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스킨십 없는 연애는 연애가 아니다.
날씨는 어느덧 초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에 은행의 유니폼은 동복으로 바뀌었다. 은행 앞 통유리 너머로 사람들이 긴팔을 입은 채 종종거리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간간히 반팔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자 진아가 배달된 치즈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춥지도 않나? 아직까지 반팔이라니. 청춘이 대단하네!”
잔뜩 비꼬는 듯한 진아의 말투에 신애가 진아를 쳐다보았다. 평소 진아의 말투가 아니었다. 진아가 들고 있던 치즈케이크를 단숨에 입에 밀어놓고, 화를 풀 듯 꼭꼭 씹어 먹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신애의 물음에 진아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남자친구 때문에 못살아요. 또 일주일째 잠수예요. 미친놈.”
유대리가 있는지 없는지 두리번거리다 유대리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진아가 소곤대며 욕지거리를 했다.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볼은 복어 마냥 부풀어 있었다. 진아의 말에 신애가 진아의 어깨를 다독이며 ‘네가 참아.’ 라고 말하고 있었다. 또 며칠 그러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나갈 진아를 아는 신애로써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때 윤정이 은행 문을 밀치고 신애에게 다가왔다.
“어? 어쩐 일이야?”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윤정이 진아의 말에 인사를 하며 연신 얼굴에 손부채를 부치며 대답했다. 윤정의 옷차림은 완연한 여름이었다. 짧은 반팔 폴로티 차림에 청바지를 입은 윤정을 보더니 신애와 진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방금 전 한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윤정이 의아한 듯 쳐다보자, 신애가 별일 아니라는 듯 손 사레를 쳤다. 그런 신애의 데스크 앞에 윤정이 예쁘게 포장된 종이상자 하나를 내려놓았다.
“받아. 선물이야!”
“웬 선물?”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풀어볼려고 하는 신애의 손을 윤정이 재빠르게 잡으며 말했다.
“집에 가서 풀어봐! 내 것 사면서 산거니깐.”
“결혼 하신다면서요? 결혼 준비는 잘 되가세요?”
진아가 음료수 한잔을 윤정에게 권하며 묻자, 윤정이 음료수를 단숨에 들이키며 말했다.
“뭐 준비랄 게 있나요? 그냥 하는 거지요. 신애야 나간다.”
“벌써가?”
윤정이 진아의 물음에 답하며 신애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신애의 말에 윤정이 손을 흔들며 은행 문을 나섰다. 그날 저녁 윤정이 준 선물상자가 궁금해 퇴근하자마자 뛰듯 집으로 향한 신애였다. 생일이 아니고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잘 포장된 선물을 받아본적이 없었다. 선물이란 사람을 떨리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는 물건이었다. 신애는 잘 포장된 종이상자를 떨리는 손길로 풀렀다. 안에는 연한 핑크빛 슬립이 어서 입어달라는 자태로 신애의 눈을 유혹하고 있었다. 실크로 된 듯 손에 올려놓으니 감촉이 금방이라도 미끄러 질듯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처녀가 진주를 손에 얻은 것처럼 신애의 마음속에 말로 형언 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금방이라도 그 옷을 입고 하늘을 날아야 할 것 같은 나무꾼이 숨겨놓은 선녀의 그것과 같았다. 신애는 주저할 새도 없이 입고 있던 은행 유니폼을 훌훌 벗고 하늘거리는 슬립을 입었다. 예쁜 디자인의 슬립 사이로 신애의 낡은 속옷이 흉물처럼 거울에 비춰지고 있었다. 현관 벨소리가 울렸다. 갑작스레 울리는 벨소리에 신애는 다시 벗었던 동복을 껴입고 있었다. 그때, 현관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한 강이 들어왔다. 선물을 풀어볼 마음에 미처 문을 잠그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문이 열려.......어?”
신애와 한 강의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다. 한 강의 시선이 신애의 얼굴에서 입고 있는 슬립으로 번갈아 가며 오가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신애는 치마를 껴입으려 들었던 다리를 내릴 생각조차 못한 채 한 강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 강이 그대로 뒤를 돌아 현관문을 바라보고 섰다.
“미, 미안. 문이 열려 있길래…….”
한 강이 뒤돌아서자마자, 신애는 재 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모델들은 평균 옷을 갈아입는데 드는 시간이 1분이라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어본 기억이 났다. 아마 지금 시간을 재었다면 그 모델들 보다 빨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신애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 와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신애가 자신도 모르게 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신애의 웃음소리에 한 강이 그제야 신애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의 문단속이 이렇게 허술해서야 되겠어?”
잔뜩 핀잔을 주는 말투였다. 한 강이 자신의 집처럼 들어와 주방의 간이 탁자위에 비닐 봉투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 신애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찾아요?”
“지금 드라마 할 시간이거든!”
한 강이 찾았다는 표정으로 침대 언저리에 놓여있던 리모콘을 찾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신애로써는 처음 보는 드라마였다. 신애가 그 드라마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한 강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번에 내가 아는 동생이 쓴 작품이래. 그래서 보려고!”
한 강의 옆에 신애가 조용히 자리 잡고 앉았다. 둘은 말없이 특집극인듯한 그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문득 신애는 한 강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같이 조촐한 저녁식사를 한 뒤 나란히 거실에 앉아 드라마를 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신애의 소망이었다. 오래전부터 남편이 오기전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이며, 들어온 남편의 양복을 받아 걸고, 그의 발을 씻겨주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오랜 그녀의 소망이었다. 근데 지금 옆에 앉은 남자는 그걸 실행하기도 전에 그녀의 마음을 채워 주고 있었다. 신애는 살포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서로 나란히 앉아 한 가지 공통된 사항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신애는 소소한 행복감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때 한 강이 텔레비전 소리를 높이며 신애에게 속삭였다.
“이제 하이라이트야!”
그의 말에 신애의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연인인 듯한 두 남녀가 서로 비 오는 거리에 서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볼을 살며시 매만지고 있었고,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눈물이 여자의 얼굴에 흘러 내렸다. 그런 여자의 얼굴을 남자의 커다란 손이 감싸 쥐었다. 남자가 여자의 입술에 살짝 자신의 입술을 데였다 떼었다. 잠시 망설이는 듯한 남자의 행동에 여자가 남자의 입술을 향해 기습적으로 자신의 입술을 들이밀었다. 여전히 퍼 붓고 있는 빗방울 속에 두 남녀는 아름다운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키스신이 너무 아름다워 한 강과 신애 둘은 괜한 쑥스러움이 일었다. 금방이라도 고개를 돌리면 그의 얼굴이 다가올 것만 같은 생각에 신애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한 강 역시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마실래?”
“내가 할게요!”
하며 일어나던 신애가 비틀 거렸다. 발을 헛디뎠는지 뒤로 넘어가며 신애가 무의식중에 한 강의 팔을 잡으며 같이 뒤로 넘어갔다.
“어, 어어!”
쿵- 소리와 함께 신애의 위편에 한 강의 몸이 겹쳐지듯 올려졌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둘의 얼굴이 가깝게 밀착되어졌다. 한 강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신애의 볼 사이를 지나갔다. 그때 한 강이 달콤한 목소리로 조용히 그녀의 귓가에 소곤댔다.
“사랑하는 사람아 편히 쉬거라. 내 너를 지키러 여기에 왔다. 네 곁이라면 네 곁이라면 혼자 있어도 나는 기쁘다.”
시를 읊는 그의 목소리는 고요 하다 못해 잔잔한 물가의 파형처럼 그녀의 귓가를 울리고 있었다. 한 강이 조금 거리를 두어 그녀의 눈동자에 손가락을 올리며 시를 읊었다.
“네 눈동자는 아침의 샛별”
그의 손이 눈가에서 신애의 입술로 향해 그녀의 입술을 천천히 매만지고 있었다.
“네 입술은 한 송이 빨강꽃”
한 강의 얼굴이 신애의 얼굴과 맞닿아지고 한 강의 입술이 신애의 입술에 맞닿은 채로 한 강이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사람아 편히 쉬거라. 내가 싫어하는 시계가 시간을 헤아리고 있는 동안에…….”
이라는 말과 함께 한 강의 달콤한 목소리와 함께 따스한 입술이 신애의 입술을 덮었다. 그가 속삭여준 달콤한 시처럼 캐러멜 향이 금방이라도 묻어날 것 같은 그의 목소리처럼 그의 입술은 달콤하고 향기로웠다. 신애는 조심히 자신을 다루는 그의 입술을 온몸 가득 느끼고 있었다. 때로는 놀리듯 다가왔다 도망가는 그의 입술을 적극적으로 붙잡기도 하고, 입안을 가득 맴도는 달콤한 캐러멜 향에 흠뻑 취해 보기도 하였다. 한 강은 그녀를 세상 가장 고귀한 존재로 느끼게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 소중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한 없이 은혜롭고, 행복한 일이었다. 한 강의 달콤한 키스 너머 자신의 욕구만 채우려 했던 우현의 키스가 떠올랐다. 키스가 이렇게 달콤하고 감미로웠던가? 신애는 소설책 속에서 나온 달콤한 키스 따위는 믿지 않았다. 우현과의 키스가 아프게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소설 속 달콤한 키스 따위를 불신하면 할수록 그녀의 마음속 염원은 커져만 갔었다. 하지만 한 강을 만나면서 신애는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없을 것 같았던, 존재 하지 않을 것 같았던 키스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펼쳐지고 있었다. 한 강이 신애의 떨리는 손가락을 한 강이 살며시 맞잡아 주었다. 떨리는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애는 두근거리는 한 강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행복감을 느꼈다.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요?]
그때 한 강이 신애의 위에서 내려와 그녀의 옆에 나란히 대자로 누웠다. 금방 달리기를 하고 온 사람처럼 신애의 심장이 주체 할 수 없을 만큼 두근대고 있었다. 신애가 한 강의 쭉 뻗은 손을 깍지 껴잡았다. 손만 마주 잡았을 뿐인데 한 강은 발끝부터 찌릿하고 전해오는 전류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한 강은 이미 오래전 서버린 자신의 것을 들킬 새로 한 손으로 그 언저리 부분을 살며시 가렸다. 행여 신애에게 ‘당신도 별 수 없는 남자이군요.’라는 핀잔을 받을까 두려웠다. 그때 신애가 한 강이 팔을 자신의 머리 뒤에 밀어 넣고 몸을 착 밀착해 왔다. 점점 더 커버린 한 강의 남성은 손으로 가리고 있어도 표가 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신애를 밀쳐 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한 강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여자 같았으면 이미 침대로 직행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신애에게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하기 전 까지 그녀의 순결을 지켜 주리라 다짐했던 그였었다. 사실 지금 당장 그녀의 순결을 빼앗아 버리고 싶어도 그럴 용기조차 없는 마치 연애초보처럼 머뭇거리는 자신이 낯설었다.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오가고 있는 한 강과 달리 신애는 편안해 보였다. 두 눈을 살포시 감은 그녀의 동그란 이마에 한 강이 고개 숙여 살포시 입맞춤을 했다. 쪽- 소리가 빈 방안에 민망하게 울려퍼졌다. 신애가 눈을 살며시 들어올리며 한 강에게 물었다.
“날 사랑하나요?”
“..........느끼지 않아?”
신애의 물음에 한 강이 신애의 손바닥을 자신의 심장 언저리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한 강의 대답에 신애가 살며시 한 강의 입술을 향해 다가왔다. 향긋한 그녀의 향기가 그의 후각을 자극하고, 달콤한 그녀의 입술이 그의 촉각을 깨웠다. 사과향이 금방이라도 묻어나올 것 같은 그녀의 입술을 한 강의 손가락이 막아섰다.
“그만! 다가오지 마. 더 이상 다가오면 나도 책임질 수 없다고.”
“어떤 책임을 말하는 건가요? 날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인가요? 건드려도 책임질 수 없다는 뜻인가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당신이 이미 내 책임 하에 있다고!”
한 강이 피식 웃으며 신애의 짧은 단발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한 강의 말에 신애의 표정이 요조숙녀처럼 변하면서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그리고 이내 한 강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딪치듯 내 밀었다. 촉촉이 젖어있던 그녀의 입술이 한 강의 입술 세포 하나하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키스 하나만으로 이렇게 흥분된다는 사실에 한 강은 자신이 새삼스러웠다. 한 때는 한 강도 여자를 믿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여자들은 다 똑같다고 지레 마음을 주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여자는, 그런 자신이 언제 있었느냐 싶게 만들고 있었다. 정말 마력 같은 여자였다. 한 없이 순진한 표정으로 손 하나 건들 일수 없게 만들더니, 어느새 요조숙녀의 모습으로 먼저 키스를 건네는 모습이라니. 달콤한 그녀의 입술을 받아들이며 한 강이 말했다.
“당신, 도대체 몇 개의 얼굴이 있는 거야?”
“글쎄요. 나에게 이런 당돌함이 있을 줄은 오늘 안 것이라서 잘 모르겠어요!”
한 강의 물음에 신애가 잔뜩 입술을 맞 부딧힌채로 옹알거렸다. 그녀의 대답에 한 강이 ‘하’ 하고 짧은 탄식을 내 뱉었다. 한 강의 머릿속에는 순간 어느 책에서 읽었던 문구가 맴돌았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상상만으로도 갈수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도 설마, 그럴까 했던 마음은 사실이었다. 한 강은 이미 나온 자신의 수백만 마리의 정자들을 어떻게 할지 난감해져 왔다. 그녀의 입술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곧 터져 버릴 듯 한 감정을 외면했던 것이 탈이었다. 한 강은 부스스 일어나, 12시가 되기 전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그렇게 ‘가야 한다. 라는 말 한마디 던지고 신애의 집을 나와 버렸다.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 내린 속옷 사이로 투명한 액체가 사타구니를 타고 흘러내렸다. 허망했다. 마치 손장난을 하고 난 뒤의 씁쓸함이 그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녀의 손짓하나 만으로도 이렇게 쉽사리 싸버리다니. 남자로서의 체면이 서지 않는 기분이었다. 처음 몽정을 겪는 사춘기 사내아이처럼 한 강은 그렇게 바지를 내린 채 한 참을 서 있었다. 담배를 끊어버린 지 오래였지만, 오늘은 담배 한대를 피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그 시각 채민석은 마스카라가 번져 흉하게 얼굴에 변해버린 소연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채민석은 잔뜩 화가 난 모습이었다. 그녀의 모습에 답답한 듯 넥타이를 손으로 느슨하게 풀러버렸다. 소연의 모습을 보다 민석이 웨이터에게 진한 보드카 한잔을 부탁해 단숨에 들이켰다. 알싸한 알코올이 뱃속을 맴돌다 온 몸으로 퍼지는 기분이었다. 빈속이었다. 요즘 일에 치여 저녁 식사를 할 여유조차 없는 민석이었다. 오늘도 야근할 작정으로 진한 커피 한잔을 속에 넣어줬을 뿐이었다. 그때 민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민석도 아는 [매드폭스]라는 바 웨이터였다. 손님이 쓰러져 있는데 자꾸만 자신의 이름을 불러 퇴근시간인데 어떻게 하질 못해서 전화 했다고 웨이터는 상당히 공손한 말투로 읊조렸다. 말하는 웨이터의 목소리에는 감정 따위는 묻어나 있지 않아 순간 민석은 기계에 녹음을 해 놓고 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민석은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서류를 뒤로 하고 양복 재킷을 집어 들었다. 소연이 자신의 사무실을 다녀간 이후 소연의 애처로운 눈물이 맴돌아 마음 한 구석 갚지 못할 빚을 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외면할 수 없었다. 한참을 달려 붉은 색 등으로 장식된 매드폭스 내부로 들어가자, 웨이터가 민석을 향해 아는 척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웨이터를 뒤로 하고 민석은 바에 널브러져 있는 소연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마셔 댔는지 근처에 다가만 가도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채민석은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담배 한대를 입에 물고 픈 충동을 버리고 한 강이 웨이터에게 보드카 한 잔을 청해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는 소연을 등에 업고 위층에 있는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텔 침대에 누워 있는 소연의 얼굴을 채민석이 젖은 물수건으로 살며시 닦아 내었다. 소연이 지금 당장이라도 눈을 뜬다면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을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향해 고함을 쳐댈 것 같이 입이 근질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퍼 마신거야?”
분명 화가 난 말투이긴 했지만, 그의 말속에는 그녀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채민석은 그녀의 얼굴을 보다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밝은 햇살에 소연이 눈을 부스스 떴다. 얼마나 울어댔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애써 들어올리며 소연은 자신이 있는 곳을 알아채려 머리를 흔들었다. 띵- 하니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발치에 익숙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꿈에서도 그리던 채민석이었다. 채민석을 그리워 하긴 했지만, 그날 이후 채민석을 향한 연락을 일체 끊었던 그녀였다. 그에게 미안해서, 그에게 미안한 감이 남아 도저히 연락을 못했던 그녀였다. 그 대신 소연은 매일 갈망했다. 그가 자신의 앞에 와 주길. 그 소망이 이루어 진 것이다. 소연은 행여 이것이 꿈일까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았다. 찌릿하게 아픈 느낌이 가슴 벅차도록 행복했다. 소연은 행여 민석이 일어날까 조심히 침대에서 내려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든 민석의 표정은 아이 같았다. 소연은 그의 볼을 꾹 눌러보고 싶은 욕망을 참으며 몸을 낮춰 그의 곁에 앉았다. 그때 순식간 그의 눈이 들어올려져 소연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난 그가 소연을 보더니 고함을 질러댔다.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여자가 그렇게 술을 퍼 마시고 누워 있으면 남자들한테 나 잡아드십시오! 하는 것 밖에 더 돼! 뭐하는 짓이야!”
일어나자마자 소연을 향해 퍼붓는 잔소리를 소연은 웃으며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소연을 표정을 보던 민석이 좋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웃겨?”
“날 걱정해 준거야?”
소연의 물음에 민석이 애꿎게 헛기침을 해 대며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대답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행동에서 그녀가 원하는 대답은 충분히 우러나왔다. 소연은 욕실로 향하는 민석의 뒷모습을 보며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고마워요…….그리고 사랑해요.”
소연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채민석은 소연의 행동에 대해 지적하고 있었다. 마치 오빠가 여동생 대하듯 하는 채민석의 말투에 소연은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어느새 다 온 소연의 집 앞에서 소연이 내리기 싫다는 표정으로 채민석에게 물었다.
“고마워요........”
“갑자기 웬 존댓말이야?”
“이제부터 그러고 싶어졌어요.”
“앞으로 그렇게 술 마시고 다니지 마!”
소연의 갑작스런 존댓말에 채민석이 상당히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그녀의 존댓말이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그의 말에 소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 채민석을 보았던 소연이었다. 서로 알지 못했지만, 서서히 채민석의 마음속에, 소연의 마음속에 그들의 자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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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지켰죠?~![]()
좋은 하루 되시구~ 리플 필수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