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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관계-(24) 모든 것의 시작은........

瓚禧 |2005.08.14 18:51
조회 1,261 |추천 0

   

이상한 관계




 

(24) 모든 것의 시작은........



언젠가 영효의 친구인 은주가 그런 고민 상담을 해 왔던 적이 있었다.

 

 

“요즘 나한테 작업 거는 놈이 두 명이거든? 한 명은 직업군인이야. 너도 알다시피 직업군인이 돈이 좀 되잖아. 게다가 날 많이 예뻐해. 예뻐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야. 나 아니면 죽고 못 산다고 그러고, 또 바람둥이였던 그 사람이 나 아니면 못살겠다고 매달리니깐 조금 좋기도 하고 그래서 끌리는데 문제는 그 사람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은주의 말에 맞장구를 쳤었다. ‘그래, 직업군인이면 돈은 조금 되지.’ ‘그래, 다 필요 없어. 사랑해 주는 남자랑 사귀어야 좀 편하지.’ 하지만, 그 사람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은주의 말 한마디는 곧 그녀의 눈에 차지 않는다는 말이었고 그것은 곧 앞에 꺼 내놓은 그 사람의 모든 캐리어들이 다 소용없음을 뜻하는 지라, 영효는 거기서 입을 다물었었다. 어차피 은주는 영효의 태도에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녀가 맞장구를 쳐 주든, 아니면 그녀를 욕하던. 그녀는 단지 말할 상대가 필요 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자신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 했던 것이다. 난 이런 사람이 날 좋아한다. 뭐 이런 자기 자랑. 얼음이 가득 든 물 잔을 집어 목을 잠시 축인 은주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또 한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정말 괜찮아. 스타일도 좋고, 성격도 좋고 그런데 가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어. 잘생겨서 그런지 걱정도 좀 되고, 나랑 동갑이라서 그런지 돈도 별로 없고……. 그래서 어떤 놈이랑 사귀어야 할지 걱정이야.”

 

 

영효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어떤 놈이랑 이라는 수식어가 나올 때부터,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차피 이놈이든 저놈이든 둘 중 하나 사귀기만 하는 목적달성에 의의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은주에게 영효는 그렇게 말했었다.

 

 

“야, 세상의 반이 남자야. 지금 네가 만나는 그 두 사람 합쳐 놓은 것 보다 더 멋있는 사람이 나타 날거라고. 그런데 왜 굳이 두 사람 중 하나를 고르려고 하는 거야? 그건 아니라고 봐.”

 

 

그랬다. 전 세계의 인구가 60억이 넘었고, 그 중 대한민국의 인구수가 4천만이 넘었다. 그중 반이 남자 아니던가. 거기서 아이, 노인, 유부남을 뺀다고 해도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어마 어마하게 많다. 고로, 꼭 상한이냐, 주혁이냐에 목 매달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머릿속으로는 이렇게 확연하게 교통정리가 되는데, 왜 그 두 사람만 만나면 머릿속이 꼬여버리고 과부하가 걸리고 재부팅을 해도 어버버 거리는 것일까? 왜 그 두 사람만 보면 그 두 사람 중 꼭 한 명을 골라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일까? 은주와 상담을 하던 그때 마지막으로 은주와 헤어지면서 그랬었다.

 

 

“차라리 그 두 놈 다 젖혀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 혹시 알아? 다른 남자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릴지 말이야.”

 

 

그래! 간단한 것이었다. 지금 두 사람의 역살에 못 이겨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것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두 사람과 같이 있지 않으면 조금 나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래. 어차피 그 두 사람 다, 나와는 인연이 아닐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힘든 걸지도 모르잖아. 아니야, 그 두 사람은 내 인연이 아닌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는……. 주혁만 해도 그 고약한 변주리 동생이잖아? 상한 씨만 해도 주리의 옛 애인이고. 그래. 지금은 두 사람에게 치여서 내가 판단 미스를 할 수도 있는 거야. 사랑하지 않아도 그런 감정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거잖아. 사랑만큼 착각 잘 하는 감정도 없으니깐 말이야.”

 

영효는 오도카니 웅크리고 앉아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래, 다른 남자를 만나보는 거야. 내 감정을 위해!’ 그것이 영효가 상현과 헤어진 이후, 처음 하게  된 소개팅의 출발점이었다. 영효는 좁은 거실 바닥을 맴돌다가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명언에 의거, 방안에 던져 놓은 핸드폰을 열어 대학 동기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현과 헤어졌다고 했을 때, 소개팅을 받으라고 자기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다고 연신 영효를 괴롭혔던 란희였다. 그녀가 입이 제법 싸고, 소문내기를 좋아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 이것, 저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영효는 깊게 심호흡을 한 번하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커다란 통유리 너머로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햇빛이 가장 오래 머무는 창가 명당자리에 앉은 영효가 불안함에 샌들 사이로 나온 발가락을 꼼지락 대며 연신 출입문 사이로 눈동자를 기민하게 돌렸다. 이쯤이면 올 때가 됐는데 소개팅 남과 함께 온다던 란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일찍 나온 건가?”

 

 

소개팅에 주책없이 여자가 너무 일찍 나왔다고 손가락질 하면 어쩌지? 혹시나 상한이나 주혁이 알게 되면 어쩌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래도 한 30분쯤은 늦게 나올걸 그랬나? 이런 생각들로 그녀가 머릿속에서 지금 일어서서 근처를 한 바퀴 배회하여야 하는지, 아니면 이대로 일어서서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출입문이 열리면서 상큼한 레몬 빛 원피스를 입은 란희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 계집애. 벌써 오면 어떻게 해. 원래 한 30분정도는 기본으로 늦어줘야 하는 거라고!”

 

 

가만히 창가 쪽에 앉아있는 영효의 모습을 보자, 호들갑스럽게 그녀에게 달려와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별 이상한 계집애 다 봤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책망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책망에 민망해진 영효가 발개진 얼굴을 란희가 아닌 처음 본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안녕하십니까?”

 

 

탁한 음성의 목소리에 영효가 볼을 감싸준 채 남자의 인사에 고개를 살짝 숙임으로서 응수했다. 남자는 은색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경 쓴 남자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그녀였지만, 앞에 앉아 영효의 시선을 다 받아주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에게 안경은 오히려 그의 인물을 살게 해 주는 작용을 하고 있었다.

 

 

‘저렇게 안경이 잘 어울리는 사람도 있네......’

 

 

그때 란희가 ‘그럼 그럴 줄 알았지. 네가 어디서 저런 남자와 소개팅을 해 봤겠니. 마음껏 즐겨.’라는 표정으로 거만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는 김용우 선. 생. 님. 우리 학교 사회선생님이야. 그리고 여기는 제 친구 박영효. 지금 임용고시 준비중이예요.”

 

 

김용우 선. 생. 님 이라는 부분에서 발음에 신경을 써서 또박거리며 말하는 란희의 음성을 듣는 순간, 영효는 잘 못 왔구나, 자신의 선택이 후회스러웠다. 이런 대접을 받을 줄 알았다면 오지 않는 건데. 네 주제에 어디서 저런 남자를 만났겠니. 라는 눈빛을 받을 줄 알았으면 애초부터 걸음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뒤늦은 후회였다. 지금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 됐어. 필요 없어. 라고 란희에게 톡 쏘아붙여준다면 가슴에 쳇기가 사라 질것 같은데 앞에 앉은 김용우라는 사람에게 자신의 첫 인상을 그렇게 남기고 싶지 않아 젖 먹던 힘을 쥐어짜며 인내했다.

 

 

‘그래,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고 했다. 저 남자에게 이상한 여자 취급받는 것보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그런 영효의 마음을 모르는 란희는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그의 자랑을 떠벌리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집안, 학벌 그 외에 사회적으로 중요시 여기는 처음 본 남녀가 가장 처음으로 확인하고 저 사람에게 등급을 매길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들을 브리핑 하는 란희를 보며 영효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학교 이사장에 유명 대학교 사학과를 나온 남자에 비해 자신의 소개가 초라해서였다. 처음 본 남자에게 ‘아, 저 여자는 볼일 없는 여자구나.’하는 인상은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어때, 어때? 괜찮지? 내가 우리 학교 킹카 선생님 데리고 온 거야.”

 

 

칭찬해 달라고 이마를 쓰다듬어 달라고 조르는 아이 같이 란희는 말했다. 그런 란희의 태도가 거북스러워 영효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살며시 찌푸렸다. 지금이라도 란희에게 ‘제발 좀 빠져 줄래?’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때, 영효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용우가 란희에게 자리 좀 피해 달라 정중히 말을 건넸다. 용우의 말에 란희가 ‘하하하, 내가 눈치 없이 너무 오래있었나? 그래, 저 갈게요. 김 선생님.’하고 카페 안을 빠져 나갈 때 까지. 그녀의 요란한 하이 톤 웃음소리가 빠져 나갈 때 까지 영효는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불쾌했다. 이러려고 나온 것이 아닌데, 잘못 생각했다.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남자에게 대뜸 차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여자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하여, 영효는 먼저 선수를 치고 싶었다. 이런 기분에 퇴짜라도 맞는다면, 쥐구멍에라도 숨어 버리고 싶을 것 같았다.

 

 

“저, 서로 별로 마음에 없는 것 같은데, 우리 여기서 헤어질까요?”

 

 

조심히 꺼낸 말이었는데, 금세 용우의 미간 사이에 깊은 주름이 지었다. 그의 못마땅한 표정을 보자, 죄를 지은 학생처럼 기가 죽어버렸다. 그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져서 일까? 한 동안 잊고 지냈던, 졸업과 함께 묻어 두었던 학생주임선생님의 매서운 눈매가 떠올랐다. ‘너희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다 안다.’라는 눈빛으로 모든 학생들을 유심히 쳐다보던 그 예리한 매의 눈빛. 그 눈빛을 마주 할 때면, 영효는 자신도 모르게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심장이 콩닥댔고, 오금이 저렸다. 그런데 지금, 용우의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그 학생주임선생님의 예리했던 눈빛과 닮아있었다. 네 마음을 내가 꿰뚫어 보겠다, 라는 눈빛. 네가 말 하지 않아도, 난 벌써 알고 있다는 엉큼한 눈빛에 영효는 학생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정중한 말투였지만, 결코 정중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말투였다. 말투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구나, 싶어 영효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용우를 쳐다보았다. 은테 안경 너머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그의 눈빛이 보였다. 궁금하겠지. 별 볼일 없는 여자에게 대뜸 채여 버렸으니.

 

 

“제가 부족해서 그래요. 서로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 결코 그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용우예요. 제 이름은........”

 

 

그쪽이라고 칭하는 영효의 말에 용우가 불쾌하다는 말투로 그녀의 말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의 그런 태도에 머쓱해진 영효가 양 손으로 앞에 놓인 냉수 잔을 맞잡았다. 시원한 냉기가 파고들었다. 서늘한 얼음의 냉기를 손으로 꼭 쥐고 있는 듯한 느낌.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목이 쭈빗거려, 영효는 마주 잡은 손을 풀고, 치마 자락에 쓱쓱 문질렀다.

 

 

‘아차, 드라이클리닝 맡겨야 하는 옷인데…….’

 

 

이미 물방울로 얼룩이 되어버린 치마를 쳐다보았다. 마른 치마위에 떨어진 물방울의 흔적들을 보는 순간, 영효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이상하게 연관성 없는 일에서 뜻밖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영효는 멍하지 치마를 내려다보았다.

 

 

“금방 마를 거예요.”

 

 

영효의 시선이 얼룩 진 치마에 묻히는 것을 본 영우가 힐끔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말을 내 뱉었다. 친절하고, 예의바른데 이상하게 영우의 말에는 그런 느낌보다는 그 외의 느낌, 예를 들면 조금 전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이라는 말과 같이 정중하면서도 결코 정중하지 않은 말의 느낌이 더 강해서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정중한 그의 말에 반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영효는 입을 다물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이상해서 한 번 그 사람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른 뜻으로 해석 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앞에 앉아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는 용우가 그랬다. 저 사람에게 적의나 악의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 남자의 모든 행동과 말투가 기분 나빠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꼭 그의 탓만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달라붙는 시선들. 그 시선들이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고 다니는 화냥년 이라고 그녀를 조롱하는 것 같아 영효는 목을 움츠렸다. 그랬다. 용우의 친절과 정중한 말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그녀가 지금 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이 자리를 택했다는 것에 있었다.

 

 

‘독했다면, 조금만 더 독했다면. 이 모든 일이, 피하고 싶어 발버둥 치는 모든 일이 전부 나의 우유부단

함 때문은 아닐까?’

 

 

애초 끊었어야 했다. 그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왔던 상현도, 나이도 한참 어린데 맞먹으려 들던 주혁도, 그녀에게 친절하면서도 그 내면 그녀를 품었던 상한에게서도. 결국은 이 사태는, 그녀가 피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얽혀드는 이 모든 상황은 그녀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끊지 못하고, 감정 확인도 제대로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기대고. 결국 이 모든 사태의 주동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 자신이었던 것이었다. 영효는 앞에 앉은 영우에게 몸이 좋지 않아서 먼저 일어나겠다고 말하고는 쫓기듯 카페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아아악. 진짜 하나도 모르겠다.”

 

 

집에 가는 길거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소리를 질러도 전혀 사태를 완화시킬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전혀! 영효는 그 길로 집으로 향했다. 몇 번 상현과 주혁 그리고 상한에게 번갈아 가면서 전화가 왔지만, 그녀는 무시했다. 오히려 쉼 없이 울며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핸드폰을 노려보며 배터리를 빼버렸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다고!”

 

 

감정이 악해져 영효는 ‘후웁. 하아. 후웁. 하아.’ 긴 심호흡을 하고 내 뱉고를 반복했다. 안정. relax.

 

 

‘이 모든 상황을 풀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더 중요한 거야. 내가 먼저 마음을 잡아야지 모든 것을 끊어버릴 수 있는 거야. 그래야 하는 거야.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 제대로 파악 못해서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 못된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

 

이 끔직한 악몽 같은 감정에서 벗어나려는 방법을 영효는 이제야 겨우 깨달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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