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떠나 보내기….
우리에겐(남편과 저..)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고 왜 더 낳지 않고 아들 하나만 낳았냐고 물어봅니다
전 이야기 하지요..
“돈이 없어서요…그 당시엔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가난해서요..”
그럼, 모두들 안 믿겨 하는 눈치입니다.![]()
저흰 정말 그랬습니다.
쌀이 떨어져서 쌀값을 꾸러 갔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해 울었던 새댁 시절도 있었고
20여년전 100만원에 13만 짜리 월셋방에서도 살았고 2년 동안 5번이나 이사를 했습니다.
매번 이사 갈 때마다 월세비는 늘어나고 방은 작아졌었지요.
그 당시에 1자녀 낳기 운동으로 1자녀만 낳으면 여러 가지 혜택이 있어서
하나만 달랑 낳아놓고 남편이 바로 수술했습니다…ㅎㅎ
친정과 시댁에 정말 손 벌리기 싫었거든요..
지훈이가 태어난 후 우리경제(?)도 차차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전 사람들 보고 지훈이가 ‘복덩이’라고 늘 자랑했지요...^^
전에도 제가 이곳에 쓴 적이 있지만
우리 아들 잘났어요…ㅋㅋㅋ
부인, 남편자랑은 팔불출인데 자식 자랑하면 뭐라고 하나요?
남들은 공부 잘하면 잘난 아들이지만 우리 아들은 공부 잘해서 잘 난 게 아닙니다.
잘생겨서 잘 난 것 도 아니고 특별히 재주가 있어서 잘난 것도 아닙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2003년 11월 아들과 같이 이곳 북경땅을 밟은 후
자랑스런 아들네미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중국어 한마디 하지 못하고 또래 한국인이 하나도 없는
이곳에서 잘 적응하고 있노라고 썼습니다.
외국인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화이로우 제일 중학교(중국에서는 중고등학교를
중학교라고 칭함) 고1 2학기에 편입하여 좋은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그런 지훈이에게서 금년 6월 말경 남편과 저에게 폭탄을 터뜨렸지요…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휴학한대요..![]()
1년 동안 쉬고 싶다면서..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다고…-_-;:
우리아이는 잘 적응하고 다닌 줄 알았습니다.
시내에서 다른 아이가 잘 적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한다고 했을 때
울~ 아들네미는 적응 잘해서 조금만 지나면 성적도 오르고
좋은 친구도 생길 거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지요.
우리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고…![]()
남편과 저는 처음에는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때려 줄까,
강제로 다니게 할까, 여러 가지 궁리를 했지만 뽀족한 답을 찾을 수가 없어
일단 생각해 보자, 좀더 시간을 갖고 이야기하자며 타일렀지요.
하지만 지훈이 생각은 변하지 않았고 지훈이 생각대로 휴학계를 던지고
우루무치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던 차에 미국 고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안부전화였고 지훈이 잘 적응하며 학교 잘 다니고 있냐고 물어보셨지요.
남편이 그 동안의 일을 누나에게 말했습니다.
고모는 그럼 미국으로 보내는 게 어떻겠는냐고 물어보시더군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차피 이곳에서 빈둥거리며 1년을 놀 생각이면
미국에 가서 영어라도 배워오는 게 낳겠다 싶었지요.
처음에는 중국어도 배우기 힘들어서 도중하차했는데 또 영어를 어떻게 배우냐고..
아들 영어 성적이 그리 좋지 않거든요
미국에는 안 가겠다고 완강하게 버티던 지훈이가 우루무치에 다녀오고
저의 이야기를 듣더니 미국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부터 복잡해졌지요.
전 방문비자만 있으면 쉽게 다녀오는 줄 알았는데
반년이상은 유학 비자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미국에서 입학허가서 보내오다 중국에서 두 번이나 되돌아가고
우여 곡절 끝에 결국 한국에서 비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못 받을 것 같다는(중국학교 성적이 워낙 나빠서..) 예상을 깨고
당당히 비자를 받고는 곧바로 중국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나 비자 받았어…별 거 아니던데…몇 마디 물어보고 말던데..”
잘난체 하기는…..ㅋㅋㅋ
미국으로 보내는 지훈이를 한국으로 갈 때 쫓아 가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할머니와 이모가 잘 챙겨주리라 생각했지요.
한국으로 떠나는 날 공항에서는 울 겨를이 없었고
(사람이 워낙 많고 복잡해서..)집에 와서 펑펑 울었습니다.
아들네미 방을 들어가 볼 수가 없었지요.
언젠가는 부모 품을 떠나가지만 준비되지 않았던 이별이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언제나 밝은 웃음을 보였고 항상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었습니다.
울~아줌마를 야단 칠 때면 엄마가 그러면 안 된다고 도리어 아줌마 편을 들었고
남편과 싸움을 해서 내 마음이 아플 때면 저를 도닥여 주었습니다.
예의 바르고 주위사람과 잘 어울리고 배려해주고 친절했지요.
제가 찡그리고 있으면
“엄마. 웃으면 복이 와요…찡그리고 있으면 마음도 찡그려 지고
우울해져서 병 생겨요..웃으세요…환하게…”![]()
미국에 가서는 잘 적응했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에서는 워낙 많은 숫자의 학생들과 선생님이 씨름하다 보니
지훈이에게 신경 쓸 틈 조차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한반이 60-70명)
아무것도 모르는 지훈이에게 신경을 써줬어야 하는 원망도 했었지요.
지금 가는 곳은 고모네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학교이고 한 반에 5명이랍니다.
학비도 이곳 중국학교 수업료와 별 차이가 안 나서 참 다행입니다.
고등학교를 한국, 중국, 미국 3개국에서 다닌 일이 훗날 지훈이 인생에
틀림없이 멋진 추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친구 만나고 잘 적응해서
지훈이가 원하는 달란트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훈아! 파이팅!
행복한 날 되세요..^^
짜이찌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