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두명, 세 명 혹은 더 많은 남자에게 자신을 내어줄 수도 있었다.
그녀가 하는 사랑의 모습은 굳이 하트가 아니어도 좋았을 것이다.
동그라미, 혹은 각이 진 세모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단지 99.9%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모습과 다르다하여 그녀의 사랑을 비난하고 부정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이 글루미 선데이를 세 번 본 후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처음과 두 번째 이 영화를 볼때는 그저 단시 남녀간의 통속적 사랑애기에만 관점을 두고 영상만을 봤었는데 남자인 내가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영화를 다시 해석하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일종의 도전과도 같았다.
며칠을 그 생각에 사로잡혀 고민하며 다시 한 번 기억을 되살려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되씹어 보았다
누군가 말했다. 일로나와 같은 여자가 되고싶다고 남자들에게 매혹적인 여자이기를 원한다는게
그녀의 애기였다.
물론 일로나는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넘어선 그 무엇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내가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영화를 다시보면서 발견한 첫 번째 사실은 일로나는 결코 독립적은 여자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항상 누군가에게 종속되어서 주가 아닌 부일 수 밖에 없는...
그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다닌다 자전거를 타고 헝가리의 온 거리를 헤매는 것이다 그녀가 찾고자 하는 대상은 자보, 안드라스.. 그리고 한스이다 자보와 안드라스는 그녀의 연인이기에 또 한스는 그녀의 연인인 자보를 위한 필요의 대상으로의 찾음인 것이다
그녀가 잃기 싫어 했던건 그녀의 연인들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그들은 그녀가 온전히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양쪽의 지지대인 듯하다
그래서 그토록 그들을 찾아다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온몸이 땀에 젖은채 도나의 강의 다리위에서 안드라스를 발견했을때 일로나의 기쁨은 마치 그녀자신이 쓰러지지 않음에 대한 안도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일로나가 이카루소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날고자 했던 욕망이 태양 가까이로 다가갈수록 추락할 수 밖에 없는 양면성을 가진 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높이 날수록 더 많이 추락하는 이카루스와 더 많이 가지고자 할 수록 더 많이 잃어야하는 일로나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글루미 선데이에서 일로나는 성관계 외에는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지만 사업상의 논의를 함께 있어서 그녀는 커피를 나르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조성하는 존재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