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의 손에 이끌려 노래방 쇼파에 풀썩 앉으며 단호히 말했다.
“나는 노래 절대 안 불러.”
“왜?”
“아는 노래도 없지만 노래 엄청 못 불러, 음치라구.. 너 실컷 불러.
음치여도 들어줄테니까.”
“나 음치 아닌데.”
..그래, 니가 못난 게 어디 있겠냐..
세상은 공평하다는 옛날 시대의 말들은 이미 기어들어가고 존재하지 않는다.
잘난 것들은 더더욱 잘났다!
화나게 말이다!
“그래 너 잘났다, 잘났어! 노래나 불러. 실컷 들어줄테니까.”
“뚱땡이 너, 이 노래도 모르냐?”
베이비가 내 옆에 바짝 붙어 앉더니 노래 책자를 펴고 나에게 들이밀었다.
“노래 제목은 아는데 부를 줄은 몰라.”
“그럼 아는 노래는 뭔데?”
“트롯트 몇 곡. 남행 열차나 뭐 그런거.”
사실이었다.
정말 트롯트 몇 곡밖에 몰랐다.
베이비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도 노래 듣는 것은 좋아한다구.
단지...사는 데 바빠서 노래를 알 틈이 없었을 뿐이라구.
한가하게 노래 감상하고 외울 시간이 어디 있어.”
머쓱한 내 대답에 베이비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일번 발라드, 이번 가요, 삼번 팝송, 사번 힙합 스타일, 오번 메탈이나 락 스타일, 육번 트롯트. 골라.”
“뭘?”
“모른다며, 불러줄 테니까 번호만 불러.”
베이비는 그냥 한 말일 텐데도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작은 감동이 옅게 물결치고 있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괜시리 나보다 더 머쓱한 듯한 베이비가 입을 열었다.
“나 진짜 좋은 노래 많이 알아. 번호만 아무거나 하나 대라니까!”
“다..”
“......?”
“하나씩 다 불러줘. 다 듣고 싶어.”
내 말에 베이비의 한쪽 눈썹이 휘릭 올라간다.
“하나만 고르라니까.”
“어차피 한시간 동안 부를 건데 뭐 어때. 내가 그렇게 말 안해도 너 다 부를 거 아니야?”
나를 한번 째릿한 베이비는 책자를 뒤적거리더니 숫자를 입력한다.
“잘 들어,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거 아니니까.”
“그래, 너무 영광이어서 눈물나려 한다, 됐지?”
조용한 음이 노래방 안을 조심스레 울려 퍼졌다.
갑자기 진지해진 베이비, 한껏 분위기를 잡고 가사가 나오는 메인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런 베이비의 옆모습을 나는 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fly to the sky의 습관?
들어보기는 많이 들어본 노랜데..
두 눈만 깜빡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내 귓속으로 파고드는 부드러운 음성.
..설마..설마.. 이게 베이비 목소리는 아니겠지?
두 귀가 갑자기 번쩍 트이며 베이비를 바라봤다.
베이비는 쇼파에 길다란 몸을 기대고 한쪽 다리를 다른 한쪽 다리 위에 터억 올린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폼은 아주 건방졌는데 지금 내 귀에 들리는 이 목소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모콘으로 코러스를 눌러보았다.
코러스가 켜진 것도 아니었다.
지금..지금...너무나 듣기 좋은 감미로운 저음의 이 목소리가...
베이비의 목소리라고 믿으라고!
놀랐다.
정말 요즘 세상은 불공평한 세상이었다!
TV에서 볼 때 가수들은 얼굴 표정을 굉장히 풍부하게 지어내며 노래 부르던데,
베이비는 무표정으로 더욱더 멋지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도대체 너란 여자는 왜 내게 이렇게도 지독한 습관인지 아무리 끊어내려고 애써도 더 깊이 스며드는 가시처럼~~~
눈이 붓도록 울면서도 끝내 너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나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마치 독처럼 퍼져있는 너의 모습인 걸~~
너를 생각하면 할수록 더 아파 오는 걸 알아도 나는 끝내 널 참지 못하고 기억해내고 다시 무너지고
이제는 너 아닌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걸 너로 길들여진 내 맘은~~~
미안해 이럴 수밖에 없는 날 이것밖엔 안 되는 날 용서해 마지막 한 니가 남긴 이 말들을 몇 번이고 되돌려 듣고 있어~~-
베이비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내 몸과 마음을 촉촉이 적셔갔고,
어느샌가 나는 턱을 괸채 지그시 눈을 감고 베이비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때 뚜욱 끊어지는 노래.
...뭐야!!
눈이 번쩍 떠졌고, 다시 책자를 뒤적이는 베이비가 보였다.
“뭐야, 왜 부르다 말아?”
..한참 듣기 좋았는데..
“촌스럽게 누가 끝까지 노래 부르냐?”
“그래도 1절까지는 거의 부르잖아~”
“그래서 난 1절까지 부르기 싫어. 그리고 이 노랜.....지금 내가 제일 싫어하는 노래야.”
..참 이 놈은 싫어하는 것도 많네..
“그럼 부르지 말지 왜 부르냐?”
“노래방에 오면.......짜증나게 이 노래 불러야 해.”
왠지 모르게 어두운 목소리? 나만의 착각일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 불능!
그래, 이화봉.. 한두번이냐! 그냥 넘어가자구!
“너 진짜 노래 잘 부른다, 우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나의 칭찬 한마디에 그새 무표정이었던 얼굴에 살짝이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잘 부른다고 했잖아.”
새초롬하게 휘릭 대답하더니 다시 열심히 노래를 입력하는 베이비.
어찌보면 단순하면서도 귀여운 그 모습에 나까지 미소가 지어졌다.
“뚱땡이, 잘 들어.”
...듣지 말래도 귓구멍 열고 잘 들을 거다!!..
베이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도 전에 앞 반주 부분의 피아노 음율에 나는 반해버렸다!
반주 기계에서 나와서 부족함이 많을 음향인데도 굉장히 은은하면서도 부드럽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곧이어 흘러나오는 베이비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정말 환상적이었다.
길거리나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가수들 노래? 목소리?
나는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나는 지금 일인 콘서트에 와 있는 것이다!
나만을 위해 열리는 콘서트 말이다.
가수는...한승현.
-술에 취해서 담배연기 가득해진 내 방에 잠이 들죠.
잠에서 깨면 다시 눈을 감는 나인 걸요..
오~호~~
오늘만은 제발 눈을 뜨지 말게 해달라 나 기도했죠.
그대를 만나 물어볼 말이 있으니까요.
늦기 전에 그만 돌아가요.
매일 처럼 그렇게 말해야 아나요.
나를 떠나 미안해 할 그대를 내가 아파하도록바라는 건가요.
아직도 나를 모르고 그런 생각하는 거면 괜찮아요.
나도 이젠 그대가 있는 그 곳에 갈 준비가 다 되어가요-
이 노래는 처음 노래보다 더욱더 좋았다!
또다시 두 눈을 감고 감상에 젖어드려 할 때 다시 뚜욱 끊기는 노래.
“뭐야~! 또 왜 꺼!”
나도 모르게 괜시리 신경질을 내버렸다.
눈을 떠보니, 깜짝 놀란 듯 베이비의 두 눈이 휘둥그래져 있었다.
“1절까지 안 부른다고 했잖아.”
“그냥 부르면 덧나냐?”
“뚱땡이 너 왜 신경질 내..”
“내!..가 언제 신경질 냈다고 그래.”
“잘 들으라니까 누가 졸래!”
이번엔 베이비가 살짝이 신경질을 냈다.
존 거 아닌데..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긴 건데..라고 차마 말은 못하고.
“안 잤어! 눈 감고 니 노래 감상한거야. 두 눈을 감으면 청각이 더 예민해져서 엄청 잘 들린대.
그래서 그런 거야~”
“뚱땡이 구라치면 죽는다.”
“근데 이 노래 제목 뭐야?진짜 좋다.”
“니가 알아서 뭐하려고.”
..저 놈이 말해주면 덧나나!..
라더니 베이비는 다시 책자를 뒤적였다.
이번에는 힙합 스타일 팝송이었다.
발라드를 부를 때의 베이비의 모습은 뭐랄까..
굉장히 예쁘면서도 슬프고 고독해 보였는데, 눈감으면서 슬핏 스쳐본 건데도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행히 평소와 같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뭐 듣기에는 신났다.
이번에도 역시 1절이 끝나기도 전에 베이비는 노래를 껐다.
베이비는 그 후 묵묵히 노래를 예약하고 부르고, 1절도 채 부르지 않고 계속 껐다.
이 놈, 아는 노래도 정말 엄청 많았다.
노래들도 다 좋았다.
나는 어떤 행동을 할 필요도 없었고, 어떤 말도 할 필요 없었다.
그저 쇼파에 몸을 편안히 기댄 채, 두눈을 감고 노래 감상을 하는 것 뿐이었다.
베이비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평화로워진다고 해야할까..
긴장감이 풀렸다.
항상 나는 바쁘게 긴장하면서, 틀에 박힌 생활을 반복했다.
이런 어긋남은 절대 없었다, 특히나 아르바이트에 한해서는.
베이비 때문에 나의 그런 고정적인 삶이 약간씩 어긋남이 많았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나에게는 과분한 것들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 보고, 군것질도 하고, 쇼핑도 하는..
그런 단순한 것들이 나에게는 욕심이었다.
얼마만에 이렇게 편안함을 느끼는 것일까..
“야..야, 뚱땡이.”
베이비가 몸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깊은 생각에서 벗어났다.
“왜?”
“마지막 한 곡이야, 같이 불러야지.”
“뭐!”
시계를 보니 어느새 노래방에 들어온지 한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베이비의 노래에 빠져, 깊은 상념에 빠져 시간 가는지도 몰랐다.
“남행 열차 했으니까 같이 불러.”
“싫어!”
“괜찮아, 내가 다 들어줄테니까. 안 부르면........죽는다.”
베이비의 눈이 순간 번뜩했다.
아씨! 진짜 노래 못 부르는데..
베이비가 내 손에 마이크를 쥐어주었다.
“안 부르기만 해봐. ...비 내리는 호남서언~~!! 아싸아싸!”
갑자기 베이비가 꽥꽥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굉장한 그 노래 솜씨는 어디 가고?
“야, 너 뭐야? 왜 그래, 갑자기?”
“부르기나 해!”
다급한 베이비의 목소리에 얼떨결에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가서 덩달아서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빗물은 흐르고오~~~오호오~! 내 눈물도 흐르고..아싸아싸~!”
정말 얼떨결에 나는 노래를 따라 불렀고, 그런 나를 보면서 베이비가 활짝 웃었다.
어느새 베이비와 나는 폴짝폴짝 뛰어대며 마이크에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한쪽엔 마이크를, 한쪽 손에 탬버린을 열심히 흔들어대고 있었다.
마지막 곡이라서 그런지 2절까지 다 불렀다.
드디어 노래방 안이 조용해졌고, 순간 베이비와 눈이 마주친 나.
둘이 갑자기 깔깔대면서 한참을 웃어댔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상쾌함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노래방을 나가면서도 나는 계속 베이비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정해 줄 것은 인정해줘야 하니까.
“너 진짜~~ 노래 잘 부른다! 가수 해도 될 것 같아.
오디션이라도 한번 봐봐.”
“됐어.”
“왜? 너는 진짜 붙을 거라니까! 이 누나가 장담한다!”
“난 사람들 앞에서 뭐 하는 거 싫어. 쪽팔려.”
..쪽..팔려? 니가? 베이비 니가?
낯짝 두꺼운 베이비 너가 쪽팔림을 안다고?
“그럼 난 사람 아니냐?”
“넌 뚱땡이잖아.”
베이비의 무심한 눈동자가 내 얼굴에 박혔다.
...말을 말아야지.
베이비 이 놈이랑 길게 말하면 나만 피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베이비는 지금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릿느릿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난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고.
호리호리한 몸 때문인지 걸어가는 것도 굉장히 가뿐하게 걸어가면서도 뺀들뺀들하게 걸어갔다.
모델처럼 걷는 폼이 꽤나 멋있었다.
베이비의 뒤를 따라가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베이비와 나란히 걸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비 오던 날 담배 사러 갈 때 빼고는, 거의 저렇게 혼자 걸어간 것 같았다.
드디어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고, 눈에 쌍불을 키고 달려들 서희를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 한켠이 답답해졌다.
쉼호흡 좀 내쉬고, 후우~~ 갑자기 베이비가 뒤를 돌아봤다.
“......?”
“야, 뚱땡이.”
“왜?”
“너 음치 아니니까 앞으로 노래 많이 불러라, 알았냐?”
“내가 음치가 아니라고?”
“뚱땡이 넌 단지 노래를 좀 못 부르는 것 뿐이야. 음치는 아니니까 노래 많이 부르라고.”
“그게 음치잖아!”
라고 대답했을 때 베이비는 이미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다리가 기니까 몇 걸음만 걸어도 벌써 저만치 나와 멀어져 있었다.
..저 놈이 지금 날 놀리나.. 음치가 노래 못 부르는 거잖아!
뭐 여하튼 베이비에게 고마웠다.
오랜만에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기분 전환도 좀 하고 나 때문에 마지막에 남행 열차를 부르며 망가져 준 베이비.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역시나 생각대로 두눈에 쌍불을 킨 서희가 후다닥 튀어왔다.
“너 어디 갔다 왔어! 승현인! 승현인 어디있어?”
“승현이 갔는데요?”
태연히 대답했다.
“너 미쳤니? 니 근무 시간 벌써 한시간이나 지났잖아!
너 때문에 나 집에도 못 갔어!”
그 말에 괜히 나한테 되려 화를 내는 서희.
“언니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베.. 아니 승현이가 그런거잖아요.”
지금 나는 생각한다.
나도 의외로 강심장이라고 말이다.
서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두 눈에 더욱더 섬뜻한 빛이 맴돌았다.
“너 지금 말 다했니? 그래서! 그래서 지금 니가 잘했다는 거야!
너 승현이랑 무슨 사이야! 니가 뭔데 감히 우리 승현이랑 나가냐구!
나도 승현이랑 데이트 한번 해본 적 없는데!
니같이 못생기고 뚱뚱한 년이 어떻게 승현이랑 친하냐구!”
드디어 본심이 드러나는 서희.
...니같이 못생기고 뚱뚱한 년이라..
그렇다.
사실이다.
난 못생기고 뚱뚱했다.
그리고 서희는 나보다 키도 크고 날씬했고 얼굴도 예쁘장했다.
그래서...그래서 나는 서희의 그 말에 비참하게도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서 있었다.
도대체 이럴 땐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하고 말이다.
“못생긴 건 너야.”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
서희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고, 뒤를 돌아보니 베이비가 서 있었다.
무표정이었지만, 기분이 꽤나 안좋아보이는 것은 분명했다.
“승현아!”
서희가 후다닥 베이비에게 뛰어갔다.
서희의 손이 베이비의 팔에 닿기도 전에 베이비가 뿌리쳤다.
“저리 가. 난 못생긴 애 싫어해.”
베이비의 말에 서희의 얼굴은 충격으로 굳어졌다.
“지금....승현이 너 지금...나한테 못생겼다고 한거야?
쟤가 아니고..내가..내가 못생겼다구?”
솔직히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서희는 예뻤음 예뻤지 절대 못생긴 얼굴이 아니었다.
서희가 못생긴 얼굴이면 난 뭔데! 내 얼굴은 뭐가 되냐구!
“어. 너 못생겼어.”
태연하게 다시 대답해주는 베이비.
베이비의 저 무심한 눈빛. 무심한 말투.
항상 엉뚱하고 황당하지만 꽤나 귀여우면서도 동화 속 왕자님처럼 예쁜 애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지금 베이비의 모습은 내가 봐도 굉장히 차갑게 느껴졌다.
“승현...아.”
서희의 목소리가 울음에 잠겨 떨리고 있었다.
“너 집에 안 가냐?”
짜증난다는 듯한 베이비의 목소리에 서희가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괜시리 얄미웠던 서희였지만 서럽게 우는 서희의 모습이 굉장히 안쓰럽게 느껴졌다.
..난 너무 착해서 탈이야...
“어떻게..어떻게... 나보다 저런 애랑...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너 때문에 다 참은 건데..”
..저런 애? 저런 애가 어떤 앤데? 내가 어떤 앤데?..
안쓰러웠던 마음 취소! 100% 취소다!
베이비는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듯이 서희를 지나쳐서 과자가 진열되어있는 곳으로 가더니,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과자 코너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런 베이비를 서희는 눈물로 촉촉이 젖은 눈동자로 한번 바라보더니 흐느끼며 편의점을 뛰쳐나갔다.
한숨을 푸욱 내쉰 후, 베이비에게 걸어갔다.
“야, 너무 심한 거 아냐?”
“난 거짓말 안해.”
“아니 뭐 그래도 여잔데 너무 심했잖아. 솔직히 너랑 나랑 잘못했잖아.
그리고 서희 언니....못생긴 얼굴도 아닌데.. 그 정도면 어디 가도 예쁘다고 하잖아..
나에 비하면 서희 언니는 공주지 뭐..”
내 말에 갑자기 베이비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야, 뚱땡이.”
“......?”
“내 눈에 쟨 정말 못생겼고, 넌 단지 뚱땡이일 뿐이야.”
라고 말하더니 초코렛이 함유된 비스켓을 하나 집어들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서희는 못생겼고, 난 뚱뚱하고? 역시나 베이비는 이번에도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받아.”
베이비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십만원짜리 수표였다.
“왜 이걸 나 줘?”
“미리 내는 거야. 살 때마다 일일이 계산하기 귀찮어.
뚱땡이 니가 알아서 잘 계산해, 알았냐?”
“야, 이걸 어떻게 계산해?”
“계산하라면서.
돈 줬으니까 앞으로 나한테 잔소리하지 마, 뚱땡이.”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언제 텄는지 초코 쿠키 하나를 입 안에 쏘옥 넣더니, 편의점에서 나가버렸다.
나는 십만원짜리 수표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정말 알 수 없는 베이비. 베이비는 분명 외계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