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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잇 스탠드[5]

크레이지쑥e |2005.05.16 10:59
조회 2,616 |추천 0

원나잇 스탠드.[제5화]

 


난 늘 피곤함을 즐긴다. 뭔가 풀리지 않은 듯한 오묘한 기분은 색다른 짜릿한 맛이 있다.

오늘도 그 피곤을 느끼며 무거운 머리를 깨우고, 침대위에 놓인 교복을 꺼내 입는데,

문득, 어젯밤 승하의 약혼식이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다.

젠장, 빌어먹을,

‘서둘러’라는 말이 내안에서 메아리가 되어 명령한다. 씁쓸하고, 허탈한 웃음과 함께 윗입술을 살짝 깨물며, 권승하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문을 지나 운동장을 가로질러 복도로 들어서니 저만치 복도 끝에서 권승하가 한 여학생과 면담 중 이었다. 그의 뒷모습에 대고, 엿 먹으라는 제스쳐를 취하 고는, 교실 안에 들어섰다. 시끌벅적대며 시장통 같던 교실 안이 내가 들어서자 정적이 감돌았다.

반 아이들 모두 나를 보고 웅성거린다.

그리고 반 아이들 모두 나를 더러운 물건 보듯 기분 나쁜 눈빛을 숨기지 않고, 역력히 드러냈다.

 


“너, 일년 꿀었다드라? 왜? 임신이라도 했었니?”

 


“보아하니, 그런 거 아니겠어? 하여튼 얼굴 반반한거 하나

믿고 깝치는 년 보면 왕재수라니까”

 


전학첫날부터 나에게 강제전학을 논하며, 기분 나쁜 표정을 짓던 혜미가 내 앞에서 팔짱을 끼고 내 주위를 천천히 빙빙 맴돌며 비꼬듯 물어온다.

왕따로 지목 됐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인가?

그 둘의 말 뒤로, 또 웅성거림이 시작 되고, 대놓고 나를 비웃는 애들도 여럿 있었다.

 


“너희엄마, 전과자더라 노름꾼에 술 또라이 하”

 


혜미의 말에 반 아이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 했고, 난 애써, 내 손과, 발을 꽉 쥐고 그것들이 먼저 튀어나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썻다.

 


“그러니, 딸년이 이 모양이지 더러운 창녀 같은년!”

 


“닥쳐!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후훗 너 잘하면 한대 치겠다?

왜? 너의 더러운 사생활에 기분이라도 나빠지니?

꼭꼭 숨기고 싶었던 과거라 들키니 창피해지니?”

 


“시끄럽다. 시끄러워.”

 


혜미의 말에 모두 히히덕 거리던 반 아이들이 갑자기 꼬리를 내리고 일순 조용해졌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태후가 교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

고개를 약간 젖히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태후의 눈빛은 참 강하게 이글거렸다.

난, 솟구치는 화보다, 주먹이 먼저 혜미를 향하고 싶었다. 이성이 앞서기 보단, 다분히 내게 공격적인 혜미를 향해 동물적 본능으로 한대 휘갈기고 싶었으나, 난 한 번더 인(忍)이란 글자를 떠올렸다.

 


‘권혜미..하늘에게 말고 태후에게 감사해라. 태후만 아니었어도

넌 오늘 나한테 처절한 응징을 당했을 것이다. 빌어먹을’

 


“왜, 이렇게 시끄러워? 모두 입 다물고 공부나해.”

 


역시, 지존답게 태후의 위력은 가히 칭찬 할만 했다. 태후를 선생님보다 더 무서워하는 반 아이들은 그의 말에 잘 따라 움직인다.

“서태후! 남의 일에 참견 하지마.”

 


자신의 일에 방해를 놓는 태후로 인해 혜미는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냅다 질렀고, 어느새

태후의 손은 자연스레 내 한쪽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그리고 반애들을 향해 앞으로 섰다.

 


“내가 누구지?”

 


“............”

 


“내가 누구냐고?”

 


반 아이들을 향해 다시 한번 힘주어 물음과 동시에, 책상 하나를 발로 차, 그 자리에

앉아있던 아이한명이 바닥으로 넘어졌다.

하지만 태후는 그런 거에 개의치 않고, 여전히 내 어깨에 팔을 두른 채로 넘어진 그 아이에게 일어나란 손짓을 해 보인다.

겁먹은 눈빛을 보내며 서서히 일어나는 그 아이 어깨도 다른 한손으로 태후가 감싸 안았다.

 


“말해봐”

 


“..........”

 


“씨발, 귓구멍이 처먹었나 말해 보라고!”

 


“서, 서태후 제일고의 지 지존”

 


그 아이의 한쪽 어깨를 꽉 움켜 지고, 윽박을 지르자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조용하게 내 뱉는 그 말에 태후가 피식 웃는다.

그리고 잡고 있던 그 아이 어깨를 놓으며 그 아이가 있던 곳에 밀어 넣고 시선을 나에게 다시 돌린다. 지금 태후의 눈은 나에게 무언의 경고를 하듯 자신의 위풍을 세우며 ‘봤지?’하고 물어온다.

 


“여기, 전학생이 말야 좀 건방지지?

그래서 말인데, 나 서태후가 이 앨 몸소

손봐주기 전에 너희가 맛배기 좀 보여줘야겠지?”

 


“서태후 그 말,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안 그래도

맛배기 보여주고 있던 참 이니까, 앞으로 넌 남의

일에 참견 말라고. 분위기 깨지니까”

 


톡 쏘아 말하는 혜미의 말에 태후가 한번 씨익 웃더니, 내 어깨 에서 손을 떼며, 나에게

눈을 한번 찡긋 하고, 교실 밖으로 나가 버린다.

태후가 나가고 나서, 반 아이들의 시선이 또 나에게 쏠린다.

 


“어이 전학생. 너의 건방을 앞으로 어떻게 요리해줄까?”

 


태후의 힘을 얻어서인지, 혜미의 의기양양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말투도, 행동도, 표정도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고, 혜미의 말에 반 아이들은 다시, 웅성대기 시작하고 히히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너의 그 도도함이 얼마나 가나 보자 그렇게 목 빳빳히 쳐들고

다닐 날도 오늘로서 끝이야.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 큭큭”

 


난, 혜미의 말과 행동을 무시하고 내 자리로 와서 앉았다.

경호는 어제일 때문인지 나와 얼굴을 마주치길 꺼려했고, 반 아이들 몇몇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나를 몰래 엿보며 혀를 끌끌 찼다.

 


* * * * *

 


권승하의 담당은 영어과목 이었다. 그가, 단정한 세미정장을 입고 교탁 앞에 섰다.

여자 아이들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무슨 우상 숭배 하듯, 그를 우러러 봤고, 남자 아이들은 거의 고개를 땅으로 쳐 박고만 있었다.

 


“Attention! Bow!”

(차렷,경례!)

 


“Good morning sir!”

(안녕하세요,선생님!)

 


“Hello, everybody”

(모두들 안녕)

 


권승하가 교과서를 뒤적거린다. 그리고, 오늘 가르칠 분량을 찾았는지 교탁에 책을 피고

반 아이들을 한번 쭉 훑어보았다.

창가 쪽의 앞 분단을 시작으로 그의 끝은 나에게로, 내 눈으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한참 나를 쳐다보던 고개를 약간 갸우뚱했다. 그의 그 행동을 난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기억이라도 난 것일까?

 


“Can i ask you a question?”

(질문있어요.)

 


“Sure.”

(그래.)

 


“It's a personal question is that okay?”

(개인적인 질문인데, 괜찮아요?)

 


그가 어깨를 한번 들썩이며 그렇다는 제스춰를 취했다. 그리고 나는 영어로 그에게 질문을 했다. 나와, 그를 제외한 반 아이들은 알아듣지 못하도록 둘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Tell me honestly, how am I as a woman? am I attractive?”

(솔직히, 나 여자로서 어때요? 매력 있어요?)

 


반 아이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그저 멀뚱멀뚱 나와 그를 번갈아가며 쳐다볼 뿐이었다. 내 질문에 한참이나 말이 없던 그는..대답하기 곤란한지 헛기침을 두어번했다.

 


“Of course, Let's get back to study now.”

(물론, 그만 수업하자.)

 


“Hold on one last question.

(아뇨, 한 가지만 더)

How do you feel about me as your woman?”

(그럼 나 당신 여자로선 어때요?)

 


쫘르륵.

그가 들고 있던 교과서를 그대로 떨어트렸다. 반 아이들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교과서를 주워서 일어난 그는 잠시 시선을 칠판 쪽을 향해 등을 돌렸다. 반 아이들은 야유와 함께, 무슨 뜻의 말인지 물어 왔고, 난 천천히 미소를 띄웠다.

“왜, 궁금하니?”

 


나에게 향한 반 아이들의 시선에 거북해진 내가 물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준희가 여자로서 너무 매력적 이라고,

기회가 온다면 나를 애인삼고 싶다고. 후훗”

 


돌아있던 그가 다시 아이들 쪽으로 몸을 돌리고, 나에게선 시선을 떼어 반 아이들을

응시했다. 내말에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 ‘재수 없어’ 혹은 ‘밥맛’ 이라고 한마디씩 했다.

 


“자, 모두 조용히 하고 준희의 장난이 좀 심했구나

준희도 나중에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한거야. 이제 교과서 펴고, 본문 들어가자”

 


“하하하”

 


내 웃음소리에, 또 그의 한마디에, 반 아이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특히 혜미의 눈초리는 표독스럽고, 사나웠다.

 


“아무리, 애들이 멍청해도 그렇지 그런 거짓말 통하나?

아니면, 소문대로 죄다 빈 깡통 인건가? 정말 돈 쳐 바르고

들어 온게 맞구나 이런 기본적인 영어도 모르는 것 보니”

 


“비록, 돈쳐 바르고 들어 왔지만, 몸뚱이 팔아서 들어온

너보다 낫지 안 그래?”

 


“후후훗”

 


혜미의 말에 어이없는 웃음만 난다. 다시 칠판을 향해 뭔가를 써 내려 가던, 승하의 손놀림이 멈춰지고, 반 아이들 또한 좀 전보다 큰소리도 웅성대기 시작한다.

 


“지금 뭐하는 짓 이야? 선생님을 앞에 두고 뭐하는 짓이야?”

 


그는, 권승하는 더 이상 나에게 시선을 두지 않는다. 앞에 있는, 혜미 에게만 눈을 맞추고, 화를 낸다. 내말은 듣고도, 못 들은 척 나를 보고도, 안 본 척

내가 그를 빤히 쳐다보지만, 승하는 나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러 내 눈을 피하는 것이 느껴진다.

무어라, 한마디 할 법도 한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

.

.

.

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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