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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관계-(25) 결코 모여서 좋을 것이 없는 사람들.

瓚禧 |2005.08.14 18:55
조회 2,129 |추천 0

 

이상한 관계




 

(25) 결코 모여서 좋을 것이 없는 사람들.



“도대체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주혁은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제길!’ 거친 욕지거리가 사정없이 튀어나왔다. 잘해보려고 했던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던 영효가 미워, 어서 꺼지라고 악다구니 치던 그녀의 모습을 보며 다시는, 매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그 다짐은 병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사라져 버렸던 것이었다. 그녀 들으라고 일부러 병실문도 문이 부셔져라 쾅 닫았건만, 그녀가 뒤 다라 오지 못할까봐 일부러 천천히 걸음을 옮겼건만, 그가 내심 기다렸던 영효의 모습은 그가 차에 올라타기 전 까지도 없었다.

 

 

“제길, 제길, 제길!”

 

 

분하고 억울했다. 자신만 그녀에게 이토록 애달아하는 것만 같아, 그녀는 절대 그렇지 않은데 자신이 스토커처럼 매달리는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웠다.

 

 

“뭐냐고! 좋다며, 언제는 좋다며! 그래놓고 이제 와서 이러는 건 뭐하자는 플레이야!”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다. 영효가 좋다고 살며시 기대왔을 때 그때 확실히 했어야 했다. 그녀와의 관계를. 그랬어야만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한 자신이 죽이고 싶게 미웠다. 아무리 화가 났기로 써니 이렇게 남자가 자존심 다 굽히고 전화를 하면 못이기는 척 받아 주어야 예의가 아닌가. 독하다 독해. 주혁은 연습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하하. 도대체 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순정파가 됐다고 .............쿡쿡.”

 

 

마른 웃음이 튀어나왔다. 천하의 바람둥이 아니었던가?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붙잡지 않는 쿨한 남자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제는 한 여자에게 빠져 그 여자가 미워하면 어쩌나, 영영 보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나 전전 긍긍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변주혁 너도 참........ 인간이 간사하다.”

 

 

텅 빈 연습실에 외친 말이 돌고 돌아, 낯선 음성으로 그의 귓가에 들릴 때 즈음 주혁이 결심이 선 듯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연습실을 나섰다.

 

 

그 시각, 상한도 전화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벌써 3번이 넘도록 음성과 호출번호를 남겼건만 영효에게는 전화 한통이 없었다. 그날 그렇게 뒤돌아서 가버리는 영효를 잡았어야 했는데, 조급했던 자신의 감정 때문에 그녀와의 관계를 망쳐 버린 것 같아 상한은 조급했다. 조급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영효가 태연히 그에게 다가 올 때까지 기다릴 요량이었다. 하지만, 영효를 보면 볼수록 손에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 같아서 그것이 불안했다. 그렇게라도 그녀를 붙잡지 않으면 어느 날 인어공주의 물방울처럼 그녀가 사라질까봐 두려웠다. 기다릴 것을. 이제까지 기다린 것 조금만 더 기다릴 것을.

 

 

“도저히 안 되겠다. 이대로 있다가는……. 도저히 안 되겠다.”

 

 

상한이 벌떡 일어나 편의점 문을 닫고 영효의 집으로 향했다.

 

 

상현은 부르르 울리며 어서 받으라고 책상 위를 뱅그르르 도는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낯선 전화번호. 그러나 너무 쉬워 외우고 싶지 않아도 외우게 되는 전화번호. 그것은 란희의 전화번호였다. 같은 학교 동기이지만 절대 친할 수 없는 여자. 절대 친해 질 수 없었던 여자. 그녀가 이렇게 전화를 걸 이유는 단 한가지뿐이라고 상현은 장담할 수 있었다. 분명 무슨 재미난 소문이 퍼졌던 거겠지. 그것을 당사자에게 말 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이니깐. 상현은 망설이다, 그래, 너 깟 전화 못 받을 이유 없다. 무슨 소문인지도 모르는 일에 이렇게 불안해 할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핸드폰 플립을 열었다.

 

 

[여보세요? 상현이니? 나야 란희.]

 

 

톡톡 튀다 못해, 튀어 나갈 것 같은 하이 톤의 목소리가 신경에 거슬려 상현은 핸드폰을 귓가에서 조금 떼어놓은 다음 그녀에게 무뚝뚝하게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용건만 말해.’라고 짧게 읊조렸다. 그녀와 긴 대화는 돈을 억만금 준다고 해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호호. 얘는. 여전히 무뚝뚝하구나? 여전하네. 그래, 네 안사람은 잘 있고? 결혼식 때보고 한 번도 못 봤네. 언제 한번 가봐야 하는데 말이야.]

 

 

분명 용건만 말하라고 했을 텐데, 호들갑스럽게 울며 친 한척 하는 란희의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음성을 듣고 있자니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은 마음에 상현은 침을 삼켰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도대체 이 요란스러운 여자가 무슨 용건으로 전화를 한 것인지, 그를 둘러싸도 떠도는 소문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적어도 란희는 다른 사람들처럼 뒤에다 대고 이야기를 하는 타입은 아니니깐. 그렇다고 란희가 쿨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떠도는 소문을 소문의 당사자에게 들려줌으로 인해서 그 사람의 표정 보기를 즐기는, 또는 그 사람의 반응을 즐기는 지극히 악한 취미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같은 대학을 나온 동기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 하고 있는 부분이니깐. 누구나 뒤에서 힐끔거리는 시선을 마주하다보면, 차라리 란희의 그 이상한 취미가 자신에게 발동되기를 빌기도 하는 법이니깐. 역시나 안부로 시작한 말은 그의 예상을 절대 빗나가지 않았다.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맞춰봐? 아니지 오늘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맞혀봐. 글쎄, 영효한테 전화가 왔더라고. 너 결혼식 때 내가 영효한테 그랬거든. 주변에 괜찮은 남자가 있다고 소개한번 받아보라고 말이야. 그때는 싫다고 하더니. 이제는 너에 대한 마음이 정리 된 모양이더라. 순순히 소개 받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지금 나가서 소개팅 시켜주고 오는 길이야.]

 

 

역시 나였다. 란희는 그에게 염장을 지르고 싶어 전화를 했던 것이었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간간히 웃는 그녀에게서 결코, 그나 영효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그녀는 잇 상황을 즐길 뿐이었다. 이미 지나간, 결혼까지 한 예전 애인에게 전화해서 둘 사이에 흐르게 될 미묘한 감정을 그녀는 즐기고 싶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장단에 결코 맞추어 주고 싶은 그가 아니라서 ‘그것 이제는 나랑 상관없어. 끊는다.’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분명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 이제 상현이가 마음이 정말 변했나 보다. 이차 저차해서 내가 여차 저차 했는데 걔가 그랬다더라. 하는 소문이 한 동안 맴돌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울화통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끊어진 핸드폰을 란희인양 노려보던 상현은 담배를 빼어 물었다. 그렇게 영효와 정말 끝이라는 마침표를 달고,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 그녀의 말처럼 이제 그는 주리의 남편이 아닌가. 그 모든 책임감을 그녀에게 쏟으라고 했던 영효의 마음을 몰랐다면 그렇게 아리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알고 싶지 않고 무시하면서 까지 그녀의 곁에 머물고 싶은 그였지만, 그녀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그녀의 뜻대로 하리라. 그것이 그녀에게 속죄하는 길이라 여기고 주리에게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들 사이에 막힌 벽이 결코 낮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하나만을 보고 모든 것을 포기했던 주리 아니던가. 그녀도 서서히 그에게 마음을 열었고, 이제는 제법 여느 다른 부부와 같은 행세를 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아직까지 사랑해 미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예전처럼 서로 못 본 척을 한다던가. (물론 이것은 지극히 상현의 입장에서 그랬다.) 한 마디도 건네지 않는 다는 일은 없었다. 어떨 때는 새로 연애를 시작하는 것 같이 흥분되기도 했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지금은 죽을 듯 아팠던 사랑도 어느 순간이 되면 덤덤해진다는 것을. 하지만 그 덤덤한 것이 결코 잊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깊숙이 묻어두고, 그녀의 기억을 꺼내는 무슨 계기가 있으면 그 답답함은 배가 되어 튀어나왔다. 란희와 같이 그의 아픈 기억을 꺼내는 변수. 사실 가끔 주리에게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다. 그 둘 사이의 오해를 완벽히 풀기 위해서는 그날, 처남이 그녀의 집에 왜 갔느냐. 부터 풀어야 했었으니깐. 그 후로 가끔씩 그가 묻지 않아도 주리는 영효의 이야기를 꺼냈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주혁이 그녀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그가 묻지 않아도 잊힐 만하면 영효의 소식을 전해주는 주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왜 그녀의 소식을 전해 주냐고……. 그때 그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당신이 궁금해 할 것 같아서요.’라고 말이다. 그때 상현은 또다시 주리에 대해 다시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맹목적으로 그녀를 싫어했었다. 그녀의 그런 접근태도나, 그녀의 행실들. 사람이 한번 밉게 보이면 한 없이 미운 법이었으니깐. 하지만 이제는 종종 예쁜 면도 보이고, 그녀의 다른 면도 보게 되어 나름대로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효의 소식이라니. 그녀가 주혁이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난다니. 씁쓸했다. 기분이 한 없이 쓸쓸해 졌다. 상현은 담배를 비벼 끄고, 핸드폰을 쳐다보다 학교를 나섰다.

 

 

상한이 영효의 집 대문 앞에서 서성였다. 막상 그녀의 안부가, 사실은 그녀의 마음이 궁금해 여기까지 한 걸음에 달려왔지만, 막상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앞에서 서성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그녀의 집 앞에서 서성이다 돌아선 것이 몇 번째인지 셀 수조차 없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요즘 같아선 차라리 될 수 만 있다면 그녀에게 깨끗이 차여버리고 단념이 되었으면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할 정도였다. 그렇게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 고통스럽고 아팠다.

 

 

“휴.......... 오늘도 이렇게 뒤돌아서야겠지?.........”

 

 

혼잣말을 내 뱉는 상한의 모습이 쓸쓸했다. 그녀의 집 대문을 애절하게 쳐다보던 상한이 뒤돌아서려는 찰나, 끼이익- 듣기 거북한 급정거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주혁의 노란색 스포츠카가 고스란히 들어왔다. 차에서 내려, 상한을 노려보던 주혁이 차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고는 그를 향해 걸어왔다. 서로 고까울리 없었다. 주혁도, 상한도 서로에게 감정이 많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여긴 무슨 일이야?”

“내가 올 곳이 못 된다는 말투군.”

“적어도 당신이 올 곳은 아니라고 봐.”

 

 

뭐가 그렇게 당당한 것인지 주혁이 상한을 향해 말했다. 참다못해 온 그녀의 집 앞에서 이렇게 뜻밖의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더욱이 그것이 상한이라면 다른 이 보다도 더 이야기가 틀려진다.

 

 

“내가 보기엔 네가 올 곳이 못되는 것 같은데? 안 그래? 그리고, 너 나 보다 9살이나 어리지 않냐? 그 전까지는 기어오르는 것 봐 줬는데 이제 조심 좀 하지? 안 그랬다간 내가 더 이상은 네 고까운 모습을 봐 주지 못할 것 같거든”

 

 

도전이었다. ‘네 녀석 때문에 영효가 저러는 거다.’라고 자존심상 말은 못하고, 애꿎은 주혁의 태도에 태클을 걸었다. 사실 주혁에게 형이라던 지, 존칭을 듣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가 그런 것을 원한다고 해서 주혁이 그런 대답을 고이 해 줄 녀석이 아니라는 것쯤은 상한도 알고 있었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 상한이 그에게 그런 대접을 원한 것은, 단지 그 녀석의 잘난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것임을.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임을 머리 좋은 주혁이 모를 리 없었다.

 

 

‘한판 해 보자는 것 같은데, 좋아. 너랑 나 오늘 여기서 끝장을 보자. 끝장을 봐서 네가 떠나든, 내가 떠나든 둘 중 하는 영효 곁을 떠나자!’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싸우는 두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유

치하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마다 ‘저런 미친 짓을 왜 하는 거야? 그냥 너 가져! 그리고 나가 버리는 게 훨씬 더 남자답지. 암, 남자는 그래야 해.’라고 비웃었던 그였다. 하지만 막상 그의 앞에 그런 상황이 놓이자, 상한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시린 지퍼라이터를 쥐어 잡았다. 주머니에서 꽉 쥐어진 주먹을 꺼내며 주혁이 상한을 비스듬히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살짝 그 잘난 얼굴의 입 꼬리가 들리는 것을 보고는 상한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네가 이기는지 내가 이기는 지 오늘 한번 해 보자.’

 

 

영효의 집 앞 골목길. 서로 노려보는 시선이 맞닿아 떨어지는 곳 바로 중앙에 영효의 집 대문이 있었다. 그녀를 사이에 둔 결투.

 

 

“나도 네 모습 더 이상은 가증스러워서 봐 줄 생각이 없거든? 그동안은 그나마 나이 많은 연장자 대접 하느라고 그냥 봐 주고 넘어갔는데 나도 이제는 안 되겠네. 좋아. 여기서 한판 뜨자. 대신에 내가 이기면 네가 영영 영효 곁을 떠나라.”

 

 

떠나라? 아주 노골적으로 명령어를 내리는 주혁이 가소로워 상한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자존심 하면 상한도 떨어지지 않는 자존심이었다. 세상 어떤 남자가 자존심이 하나도 없으랴 만은. 자존심으로 따지면 상한도 만만치 않았다. 그 동안 그 자존심 다 굽혀 두었던 것은 순전히 영효에 대한 마음 때문이었다. 자신이 자존심을 내세우면 그녀가 힘들어 질까봐, 그것이 싫어 그의 자존심 따위는 곱게 접어 오랜 옷장에 넣어 둔 것뿐이었다. 그런 자존심. 영효가 없는 자리에서 더는 숨길 필요가 없었다. 더군다나 저렇게 노골적으로 주혁이 나온다면 그것은 더더욱 숨길 것이 못되었다.

 

 

“대신 내가 이기면 네가 떠난 다는 소리군.”

“.............”

“대답해!”

“좋아, 그러자.”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결투. 거친 야수처럼 서로의 빈틈을 노리며 그 둘은 서서히 상대를 노려보았다. 이 순간, 더 이상 아는 사이가 아닌 생판 모르는 전천지 원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녀를 차지할 수 있다. 주혁이 입술을 잘근 깨물고 상한을 향해 달려갔다. 성난 야수의 몸부림처럼, 1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밀리지 않기 위해 둘은 미친 듯 주먹을 휘둘러 댔다. 바닥에 엉켜 붙어 누가 보던지, 그 둘 사이의 눈에는 오직 상대를 죽여야겠다는 상대를 패배시켜야만 한다는 목표감에 불타고 있었다. 바닥을 구르다 상한이 주혁의 몸에 올라타 그의 잘난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 질렀다. 이런 날을 기다렸었다. 그의 잘난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내지르고 싶었었다. 네 녀석 잘 걸렸다. 그 동안 내가 벼루고 별렀었다. 상한이 그의 얼굴을 연신 쳐댔다. 피가 튀던지, 말던지 그 따위 것은 상관이 없었다. 퍽퍽- 이상한 침묵 속에 그 둘의 펀치 소리만 요란하게 울릴 뿐이었다. 상대가 백기를 들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둘의 싸움이 멈춘 것은, 그리고 통일 되지 않을 것 같던 두 사람의 의견이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은 상현의 등장으로 인해 서였다.

 

“두 사람 거기서 뭐하는 거야?”

 

 

웃긴 상황을 목격한 방관자의 모습으로, 그러나 결코 웃지 않는 표정으로 상현이 조용히 서로를 죽일 듯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낮게 읊조렸다. 상현의 목소리에 먼저 주먹을 내린 것은 상한의 몸을 타고, 엎치락뒤치락하던 주혁이었다. 입안에 고인 피를 콱- 담벼락을 향해 내 뱉고는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쓰윽 닦았다. 그 모습이 남자가 봐도 미치도록 관능적이고 매력적이라 상한이 바닥에서 그를 올려다보며 ‘허,’ 짧은 탄식을 내 뱉었다. 여전히 상한과 주혁 사이에 적대적인 시선이 존재하지만, 그 둘 사이를 오가는 시선의 몇 배의 적대가 담긴 눈빛으로 둘은 나란히 상현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로 여. 기. 오신 겁니까?”

 

 

불리한 조건으로 아무리 결혼 했다 하지만, 그리고 그 결혼을 누구도 쉽게 용납하지 않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주혁은 상현을 깍듯이 매형 대접을 해 주었다. 그래도 누나가 사랑하는 남자이니깐. 누나를 향해 애정을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항상 사랑에 갈구하는 누나를 애달아 하기는 했었으니깐. 적어도 자신으로 인해 누나가 매형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주혁은 그를 깍듯이 대접했었다. 생각이 없다고, 뭐든 제멋대로이라고, 철이 없다고 다들 그를 그렇게 바라보았지만, 적어도 주혁은 자신이 가진 뚜렷한 주관이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날. 영효의 집 앞에서 매형과 마주친 그 날부터 주혁은 상현을 매형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주혁이 상현을 우습게 여긴다던가. 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매형이라는 호칭을 부를 상황을 피했을 뿐이지, 그리고 그에게 친근감을 표현 안했다 뿐이지 그것 외에는 변한 것이 없어서, 상현이나 주리나 그 외의 가족들이 무어라 그에게 터치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매형에게 대 놓고 무례하기라도 한다거나, 그를 무시하기라도 한 다면 그것으로 그를 질책할 수도 있을 텐데, 주혁은 그런 여지조차 그들에게 주지 않았다. 그러나 결코 상현을 편하게 두지는 않았다. 은근히 그에게 매서운 눈빛을 날린다던가. 그에게 냉랭한 말투로 ‘나 여전히 당신에게 좋지 못한 감정 있수다.’라는 표현은 적랄하게 해 댔으니깐. 지금도 상현을 향해 매형이라는 호칭은 쏙 뺀 채, 자신의 물음만 내 던지는 주혁을 상현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그에게 무어라 반박하지는 못했다. 저런 주혁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이를 악 물고 그가 해 대는 형벌들을 견뎌내던 주리의 독한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두 남매가 독한 것 하나는 지독히 닮았군.’

 

 

상현과 주혁이 눈싸움을 펼치는 사이, 바닥에 주저 않아 숨을 고르던 상한이 천천히 일어나 주혁의 곁에 서서 상현을 쳐다보았다. 적의가 가득한 눈빛. 얽힌 관계가 아니면 주먹이라도 날릴 듯한 태세로 그를 노려보는 두 남자의 눈빛에 상현은 자신이 왜 저런 눈빛을 저 사람들에게 받아야 하는지 되묻고 싶었다. 그 둘 중에 한명이라도 영효와 사귀는 관계거나 그런 확실한 관계의 선상에 놓인다면 그런 눈빛을 보낼 만하지만, 주리에게 그동안 영효의 소식을 들어왔던 상현은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적어도 일부러 주리가 그 말을 빼 놓고 그에게 전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여전히 물음에 대한 대답을 요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든 주혁을 바라보다가 상현이 말했다.

 

 

“내가 못 올 곳 왔다는 표정이군.”

“적어도 올 곳은 아니니깐 드리는 말씀입니다.”

 

 

칼로 베일 듯 예의 바른 태도였다. 저런 태도라면 차라리 버릇없이 구는 편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못 올 곳은 아니지.”

 

 

지지 않고 말을 받아 치는 상현을 보던 상한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소리가 비웃음에 가까운 소리라, 기분 나쁜 표정으로 상현이 상한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을 받던 상한이 손을 휘휘-저으며 상현에게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웃음이 많아서요. 우리 셋 관계가 묘해서 그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웃으면서 대꾸하고 있지만, 여전히 예의바른 모습으로 그에게 말을 건네는 상한이었지만, 상한 역시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모를 상현이 아니었다. 둘 다 똑같이 독한 놈들이었다. 차라리 대 놓고 욕이라도 한다면, 무시라도 한다면 어떻게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그 둘이 했던 것 같이 뒤엉켜 싸운다면, 그렇게라도 한다면 세 사람의 감정이 조금은 나긋나긋해질 텐데. 씁쓸한 입맛이 맴돌았다. 그때, 끼이익- 대문이 울며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는 영효의 모습이 튀어나왔다. 추리닝 차림의 영효 시선이 앞에 마주 보고 서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세 사람, 여기서 뭐하는 거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 세 사람을 훑어보며 영효가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옷에 먼지를 잔뜩 묻히고, 입가에 핏자국이 선명한 상한과 주혁. 그리고 그 두 사람과 마주선 상현. 결코 부딪혀서 좋을 일 없는 세 사람. 그리고 그 중간에 낀 영효. 서로 모인 네 사람. 요즘, 그리고 그 전에 영효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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