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난 27살이다. 여자 나이는 30부터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던 시절들은 보기 좋게 흘러가고 있다. 벌써 저기 나의 30대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나이라는 건 먹으면 먹을 수록 배부름 보다는 허기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건가 보다.
매년 새해가 올 때마다 우린 공포에 휩싸이며 말을 했었다. 벌써..벌써.. 벌써.. 라는 말을 연거푸.. 몸서리 치며 벌써.. 정말 벌써 26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신고식 처럼 하게 되는 송년회, 신년회 모임이지만서도 이 녀석들.. 오늘따라 무지하게 우울하다.
" 젠장.. 머 해놓은 것도 없이 벌써 27이냐.. "
준식이라는 녀석은 아직 대학교 3학년이다. 재수, 군대.. 집안 환경 등등이 그를 아직도 그런 젊은 청춘에 머물게 했다. 그가 아무리 나이타령을 한다 해도.. 사실 난 대학 캠퍼스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가 부럽다.. 어쩜 나뿐만은 아닐 듯 하다. 그는 머리가 크다는 이유로.. "얼큰이"로 불리운다.. ㅋㅋㅋ.. "얼큰이"..
" 호호호.. 남자는 원래 좀 늦잖아.. 기운내라.. 벌써 셀러리맨 두어달 야근한 모습하고는~!! "
희영이는 언제나 호탕하다. 검은색 원피스에 빨간색 코트.. 발목까지 오는 앵글 부츠에 오늘따라 유난히 컬이 자연스러운 갈색 머리..그녀는 벌써 3년차 회사원이다. 친구들이 대학교에서 아둥 바둥 하고 있을때.. 또는 이리 저리 기웃거리며 더 나은 것을 찾고 있을 때 주저 없이 회사에 들어가서는 지금까지 잘 버텨낸 강한 아이다. 난 그녀가 돈을 버는 이유가 비록 비싼 구두가 사고 싶다거나, 돈을 많이 모아서 얼른 시집을 가고 싶다는 것이어도 3년차의 사회생활을 이겨낸 아집과 근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돈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 별명이 "제로" 다. 이름에도 "영"이 들어가지만.. 우리의 뜻은 "잔고 제로" 이다..
" 구래~ 야!! 괜찮아~ 다 괜찮아~ 이제 겨우 스물일곱인걸..아직은 우리 희망이 있는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암~ 그렇고 말고~"
재희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다. 재희의 별명은 "척"이다. 워낙에 아는 것이 많지만 서도 친한 친구인 우리가 곱게 봐줄리 없기에..그녀는 고등학교때 전교 석차가 항상 한자리 숫자였을 정도로 공부잘하는 모범생이었다. 다들 재수에 찌들어 가고 있을때도 아무런 문제 없던 그녀가 졸업하면서 쫌.. 이상해졌다.. 남들 하는 대로 흘러 흘러 잘 가고 있었는데 어느날 연극을 보더니 갑자기 배우가 되겠다고 난리를 부리는 바람에.. 취직도 안하고 지금 조그마한 극단에 들어가서 생고생을 하고 있다. 난 그녀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정말로..!!
" 야~!! 나이타령 고만하고 술이나 마쇼~ 온능~ 자자~ 들어~!! "
" 아자~!! "
" 다 시끄러우니깐.. 이제부터 나이얘기는 시끄러우니깐 그만하는 거닷~!! 알았지? 야!! 너! 너!너! 다.. 알았지~!! "
민영이는 대학원 생이다. 그녀는 나와 술로 맺어진 인연이다. 나야 워낙에 술을 좋아라 하기도 하지만 그녀 역시 마찬가지 이다. 하얀 얼굴에 유난히 큰 눈이 매력적인 그녀는 나와 단 둘이 있을때야 늘상 나이가 어쩌구, 인생이 어쩌구 이런 저런 얘기를 하지만 친구들이 있을땐 잘 하지 않는다. 하긴.. 여기서 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나도 알긴 한다. 그래서.. 작정했다. 오늘만큼은.. 아니.. 오늘도 역시 어제와 다름없다는 걸 인정하기 위해 술로 죽어 보리라..!!
" 미녀~ 오늘 죽는거~?? "
아.. 민영이의 별명은 "미녀"다. 민영을 발음하다보면 미녕으로 되는데.. 처음에 우린 "짝퉁미녀"로 부르곤 했다가 이젠 귀찮아서 "미녀"로 부르게 됬다. 근데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든다.
" 고래~ 죽자~~ 죽어버리자~~ "
" 죽어 버리고 눈 뜨면 다시 초등학생이었으면 좋겠다.. 우쒸~ "
" 야!! 얼큰이!! 너 집에 가~!! "
" 호호호.. 불쌍한 큰이~ 오늘도 ~ 호호호호 "
" 그러게 오늘 준식이 혼자라서 많이 당한다~ "
" 아.. 진짜.. 주걱은 왜 안오는데? "
" 태식이 시골 갔다 온다며? 재희야 전화해봐~ "
" 야~ 왜 하필 내 전화야~!! 나 불쌍한 예술인이야.. "
" 호호호... 내가 할께~ "
태식이.. 그 녀석은 이름을 놀리다가 별명이 "주걱"이 되버렸다. 나름해석 해 보면 "클태, 식식" .. 밥을 크게 먹는 다고 해서 주걱으로 퍼 먹냐고 놀리다가 그게 별명이 되 버린 녀석이다. 그 녀석은.. 지금 뭐하고 있는지 모른다. 가끔 소식이야 듣지만 사실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 녀석은 내 첫사랑의.. 친구이다.
" 야.. 우리 6명 모이는 거 되게 오랫만이야.. 그치? "
" 그래.. 뭐야~ 송년회때.. 다들 바뿌다고 하고.. 나랑 큰이랑 만났잖아~ "
" 뭐야.. 너네.. 수상하다.. 야~ 큰이! 너 척이한테 관심있어? "
" 야야.. 내가 또 불쌍한 예술인 국가 발전을 위해서 함 구제해 준거지.. 뭐.. 그나저나 당신들은 뭐한거야? 제로는 야근했다며? "
" 하하하하.. 야.. 근.. 그럼~ 야.. 근.. "
" 하하하하.. ㅡ.ㅡ;;; 야.. 근.. 제로.. 야근 했냐..? 하하하하 "
" 그럼.. 야근.. 야.. 연말이 얼마나 바쁜데~ 하하하하.. "
" 미녀야.. 뭐냐.. 어색하다.. 느희둘.. "
" 하하하하하하하.. 야,,,근...을 했...데..잖...아~ 하하하하.. "
" 아.... 이것들 수상하다.. "
" 자.. 심문 들가야 겠다. "
" 야야.. 무슨 심문이야.. 술이나 마셔~ "
흠.. 이것들 눈치가 영 찜찜하다. 아니.. 같은 동네 살믄서, 이틀이 멀다하고 뭉치는 우린데.. 둘만의 뭔가가.. 느껴진다.
(" 뭐야.. 꾹꾹.. " 미녀의 옆구리를 찔러댔다. 난 궁금한건 못참는다.)
(" 이따가 얘기해줄께.. " 연신 앞을보며 얘기를 한다. 그런데.. 입술을 움직이지 않는다.. 저거.. 언제 복화술도 배웠나 보다. )
" 주걱 짐 오는 길이래~ "
분위기가 슬슬 달아 오르니 이제 집에 가야겠는데 이 녀석이 온댄다. 난 그만 일어서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물론 친구니깐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친구가 아니라 보는게 영 어색하다.
" 앙~ 지금이 몇씨야.. 야 나 들어가야해~ "
" 뭐야~ 이제 시작인데~ 아니.. 고새 감각 잃은거야? 야.. 쉰데렐라~!! 다시 교육 들어가야겠어~ 어? "
" 효민아.. 주걱이 보구가~ "
" 아..니.. 그게.. "
" 쉰데~!! 너 짐 가믄 우리 우정 금가는 거야.. 알써? 온능 앉오~"
" 호호호.. 언니 간만에 시간 맞았는데 벌써 일어나면 어떻게~ 너 주걱 본지 오래됬잖아~ 오랫만에 뭉쳐보자~ 어? "
난..... "쉰데렐라"....다.. 여기 있는 뇨..온 들과 얼큰이가 주선하는 미팅자리에 갔다가 어줍잖게 순진한 척을 하느라 12시까지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가 그렇게 됬다. ㅡ.ㅡ;;;;
난 효민이다. 효도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붙여주신 이름같은데 사실 그러거 해 본 적 없는 것같다. 나도 여건이 되면 해 드리고 싶다. 여건만 된다면.. 여건.. 젠장.. 난 이렇게 늘 이유가 많다.
" 어~이.. 오랫만~!! "
" 주걱~!! "
" 야야.. 온능 와라.. 왜케 바빠~"
" 야 그래도 시골에서 올라오는데 이 시간에 온 거믄 정말 운 좋은 거야.. 운전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
" 주걱~ 많이 멋있어졌네? "
그 녀석이 왔다. 내 첫사랑의 친구.. 난 태식이가 그냥 친구로 느껴지질 않는다. 처음부터 그는 내 사랑의 친구였다.
" 어이~쉰~!! 오랫만이다~"
" 허허허.. 어.. 오랫만이네~ "
" 야.. 너 많이 늙었다~ 어? 야.. 술좀 작작 먹고 피부관리좀 해~"
그 녀석.. 이젠.. 친구 먹어도 될 것 같다.. 이젠.. 내 밥줄에 끼워주리라 다짐해도 될 것 같다..
" 어.. 그래.. 야.. 근데 너 못알아보겠다. 아주 폭삭 늙어버려서.. 그래서 어떻게 장가는 가겠어? "
모두들 시끄러웠던 분위기가.. 사그러 들어 버렸다. 다들 나만 본다. 뭐지? 뭐지? 이건 뭐지???
" 야~ 쉰이 정말 오랫만에 태식이 보는 가부다~ 쉰~ 태식이 장가가잖오~ "
"..................에.......? "
" 녀석.. 5월에 결혼한다. 오빠~ "
"................에.......? "
" 아.. 내가 얘기 안했나? 자기야 내가 얘기 했잖아~ "
".... 언제? 들은 적 없어.. "
" 야야~!! 그게 중요해?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됬지~ 늦게 왔으니까 지금까지 먹은 거 니가 쏴라~ "
" 하하하하.. 그래그래~ 야.. 애기 낳고 만났으면 우리 렐라 기절할 뻔 했다.. 그지? "
" 그러게~ 하하하하하하 "
친구가.. 아니.. 첫사랑의 친구가.. 결혼을 한다. 장가를 간단다. 이게 도데체 무슨 일인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시집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장가를 간단다. 저거 미쳤나 부다.
" 야.. 근데 너 뭐 먹고 살꺼야? 회사 다녀? "
" 응. 회사 다닌지도 쫌 됬는데? 야.. 너 진짜 관심 없다.. 어? "
" 아.. 누구랑.. 결혼하는데? "
" 회사 아가씨래~ 사내커플이지.. "
" 만난지 얼마 됬는데? "
" 1년 정도 됬다고 들었는데. 맞지? "
" 응~^^"
" 근데 왜케 빨리 해? "
" 속도위반!!!!!!!!!!!!!!!! "
"...............................!!!!!!!!!!! "
난 결혼의 발표와 이유보다는 나 빼고 다른 친구들은 다 알고 있었다는게 더 황당했다. 난.. 왕따였나보다. 씨...앙..
" 나쁜 것들.. 귀뜸이라도 해주지~!! "
" 야~ 됬어됬어~ 오랫만에 만났으니까 기분좋게 술이나 마시자~"
" 그래~ 야 작년에 다들 고생했고~ "
" 호호호호.. 우리 돌아가면서 덕담하나씩 해주자~어? "
" 나이먹은거 티내요? 아점마!! "
" 야~ 얼큰 !! 조용히 해~ 기분좋으면 2차 제로가 쏠꺼야~ 구지? "
" 아~ 보너스 탔겠다~ "
" 야~ 통장 잔고.. "
" 또또또~~!!! "
" 에라~ 그래 알았다..!! "
" 야.. 아무래도 결혼 하는 오빠 먼저 할께..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하믄 되겠네~ 얼큰아 학교생활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지금 아니면 또 못할 게 많을 테니깐.. 네가 현 생활을 더 많이 즐겼으면 좋겠다. "
" 하하하.. 이것 또.. 할아버지한테 듣는 덕담하고는 좀 틀리네.. 그려.. 그럼.. 난 제로야.. 저축해라~!! 너한테는 그 말밖에 내가 할 말이 없다.. 아주.. "
" 호호호호.. 그래그래~ 이제부턴 열씸히 할께~ 음.. 미녀야 남은 학기 공부 열심히 하고.. 논문도 잘 되길 바랄께. 우선은 그게 가장 큰 일이니까~ "
" 아휴.. 잊고 있었어.. 논문.. 으.. "
" 호호호호.. 미안~ 그래도~ 야~!! 논문 쓰면 내가 그거 사께~ 얼만데~? "
" 제로야.. 넌 저금부터~!! "
" 하하하하.. 그래.. 내가 백마넌에 팔아야 겠다. 흠.. 렐라야.. 난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힘들었으니까 앞으로 좋은 일들만 생겼으면 좋겠구.. "
" 쉰이 하고 싶은 일이 뭔데? "
" 그리고.. 큰아.. 난 정말 네 머리가 줄기를 기도할꺼야~!! "
" 야!! 미녀!! "
" ^^;; 이제.. 난..척이.. 올해는 단역이라도 맡아서 무대에 섰으면 좋겠다. 우리좀 초대해~ 덕분에 문화생활도 좀 하게~ 알지? "
" 그래~ 알았다.. 나만 믿어~ 자.. 우리 새 신랑 되실 분.. 부디 결혼준비에 어려움 없었으면 좋겠고, 훌륭한 가장이 되길 빈다.. "
" 그래.. 고맙다.. 뭐.. 다들 훌륭한 하객이 되길 바란다.. "
" 야야.. 쟤 지금 축의금 받으려고 쑈하는 거지? "
"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
" 야.. 오늘 2차 없다.. 1차 만이야.. 알았지~!! "
정말 1차로만 끝날것 같던 우리의 모임은 새벽 2시가 되서야 끝났다. 이 인간들이 어떻게 서로 얽히고 얽혀서 이렇게 모이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이 친구들과 있으면 실컷 소리지르고 박자에 맞지 않는 춤을 춰도 즐겁다. 그렇게 우린 닥쳐올 현실의 불안함을 서로 부둥껴 안고 소리를 지르며 시비를 걸어가며 미친듯이 웃어가며 저 멀리.. 아직은.. 밀어내고 있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게 없을 지라도.. 가 보지 않은 곳에 대한 두려움에 조금은 소침하다. 하지만 우린 각자의 꿈과 희망을 터지지 않게 싸매고 또 싸매서 들고 가기로 했다. 우리가 말했던 어떤 서른의 고지에서 각자의 행복과 희망을 나눠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자고 약속했다. 어느 추운 겨울에.. 27살 여섯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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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7살들의 좌충우돌 인생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재밌게 봐 주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