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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그리고 그녀, 첫번째/아무도 모르는 병입니다...

원조자라 |2005.09.29 18:23
조회 586 |추천 0

"미안...해..."
"무슨 이야기야?"
"....."
"무슨 말이냐니까"
"그냥..."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천장에서 한무더기의 별빛이 쏱아져 내리는 기분이다.
나 역시도 그때 왜 미안하다 그랬는지.
처음 만나 키스를 했다...우스웠다. 그래서 였을까.
마시지 못하는 술기운을 때문이였나,
아니면 서로의 눈동자 조차 보이지 않은 어둠의 힘이 내 등어리를 밀었을까.

"그냥 미안한 생각이다"
"자존심 상하는 그런 말, 안했음 한다"

미안하다는 말이 그녀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말인줄도 그땐 몰랐습니다.

"아니 난 그냥 내 욕심만으로 그랬다고 생각 할까봐서..."
"왜 내가 여자라서...우습네.
그럼 내가 먼저 너에게 키스를 했다면 나도 너에게 그렇게 말해야 되는거니"
"......"
"내일 아침 해 뜰때 내 얼굴 못보겠네, 그렇게 미안하면"

그런 여자였습니다.
내가 그녀를 만난건 9월말 이때쯤 이였을 겁니다.

졸업을 앞두고 취직준비다 논문이다 신경이 날카로운 어느날,
교수님의 강의조차도 마른 문풍지 소리처럼 내 귀를 짜증나게 하고
그러다 멍하니 창밖으로 보이는 시린 가을하늘에
난 그만 강의실을 튀쳐 나오고 말았습니다.

서울역에서 가장 가까운 시간대, 가장 먼곳의 종착역이 부산이였습니다.
그다음 행선지를 정한 것도 없이 난 무작정 그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실례지만 여기가 어디쯤 입니까"
"궁굼 하세요? 왔던 곳으로 돌아 가시면 거긴 어딘지 아시죠. 그럼 안 궁굼 하실텐데..."
"네, 무슨..."
처음 말을 건넸을때 그녀는 그랬습니다.

아무리 해거름한 산속이라 하지만 양팔을 겨드랑이 깊숙히 넣고
추운듯 툭 던지던 그 말이 몹시도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슨 말이신지..."
"여기가 어딘지 궁굼하시면 떠나지나 말지 그랬어요"
"혹 절에 가세요"
차림새로 봐서 스님은 아닐듯 한데 나도 선문답처럼 말을 건넸다.

"아뇨, 저 아래 동네 살아요. 배가 고파서 잠깐 들렀다 가는 길이예요"
"절에 가면 뭐 먹을꺼 줍니까?"
"네? 하하하...아뇨, 아뇨 아무것도 안줘요"

"그럼 배고픈데 왜 여기까지 올라와요 되려 더 배고프게..."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전 말이죠 여기 왔다가면 안먹어도 배불러요"

서울서 출발한 기차가 경주를 지나 어느정도 지친 기색으로 잠시 멈쳐선 곳이
언양이라는 곳이였다. 언양, 언양이라...
그동안 내가 배운 지식 어디에도 언양이라는 지명은 낯설 뿐이였다.

설악산 대청봉 한번 올라 보지 않았으면서도 난 설악을 다녀 왔고
제주도 조랑말 한번 타보지 않았으면서도 난 마라도까지 훤히 안다.
이름 있는 아니 이름 붙여진 곳만 알고
모든 것을 다아는 척하는 참으로 간사하고 모순된 우리네 지식.

해소기침같던 기적소리의 기차도 목한번 축이더니 다시 씩씩하게 출발한다.
열명도 내리지 않은 한적한 소도시.
아홉은 가고 혼자남은 나만 바보같다.
가까이에 석남사라는 절이 있으니 한번 가보란다. 여승들만 있단다.
역앞 구멍가게 아줌마는 뭐가 좋은지 연신 설명하기 바쁘다.

"시장해 보이네요. 저야 안먹어도 배부른 곳에 갔다 왔지만.
따라 오세요 동동주 잘하는 집이 요 아래 있는데"
"아니 그게 아니고..."
"바쁘시면 가시고요"
"여기까지 왔는데 절구경은 해야 할꺼 같아서요"

"후후 왜요, 일기장에 쓰려고요. 오늘 어느 절에 갔다왔음 이렇게요.
절이 무슨 동물입니까 구경이나 하시게"

그러고는 구부정한 모습으로 내가 오든지 말든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곤 내려간다. 그런 그녀 였습니다.
앞서가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향내가 바람결에 날아온다.

옆에 누워 있는 그녀에게서 아직도 향내가 났습니다.

가만히 목덜미 사이로 팔을 넣어 팔벼게를 했다.
그녀가 한번더 자존심이 상할지언정
난 미안한 마음으로 그녀의 입술을 다시 훔쳤다.

향내와 함께 가을홍시가 그녀의 입에서 배어 나온다.

내 스물다섯 ,
그해 가을은 그렇게 나를 철지난 열병으로 몸살앓게 했었다.

<그대 떠났다 하여도
 혼자 버릇처럼 머리살 만지며
 책장을 넘겨 봅니다.

눈도
귀도
코도
그 입술도

어느것 하나
내 기억에 없지만
가슴속 추억만이
응어리로 남아
때되면, 때만되면 아픔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병이 됩니다>

                     2005. 9. 29
          가을이 올까 저만치 돌아선 원조자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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