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후.....
밖이 보인다.
작은 정원 안에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아빠 엄마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처럼 하늘이 맑았던가.....
내가 너를 만나 던 그날.
너는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여기에서 오늘도 너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아마도 어디선가 넌 나를 보고 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며 서 있는 나를.
이제는 다시 찾아온다고 해도 나는 너를 알아 볼 수 있을까?
내 기억은 너를 잊지 못했는데 내 추억은 너를 버린 지 오래다.
나에게 한마디 슬픈 선물만 남기고 투명해져 버린 너.
15
“뭐 해?”
뚜럿한 목소리로 그녀가 나를 부른다.
조용히 내 주위를 잠시 서성이다 가만히 몸을 붙여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귀엽다.
길지 않은 머리를 살짝 꼬아 올렸다.
큰 눈망울에 짙은 눈동자, 작은 입술.
10분이나 이곳에서 나를 이유 없이 기다리게 한 그녀.
하지만 이내 내 눈은 그녀를 바라 본다
내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번질 때 쯤 장난스레 그녀는 내 허리에 두 팔을 두르고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난 행복하다.
난 따뜻하다.
내 몸에 닿은 그녀가 서서히 내게 스며드는 것 같다.
“우산 있어?”
오늘.....비가 온단다.
난 우산이 없다.
내 건망증은 언제나 그녀를 한심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그녀는 잊지 않고 챙겨 왔을 것이다.
가끔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지만 나보다는 기억력이 좋은 그녀.
삐죽삐죽 그녀가 입술을 움직인다.
내 입가에 다시 한 번 미소가 다가오면 그녀가 웃어버린다.
난 그녀를 움직이는 마법을 가졌다.
내가 미소를 지으면 모든 일들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녀가 나를, 아니 내가 그녀를 움직인다.
건물을 우리 두 사람은 빠져나와 내가 본 작은 정원을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난 운전을 하지 않는다.
하기 싫어하는 일이다.
그녀는 내게 운전을 배우라고 조른다.
걷기를 싫어하는 그녀가 내 덕을 보고 싶은 게다.
하지만 난 하지 않을 것이다.
재미 없으니까.
버스를 탄다.
좌석이 하나 밖에 없다.
다행이다.
함께 앉으면 그녀의 끝없는 수다를 들어 주어야만 한다.
내가 서 있으면 그녀는 빨리 수다를 그만 둔다.
올려다 보기에 목이 져려 오기 때문이다.
오늘은 직장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귀담아 들을 수가 없다. 버스 엔진 소리가 고장이 나려는지 너무도 시끄럽다.
오늘은 미안하게도 그녀에게 집중되지가 않는다.
그냥 집에 가서 잠이나 청하고 싶다.
피곤해서가 아니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니다.
머리가 아파 온다. 단지 두통이 아닌 듯 싶다.
시계처럼 정확하게 이 맘 때가 되면 밀려온다.
내 머릿속이 수학공식처럼 어려운 숙제가 남아서 나를 짓누르고 있다.
“어, 비 온다.”
그래 날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린다.
두어 정거장만 지나면 나는 내릴 것이다.
점점 빗줄기가 굵어진다.
버스에 내려 작은 우산 하나에 두 몸을 맡기고 걸어간다.
비좁다.
하지만 그녀는 좋아하고 있다. 더 가까이 몸을 붙힌다.
나도 싫지는 않다.
그녀에게서 좋은 향기가 난다.
그게 난 더 좋다.
내가 더 가까이 몸을 붙이면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몸이 더 뜨거워 지는 걸 내 몸이 느낀다.
신발은 이미 비로 인해 다 젖어 버렸다.
걷기도 힘든데 신발은 더 많은 양의 비를 먹어치운다.
파란 대문 앞에 도착해서 우린 잠시 멈춰 서있다.
그녀가 초인종을 눌려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고 있으면 내가 빨리 행동을 취한다.
비가와도 그녀의 따뜻한 입술은 먹구름이 개인 하늘보다 더 나를 맑게 한다.
오늘은 날씨 탓을 하며 짧은 시간만을 허락 받았다.
아쉽다. 이런 날씨가 난 원망스럽다.
미안하다.
오늘은 그녀를 이른 시간에 들여보내어야만 한다.
그녀의 아쉬운 표정도 난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더 안타까워 잠시만 더 그녀를 붙잡아 둔다.
심술이 났는지 비가 우리 몸까지 파고 든다.
“안녕.....내일 봐...”
헤어짐이다.
싫지만 우린 헤어져야만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 해야만 하는 이별의 순간이다.
보름......
이제 15일만 더 이렇게 이별하면 영영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이곳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아도 되고 아쉬워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를 힘들게 하는 한 가지가 남았다.
눈감는 시간은 어떻게 원망을 해도 해결 할 수 없는 문제인데.....
하지만 그 시간을 제외하면 이제 그녀는 내 사람이 된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시 서로를 응시하고 나서야 가녀린 손끝을 놓아 주었다.
다시 한 번 더 돌아보고 , 또 다시 돌아보고.
그런데도 닫혀버린 문 앞에서 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아.....오늘은 더 아쉽다.
윽!
머리가 아까보다 더 지끈거린다.
무슨 일인지 평소보다 다르게 머리가 아픈 것만 같다.
날씨 탓을 하자.
잊어야 된다.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젖은 옷을 내동댕이 치고서 가볍게 속옷하나만 걸치고 두통약을 찾아 입안으로 삼켜 버렸다.
30분 후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전화가 하고 싶어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신호음이 길어진다.
샤워중인가....!
다시 한번 더 걸었다.
다급히 전화를 받는 그녀.....
“도착했어?”
“옷 다 젖었지?”
“얼른 샤워해, 감기 걸리면 안되니까”
내가 먼저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그녀의 말을 난 잘 들어 준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
나른하다.
졸린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가 생각난다.
또 보고 싶다.
창 밖에는 아직도 비가 많이 내린다.
이런 날은 일찍 자야 되겠다.
꿈속에서 그녀와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