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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두고 헤어졌어요..

실연 |2005.06.28 15:33
조회 5,881 |추천 0

3월 말.. D 결혼 정보 회사에서 사람을 소개 받았습니다..

소개 받은 남성 프로필에 거절 의사를 밝혔고, 2~3주 지난 후 같은 남성을 여러번 권해 몇번의 거절과 담당 매니저님의 설득으로 4월 말 만남을 가졌습니다..

담당 매니저님이 잡은 시간대가 서로 맞질 않아 상대 남성이 전화로 연락을 주고 받기로 하였습니다..

전화 통화후 만나기로 한 날이 뒤로 미루어짐에 전 다른 약속을 잡았는데, 갑자기 당장 만나고 싶다면서 근처에 왔으니 나오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원래 잡은 약속 날짜를 번복하다 보니 친구에게 전후 사정을 말한 뒤 양해를 얻어 만남을 가졌습니다..

처음 봤을 때..

서로 아무 감정이 없었습니다.. 식사하고 영화 보고 집까지 데려다 주고..

그냥 그게 다였습니다..

처음부터 싫은 자리였고, 교제중인 분이 있었고, 부모님이 원하시는 분도 아니었고, 여러가지 이유에서 좋은 감정이 아닌 별로 할 일이 없었기에 그냥 나간 자리였습니다..

서로의 집이 끝에서 끝인 관계로 전 잘 들어갔는 지 당일날 안부 전화를 했고, 그 전화에 그 사람은 제 성격(적극적)이 맘에 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35살의 미혼입니다.. 흔히 노처녀라 하죠..

독신은 아니지만, 결혼 생각이 없었고, 주어진 축복이 많아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었어요..

굉장히 보수적이고, 조선시대 사고를 가졌습니다.. 천연 기념물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개방적이면서 제 자신에겐 보수적이고, 깐깐했습니다..

주변분들은 착하고, 온순, 온화, 차분, 귀엽고, 싹싹하고  애교 많고, 사랑스럽다고 합니다..

순수하고 순진하며, 단아하고 여성스러운 성격과 말투, 외모, 당돌함면도 있지만, 그게 오히려 귀엽다고 합니다.. 솔직 담백하고.. 상대가 상처 받을 까 미안해서 싫은 소리 못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잘 믿고 잘 따릅니다..

이런 이미지로 인해 주변분들이 많이 예뻐해 주셨고, 아껴주셨습니다.. 남자친구도 있던 적 있었고, 몇번 만남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스킵쉽과 애정표현이 지나치면 단칼에 결별했고, 스킵쉽 좋아하지만 지나친 표현이나 몸싸움은 싫어했고, 설득하는 걸 못했고, 어떻게 거절하는 지도 몰라 지나치다 싶으면 결별했습니다.. 결혼하잔 말 나오면 몸 사려 이별했습니다.. 어떤 이유에선 지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만남까진 좋은 데 결혼을 생각하면 싫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근심을 드렸고요.. 그러다 작년 여름에 문득 결혼이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살림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스킨쉽과 애정 표현 맘껏 할 수 있고,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고, 아침마다 배웅하며,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산책도 하고 싶었고, 걱정도 하고 싶었고, 싫은 거 좋은 거 같이 겪어 보고 싶었고, 작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싶었고, 소중함도 만들고 싶었고, 남편 그늘에서 재롱 떨어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내조를 하며 아이들 잘 키우고, 살림하며, 알콩 달콩 살아 보고 싶었습니다..

전 제가 늦은 결혼과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기에 상대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았습니다.. 저도 부족함이 많은 데 상대 남성에게 이것 저것 따지는 게 오히려 미안했습니다..

폭넓게 수용을 했고, 제가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적극적으로 만남을 가졌는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특별히 원하는 이상형이 있거나 경험이 많은 게 아니라서 3번 만남을 가지면 다들 결혼을 하고 싶어 했고, 전 거기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연애도 오래 하고 싶었고, 사랑이라는 감정도 느끼고 싶었는데, 도무지 감정을 못 느끼겠습니다.. 그러니 상대 남성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35살의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함에.. 그래서 생각한 끝에 정보 회사에 가입을 했고 4월에 만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39살의 아이가 둘인 재혼이었습니다..

전처가 아이들 버렸고, 재판을 거쳐 지칠 대로 지친 상처를 많이 받은 분이었습니다..

저희 집에서 반대하는 이유가 아이가 있고, 이혼남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오히려 그 점이 맘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반대하는 이윤 종교가 다르다는 거고..

 

처음 만남을 가진 화요일..

서로에게 이런 점 때문에 - 그 사람은 제가 초혼이라는 점과 '초혼인데 왜 재혼 자릴 할까' 라는 의구심에 거절을 했고, 전 종교가 달라 거절했다는 점 - 분명히 말씀드렸는 데 첫 만남을 가진 뒤 그 사람은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위에 열거한 거처럼 그런 점들로 인해..

그 사람의 이상형은 귀엽고 착한 여자였는데 제가 그런 여자였데요..

귀엽고 착하고, 애교 많아 놓치기 싫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 종교가 달라 고민 중이었고,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두번째 만남.. 목요일

전 개인적으로 15년째 자원 봉사하는 게 있습니다..

정신지체아들을 가르치며, 독거 노인들 방문하여 말벗과 식사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그 날은 정신 지체아들에게 사회 적응이라는 교육을 받던 날이었습니다..

일년에 한번씩 교육 받는 게 있는 데 그 사람 직장 근처에서 교육 받고 있었고, 통화를 하면서 자연히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두번 째 만남이었습니다..

교육 받다 갑자기 나오라는 말에 마치자 마자 나갔지만, 그래도 약속 시간 보다 늦었습니다.. 장소도 애매했고, 늦은 시간에 만남을 가졌고, 그날 저에 대해 궁금한 점과 의구심에 대해 물었습니다..

원래 친절한 건지 자기한테만 그러는 건지, 차분한 음성에 웃는 얼굴이 늘 그런 건지.. 가족들과 환경들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 넉넉한 환경에 가정교육을 잘 받은 참한 여자네요".. 하더군요..

자신의 가족들, 전처, 아이들 얘길 해 주면서 제 의견을 묻고, 전 답하고.. 그러다 제가 호칭 정리가 안되어 쩔쩔매다 그 사람에게 "오빠"라 해도 되냐고 물은 뒤 호칭이 오빠가 되었습니다..

 

세번째 만남.. 금요일

퇴근이라면서 늦은 시간에 통화를 했습니다..

퇴근 후 집(강북)에 가는 중이라면서.. 늦은 시간이었고, 전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였습니다..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 받다 또 그 사람.. 지금 당장 나와라.. 집(강남) 근처이다..

그렇게 해서 세번 째 만남..

남산 타워에서 서울시 야경을 바라 보다 제가 장난 삼아 한 말에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집에서 미는 분에게 전화가 왔고, 그 사람 저희 집에서 반대하는 걸 알고 있었고, 다른 분과 통화를 하는 거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리곤 다짜 고짜 키스를 한 후,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 우리 아이들 엄마가 되어 줘.. 아이들 잘 키워 줘.. " 하면서..

프로포즈를 하면서 잠자리를 원했고, 전 거절을 했고, 각자 집으로 돌아오면서 서먹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무일 없다는 듯 통화를 했고 만남을 가지면서 몸 싸움..

 

전 헤어질 결심으로 만난 지 일주일만에 제 생각에 대해 말씀드렸고, 그 부분 수용한 듯 싶더니 아니었고, 끌려 간 곳이 인천 어느 모텔..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피곤함에 지쳐 쉬고 싶었고, 관계가 아닌 잠시만 쉬자는 말에 생각 해 보니 괜찮을 듯 해서 그렇게 하자 해서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제가 양치질 하고 나온 사이 그 사람은 벗고 있었고, 너무 놀라서 발버둥 치며 제가 소리 소리 지름에 그 사람 놀라 그냥 그 곳을 빠져 나오면서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심한 몸싸움으로 온 몸이 아프고 놀란 전 몸져 눕게 되었고, 그 사람은 제게 천송이 장미를 보냈습니다.. 제가 떠날 까 두려웠고, 미안한 마음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년 만년 살자는 말과 영화 제목으로 보냈습니다..

장미를 준 날 집에서 반대하는 사람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전 거짓말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고, 두려웠습니다..

 

5월5일 어린이 날..

그 사람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일찍 만나기로 했지만 제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약속 시간보다 늦었습니다..

처음 만남을 가졌지만, 아이들이 잘 따랐고, 그 사람은 큰 아이의 반응에 많이 좋아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E마트에 가서 장난감을 사 주며, 여느 가족들처럼 보냈습니다..

작은 아이는 제 손을 꼭 잡고, 큰 아이는 첨에 거리를 두다 제게 안기며,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그 사람은 큰 아이의 반응에 놀랬고 행복해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도 말했듯이 아이들이 절 싫어하면 전 맘 접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도 좋아해서 그 사람은 행복했고 제게 참 고마워 했습니다.. 그 사람이 우려한 점들이 나타나지 않았고, 생각보다 잘 어울려 모두가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작은 아이를 등에 업고 잠을 재우는 모습에 그 사람은 감동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제게 감동했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  자주 했고, 길거리나 이번트를 빌어 자주 표현을 했고 자신의 그런 행동에 대해 놀래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는 말.. 행동들... 에 대해서.. 생각들에 대해서.. 감동 받아 늘 안아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제게 그러더군요..

"아.. 우리 아빠가 맨날 웃는 이유가 아줌마였구나.. 아빠 여자 친구죠?"

그 사람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은 태어나 그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는데 행복했고 웃었고, 그런 모습들이 주변에 눈에 띄면서 절 자랑하고 다녔고, 만남을 기다렸다 합니다..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면서 살 의미가 생겼고, 존재 이유가 생겼다고 합니다..

입주 도우미 할머님이 그 사람에게 " 큰 아이가 아빠가 턱이 빠진 것 같아.. 작은 아이는 그 아줌마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라고 했답니다..

입주 도우미 할머님도 절 좋게 보셨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요..

그러니 그 사람은 너무도 행복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제 얘길 하면 꽉 잡으라고 했다 합니다..

전 헤어질 생각이었다가 그 사람 아이들 보면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도 "당신의 그 무겁고 힘든 거.. 지금부턴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받아 온 축복과 사랑 당신과 아이들에게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당신이 하고 싶었던 거 맘껏 하시면서 누리고 싶은 거 누리세요.. 제가 힘 닿는대로 도와 드리겠습니다.. 평생 섬기며, 사랑하겠습니다.. 부족함 많지만, 고생 모르고 자랐지만, 엄마랑 언니를 본받으며, 노력하겠습니다..저 혼자는 힘듭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도와 준다면 당신의 힘듦을 짊어질 수 있습니다.." 라고

 

집에다 그 사람 얘길 흘렸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반대가 심했고, 난리였습니다..

그 사람이 어버이날  부모님께 백송이 장미를 보내면서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카드로 인해 전 부모님 몰래 그 사람 만난 게 들통이 나 많이 혼났습니다..

그리고 전 결혼을 내년 쯤으로 생각했고 그 사람은 지금 당장 합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다 잠자리로 인해 그 사람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저도 빠르게 진행 시키고자 했고.. 집에서 밀어 주는 분껜 말씀을 드렸고, 그 분 상처 많이 받아 아주 힘들어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설득보단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저의 단점과 그 사람의 장점, 문제점들을 말씀드리면서 말씀드렸습니다..

부모님이 반대하시면 결혼 안하겠다는 생각과 왜 도움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 사람만 판단 해 주세요.. 아니다 싶으면 맘 접겠습니다.. 그 사람의 상황, 환경 어쩔 수 없잖아요.. 그 사람도 많이 힘들고 고생했어요.. 아이들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잘 키웠잖아요..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 온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가족들 도움 없인 안되요...

왜냐하면 제가 힘들어 지칠 땐 냉정하게 야단칠테고, 혹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잘못했을 땐 바로 잡아 주실 수 있잖아요.. 전 절 믿어 달라는 게 아니라 가족들 믿기에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요.. 이젠 상처가 아닌 행복과 상처 받은 맘 치유해 드리고 싶어요.. 제 아이 포기하겠습니다.. 제가 아일 낳게 되면 혹시 그 사람 아이들과 편견 없이 키울 자신 없습니다.. 결혼식도 아이들 장래를 위해 가족 상견례식으로 간소하게 하고 싶습니다.. - 라고..

아무 말씀 없으시던 부모님께서 마음을 여셨고, 제게 당부했습니다..

그 사람 가족들도 알게 되었고, 큰 아이가 적극적이라는 말에 모두 반기셨습니다..

 

5월 10일 사고를 쳤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떠날 까 늘 두려워 했고, 저와 그 사람 서로에게 사랑의 확신을 원하게 되었지만 그 사람은 잠자리였고, 전 마음이었습니다..

늘 그 사람은 물질적으로 채우려 했습니다.. 비싼 선물.. 학교에서 주었다면서 준 상품권.. 맛 있는 곳 찾아 같이 갔고, 뭐든지 아낌없이 주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어리석은 것 같아요.. 그냥 그 사람 방식이었는데.. 그걸 미처 파악을 못한 제가 참 미안합니다..

전 물질보단 확신이 필요했는데 그 사람은 그게 확신이었던 거 같았습니다..

그러다 사고를 쳤고, 궁합을 보게 되었는데 천생연분으로 나왔습니다.. 속궁합 겉궁합 상중의 상이라.. 합니다.. 그 날 이후로 그 사람은 절 자기 여자, 와이프, 자기 소유라 말을 했고,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대화, 만남을 가졌고, 저의 모든 것들을 알고 싶어 했고 관리하려 했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저랑 잠자리 갖고 난 3일 후 소개해 준 곳에 다른 여성과의 만남을 신청했더군요.. 그런데 그 사람이 취소를 했데요.. 이윤 제가 너무 착하고 해 맑아서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데요..

그 사람 빚이 많았습니다..

2억 정도 되었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소유가 아닌 월세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여자로 만들고 나서 말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걸 말하면 제가 떠날 까봐..

조금씩 드러난 성격들, 거짓말.. 혼란스러웠지만 아이들과 잠자리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3년만 고생하면 빚 다 갚을 수 있고, 2년 후엔 엄지 손톱만한 다이아 반지랑 10년 후엔 빌딩이나 호텔을 선물할 것이고, 20년 후엔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의 총장이 될께..

라는 말을 하는데 제 계산으론 그게 불가능한데 그 사람이 그렇다 해서 반박도 못하고 전 "네" 라고 하면서 이리 저리 머릴 굴렸습니다.. 어떻게 절약을 해서 부채가 더 늘어 나지 않고, 빠른 시일에 갚을 수 있을 까라는 게 온통 머리 속에서 떠나 질 않아요.. 말과 다르게 너무도 씀씀이가 헤프고, 기 안 죽이면서 어떻게 지혜롭게 할 까란 생각을 하다 어느 날 전처가 썼던 살림 살이와 가구들 그대로 써야 한다는 말에 전 상처를 받았습니다..

 

부채랑 월세는 제가 어떻게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작지만 제 소유로 강남에 아파트가 있고, 그 사람 수입이랑 제가 비슷한 수준이었고,

제가 알뜰하게 살림한다면 부채는 해결할 것 같아 아무 걱정이 안됐습니다..

그런데 방법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런 것들로 인해 사고가 다르다는 점 때문에 갈등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고생을 해 본 적이 없어 한쪽에선 겁도 났고, 그리고 전 신혼인데 다 쓰던 걸 써야 한다는 말에 가슴이 아펐습니다.. 그러다 집에서 그 사람을 보겠다고 하셨고, 양쪽집에서 허락을 하셨고, 저희 집에선 맏사위로서 대접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사람 사회적 지위가 있으니 부족함 없이  해 주고 싶다 해서 결혼 준비를 그렇게 했습니다.. 다른 건 몰라두 아이들과 그 사람에게 부족함 없이 해 주고 싶었고, 전 상관없었습니다.. 부모님들께 상처를 주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그 사람을 선택했는데 ..

 

5월말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일사 천리로 진행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부모님께 "너무나 착하고 순수해서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마음 고생 안 시키겠습니다.. " 라고 하더군요..

 

그 사람 집에선 제가 복덩이였고, 그 사람 역시 절 복덩이라고 했고, 자신이 늦게 나마 여복이 있다고 말하며, 행복해 했습니다.. 그 사람 집에선 그 사람 신뢰가 바닥이었습니다.. 전처랑 결혼하기까지의 전후 사정을 그 사람을 통해 들었고, 그땐 집에서 반대했는데 지금은 모든 가족들이 절 좋아했고, 그 사람 누님은 넌(그 사람) 제(절 뜻함) 싹싹함에 반했다 치고, 넌(절 뜻함) 뭘 보고 좋아하냐고 묻기에.. 전 아이들이 있어 좋아요..라고 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저의 싹싹함과 생글거림과 성격 모든 것들이 좋았다고 했고, 저도 처음이지만 잘 어울림에 그 사람과 부모님, 형제들이 좋아했어요.. 그리고 제 개인적 생각을 들으시고 더 흡족해 하셨고요..

그 사람 제게 늘 잡혀 살거고 너 없인 아무 것도 안 된다며.. 다른 사람들이 인정 안하고 부끄러워하는 것들을 전 너무도 따뜻하게 감싸 주었고, 그게 선택하게 된 이유라 말했던 제게 감동 받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맞아 주고 간식과 식사 챙겨 주고 잠자리 봐 주며, 나들이 갈때도 그렇고 같이 있으면 너무도 다정함과 연인들끼리 문자 주고 받는 게 부러웠는데 제가 그걸 해 줘서 이젠 남들이 자길 부러워하고 다른 여자들은 만남을 가질 때 보채고 요구하는 것들이 많았는데 전 바라는 것도 요구하는 것도 없이 자길 감싸 주어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결혼 날짜도 잡았고.. 행복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힘들었지만 그 사람 상처 받을 까 걱정 되어 조심했습니다..

 

제가 걱정되었던 점은 전 부모님 덕에 부유하게 자랐지만 저희 형제들은 대학때부턴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철저하게 교육받았습니다.. 집에 도우미가 계셔도 어른들이 부리는 도우미였고, 저흰 각자 방과 간단한 속옷들, 식사는 직접 해결해야 했고, 알뜰함과 부지런함, 신앙을 물려주신다는 부모님 생각에 저흰 그렇게 성장을 했습니다.. 한번도 부모님께 손을 내밀거나 남을 해하는 일 하면 부모님 얼굴에 먹칠하는 거라 참 신중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저와 잠
자리 하기 전에 자신의 처지를 먼저 말한 후 잠자리를 가져야 했는데.. 라는 점과 제가 맘이 바뀌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순서였는데.. 하고 생각하니 참 맘이 아펐습니다.. 그리고 겁났
습니다.. 제 앞가림만 할 줄 알고 고생도 모르고 자랐기에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허황된 사고, 헤픈 씀씀이, 하나 둘씩 나오면서 더 겁났습니다.. 저랑 경제 개념이 달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고, 부모님께 그 사람 흠 잡힐 까 노심 초사하면서 이리 저리 감싸느라 힘들었고, 일에 지치고 부모님과 그 사람 사이에 힘들었습니다.. 양가에 허락을 받은 상태라 부모님께 말씀 드리지도 못하고 혼자 맘 고생했고요.. 그 사람이 결혼을 서둘렀고, 그 날 이후론 잠자리는 필수더군요..  사랑의 확신으로 한번만 잠자리 갖고 결혼 때까지만 참기로 한 약속을 자꾸 깹니다.. 그래서 생기는 죄책감,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게 하는 것도 싫었고, 죄를 짓는 것도 싫었습니다..

결혼이 진행되면서 그 사람이 전업 주부를 요구해 한달 전부터 사직서를 쓰라고 닥달하
고, 약간의 의처증 증세도 있어 제가 바깥일 하는 걸 싫어하고, 봉사하는 것도 싫어했습니
다.. 그 사람 소위 말하는 일류대 교수입니다.. 전처는 의사였는데 아이들 버리고 가출했고
요.. 전처랑 결혼하기까지의 전후 사정을 그 사람을 통해 들었고, 전 직장에 사직서를 썼고 그 사람이나 저희 집에서 아직 아이들이 어리고 그 동안 정에 굶주렸다고 살림만을 원했기에 저 또한 살림하는 걸 좋아해서 미련없이 사표를 냈습니다..

지금 독립해서 살고 있는 제집도 다른 사람이 7월부터 들어와 살기로 했고, 결혼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에서 6월18일 토요일..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제가 만나기로 한 약속을 깨뜨린 게 이유입니다..

6월12일 그 사람 부모님 댁에 다녀온 후 전 몇일 밤을 샜기에 지쳐 쓰려져 잤고, 그 사람이 잠자릴 요구했지만 제가 힘들다고 거절하며, 월요일 만나기로 했고, 월요일 약속을 했는데 그 사람으로 인해 저희 부모님께 거짓말이 들통나 혼나느라 약속을 못 지켰고, 화요일 만나기로 한 게 그 사람은 저녁회식이 있고, 전 친구 엄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가야 했기에 피차 미루게 되었고, 수요일엔 제가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서 피곤하여 일찍 쉬고 싶었고, 늦게 끝나는 게 힘들어서 목요일날 만나기로 한 걸 제가 어겼습니다..

목요일 직접 제가 아이들 등교 시킨 후, 그 사람과 같이 하루 종일 보내기로 했는데 하루 계
획이 8시에 아이들 등교 시킨 후, 모텔에 가서 아침부터 잠자리를 하는 게 가슴이 아펐고,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하루 사라지고 싶었어요.. 그 사람이 절 다독여 주며, 조금은 혼날 거 각오했지만, 그래도 애간장이 타서 더 반가워 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반나절 전화를 꺼 놓고 다른 데 갔었습니다.. 그리곤 늦은 오후에 전화를 했는데 제 생각과는 달리 그 동안의 학습효과로 인해 제가 신뢰를 깼다면서 시간을 갖고 감정 정리 하자고 하더라구요.. 결혼이 코 앞인데.. 그리곤 헤어지자는 통보를 하더군요.. 제가 잘못을 했슴에도 너무 당당해서 제 당돌함에 놀랬데요..

사랑하는 사이면 헤어질 때 안타깝고 같이 있고 싶고, 그렇다는데 전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자꾸 그 사람이 노처녀 구해 주는 기사도 정신..운운하면서 절 구제하는 거처럼 말하는 것도 싫었고, 자신은 로또 복권이고, 전 땡 잡은 거라 하는데 그러한 말들이 자꾸 가슴에 담게 되면서 그냥 무서웠습니다.. 자꾸 잠자릴 원하는 것도 무서웠고, 그를 생산적인 일을 하게 하고 싶었고, 아침부터 그러는 게 마음에 걸렸고, 늘 죄책감과 수치스러움과 피곤함에 지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아이들 챙겨 주러 퇴근 후 들리면 꼭 12시가 넘었고, 집에 오면 새벽 한시, 씻고 모하다 보면 두시입니다.. 두집 살림을 하며, 퇴근후 한시간 거리에 지치고 가서 저녁 하고, 씻기고 아이들 재우고 나면 그 사람이 퇴근해서 오고, 그러다 그 사람이 같이 있어 달라 해서 새벽녁까지 있다 보면 전 잠이 모자라 가끔 주차장이나 갓길에서 새우잠자고.. 그러다 문득 깨면 새벽4시쯤 그 때 집에 들어와 두어 시간 자면 출근..
야근을 할 땐 더 힘들고 지치구.. 봉사가 있는 날이면 새벽5시부터 아이들과 놀다 보면, 지치거든요.. 그래두 행복했습니다.. 모두 행복해 했고, 다들 예전의 그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 받고 싶던지 3명이 저를 두고 쟁탈전을 벌일 땐 너무 행복했습니다..
용납하고 희생하면 각자 받은 마음의 상처 아물수 있겠지.. 그리고 늘 겸손하게 그 사람 섬기며 그 힘듦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도 버틸 수 있는 힘이었고요..
애교를 떨면서 거절했는데.. 그게 헤어지는 이유랍니다..
학습효과로 인한 저와의 미래에 대한 불신이 들더랍니다.. 그리고 성격이 안 맞는다고 하
면서..성격이 좋아서 이상형이라서 잠자리도 만족한다고 하고, 다 좋다고 하다 뜬금없이
왜 헤어지자고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작은아이는 언제부턴가 제 가슴을 만지며, 잠드는 버릇이 생겼고요..
큰아이는 꼭 책을 두권 정도 읽어 줘야 잠이 들고, 제가 만든 음식들만 먹기 시작하고..
맨날 엄마랑(저) 살고 싶어요..했거든요..
저희 부모님댁에도 몇번 가서 놀고 조카들과 잘 놀며, 할아버지, 할머니라 부릅니다..
친가쪽보다 몇번 간 저희집을 더 좋아합니다..

모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 지.. 그리고 결혼에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
다.. 늘 만나면서 '여보'라 했고, 제가 '만약에' 란 말을 쓰면 정정을 했고, 꼭 결혼을 할거라 딴 생각 못하게 했고, 제가 한번 흔들림(경제관념)이 있을 때 매달리고 붙들던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대학 교수들에게 와이프라 소개를 하면서 예전과 달리 그 사람이 더 적극적이며, 결혼 못할까봐 노심 초사했던 그가 왜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는 지.. 중간에 다투거나 힘듦이 있었다면 짐작은 하겠지만 영문도 모르고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은 지금..

참.. 눈물만 나옵니다..

전처랑도 6개월 동거 후 결혼을 했는데 동거하면서 결혼하기 싫어 발버둥 쳤는데 전처가 헌여자 새여자.. 운운하면서 자길 발목 잡았다 하여 억지로 한 결혼이라 했습니다..
지금 제 경우랑 같은 거 같습니다.. 기간만 다를 뿐.. 그리고 전처랑 이혼할 때도 전처가 가출했기에 아이들은 이 사람이 맡게 되었고, 자신에게 그때도 부채가 있어 위자료는 주지 못했다 합니다.. 전처는 면접 교섭권도 포기했던 것 같고..

 

얼마전 집에서 알게 되어 저랑 그 사람 앉혀 놓고 야단 맞았습니다..

그 때 제가 부모님께 맞았는데 그 사람 그냥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곤 그 사람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고 힘들지만 제가 벌인 일이라 죽어도 싫다합니다..
이 사람 저보고 고소를 하더라도 자긴 위자료 줄 수 있는 형편이 안되고 이젠 신뢰가 깨져 같이 결혼하기도 싫다 합니다.. (신뢰란 아이들을 잘 키우지 못할 것 같답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는 자기가 첫남자였던 것도 의심이 된다고 합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너무 화가 납니다.. 처음에 그 사람이 잠자리에 집착을 하고 저 떠날까 두려워 하기에 제가 처녀란 증명만 하면 될 줄 알고 제가 병원 가서 처녀막 확인 진단서 같은 걸 떼서 준다 했는데 그 사람이 거부를 하면서 강제로 했거든요..

7월부턴 오고 갈데도 일도 없는 그런 생활이 됩니다.. 직장도 그만 두었고, 집도 내 놓은 형편이라 막막합니다..
반대하는 결혼을 설득해서 간신히 날 잡아 행복할 때 이런일이 터진 게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날까지 다 받은 상태라 제가 너무 교만했을까요? 제가 감당할 몫이 아니었을까요? 아님 남들이 모르는 제가 이상한 성격을 가진 걸까요?

저 어떻게 해요? 한숨만 나옵니다.. 대학교수에게 어떻게 결혼사기를 당하는지.. 

가족 모두에게 상처를 주면서 허락 받은 거라 더 가슴이 아퍼요.. 제가 부모님 속인 것도 알게 되었고, 쫒겨났습니다.. 그 사람 인정 받게 하려고 했던 게 결국엔 부모님을 속이고 제가 창녀 같아요..

월욜 오후에..
아이들과 통화를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일요일날 아침에 아빠에게 "엄마 언제와?"하고 물으니 "이젠 안 올거니까
기다리지 마..그리고 다른 좋은 엄마 찾자.." 라고 하더랍니다..
아이들이 묻더라구요.. 그리고 울어요.. 그렇게 하지 말라구.. 저랑 같이 살고 싶다면서..
제가 할 말은 없고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할말을 잃었습니다..
제가 약속 취소한 게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지..
아이들에게 두번이나 못을 박게 되었잖아요..

전처가 아이들 버림으로 큰 아이는 엄마란 이미지가 자길 버리고 간 사람이기에 저 보고 처음에 "아줌마가 엄마였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되면 자길 버릴 것 같아요.."라고 했던 게 떠오릅니다.. 큰아이는 정서적으로 불안해요.. 많은 사랑으로 감싸려고 했는데 해 보지도 못하고 접어야 하는 게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전 아이들 위해서라면 그 사람에게 손이 발이 될 정도로 빌겠는데 어떻게 하면 그 사람 맘이 풀리는 지 아님 진짜 이유가 뭔지.. 궁금해요.. 저희 집에선 양심상 다른 데 시집 못 보낸 답니다.. 저 또한 양심상 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그리고 제 35년 삶이 무너졌어요.. 생활.. 집.. 가족들.. 다 잃고.. 가치관.. 정신적, 심리적, 육체 다 황폐해지고,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그 사람이 자신이 했던 말들은 제가 잘못을 안 했을 때만 유효한 거래요..

그리고 자기가 저 때문에 받은 충격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약없이 기다리래요..

 

뼈 마디 마디 아프고 저리고 아이들이 눈에 선하고 너무 보고 싶어 잠을 이루지도 못합니다.. 혼인 빙자 간음죄로 고소를 하고 싶어도 그 아이들 뭘 먹고 살지도 걱정이고, 또 상처 받을까봐 걱정이고, 부모님께 상처 드려 걱정이고, 그렇다고 혼자 짐어지기엔 너무 커 죽을 만큼 아픕니다..

제 주변이나 친척들 사돈댁과 친분이 있는 분들은 다 제가 결혼하는 줄 알고 계십니다..

죽고 싶지만 부모님들 가슴에 못 박을 순 없고.. 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냥 저희 집에선 죽어도 그 사람 집에서 죽고 살아도 그 사람 집에서 살라 하는데 어떻게 해요.. 그냥 너무 억울하고 분해요.. 그렇게 나쁜 사람인 줄 몰랐는데.. 말을 믿었는데...

당장 먹고 살 길도 막막하고 갈 데도 없고.. 저희 가족들은 저 더럽다고 상종을 안하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혈질이고, 공격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그 사람..

대인 관계에서도 무조건 어려운 일 겪게 되면 배 째..라는 식인데..

지금도 솔직히 그 사람 원망 보단 아이들 생각에 부모님 가슴에 못 박았단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그냥 그 사람 시험하려 들지 말고 그냥 저 혼자 참았으면.. 하는 생각..

저 어떻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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