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입니다^^
라디폰 공작의 저택이 화염의 먹이가 된 지 사흘이 지났다. 화재가 난 첫날은 귀족, 평민 가릴 것 없이 아린테의 모든 사라들이 충격과 놀라움에 휩싸였다. 아무튼 친우들의 도움과 레프스터 국왕의 호의로 공작가 사람들은 길거리에 나앉는 대신 새 저택을 짓게 되었다. 그리고 저택이 완성될 때까지는 티스몬 백작 가에서 신세를 지기로햇다.
이렇듯 모든 것들이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기에 나는 불안했다. 이 정도 정돈이 된 즈음이면 공작을 비롯한 사람들이 나를 잠깐이라도 찾아와야 맞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편지 한 장오지 않았다. 덕분에 내 정체를 눈치 챘을까 긴가민가하던 나는 심증을 굳혀갔다. 그들은 틀림없이 내가 마리엔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만약에 같은 마족인 줄 알았던 자가 인간이면 넌 어떻게 하겠어?"
피네스의 대답은 쉽게 나왔다.
"별 변화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을 싫어하는 것 아니었어?"
"별루요"
"그때는 마리엔 님을 혼란스럽게 할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겁니다. 대개는 마족이 그 따위 인간에게 정을 준다는 말을 하면 움츠러들거든요. 물론 사고가 완전히 정립되기 전에만 가능한 일이지만요"
그러니까 내가 움찔하는 틈을 타 어찌해보려던 속셈이었군.
"그럼 인간이 아니라 천사였다면?"
"당연히 끝장을 봐야죠":
당장 눈앞에 천사가 있는 것처럼 얼굴을 잔뜩 찌푸리는 피네스의 얼굴에 위로 여러 인간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역시 그렇겠지"
나는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는 말을 약간 풀이 죽어 중얼거렸다. 그날 하루는 온종일 한숨에 둘러싸인 날이었다.
차라히 일이 완전히 벌어진 후라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이도 저도 아닌 밤까지의 몇 시간이 무척이나 느리게 흘러갔다. 하지만 막상 무슨 일이 생기면 놀라서 멈칫해버리는게 마음이다.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라면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피해주리라.
나는 다시 입을 열어 손님들을 모시라는 명령을 내렸다. 고백하건대 문이 열리는 소리와 그 뒤로 희미하게 들리는 발소리에 이토록 긴장한 적은 없었다. 평소처럼 미소를 지으며 몇 명의 사람을 맞이한 내가 평소와 달랐던 점은 그들에게 자리를 권하지 않았다는 것, 그뿐이었다. 사실 웃고는 있어도 ㅇ방으로 들어선 라디폰 공작과 에릭 세린의 표정을 살피느라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라디폰 공작이나 다른 사람들이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결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풍화되었다.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나는 곁가지부터 접근하기 시작했다.
"화재 후 대처는 잘 되고 있나?"
"염려해주신 덕분에 모든 게 평안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래?그거잘됐군"
"언제쯤 저택이 다시 지어질 걸로보이냐? 그리고 그동안 옵스크리티 사람들은 어디에 머무는거지?"
나는 알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물었고 그걸 알면서도 라디폰 공작은 공손한 어조로 그들이 곧 완공되는 마법학교의 일부 건물에서 머물고 있다고 고했다.
그 후에도 대화는 천천히 이어졌지만 그리 중요한 내용은 오가지 않았다. 그들을 처음 맞았을 때의 당혹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옅어지자 나는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슨일로 온거지?"
"다름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아가씨와 공주님께서 무슨 사이이신지 알고 싶어서 이렇게 찾 아 왔습니다"
"아는사이야"
나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대답이라고 말해주었다.
"본의 아니게 저택에 불을 질러서 미안하군. 물론 그에 대한 이유는 묻지 말았으면 좋겠어.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따면 조금은 도아주지"
피네스의 뻣뻣한 목과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에 나는 속으로 '엿 됐다' 라고 생각했다. . 공작을 앞에 두고 방화범 주제에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건 '난 뭔가 있는 인물이오' 라고 선전하는 것밖에 안는다.
"호의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과연 저택에 불을 질러버린 당사자에게 할 말 인가 싶지만 라디폰 공작은 한참 만에 피네스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쯤 되자 나는 이들이 뭔가 알아챘따는 사실을 눈치챘다.
"다른 할 말이 있을 텐데. 말돌리는건 우리 사이에 익숙하지 않은일이지. 안그래?"
"이제야 공주님께서 돌변하신 것도, 마법을 사용하실 수 있었떤 것도, 이해가 가는군요...정확이 말하면 공주님이란 말도 맞지 않겠군요"
나는 구태여 공작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마리엔 공주님께서 당신을 부른 겁니까? 아니면.당신이...."
라디폰 공작은 무의식중에 목소리를 낮춰말했다.
"그녀가 날불렀지"
다시 한번 정적이 우리들 사이로 떨어졌다
그렇게 마족과 인간 사이의 어색한 관계덕분에 말이 오가지 않은지 몇 분 후 , 약간의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던지 피네스가 나섰다.
"유리시나 님이 누구라고 해서 변하는 건 없다. 그대들이 충성을 맹세하고 따르길 원했떤 마리엔 공주는 이미 죽어버린 인간이 아니라 그대들의 눈앞에 있는 존재니까. 어째서 인간은 그 존재의 영혼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에 더 관심을 두는 건지 모르겠군"
"유리시나 님?"
지금껏 입을 열지 않았떤 세린이 중얼거렸다. 그건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 같았다.
시간이 지난 후에 라디폰 공작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배신당한 것 같기도 했찌만 지금에 와서는 마음을 완전히 굳힐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예전부터 진짜 공주님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항상 가까이에 있었던 저희들이니까요"
라디폰 공작은 잠시 뜸을 들였따 다시 말했다.
"말씀하셨던 것처럼 인간들은 껍데기에 더 관심을 가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껍데기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껍데기를 이해했을 때 그영혼을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껍데기만을 염두에 두는 자들도 있찌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주십시오. 비록 당신은 마리엔 공주님이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 마리엔 공주입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마리엔이라는 이름은 이미 단순히 왕족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의 군주이며 희망을 나태내는 말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무릎을 끓고 공주에 대한 예를 취했다. 그건 에릭과 세린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당신에게 우리는 그저 놀잇감에 지날지도 모르고 , 한없이 낮고도 낮은 존재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모시고 싶습니다. 당신은 저희에게 많은 마족 중 한 명이 아니라 친구이고 사랑하는 자이며 군주입니다"
"난 너희들을 낮게 보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다른 자들은 그렇게 보는 면이 있지만 너희들은 달라"
라디폰 공작과 에릭 , 세린이 돌아가자 자꾸 입이 벌어지는 걸 막기가 힘들었따. 물론 더 이상 예쩐과 같은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 라디폰 공작과 에릭, 세린, 루시와의 관계는 뭔가 달라질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여전히 마리엔공주라고 불러주었다.
그 이름이 그렇게 듣기 좋은 울림으로 들릴줄은 전에도 알지 못했따.
좋은 기분은 몇칠 동안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날 밤, 그 기분에 아렌테 시내로 나오고 말았다.
검은 하늘에는 선명한 노란 달이 떠 있었고, 그 주위를 하얀 별들이 보좌하듯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전에 몇번가본 식당으로 들어갔다. 전과 같이 변장도 하지않고 나온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마음놓고 식당의 문을 열었다.
사람들 틈을 헤치고 들어가 구석에 남은 자리에 앉은 나는 멧돼지 통구이와 적포도주를 시키고 손님들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비운 나는 약간 취기가 오른 채 밖으로 나와 목적지도 없이 무작장 걸었다. 그러다 라디폰 공작의 저택이 타버린 모습을 구경해야겠따는 생각이 번뜩 들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절반 정도 왔을 즈음 재건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 기대했던 폐허는 보기 힘들다는 생각에 거리 한복판에 멈춰 섰다.
그렇게 우뚝 서서 라디폰 공작의 저택이 있는 방향을 보며 고민하고 있을 때 낮익은 인형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것이보였따. 그것이 에릭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걸리지 않아서였다. 반사적으로 당황한 나는 엉뚱한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그리고 에릭이 등 뒤로 지나는 소리를 들으면서 변장은 물론 마리엔의 모습으로도 나오지 않았따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바보같긴. 피식 웃으며 돌아서려던 나는 누군가 어깨에 손을 얹는걸 느끼고 멈칫했다.
고개를 돌린 내 눈높이에 있는건 한쌍의 검은색 눈동자였다.
"너 수배자지?"
풀린 눈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구 내어깨를 짚고 있으면서도 탭댄스를 추는 듯한 발놀림등 모든 것들이 이 남자가 취했음을 알려주었다.
"아니야"
"허어 , 거짓말하지 말고! 수배자가 아니면 이 밤중에 그렇게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잖아. 안그래?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나도 한때는 수배자였다 이거야, 알겟어? "
그리고 내가 자신을 무시하자 소리를 꽤액 질렀따
"이 계집년이 감히 날 무시해?정말 뒈지고 싶어 환장했냐?"
그는 꼬이는 혀로 욕설과 비속어를 퍼부어 댔다. 인상이 찌푸려지긴 했찌만 지금까지 좋았던 기분을 더이상 망치고 싶지않아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술에 취하면 제정신도 아닐 뿐더러 때로는 부려서는 안 될 만 용까지 부리게 되는 법인가보다.
욕도 욕이었지만 누런 이빨과 그 사이로 종종 보이는 음식 찌꺼기가 담겨 있는 입에서 튀어나온 침이 튀자 붕 떴던 기분이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 쳤다.
이쯤 되자 주변을 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멈춰 서거나 돌아보기 시작했고 술에 취한 고벌느는 여기 수배자가 있으니 경비대를 부르라고 난리였다.
"나 조금전까지 기분좋았떤 사람이야. 그러니 서로 이쯤에서 끝내지"
"이 계집년이 감히 고벌느산의 지배자인 나에게 명령을 해? 정말 세상이 착실한 날 가만 놔두지 않은누먼@#@@#$#@$#@$#@"
나는 더이상의 대화는 입만 아푸고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고 말이 통하지 않을 시 의사소통에 사용되는 또 다른 수단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바로 주먹이었다.
얼굴을 호되게 얻어맞은 고벌느는 엉덩이에 칼침을 맞은 황소처럼 콧김을 불어대며 저돌적으로 돌진해왔다.
기분좋았던 산책을 망쳐버린 자에 대한 응분치고는 가볍긴 했찌만 나는 마차가 지나지 않은 곳을 골라 마법으로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파서 그를 묻어버렸다.
그리고 손끝에 긴 끈이 잡히자 그것을 꺼내 고벌느의 머리 한움큼을 잡아 리본을 묶어주었다.
"땅에서 태어나고 땅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잘못된 허영심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작품명은 '나 땅으로 돌아가리' ."
예술가라도 되는 마냥 한속으로 턱을 만지며 짐짓 심각한 척 말을 하자 등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재미있는 이름이군요"
고개를 돌린 내눈높이에 있는 건 에릭이였다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군요, 그럼 전이만"
그를 만난 것이기에 가슴이 철렁했찌만 곧 내가 당황할 이유가 없다는걸 떠올리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대하는 마냥 말했다.
"궁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무슨 말씀 이신지?"
"아무렴 제가 당신을 못 알아보겠습니까?"
"어머나, 무슨 말씀이시죠? 전 당신을 처음 보는데요"
"저는 처음이 아니군요. 조금 전 땅에 묻힌 남자를 패던 동작이 매우 눈에 익은데요"
그리고 그는 마치 내가 둘러쓰고 있는 후드를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을 던졌다.
나는 그 집요한 시선과 들켜도 그다지 해 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웃음을 터뜨리며 '오랜만이야'라는 말을 내뱉어 간접적으로 그의 생각이 맞았음을 시사했다.
"여기서 뭐 하시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에릭의 존대어가 낮설게 느껴졌지만 그가 이런식으로 말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산책을 나왔다는 이야기만 해주었다.
"그럼 저도 같이 걸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존대어를 사용했기에 그런 제안을 해올 줄은 몰랐다.
한참을 우린 아무말없이 걸었다
"잠깐 쉬었다 가시겠습니까?"
에릭이 멈춰 서서 말했고, 우리 앞에는 어느새 중앙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먼저 아무말이나 걸어보자는 생각에 떠올르는 대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신축 공사는 잘 되고 있어?"
"네"
"라디폰 공작이랑은 다들 잘지내지?"
"네"
"음. 지금도 티스몬 백작가에서 머무는거야?"
"네"
성의 없이 내뱉어지는 듯한 에릭의 대답에 나는 기분이 언짢아짐을 느꼈다.
"정신을 어디다 두고 이야기하는거야?그리고 왜 갑자기 존대를 하고 그래? 불편하게! 지금 나한테 시위하는거야? 그런거냐? 그럼 직접적으로 말을해! 꺼져달라든가 이런식으로! 그럼 아주 영영 꺼져주마"
처음에 말할때는 단순히 불만을 이야기할 생각이었는데 말하는 도중스스로 열이받아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와버렸다.
"그런게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아니야? 그리고 존댓말하지 말라고했지"
"당신이....."
"자꾸 당신 당신 할꺼야?"
"그럼 둘만 있을 때도 마리엔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정체도 다 드러난 마당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모르되 단둘만 있을 때마리엔이라고 부르는건 확실이 어색했다. 그냥 예전처럼 부르라고 할까도 했찌만 결국 '유나'라고 부르게 했다.
"예전처럼 굴라는 건 당신도 전처럼 우리를 대하겠다는 뜻입니까?"
"그래"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나는 그냥 내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따
"네가 날 믿지 못하는 마음 이해 못하는건아냐. 하지만 우리라고 감정이 없는 냉혈 동물인건아니야. 인간처럼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그리고 사랑도해"
",,,,,믿지 않으려 해도 믿을 수밖에 없겠지..."
에릭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하는말의 내용에 나는주의를 많이 기울이지 못했따.
"내 마음은 내 손이 미치는 범위에서 벗어나 버렸으니까"
"무슨 뜻이야?"
"....만약 조금만 더 일찍 네가 누군지 알았다면.....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너를 완전히 믿고 따를 수 밖에 없게 돼버렸어. 설령 네가 나와같은 육체도 힘도 수명도 가지지 않은 낮선 존재라 할지라도"
말음 멈췄던 에릭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계속 생각했지. 너는 인간과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을까? 그동안 네가 보여주었던 모든 행동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 존재' 의 철저히 계산된 행동일까 하는 생각이 한시도 머릿속을 떠난 적이없어. 하지만 널믿겠어. 그리고 네가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따는것에 신께 감사해"
평소라면 신께 감사한다는 말이 나오면 오만상을 쓸 난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비눗방울이 부풀어 차오는 듯한 느낌이었따.
"하지만 넌 내 모습을 모르잖아. 말해두겠는데 마리엔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 그래도 그런 식으로 생각할수 있을까?"
생각보다 차가운 목소리가 나왔다.
"상관없어"
"나는 엄청난 추녀인데도?"
일부러 떠보았찌만 에릭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따
"어떤 모습이라도 네가 너라면.."
나는 여전히 분수대 가장자리에 앉은 채로 에릭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어두운 데다 후드에 가려 내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겠찌만 핏빛 눈동자는 선명히 보일 것이다. 붉은 눈동자를 어둠속에서, 그것도 내가 마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본다면 상당히 몸서리쳐질 것이다. 에릭이 어떻게 하나 시험해보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그가 한말 탓에 고개를 든 것이었찌만 그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했다
에릭의 손길에 따라 후드가 벗겨지자 후드속에 대강 넣어두었던 긴은발이 물결치며 등뒤로 늘어졌다. 바로 몇 센티 앞에서 내얼굴과 마주한 에릭의 얼굴에는 생각처럼 감탄의 기운도 기쁨의 기운도 떠오르지않았따. 분명히 마족은 인간보다 훨씬 아름다운데도 말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내얼굴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담담한 표정.
그리고 에릭은 정돈되지 않은 채 얼굴로 흘러 내려온 몇가닥의 은빛 머리카락을 자신의 손으로 쓸어 넘겨주었다. 그 모습에서 부자연스러움이나 어색함을 찾아볼수 없었기에 나도 그 손길을 피할 생각을 하지 못했따.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에릭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입술에 뭔가 부드러운 것이 닿았을 때도 예전처럼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았따. 그 입술은 예전처럼 짠맛이 나지 않았고 다듯하고 부드러웠다. 나 자신조차 이상하게 느꼈지만 나는 당황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따.
내가 가만히 키스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는지 가까이에 있는 에릭의 눈이 잠깐 커졌다. 하지만 곧짧은 입맞춤이 아니라 깊고 정열적인 키스가 뒤따랗다.
마 지 막
마리엔 여왕의 지배 아래 페드인 왕국은 오백년 역사 사상 최고 전성기를 맞이 했으며 그녀 사후르 ㄹ기점으로 페드인 제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자신도 흑마법사였던 마리엔 여왕은 마법사 길드와 신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트라라는 이름의 마법학교를 세웠고, 흑마법사를 궁전 마법사나 마법 학교 의 교사로 중용했다. 이들과 이트라 마법학교의 교장이었던 루시퍼 덕분에 기사의 왕국이라 불리던 페드인 왕국은 흑마법사의 왕국이라는 명칭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기사의 왕국으로서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따. 이제껏 없었떤 대대적인 기사단 재편을 몇 차례 겪으며 종래에 있어왔떤 여덟개의 왕궁 기사단은 네 개의 기사단으로 축소 되었지만 예전보다 더욱 강력한 기사단으로 거듭났다.
마리엔 여왕은 여러 인재들의 도움으로 페드인 왕국을 강대한 나라로 만들었으며 그녀 나이 70세가 되어서 사라졌다. 그때 이미 페드인 왕국대륙의 패자로 군림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때 여왕의 남편이자 그녀의 연인이엇떤 대공도 함께 사라져 이사건은 지금껏 모든 역사학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타당성이 있는 것은 두 사람은 죽었으나 페드인 왕국에서 그녀의 신비함을 높이기 위해 위장을 했다는 설과, 두사람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세린스 제임 티스몬의 죽음을 계기로 왕좌에서 물러나 한적한 곳으로 떠낫다는 설이다.
하나 그들이 세워놓은 나라의 기반은 건재했고 그들의 후손 또한 위대한 인물의 피를 이어받은 자답게 페드인 왕국 황금기를 계속 이어갓다. 하지만 달은 차오르면 지게 마련인 법. 영원히 강자로 군림할 것같던 페드인 제국은 마리엔 여왕 지배 사백 년 후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페드인 제국 마지막 왕인 포트린 왕에 이르러 마침내 이 위대한 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따.
"그만 닥쳐라!"
앙칼진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대륙의 역사' 라는 제목이 금박으로 쓰여진 책을 손에 들고 있떤 스카임이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하지만 지금은 수업중인데...."
"닥치란 말 못들었느냐?"
가넨공주는 눈에 힘을 주어 머리가 반쯤 벗겨진 스카임을 노려보았따. 게다가 그녀는 마리엔 여왕을 아주 싫어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왕비와 형제들의 온갖 구박을 이겨내고 위대한 여왕으로 이름을 남긴여자.
"나가"
가넨 공주의 엄포한 같은 말에 스카임은 갈등하지 않을 수없었다. 그 녀의 고약한 성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낀 개인교수만 벌써 다섯명.
스카임은 무거운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기며 생각했다.
'누가 성격 나쁘다고 안 할가봐..돌아가신 가에리안 님은 저렇지 않았는데 가넨 님은 왜저러시는지 원. 그나마 왕비님이 마음이 너그러우셔서 그렇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다른 성으로 보내버렸을 게야'
한편 스카임이 나간 방에는 이제 가넨공주와 쭈뼛쭈볏한 자세로 서있는 시녀들이 남아있었다
"뭐해? 차를 가져오란말이야!"
"차, 차왔습니다"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가넨 공주의 기세에 눌린 시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애써진정시키며 쟁반을 탁자위에 놓으려햇따. 하지만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쟁반을 놓친것만도 큰실수건만 뜨거운 차를 가넨공주에게 부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시녀는 차를 내왔다
가넨 공주는 시녀가 가져온 차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꺄악!"
"공주님!"
시녀들의 비명을 들으며 가넨 공주는 자신의 손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방금 전 입에서 흘러나온 피가 흥건히 묻은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의식은 검은 바다 속을 헤매고 있었따. 이상하게 이곳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하는것이 힘들었다.
'누가 이대로 죽을 줄알아. 누가 죽을줄알아. 누가 네년이 원하는대로 순순히 죽어줄 줄알아?'
'누가 나좀 살려줘! 누가!'
'날 살려줘! 악마라도 좋아!'
그순간 가넨 공주는 누군가가 자신의 외침을 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분명히 인간이라고 볼수없는 강한 자가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느새 가넨공주의 앞에는 낮선 존재가 서있엇따.
"날 부른게 그대인가?"
"..네"
"잠깐 계약 전에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 두 조건에서 빗나가면 난 받아들이지 않겠따. 첫째, 반드시 대가를 내놔야한다. 둘째, 너 대신 살아달라는, 그것도 그몸으로 살아달라는 말은 하지 말아라.알았나?"
"전 절 살려달라고 하려 했는데요. 그리고 대가라뇨? 무얼 원하시는 거죠?"
"당연히 네 영혼이지"
가넨 공주는 영혼이라는 말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리고 상대가 말로만 듣던 마족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아무리 죽고 싶지 않다지만 영혼을 대가로 다라는건 어찌 생각해보면 그냥 죽는니만 못한 일일수도 있었따.
"물론 나는 다른 마족과는 달리 그리 무책임하지 않아. 네가 살있을 동안에 모든 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지. 사실 내 능력이라면 인간의 영화쯤이야 우습지"
상대의 목소리에는 묘한 마력이 있어 그녀의 말대로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가넨 공주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두 사람외에는 아무도 없던 곳에서 다른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하냐?"
"보면 몰라 ?계약중이잖아. 너, 같은 마족끼리도 계약할 때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르는거야?"
은발의 소녀가 지금까지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툴툴거리며 말하자 난데없이 나타난 검은머리의 미청년은 피식웃으며 말햇다
"나는 마족이 아니잖아.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대가로 받다니, 제정신이냐?"
"물론. 인간에게 영혼 빼면 받을게 뭐가 있냐? 그리고 나도 인간의 영혼 하나쯤은 소유하고 싶단 말이야!"
"다른걸 대가로 받아"
"싫어!"
가넨공주는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영혼을 소유해서 어쩌려는 거냐?"
"다른 마족들은 가지고 있는데 나만없잖아. 나도 가지고 싶단말이야"
".....그럴 필요없잖아. 넌 날 소유하고 있지 않아?"
가넨공주는 언뜻 마족 소녀의 볼이 붉어진 것 같다고 느꼈다.
"너 운 좋은 줄알아. 에릭만 아니었으면 이런 파격적인 조건은 어림도 없었어"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소리가 울리고 있었따
'너 말고 다른 사람 영혼으로 가져간다. 나한테 주고 싶은 영혼 이름대. 그리고 에릭한테 말하면 어떻게 되는줄알지?'
가넨공주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에 몸이떨렸찌만 어차피 자신의 영혼이 아니라는 생각에 몇명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처음본것은 익숙한 천장의 화려한 모습이었따.
"공주님, 이분들이 공주님을 구해주셨어요"
가넨공주가 이 유나라는 마법사. 정확히 말하면 마족이 자신을 구해준 명목으로 수만골드를 뜯어냈다는 사실을 안것은 그들이 여행한다며 떠난 후였다. 그리고 그녀가 깨어난지 이틀이 지난밤. 그녀와 국왕을 제외한 모든 왕족들이 잠을 자다 알수없는 죽음을 맞이했따
다들 재밌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리아도 언넝 올려야되는데 ㅠㅠ
ㅎㅎ 모두 즐감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