거 아니야…….”



한 강의 말에 채민석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미친 사람처럼 중얼대는 한 강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한 강을 알고 처음 보는 그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한동안 웃음을 얼굴에 매달고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랑 하듯 돌아다니던 그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한 강이 쓰러지듯 바에 기대어 눕자 채민석이 다시 술을 들이키며 말했다.




“형은, 아무래도 경제 기사쪽 보다는 연애학 쪽으로 기사를 쓰는 게 더 어울리겠어.”



채민석이 웃으며, 한 강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 강의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중얼거렸다.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 법이야. 형.”



한 강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다가 신애의 이름으로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채민석의 전화에 신애가 헐레벌떡 맨발로 집밖으로 뛰어나갔다. 윤정이 그런 그녀의 뒤로 신발을 챙겨들고 쫒아가고 있었다. 대로변에서 신애가 급하게 택시를 잡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윤정의 말에 그제야 정신이 든다는 듯 신애가 재빠르게 말을 했다.




“한 강이…….강이 씨가 다쳤대. 교통사고인가 봐!”

“뭐? 일단 신발 먼저 신어!”



윤정이 신애의 발에 억지로 신발을 껴 주면서 신애를 껴안아주었다. 마침 온 택시를 타고 신애는 채민석이 말한 곳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초면에 죄송합니다. 저는 강이형 동생 채민석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형이 지금 많이 아프거든요.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빨리 와 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신애는 정신이 멍했다. 귓가에 채민석이 무어라 더 말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귓속에 날벌레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윙윙대었다. 택시 안에서도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나쁜 생각들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한 강이 사고가 난 것이 자기 책임인 것만 같았다. 도착하자마자 신애는 채민석이 말해준 곳으로 뛰어갔다. 급하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은 남자가 신애를 향해 다가왔다.




“혹시, 박신애씨?”



그의 물음에 신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녀의 두 눈은 연신 한 강을 찾기 바빴다. 그때 신애의 눈에 바에 엎어져 있는 한 강이 들어왔다. 그녀의 두 눈은 의구심으로 가득 찬 채 채민석을 바라보았다. 대답을 요하는 눈빛에 채민석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제야 신애에게 사과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사실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신애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신애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눈으로 그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 채민석이 잠시 주춤거리다 다시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었어요. 형이 그러더군요.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와주지 않겠냐고. 형이 너무 절박해 보였고, 저대로 뒀다가는 정말 무슨 일이라도 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례를 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채민석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다. 무어라 반박할 수 없게 말하는 채민석의 말투에 신애는 입을 꼭 다문 채 한 강을 쳐다보고 있었다. 잔뜩 술에 취한 그의 모습이 클럽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신애가 조심히 한 강을 향해 다가갔다. 채민석이 옆에서 한 강을 흔들어 깨웠다.




“형, 형 일어나봐. 신애씨 왔어!”



채민석이 흔드는 대로 몸을 맡기던 한 강이 ‘신애’라는 두 글자에 거짓말 같이 몸을 일으켜 신애를 바라보았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한 강이 손을 뻗어 신애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신애가 그제야 두 눈 한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을 떨어뜨리며 한 강의 등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왜, 왜 이렇게 사람이 바보 같아요!”

“미안, 미안해......”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채민석이 조용히 자리를 피해 나갔다.



“정말 큰일이라도 난줄 알고 얼마나, 얼마나…….흑”



말을 다 잊지 못하고 신애가 눈물을 떨어뜨렸다. 신애의 눈물을 한 강이 조심히 닦아 주며 다시 그녀를 꼭 껴안았다.




“미안해. 진짜, 정말 미안해......”




술에 취해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한 강을 데리고 신애가 한 강의 집으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그의 집은 남자의 집같지 않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짙은 고동색으로 꾸며진 가구들은 고대 서재를 연상케 할 정도로 품위 있고 깔끔했다. 신애는 비틀거리는 한 강을 침대에 쓰러트리듯 눕혀놓았다. 그때 신애의 눈에 자신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 위 천장에 자신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은행에서 찍은 것인 듯한 그 사진 속 신애는 웃고 있었다. 신애의 기억상 자신은 그런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다. 한참을 신애가 천장을 향해 올려다보자, 한 강이 비틀거리는 몸을 애써 가누며 말했다.



“당신 보고 싶을 때 마다 볼 수가 없어서, 내가 몰래 찍었어. 기분 나쁜 건 아니지?”



행여 신애가 기분 나빠 할까봐 그녀의 눈치를 잔뜩 보는 한 강을 신애가 덥석 앉았다. 그러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당신은……. 정말 당신이라는 사람은…….사랑하지 않고는 못베기게 만드는군요!”



흐느끼는 신애의 등을 한 강이 살며시 매만져 주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둘은 울먹이는 얼굴로 한참을 쳐다보다가 웃어버렸다.



“쿡, 왜 웃는 거야?”

“그러는 강이씨는 왜 웃는 거예요?”

“우리 앞으로는 싸우지 말자.”



한 강이 다시 신애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앉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에 신애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강이 신애를 소파에 앉히고선 주방으로 향했다. 그윽한 헤이즐넛 향기가 집안을 감돌았다. 방금 내린 커피를 머그잔 가득 따라 한 강이 신애에게 건네주었다.



“오해한건 미안해. 하지만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던 건 알지?”

“오해할 만한 짓 하지 않았어요.”

“당신이랑 우현이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충분히 오해할 만 했어. 당신이 그와 같이 있을게 싫어. 질투가 나 미칠 것 같아.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의 질투가 사그라지나요?”



신애가 커피를 홀짝이며 한 강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물음에 한 강이 주저 없이 대답했다.




“나와 같이 그 사람을 만나줘. 그리고 깔끔하게 끝내줘.”




한 강의 말에 신애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근데 지갑 속에 있는 여자는 누구예요?”

“지갑? 아, 내 지갑 봤어?”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 한 강의 태도에 신애의 입이 삐죽 나왔다. 한 강이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더니 신애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입술에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 느닷없이 밀려오는 그의 입술에 신애는 그의 팔을 잡고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떨림을 느낀 한 강이 그녀에게서 몸을 떼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기 싫어?”

“아, 아니요.......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라 서요……. 떨려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오랜만이라 서요…….”




신애의 고백 섞인 대답에 한 강의 표정이 환희로 변해있었다. 한 강은 다시 분위기를 잡고 그녀의 입술로 다가갔다. 파르르 떠는 신애의 손을 꽉 잡아주며 그녀의 입술을 살며시 탐했다. 달짝지근한 그녀의 입술을 살며시 놀리듯 핥아주기도 하고, 그녀의 입안을 삼키듯 흡입하기도 하며 그녀를 탐하고 있었다. 한참 그녀의 향기에 취하던 그가 그녀를 밀치듯 떠밀었다. 갑작스런 그의 태도에 신애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한 강이 심호흡을 하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요?......”

“그냥, 좀더 당신을 안았다가는 덮칠 것 같아.”



한 강이 새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 한 강의 대답에 신애가 피식 웃었다. 조금 전 자신이 떨었던 것과 같이 한 강이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런 한 강의 몸을 이번엔 신애가 살며시 안아주며 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고마워요. 날 소중히 여겨주어서.......”




신애의 품에 어린아이처럼 안긴 한 강이 편안한 얼굴로 그녀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런 그를 신애는 더욱더 꼭 껴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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