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를 뜨겁게 달궜던 '갈라티코 정책'
빅 스타들의 업적에 길이 빛나는 스페인 최강 명문 레알 마드리드는
2000년대에 들어서 어마어마한 거래를 성사시키며 세계 축구계의
주목을 받았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은 2000년
FC 바르셀로나에서 데려온 포르투갈 최고의 윙어 루이스 피구를
비롯해서, 2001년에는 유벤투스에서 '중원의 제왕' 지네딘 지단을
영입했다. 중원을 확실하게 채운 레알 마드리드는 02-03 시즌을 앞
두고 2002 한/일 월드컵을 통해 완전히 부활한 호나우두를 인테르
밀란에서 데리고 왔다. 피구의 첫 시즌인 00-01 프리메라리가 우승,
지단의 가세 후 2001-2002 챔피언스리그 우승, 호나우두의 가세 후
02-03 프리메라리가 우승 등 최고의 길을 걸어왔다. 거기다가 2002
유러피언 수퍼컵, 2001년과 2002년 동시에 인터콘티넨털컵 우승까지
거머쥐기도 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04년 초에는 잉글랜드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7번 선수이자, 올드 트래포드의 상징인
데이비드 베컴까지 영입하므로써 세계 4대 미드필더 중 후안 베론
(당시 첼시) 을 제외한 모든 미드필더들을 보유하는 초유의 사건을
기록했다. 물론 03-04 시즌엔 별 볼일 없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위상은 날로 더 커져만 갔다. 04-05 시즌을 앞두고는 잉
글랜드 리버풀의 '원더 보이' 마이클 오언에다가, 이탈리아 AS 로마
에서 단단한 수비력을 자랑했던 왈테르 사무엘까지 빅 스타들을 마구
마구 영입했다. '갈라티코 (스페인어로 은하수)' 정책이라는 말 그대로
세계 축구계를 호령하는 별들만 모아놨다. 04-05 시즌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의 몸값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전무후무한 스쿼
드가 틀림없었다.
전술에 안맞는듯한 조합
가장 많은 별들이 집합했던 04-05 시즌을 기준으로 들겠다. 레알 마드리드
는 세계 최고의 오른쪽 윙 미드필더 두 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을 중앙으로 이동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 두 명은 바로 루이스 피구와
데이비드 베컴이다. 둘 다 전형적인 오른쪽 윙어이지만, 피구가 더 활동적
이고 베컴은 서있는 시간도 많고 보다 정적이기 때문에 피구를 오른쪽 윙으
로 세워놓고, 베컴을 중앙 미드필더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그의 반대편인 왼
쪽 윙 미들에는 지네딘 지단을 세워놓았다. 지단은 멀티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의 터줏대감인 구티와 함께 중앙 미드필
더로써 앵커를 겸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자랑이자 스페인 축구의 희망 라울 곤
살레스가 아래에서 받쳐주고, 호나우두는 제일 최전방에 서서 무시무시한 공격
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는 왼쪽부터 차례대로 카를루스, 사무엘,
엘게라, 살가도의 환상적 포백 라인으로 뒤를 장식했고, 세계 최고 골키퍼 중
하나인 카시야스가 골문을 맡았다. 그 유명하다는 오언은 후보로 대기하고 있
었다.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나 나올법한 이 포메이션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덜컹거리게 만든다. 축구계의 별들을 한 팀으로 짜서 이렇게 무시무시한 작전
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치를 떨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전술은 결과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미드필드 라인은 흠잡을 곳 없이 빅 스타들로 꽉꽉
찼지만, 서로의 스타일이 잘 안 맞기 때문에 어긋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단은 윙 미드필더로 둬도 훌륭하게 수행해나가지만, 역시 그는 중원에서
두 명의 공격수 아래에 위치해서 이끌어주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낫다. 그
리고 베컴은 패스 능력이 세계 최고급이기 때문에 앵커로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지만, 역시 그는 이미 몸에 오른쪽 윙어로 잘 길들여졌다. 그래
서 사실 합당하게 포메이션을 이끌려면 피구와 경쟁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레알 마드리드 측에서는 세계 최고의 두 오른쪽 윙어를 같이 쓰고 싶은 마
음에, 베컴을 오른쪽 앵커로 중앙에 세워두는 방법을 펼쳤다. 말이 안되
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몸에 익은 것이 더 낫었다.
게다가 AS 로마에서 신들린 수비력을 보여줬던 사무엘이 의외로 레알 마
드리드 이적 후 적응을 잘못해서, 이탈리아 무대에서 보여준 그것이 나오
질 못했다. 분명 좋은 센터백을 두었는데도 레알 마드리드는 수비력에서
문제점을 보이면서 매우 고전했다. 여기에 오언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
다. 오언은 분명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다. 그렇지만 그는 거칠고 투박
하고, 패스가 잘 나가는 잉글랜드 무대에서 계속 있었어야만 했다. 운동
장을 넓게 쓰고 잔패스에 신경을 쓰는 스페인 무대에서 그는 천상 기대
이하일 수밖에 없었다. 축구팬들은 오언의 레알 마드리드 적응 실패를
굉장히 안타까워했다.
결국 뿔뿔이 헤어져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알 마드리드는 언제나 축구계의 핫 이슈로 떠올랐
고, 그들이 펼치는 플레이에 감복하는 축구팬은 전세계 모든 축구팬들
이나 다름없었다. 피구의 화려한 오른쪽 돌파, 지단의 믿을 수 없는 개
인기, 호나우두의 폭발적인 드리블, 라울의 임기응변, 거기다가 베컴의
놀라운 프리킥, 패스 능력까지. 축구 스타들의 모든 장기를 볼 수 있으니
말 그대로 종합 선물 세트였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리그는 물론 프리메라리가에서도 상위
권의 자리에 있었다. 물론 그 멤버로 01-02 시즌 이후 우승을 못한 것에
대해선 어떻게 말할 거리가 없겠지만, 평균적으로 8강 안에 들면서 양호
한 성적을 기록했다. 빅 스타들은 계속 그런 식으로 비교적 높은 자리까
지 올라가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05-06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레알 마드리드는 건재하긴 했다.
그렇지만 06-07 시즌에 돌입하고 나서, 레알 마드리드의 화려한 별들은
서서히 각자의 길로 가게 되고 말았다. 영원히 지지 않을 줄 알았던 별
들은 하나하나씩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05-06 시즌 전 바로 루이스
피구가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해서 인테르의 오른쪽 날개로 돌아갔고, 오
언은 뉴캐슬로 이적하면서 잉글랜드로 복귀했다. 거기다가 지네딘 지
단은 05-06 프리메라리가 마지막 경기와 2006 월드컵 결승전까지 딱 마
치고 축구계를 미련없이 떠났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이 지난 후, 레알 마
드리드에 남았던 나머지 별들은 마저 갈 길을 갔다.
베컴은 2007년 6월부터 미국 LA 갤럭시의 일원으로 뛰게 되었고, 호나
우두는 거의 5년만에 이탈리아 무대로 복귀했다. 행선지는 바로 AC 밀
란이다. 호나우두는 겨울 이적 시장에서 곧바로 밀란에 계약을 체결했
기 때문에 조만간 밀란의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듯 레
알 마드리드에서 늠름한 모습을 보였던 축구계의 스타들은 각자의 자리
로 돌아가게 되었다. 한 팀에 베컴, 지단, 피구, 호나우두, 오언이 있
는다는 이야기는 벌써 옛 이야기로 변했다.
지구방위대 1기의 해체
물론 레알 마드리드는 아직도 세계적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다. 판 니스
텔로이, 이메르송, 칸나바로, 레예스, 디아라, 호비뉴 등등이 있다. 그
리고 각각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축구 유망주인 페르난도 가고와 이과인
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앞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를 책임질 마르셀
루까지 합세하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여전히 갈라티코 정책을 벌인다 해
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실 세계 축구계에 큰 족적을 남기는 빅
스타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적어도 한 팀에 베컴, 지단, 호나우두가 있
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유니폼도 흰색이고, 선수들 면면히 세계 최고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팬들
은 레알 마드리드를 '지구방위대' 라고 불렀다. 지구방위대는 지구 축구
계를 철저히 방어하면서 우주 축구단 (?) 에 맞서싸웠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지구방위대가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못 살렸다는데 초점을 맞출 수
있다. 단지 네임 밸류를 따져서 빅 스타들을 수집한 것 뿐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2006 여름 이적 시장에서 수비의 취약점을 인식하고,
세계 최고 홀딩 미드필더 이메르송과 2006 FIFA 올해의 선수상에 빛나는
(물론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에 받았지만) 최강 센터백 칸나바로를 유벤
투스에서 영입했다. 거기다가 올림피크 리옹의 단단한 허리 디아라까지
데려왔다. 제대로 된 수비수를 안 데려온다는 원성에 못이겨 05-06 시즌
부터 세르히오 라모스를 데려오는 등 수비에 신경을 썼다. 이제 레알 마
드리드 측에서도 무모한 갈라티코 정책을 피한다는 의미다.
지구방위대 1기는 막을 내렸다. 이제 공수 모두 완벽한 지구방위대 2기
를 기다려봐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