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걸이 나서서 침착하게 상황정리를 해갔다. 그리고 재빨리 유벽과 정민을 자리에서 벗어나게 하려들었다. 유벽은 고개를 끄떡이고 장하걸의 제안을 따랐지만 정민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 저놈하고 일이 남았소!”
정민은 귀면 악진휘를 지적했다.
“저놈, 배에서 짝퉁…, (에고, 실수!) 아니 화령에게 안 좋은 일 했던 놈.”
“그렇습니까, 공자님!”
장하걸은 정민의 말을 듣고 화령이 쓰던 선실 창문에서 본 핏자국이 생각났다.
“그럼, 그때도 공자님께서 손을 쓰신 것이었습니까?”
“그때 난 손 못 썼다. 대신 머리를 썼다, 하하하!”
‘의, 의기살인!’
귀면 악진휘는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귀는 열려 있었기 때문에 정민이 하는 소리를 듣고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때 배에서 느꼈던 살기와 아까 느꼈던 살기가 같다는 것과, 그 살기의 정체도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왕 총관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왕 총관께서 이 자리에서 만큼은 솔직한 대답을 해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정민의 존재에 신경 쓰느라 장하걸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있던 왕방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며 몸을 떨었다. 화령을 납치하기위해 보냈던 자들이 돌아와 유가장에 무시무시한 고수가 있을 거라는 보고를 들었을 때는 무시했었는데, 저 유약한 문생은 머리의 생각만으로 상대에게 내상을 입힐 수 있다는 그 무시무시한 고수였다. 혹시 각파에서 숨기고 있는 고수가 있다면 모를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지금 현 무림에서 직접 손을 쓰지 않고 상대에게 내상을 입힐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었다. 현 무림맹주와 천부무관의 총사도 그 정도로 내공을 가지지 못한 것으로 파악 됐는데 이건 최악의 상황이었다.
‘후, 헛된 욕심이었어.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고 했는데…. 우리 교응방이 욕심 때문에 너무 큰 거물을 건드렸어.’
“우리 큰아가씨께서 여행 중에 험한 일을 당하셨소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일에 저자가 관련 된 듯하오. 아마도 저자가 단독으로 저지른듯하나 귀방에 속한 자라 혹시 귀방에서 그런 지시를 했을 거란 의심을 지울 수 없군요! 어찌 생각하시오?”
장하걸의 추궁에 왕방은 할 말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섰다간 교응방의 내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일단 버텨보기로 했다.
“그, 그럴 리가 없소이다. 저자 단독으로 한 일이요!”
‘이, 이런 실수다!’
왕방은 급한 마음에 대답을 해놓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왕에 땅에 쏟아진 물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꼬리를 잘라 놓고 도망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 미안하네, 악진휘! 우선, 교응방의 내일이 있어야 우리의 앞날도 있다. 잠시만 참아다오!
‘초, 총관!’
악진휘는 어이가 없었지만 당장 몸 여기저기에서 괴롭히고 있는 고통 때문에 말은 못하고 그저 땀만 비 오듯 흘렸다.
“역시, 귀방에서 우리 큰아가씨에게 해를 끼칠 리 없다고 생각했소이다. 장주님 아무래도 저자는 뇌옥에 가두고 죄를 따져야겠습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물론이다. 왕 총관도 의의가 없겠지!”
“무, 물론입니다. 저자는 이제부터 저희 교응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왕방은 한사람의 희생으로 구하게 될 열두 명의 목숨이 우선이었다. 게다가 모자라지만 앞으로 교응방을 이끌어야할 후계자의 목숨을 우선 구해야 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그럼 공자님 가시지요.”
“예! 참, 너 내가 한말 잘 기억해둬라, 헤헤!”
정민은 장하걸의 안내를 따라 유벽의 뒤를 따르려다 말고 돌아서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있는 위진호를 보고 한마디 던졌다. 순간 위진호의 표정은 완전히 똥 씹은 표정이 되었으나 뭐라 말도 못하고 숨만 헐떡였다.
얼음부채를 얻다, 그것도 접부채를….
유벽은 후원에 있는 정자에 앉아 서산에 지는 저녁놀을 쳐다보며 오랜만에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그동안 교응방의 도발에 그저 가문의 명예와 체면 때문에 뾰족한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화령이 여행을 하다 데리고 온 볼품없던 사내가 한방에 모든 걸 속 시원하게 해결해 버렸다. 정민에게 간단하게 제압당한 왕방과 호위들이 급하게 겁에 질려 실례까지 한 위진호와 교응방으로 돌아간 다음날, 교응방 총관 왕방으로부터 상자하나가 도착했다. 장하걸이 금 백량으로 어렵게 구한 영약이 그대로 들어있었고 정중한 사과의 글도 있었다. 그리고 청혼을 철회한다는 말도 쓰여 있었다. 총관의 이름으로 온 것이 걸리긴 했지만 일단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방중선을 제외하고 유벽을 비롯하여 유가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교응방에서 온 일행이 완전히 개망신을 당하고 돌아간 그날 밤, 방중선은 그의 숙소에서 정민의 방문을 받았다. 운기를 마치고 나서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
“누, 누구…!”
방중선이 눈을 떴을 땐 이미 그의 코앞에 정민이 웃으며 서있었다.
“후후, 미안하오! 운기 할 때는 항상 한 푼의 힘은 주위에 남겨 두시오.”
- 후, 그게 가능한 사람은 정 공자를 빼놓고 이 무림에 다섯 손가락에 꼽을 거요!
“아, 공자님! 제가 가진 십 분의 힘으로도 공자님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밤늦은 시간에 어인일로…?”
“부하를 거두러 가야겠소.”
“부, 부하요?”
“교응방 위진걸! 부하로 삼을 거요.”
“네에?”
“비밀이요. 같이 갑시다. 길안내가 필요하오!”
‘후우, 오랜만에가 아니라 처음으로 의사전달이 제대로 된 것 같군!’
“네에! 어차피 손을 봐주려고 했습니다. 자, 가시죠.”
“이일은 절대 비밀이요, 다른 사람에게는.”
검을 들고 일어서는 방중선에게 다시 다짐을 받았다. 방중선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옷장에서 검은 천을 챙겼다. 복면을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정민은 모처럼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기분이 들떴다. 지금 까지 의식 속에서만 익혔던 무공과 무예라는 걸 실전을 통해 시험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들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걸 다해볼 작정이었다. 단, 죽이거나 병신을 만드는 일없이 적당히 두들겨 주는 걸 할 참이었다.
정민은 강시였던 때 자신의 손에 무참하게 죽어가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비록,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두 번 다시 격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때문에 책에 있는 무공과 무예들을 익히면서 죽이지 않고 제압하거나, 무력화 시키는 것을 주로 연구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배우거나 익힌 현대 물리학 지식과 엉뚱한 상상력이 새로운 무공을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방중선과 유가장을 떠난 지 반시진도 안되어 교응방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말로 달려 거의 반나절 가까이나 걸리는 꽤나 먼 길 이었지만 거의 상상할 수 없는 환상적인 속도로 도착한 것이다. 정민이 발휘하는 경공을 방중선이 제대로 따르지 못하자 정민은 아예 그를 옆구리에 끼고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지막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빨랐다. 특이한건 중원의 무림인들이 흔히 말하는 초상비니, 답설무흔이니 하는 경공법이 아니라 그저 한걸음씩 차근차근 걷는 듯 했는데, 몇 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이동한 거리는 상상을 초월한 먼 거리였다. 이것도, 방중선이 그의 옆구리에 매달려 있으면서 알아낸 사실이었고, 뒤쫓아 갈 때는 간헐적으로 몸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으로 보여 이형환위를 시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공자님의 무공은 상식을 벗어나는 군요. 이 경공법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요?”
“경공?”
“네, 이렇게 움직이는 거요.”
경공을 중구말로 발음하는 것을 처음 듣기 때문에 결국 방중선이 초상비의 수법으로 멀리 있는 나무까지 갔다 오는 수고를 하고서야 정민은 고개를 끄떡였다.
“아하, 경공!”
“네, 경공이요! 공자님이 한 경공의 이름이 뭡니까?”
“이건 경공이라 하기에는 좀 그래서 내가 축지법이라 했소! 경공은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는 좋지만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는 데는 공력의 소모에 비해 효율, 비효율?… 맞나? 그렇지! 비효율적이요. 그래서 이런 이동 방법이 더 좋소.”
“아, 축지법이란 경공이군요!”
“네에? … 네!”
방중선은 땅을 줄인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저 정민이 익히고 있는 경공이러니 하며 이름만 머리에 새기고 말았다. 게다가 정민이 아직 말이 서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어 그대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공과 축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경공은 몸을 가볍게 하여 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고 축지는 공간이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민은 언제 익힌 지도 모르는데 몸이 알아서 하는 신법이었다.
며칠 전 유가장을 밤새도록 몰래 돌아다니면서, 책속에 나와 있는 경공법이란 것을 익히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몸을 가볍게 하여 공중으로 뛰어오를 수도 있고, 먼 거리를 짧은 시간에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이 시간대로 넘어오기 전에 목숨을 노리던 자에게 쫓기던 생각에 기를 쓰고 익히려고 낑낑대다가 우연히 발을 내딛는 동작에서 상상 의외로 많은 거리를 움직이는 방법을 몸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와, 이거 대단한데, 한걸음에 10m를 움직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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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