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주말입니다.
하지만 곧 있으면 월요일이네요.
..... 남은 시간 하얗게 불태우렵니다.
=========================== 매주 불타냐? ===========================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말을 마친 순간부터
심박수가 급격히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그녀도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올려다보았다.
긴 정적이 흘렀다.
난 풀잎에 앉은 나비를 잡듯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그녀의 목 근처를 감쌌다.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살며시.
그 덕분일까.
다행이도 그녀는 아무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키스도, 고백도 모두 타이밍이라고.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처럼 완벽한 기회는 없었다.
한 침대에서 잠도 잔 마당에
(정확히 말하면 잠만 잔 사이에)
뭘 더 망설이고 고민하겠는가?
문득 숨쉬기가 몹시 껄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마른 입안만큼이나 뻑뻑한 횡격막을
억지로 움직여 거친 숨을 들이쉬며
난 그녀에게 반걸음 더 가까이 붙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가슴이 맞닿을 것 같은 거리.
그녀는 이마로 나의 전진을 막으려는 듯
슬쩍 고개를 숙였다.
...... 이건 무슨 뜻일까.
Stop? Wait?
고개 숙인 그녀는 서서히 손을 올려
내 왼 손등을 감싸 쥐었다.
부드럽고 따듯한 촉감, 그리고 두근거림.
그 온기는 순식간에 팔로, 얼굴로 번져
온 몸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기억 - .......
세상이 굉장히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녀의 호흡도, 뺨 근처를 지나는 바람도
모든 것이 너무 느리고 답답했다.
점점 어두워져가는 시야.
이마 앞쪽에서 맥이 툭툭 뛰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뭐..... 뭐지 이 느낌은?
자칫하면 주저앉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심장은 몸 안에서 튕겨 다니는 듯 쿵쾅거렸고
몸을 어떻게 가눠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이대론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조금만 들어준다면
그 손으로 내 허리를, 내 등을 감싸 준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될 것 같았지만
그녀는 묵묵히 내 가슴에 기대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정말 쓰러져버릴 것 같았다.
이마에서 뛰던 맥은 머리 전체가 지끈거릴 만큼 격렬해졌고
화끈 화끈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얼굴은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이젠 밤처럼 어둑어둑해진 시야.
꽉 죄여 오그라드는 듯한 심장과 숨통.
타는 듯한 갈증이 느껴지는 입술.
의식이 끊어질 듯한 그 압박감 속에
난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민아 - 안돼!
순간, 그녀가 내 두 손목을 잡아 강하게 밀어냈다.
유체이탈 직전 상태에 있던 난
세상이 덜컥거리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뒤로 휘청 넘어갔고
운 좋게 바로 뒤에 있던 의자 위에 주저앉았다.
거절당했다.
어쩌지? 무슨 말을 하지?
머리가 아파, 숨쉬기가 힘들어...
기억 - 아하하.... 미안. 장난, 장난.
민아 - 못~됐어!! 흥!!
난 손을 흔들어 보인다고 생각 했지만
팔이 정말 움직이고 있는 지는 의문이었다.
완전히 깜깜해진 시야로 인해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가방을 집어 들고 밖으로 뛰어나가는 발소리만
메아리치듯 귓가에 울려댔을 뿐.
그렇게 잠시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문득 서럽다는 생각도 들고
눕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간절했다.
난 더듬더듬 바닥에 내려앉아 몸을 뉘였다.
더 이상 그 무엇을 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링났다... 라고 하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졸린 것과는 또 다른 몽롱함이 온 몸을 덮쳐왔다.
이게 죽음일까?
스무살 인생에 이대로 죽으면
정말 기가 차서 필살기가 나갈 일이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몽롱한 느낌이었다.
바로 다음 순간 스위치가 ‘탁’하고 꺼지듯
정신이 아찔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주변엔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고
창밖은 완전히 깜깜해져 있었다.
.......밤?
정신은 지극히 멀쩡했다.
단지 쓰러지기 직전 상황이 꿈처럼 아른거릴 뿐.
시계는 11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우선.... 밖으로 나가야겠지?
‘철컹.’
문을 밀자 바로 돌아오는 부자연스러운 반발.
문 밖에 자물쇠 같은 것이 걸려있는 게 확실했다.
....X 됐다.
기억 - 이봐요!! 밖에 아무도 없어요?! 여기 사람 있어요!!
?? - 예, 아무도 없어요.
기억 - 아, 그렇군요.
.....잠깐이지만 난 영(靈)과의 교감에 성공했던 것 같다.
뭐 어쨌든 여기서 아침이 될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소린데...
난 우선 핸드폰으로 집에 연락을 취했다.
말없이 외박을 했다간 그 후한이 두려웠기에...
어머니껜 군대가는 친구가 있어서
같이 술 마시다 못 들어간다고 말해놓았다.
연습실 안은 난방이 끊겨 으슬으슬할 정도로 추웠지만
근처에 덮을만한 물건이라곤 없었다,
어쩌지? 어쩐다....
다음날.
연습실이 있는 건물 수위에게
커텐에 둘둘 싸여있는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노숙(?)의 후유증으로 코를 삥삥거리며
멍하니 입맛만 다시다 하루를 보내고
그냥 집으로 돌아온 나.
이제 그녀를 어떤 얼굴로 봐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그 기묘한 느낌...
마음 한 구석이 계속 찜찜한 게 영 견딜 수가 없었다.
한숨만 푹푹 내쉬며 의자에 기대앉아 있던 난
혹시나 싶은 마음에 집 앞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닥터쟈칼의원=
쟈칼
- 에.... 그러니까, 머리에서 맥이 툭툭 뛰다가
의식이 끊어졌다고요?
기억 - 예, 호흡도 힘들어지고 몸에 힘이 쭉 빠지더니...
쟈칼 - 음... 그 전 상황이 대체로 어땠죠?
뭐라고 대답하지?
키스신청하고 대답 기다리다 결국 뻰지맞은 상황?
아니면.... 음......
쟈칼 - 혹시 뭔가 감정적으로 굉장히 격해있던 중이었나요?
기억 - 아, 네.
마땅히 설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고심하던 난
반가운 마음에 손가락까지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쟈칼
- 대충 증상은 기면발작의 일종 같은데....
평소 갑작스럽게 졸음이 오는 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거나
아무 예고 없이 덜컥 잠드는 경우는 없나요?
기억 - ....없는데요.
쟈칼
- 흠... 그게 아니면 심전도 이상 인가?
혹시 심장이 약한 편인가요? 무슨 병이 있다거나...
기억 - .... 튼튼할 걸요?
쟈칼
- 음... 맥이 뛴다거나 그런 부분은 빈혈 같기도 하고...
평소 오래 서있거나 하면 강한 현기증을 느끼나요?
기억 - 별로요.
쟈칼 - 아....씨X....뭐지?
한참동안 진료부를 들여다보며 고심하던 그는
‘대충 볼 땐 심인성(心因性) 실신 발작의 일종 같으니
이후 비슷한 일이 계속 주기적으로 있으면
종합 검진을 한 번 해보는 게 좋지 싶다.’
라는 미심적은 말만 남기고 진료를 마치더니
별 근거가 없어 보이는 약 몇 알을 처방해주었다.
...... 야메 아냐?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혹시 이상한 희귀병이라도 생긴 게 아닌가 싶어
내심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드라마에서도 주인공 죽이기가 대세라는데..
나도 눈물만 펑펑 쏟다가 안타깝게 죽는 거 아냐?
설마 그러겠어? 이제 겨우 25환데....
....그래, 우선은 그냥 두고 보자.
.......
아니지, 요즘 드라마도 인기 없으면 조기종영인데
25화만에 죽지 말란 법이 어디 있어?
사실은 마빡에 암이 걸렸다 막 이러는 거 아냐?
...... 아니야, 그건 아냐.
그렇게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난 거실에 찻상을 마련해놓고 앉아계신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기억 - ..... 손님 오시기로 했어요?
어머니 - 기억아, 잠깐 이야기 좀 하자꾸나.
왠지 강렬한 포스가 물씬 풍기는 어머니의 말씀에
난 주춤주춤 자리에 마주 앉았다.
어머니 - 요즘 학교는 다닐만 하니?
기억 - 예, 뭐. 그럭저럭.
우리 어머니는 한복이 참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
‘전통적인 한국 여성상’ 이라고 하면 단연 어머니를 들 정도로
집안내조와 자녀양육을 지상 과제로 삼고
늘 잔잔한 삶을 사시는 어머니.
아무리 엄하게 혼을 내고 꾸중을 하셔도
늘 흔들림 없이 차분한 그 모습이
난 오히려 더 무서웠다.
아무튼.... 필시 뭔가 중요한 발표라도 있을 듯한 분위기에
난 촉각을 곤두세우고 어머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던 찻잔을 상 위에 내려놓은 어머니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어머니
- 난 아직 기억이 네가 엄마를 속이거나
우습게 여기진 않을 거라 믿는다.
....어제 친구가 군대갔다고 했었지?
기억 - ........ 예.
어머니 - 사실이니?
기억 - 아니요. 죄송합니다.
분위기가 이정도 됐다는 건
뭔가 뽀록이 났거나 다른 일이 터졌다는 소리기에
난 두말없이 사실을 인정했다.
어머니 - ....... 그러니.
어머니는 한 시름 놓았다는 듯
놓았던 찻잔을 들어 다시 한 모금 머금었다.
대체 그 때 상황을 어떻게 설명 드려야 할까?
연습실에서 낮잠 자다 갇혔다고 해야 하나?
분명 뭔가 중요한 단서 같은 걸 잡으신 듯한데...
어머니 - 그 외에 엄마한테 할 말 없니?
하지만 이미 질문은 모두 끝난 듯
어머니는 편안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보셨다.
....... 말씀드려야 할 일.
내게 최근 생긴 중요한 사건.... 혹은 변화....
어머니가 알고 계셔야 할만한 일....
기억 - ....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요.
내 대답에 어머니는
‘그럴 줄 알았단다.’
라고 말씀하시듯 조용히 미소 지으셨다.
어머니
- 너 병원 간 사이에 어떤 아이한테 전화가 왔더구나.
아마 가가가인 것 같다.
....... 참고로
우리 어머니는 경상도 분이시다....
기억 - ..... 무슨 일이래요?
어머니
- 네가 연습에 안 나왔다면서 무슨 일 있냐기에
애가 정신을 못 차리고 몸도 안 좋은 것 같다고 했다.
.......
기억 - 아...... 예.
대충 상황이 어땠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갔기에
난 그렇게 말을 마쳤다.
하지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어머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보태셨다.
어머니
- 그리고.... 너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함부로 책임 못질 일 하면 안 된다.
모든 일은 예방이 중요한 거야.
그러니까.... 아따 거 뭐시냐면...
어머니....... 너무 앞서가시는 거 아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