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38. 성서의 도시 에페스

투덜이 |2005.06.28 23:24
조회 655 |추천 0

트로이에서 이즈밀로 가려고 버스표 사러 갔더니 사람들 얘기가,  이즈밀은 상업화된 대 도시라

씨끌 벅적한거 좋아하지 않거나 쇼핑에 별 관심없는 나같은 여행자는 흥미를 느낄만한 것이 별로

없을거 같다고 한다.   이럴땐 왕 귀 얇은 나…   그렇담 일정도 타이트한데 그냥 셀축에 가서

에페스나 보자 싶어 즉흥적으로 셀축행 버스를 탔다.

 

셀축 오토갸르(=고속버스 터미날)에 내리니…  20살이나 됬을까 싶은, 영리하게 생긴 젊은 오빠가

날 따라 붙으면서 자기 가족이 운영하는 싸고 깨끗하고 좋은 호텔 있으니 함 보고 맘에 안 들면 굳이

잡지 않는다고 꼬신다.

 

"어딘데? 멀면 안 가… "  그랬더니 바로 옆이라면서 내 짐을 냉큼 잡아든다.   뭐…바로 옆은 아니

였지만 그다지 멀진 않았고,  말 한대로 뭐, 럭셔리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깨끗하고 비수기라 가격도

비싸지 않게 부른다.  그 호텔(말이 호텔이지 모텔 수준...) 삐끼는 자기 엄마라고 어떤 터키 아줌마를

소개하며, 그 아줌마가 아침을 챙겨 줄거라고 하고, 자기 형, 삼촌, 사촌 등등을 줄줄이 읇어대며 호텔

사람들을 소개 해 줬다.

 

눈치빠른 사람들은 벌써 짐작 했을거다.  이 “family run” 이란 게… 순 사기 뻥이다.  그녀석이 소개해

준 엄마나 형제, 삼촌, 사촌 그 누구도 하나도 닮지 않았을 뿐더러 그 삐끼와 주인 같아 보이는(자기

삼촌이라고 불렀다) 내 나이 정도 되 보이는 터키인 외에는 아무도 영어를 하지 못하니, 사실 뻥을 좀

쳤더라도 별로 탄로날 일은 없다. 

 

첨부터 쩜 이상하다고 생각 했지만, 쉬린제에서 과잉친철맨 레반에게 얻은 그 많은 과일을 처분하기

위해 로비에 몽땅 풀어 놓은 인연으로 그 삐끼와 이얘기 저얘기 하는 중에 내게 솔직히 털어 놓는데,

그들은 전부 호텔에 고용인들이고, 자기도 너무 가난한 집안출신이라 학교도 못 다녔지만 어릴때

부터 관광객들을 따라다니며 배운 영어로 외국인 상대로 삐끼를 하며 고향의 많은 가족을 먹여 살린다고 했다.

 

암튼,  애석하게도 난 기독교 신자가 아닌 관계로 에페스에 대한 기초 상식이 거의 없었다.  다만,

에페스를 소개한 책자를 뒤적거리다 보니 사도 요한이 여기 에페스에서 돌아가셨다고 하고, 기독교

전파에 중요한 역활을 한 인물과 교회가 에페스에 있었으며, 성경의 에베소서는 바로 에페스에서

쓰여진 것 이라고 한다.   때문에 에페스엔 기독교 성지 순례를 위해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이고,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라 에페스 안에는 그 지방 터키 교민들이 한국에서 온 기독교 성지

순례 단체 관광객들을 위해 한글로 에페스의 개략사에 관한 안내판을 하나 세워 놓아 무지 반가왔다.

 

내가 좀 종교에 알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페스는 너무 멋졌다.   사람들 마다 기호가 틀리지만

내 경우, 난 역사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마치 고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고대 도시 에페스에 들어서는

순간 정말 흥분으로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렇게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대 도시를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다니... 믿기지 않았다... (물론, 이땐 내가 터키와서 얼마 안 됬을때 였고, 셀축은 이스탄불 -

챠낙칼레 다음으로 내가 들른곳 이었으므로 그때 내가 받은 감동은 이루 말로 다 할수 없었다... 

물론, 그 이후에 터키엔 이정도 유적지가 쌔고 쎘다는걸 알았지만...)

 

에페스는 이오니안이 이주해서 살던 고대 도시로, 페르시아와 알렉산더의 지배를 받다 로마제국의

무역 도시로 번성했었다고 한다.(이 모든 일이 기원전에 몽땅 벌어 졌다는 사실!)   그래서 지금의

에페스는 고대 로마 도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고대 로마도시에 절대 빠지지 않는 원형

극장,  고대 광장이라고 해야 할까 ?  고대 아고라와 그 유명한 고대 셀주크 도서관, 여러 신전들,

헤라크레스 게이트, 고대 저택들과 공중화장실과 고대 로마나 그리스에서 유래했음직한 아름다운

모자이크들....  아직도 내 눈에 선 하다....

 

 

 

 

에페스는 셀축 시내에서 차로 한 10-15 분쯤 떨어져 있나 ?  보통 호텔에선 에페스에 가려는 관광객

들을 여기 저기서 모아 에페스 입구에 떨궈 주면 관광을 마치고 반대편 게이트로 나온 관광객들은

거기서 부터 걸어서 셀축 시내로 돌아가라고 한다.   가깝진 않지만 못 걸어갈 만큼 멀지도 않고,

대부분 쬐끔 걷다보면 친절한 터키인들이 차를 세우고 셀축 시내 가냐고 묻고는 시내까지 태워주는

경우가 많다.   나도 어떤 터키 아저씨가 아들같아 보이는 남자와 차를 타고 가다가 조수석에서

내리더니 나보고 셀축 시내 가는 길이면 타란다.   운전하는 애랑 부자지간인거 같아 탈까 말까

망설이다 탔는데, 알고보니 내가 아버지로 알았던 사람도 나처럼 차를 얻어 탄 사람이었다 ! 

근데 마치 차 주인처럼 운전하는 애 한테 이래라 저래라 막 부리두만...  그 아이가 착한 젊은애

였거나 아마도 무슬림 율법이 엄격해 윗사람에게 깍뜻하지 않나 싶다.

 

셀축 시내엔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빼먹지 알고 꼭 가보라"는 셀축 박물관이 있다.  에페스의 몇몇

주요 유적 역시 여기 셀축 박물관에 전시되 있는데,  내 흥미를 끈 것을 다름아닌 특별 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던 Gladiator 관 이었다.

 

에페스에 원형 경기장에선 수 많은 검투 시함이 벌어졌고, 검투는 에페스의 고대 로마인들에게 굉장한

쇼 비지니스였던것 같다.   여러가지 이유로 검투사가 됬겠지만, 검투사 양성 학교부터 검투사로

데뷰하고 성공해 신분상승하고 등등... 내가 Gladiator 영화를 보지 않아 남들 다 아는 사실에 이제사

알게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무척 흥미 진진했다.

 

몇가지 소개 하자면, 검투사는(당시엔 검투 노예였겠지?) 무기별로 특화시킨 검투사를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에 맞게 양성했다고 한다.   첫 공식 경기(=Master test)에서 살아남은 검투사는 검투

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 Commissioned Gladiator로 일 한 후, 5년 후엔 자유가 보장 됬는데,  이

검투사들의 능력이 워낙 출중하다 보니, 자유의 몸이 된 검투사들은 로마군대의 교관으로 기용

됬었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잦은 골절, 부상으로인해 모든 검투사들은 자신의 개인의사와 마사지사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검투사의 시신을 확인해 보니, 부러지거나 금이간 적이 없는 뼈가

없더란다.   때문에 이런 검투사들을 치료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과와 정형외과술이 획기적으로 발달

했다고 한다.   난 Galenus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고대 로마의 아주 유명한 의사라는데, 이 사람 역시

어떤 검투사의 private doctor 였었다고 한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