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방적인 성 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유연애주의자이며, 혼전 성 경험이나 동거는 물론 동성애에 대해서도 개방적이다. 그리고 이혼한 사람들은 원수가 되기보다는 친구로 남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개방적인 성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주변사람들은 펄쩍 뛸지 모른다. 그들은 대부분 내가 성에 대해 융통성이 없고, 경직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를 금욕주의자로 낙인찍기도 한다.
고루한 이미지는 어디서 생겼을까
아내의 1주기가 지나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나를 유난히 좋아하는 한 젊은이가 나에게 술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분위기 좋은 바에서 어느새 양주를 한 병 해 치운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젊은이가 말했다. “2차 가시죠. 오늘은 제가 맘먹고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어쩐지 느낌이 이상해서 내가 넘겨짚고 말했다. “매매한 성으로는 오르가슴을 못 느껴.”
나는 자유연애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성매매 반대론자다. 그런데 한국 남자들 중에 이런 나의 입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흔치 않다. 연애와 성매매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이건만, 한국의 남자들은 거의 같은 일로 취급한다. 박정희 시대 기생관광을 비판하던 때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차이를 인식하는 눈이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가 성을 사는 입장이 되면서 성의 매매, 희롱, 그리고 노예와 착취가 어우러지는 섹스산업 속에 매몰되어 우리의 감각은 마비되고 말았다.
호스트바와 룸살롱
2주 전 TV에서 호스트바를 취재하여 보도했다. 서울 강남의 한 유흥가에는 청년들을 50명이나 거느린 호스트바가 수 십 개나 된다. 강북의 한 지역도 거의 비슷했다. 여자 손님들이 청년들을 고른 후 노래며 춤 그리고 애무 등 모든 것이 룸살롱과 똑같다. 그리고 2차를 신청한다. 50만원에 응한다. 취재를 거부하던 청년이 말문을 열었다. 빚이 있어서 오게 됐단다. 돈은 많이 벌지만, 그만큼 쉽게 쓰기 때문에 모으지는 못한단다. 그만 두려고 나갔지만, 돈이 궁해지면 다시 온단다.
가난하고 예쁜 여자들도 그렇게 몸을 팔기 시작했었다. 그러다가 주택가 농촌 학교주변 할 것 없이 전 사회적으로 성매매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사회 모든 곳에서 성매매가 이뤄지는 나라는 일부 후진국 외에는 없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이제는 몸을 파는 남자들도 점점 불어나고 있다. 포르노의 범람과 청년실업의 증가는 이른바 호스트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야
몇 년 전만해도 매 맞는 아내들에 대한 걱정뿐이었는데, 어느 새 매 맞는 남편들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과거엔 남자의 외도가 문제더니, 지금은 여자의 외도로 자녀를 떠맡은 남자의 눈물이 보도된다. 이러한 추세라면 아무리 기세등등하던 남성들도 별 수 없다. 결국은 밀릴 수밖에 없다. 남성들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불행한 현실을 무기력하게 앉아서 당할 것인가? 아니면, 분연히 일어나 전근대적인 남성지배 시대로 되돌릴 것인가?
길은 한 가지다. 폭력과 매매를 거부하고, 개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새로운 성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본래부터 길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