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잇 스탠드.[제35화]
“아버지”
육중한 공기를 가르는 승하의 메마른 음성은 당황 할 법도 한데 나를 의식한 탓인지 침착하고 무덤덤한 자세로 그의 아버지를 맞았다.
승하의 집안으로 들어서는 그의 아버지 눈은 나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식탁 위에 널 부러진 케익이나 승하와 내 얼굴에 묻어난 생크림은 그의 아버지가 눈살을 찌푸리는데 한 몫 거두었다.
버버리의 은은한 잔향이 도시적이고 고급스러운 그의 아버지의 중후한 멋을 한껏 더 자아내며 집안에 흩날렸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는 내 모습에도 그의 아버진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을뿐더러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절대적인 그의 권위는 저절로 주눅을 들게 만들었고, 승하와 달리 날카로운 턱 선은 그의
매우 깐깐하고 날카로운 성격을 돋보이게 했다.
“잠시 나가있어!”
승하를 향해 고갯짓으로 명령하는 그의 아버지 표정은 화를 참고 있음을 명백히 밝혀왔으나
승하는 굴하지 않고 내 손을 꽉 움켜잡았다.
숨이 막혔다. 급박 하게 가슴이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내 손을 잡은 승하의 손아귀 힘은 내가 조금 이라도 손을 움직이면 으스러뜨릴 수 있을 만큼 강하고 비정한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준희와 함께 듣겠습니다.”
“끝까지 날 실망 시키는구나.”
그는 예의범절에 떠밀려 인격과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점잖게 말문을 열었지만,
그의 속마음만은 새까맣게 타 들어 가고 있는 걸 누구보다 난 잘 알았다.
잠시 어색하고 삭막한 전류가 흘렀고, 난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은 좌불안석 이었다.
“결혼은 집안의 중대사야, 너 혼자 결정 하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사제간은 사회적 통념을 깨기 힘들다. 단절감의
갈등 대립으로 충돌도 많기 마련이야. 곱지 않은 시선에
환대 받지 못하는 우스운 관계지. 더 정들기 전에 정리해.”
갑자기 들려오는 승하 아버지의 목소리에 난 퍼뜩 정신이 들었다.
중후한 멋을 풍기는 음색 이었지만, 차갑고 두려운 마음을 들게 만드는 음성이기도 했다.
“아버지, 준희가 있는 자리에서아버지께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저에게 준희와의 관계를
끝내라는 강요는 하지 말아주세요.
시작도 제가 했듯이 우리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 것 또한
저의 몫입니다. 누군 가 끝내라고 해서 헤어지는 거였다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목구멍이 조여 들었지만 명확한 승하의 주장은 호소력 짙었고, 차가운 승하의 말에 그의 아버지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예기치 않은 사태의 갑작스런 그의 아버지 출연은 나 또한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듯이.
“어디서감히!”
꽉 잠긴 그의 아버지 목소리는 격한 시선과 함께 승하에게 내리 꽂혔지만 그의 말이 상당한 충격인 듯 더 이상 어떤 말도 잇지 못했다.
“저.......주제넘지만 제가 한 말씀드릴게요.
저희 순간적인 감정으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아버님 마음에 안 드시는 건 지당하신 말씀이죠.
하지만, 관용을 베풀어 주세요. 나중에 정식으로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그의 아버진 호통이라도 칠 듯한 기세로 날 매섭게 노려보았고, 생각지 못한 내 말에 이번엔 승하도 놀랐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승하의 짐작으로 예컨대,
그는 내 성격으로 보아 그의 아버지에게 두 눈 부릅뜨고 대들거나, 혹은,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라 단정 지은 듯 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얌전하고 차분하게 내 뱉은 말은
가히 그의 마음을 한층 더 사로잡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당장 짐 싸서 들어 오거라.”
그의 아버지는 더 이상 마주 하기 싫은 듯 들어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시고 밖으로 휑하니 나가셨다.
“안녕히 가세요.”
난 등 뒤에 대고 예의를 갖춰 인사를 드렸고, 그런 아버지 뒤를 승하가 따라 나서는 걸 본 후 욕실로 들어가 얼굴을 씻었다.
다 씻고 난 내 모습이 거울에 비춰지자 매우 흡족한 미소가 거울 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침실로 들어가 청바지와 티셔츠로 갈아입고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고 거실로
나왔을 땐 다시 승하와 마주했다.
“고마워”
그의 진심이 내 손을 잡은 따뜻한 그의 손에서 느껴진다.
난 희미한 미소로 허나, 지친 듯한 마음을 싫어 그에게 내 보였고 승하는 그런 내 모습에
스스로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듯 했다.
“조금만 더 참자. 지금처럼만 날 따라오면 돼”
“승하샘…”
“뭐라고?”
“……”
“흠흠…자…기…”
헛기침 뒤에 나온 ‘자기’란 말은 나도 승하의 얼굴에도 홍조를 띠게 만들었다.
날 잡은 손목을 끌어당겨 승하가 나를 그의 품 안에 안았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승하만의 은은하게 풍기는 애프터 쉐이브 향은 내 심장을 정지 시킬 듯 맥박이 여러 번 고동치게 만들었다.
좀더 힘을 가해 나를 끌어안던 승하는 참을 수 없는 경지에 오른 듯 내 양쪽 어깨를 잡고
눈으로 내 입술을 찾아 내려왔다.
서서히 내 입술 위에 그의 입술이 포개지고 미친 듯이 강렬한 키스 세레를 퍼붓기 시작했다. 내 손은 저도 모르게 그의 허리를 꽉 감싸 안았고, 우리 몸은 좀 전 그의 아버지가 머물다간 소파 위에 눕혀졌다.
“이 준희 내거니까…
내 여자니까… 다른 남자한테
눈길조차 주지 마. 약속해!”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내 귓가에 속삭이듯 뱉어낸 승하는 말 뿐인데도 질투와 시기가 담겨
있었고 난 웃음으로 대신 응수 했다.
유순한 내 반응에 마음이 놓인 듯 다정하게 입을 맞춰오기 시작했다.
이마, 코, 눈, 볼, 순으로 천천히 입을 맞추며 내려오던 승하는 내 목덜미를 손으로 쓸더니
곧 셔츠 안으로 들어와 가슴을 부드럽게 매만져 내려갔다.
순간 생각지 못한 기분이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승하가 내 온몸을 훑고 쓸어내릴 때 마다, 부드러운 그의 손끝이 내 가슴에, 입술에 닿을 때 마다 하늘에 붕 떠 있는 듯한 환각 상태에 빠져 버린 기분이 날 미치게 만들었다.
어딘가로 튀어 오를 것 같은 기분에 신음소리가 절로 토해지고, 입술 위를 배회하던 그의
혀가 은근히 내 안을 탐험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고른 치아 사이를 그의 혀가 말끔히 훑고 지나가며 벌어진 입술 사이를 살짝 깨물어 흥분을
더욱 고조시키기도 했다.
생크림 보다 더 부드럽고, 달콤한 승하의 입술은 향긋한 그린 향 을 연상케 했다.
그의 입술이 목덜미에 와 닿아 날 괴롭히고 그의 향에 취하게 만들었다.
“준희야”
“……”
“대답해 이 준희”
“하…아… 응…”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마저 도 교태를 부리며 날 황홀의 정상에 우뚝 서게 만들었다.
“준희야, 나 자제 시키지 마.
그러면 나돌아 버릴 것 같아.”
그의 말뜻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에 대답 또한 나는 알고 있었기에 차마 입 밖으로 내 뱉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 속을 헤집어 헝클어 놓았다.
승하는 셔츠를 들어올려 봉긋 솟아 오른 내 가슴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가슴을 회유하는 촉촉한 승하의 입술은 폭발력 짙은 다이나마이트 처럼 위험하게
내게 자리 잡혔다.
허리 밑으로 그의 묵직한 몸이 느껴지고, 승하도 나도 우린 서로 본능에 충실했다.
이윽고, ‘팅’소리와 함께 내 청바지 버클이 풀어졌다.
그 소리에 난 아득해졌던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딩동’
또 한번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승하는 거친 욕지거리를 내 뱉었다.
하지만 문을 열기 위해 일어서지 않았고, 계속해서 내 위에서 날 유린하기 위해 애 썼다.
‘탁탁탁’
“권 승하 문 열어”
현관문을 두들기며 문을 열라고 재촉하는 목소리에 승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날 일으켜
세운 뒤 내 옷매무새와 헝클어진 머리를 단정히 매만져줬다.
“나봐. 됐다. 이제 나가 봐도 되겠어.”
* * * * *
“웬일이냐?”
사랑을 나누지 못한 아쉬움에 민준을 향한 승하의 말은 심술이 잔뜩 묻어났다.
“이거 갖고 오라고 할 땐 언제고 그새 찬밥 취급이야”
승하의 마음을 알리 없는 민준은 자신이 들고 온 비닐 팩을 들어 올리며 서운한 마음을
들춰냈다.
“췟, 빨리도 왔네.”
얼굴을 붉히고 입속말로 종알종알 대며 민준의 손에 잡힌 것을 낙아 채 승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준희씨, 쟤 왜 저래요?”
영문을 알리 없는 민준은 나를 향해 물어왔고, 난 그저 웃음으로 일관했다.
순간 승하의 심술 난 행동은 더 없이 귀엽게만 느껴져 자꾸만 날 웃게 만들었다.
“참 몸은 괜찮아요? 승하도 저도 많이 놀랐어요.
뭐 당사자인 준희씨 만큼은 아니겠지만
승하 녀석 눈 돌아가서 말리느라 진땀 뺏죠.”
걱정을 물어오는 민준의 말에 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후에 들은 얘기는
내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왔다.
“그나저나 준석이가 걱정이네요. 지금 응급실에
있는데 깨어나서 난동이나 안 피 울지… 승하 녀석도
가만있지는 않을 텐데… 참 저 준희씨 한테 감사 하다고
인사할게 있는데……”
“?…”
“승하 녀석 받아줘서 고마워요. 저 한국 들어오기 전에
저 녀석 저 있는 곳까지 찾아와 울며불며 괴로워했어요.
준희씨가 자길 벌레 본 듯 한다나 어쩐다나 …큭큭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 흠이지만 그래도 괜찮은 녀석 입니다.”
“푸훗…”
승하에 대해 몰랐던 얘기를 민준 에게 듣는 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 보다 흥미를 더 했고
색다른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이 준희! 이리와.
저 녀석도 남자니까 눈도 마주치지 마!”
주방에서 딸그락거리며 뭔가 열심히 만들던 승하는 민준과 나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는지
짐짓 화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뭐, 그 버릇 준희씨 만나서 고쳐진 듯하네요.”
승하를 약 올릴 심산으로 능청을 떠는 민준은 나보다 먼저 주방으로 들어갔다.
“솜씨가 날로 느는구나.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권승하표 스파게티냐?”
“너 안 가냐?”
“어찌 이런 먹음직스런 음식을 두고 간단 말이냐?
자, 술도 좀 내오고 해봐라, 권 승하 주방장님!”
승하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여전히 장난스럽게 대꾸하던 민준은 나에게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해왔다.
내가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땐 잘 차려진 스파게티는 크림소스를 가미한 까르보나라와
해물과 토마토로 맛을 낸 씨푸드 스파게티 두 종류가 있었다.
“와, 이걸 다 만든 거야?”
“우리 준희를 먹이기 위해서…
자, 어서 먹어 크림 좋아하잖아”
“나도 까르보나라 좋아 하는데…”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민준이 말했지만 승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내가 스파게티를
먹는 모습만 턱을 괴고 쳐다보았다.
“준희씨 한잔 할래요?”
민준이 마호가니 색의 브랜디를 권해 오자 승하가 질색을 하며 그의 팔을 잡아챘다.
그리고는 재빨리 와인을 들고 와 그것을 나에게 건 냈다.
“브랜디는 나하고 마셔”
승하는 잔에 브랜디를 채우고 민준이와 준희를 향해 건배를 청했다.
얄팍한 ‘쨍’소리와 함께 그들의 식도를 타고 브랜디가 삼켜지고, 나도 승하가 따라준
와인을 향과 함께 음미하며 마셨다.
그들이 브랜디 한 병을 채 비우기도 전에 난 와인 한 병을 금새 다 마셔 버렸고,
빈속이라 그런지 취기가 쉬 오르는 듯 했다.
“나 어지러워”
“언제 다 마신 거야?”
민준 이와 둘만의 세계를 구축했던 승하는 그제 서야 나에게 시선을 돌리고 다 비어진
와인 병을 보고 놀란 눈을 했다.
“안되겠다. 일어나 데려다 줄께”
나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운 승하는 자신의 품 안에 나를 꼬옥 감싸 안았다.
“민준씨 다음에 또 봐요.”
“네, 조심 히 가세요.
특히나 승하 조심 하세요.”
승하는 민준을 한번 노려보고는 나를 데리고 그의 집에서 나왔다.
어둑해진 밤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수놓아 졌고 더운 열기에도 승하는 내 손을 꼭 잡는다.
택시를 타고 집 앞에 거의 다 달았을 때 승하가 갑자기 차를 세우고 내렸다.
덩달아 나도 그를 따라 내렸고, 택시가 저만치 앞서가고 나서야 승하의 의도를 알아챘다.
“업혀”
“뭐?”
내 앞에 등을 들이밀고 업히라고 말하는 승하는 내가 가만히 있자, 날 강제로 자신의 등에
업었다. 그리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남자가 여자를 업는 다는 것은 …
우리 두 사람이 한 걸음으로 걷겠다는 뜻이고
한 사람의 모든 무게를 내가 감당 하겠다는
의미이며 이 사람에게 내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약속 이래.”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업고 있는 모습 이래”
가슴을 승하의 등에 대고 두 발을 뻗어 그의 양 어깨를 감싸 안은 내 모습이 금 새
움츠러들었다.
그가 내 뱉는 말은 어느 책에선가 읽은 구절 이었고, 그는 그대로 그 말을 인용해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권 승하 선생!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마,
잘해 주지 마,
그러면 내가 힘들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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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