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사까페 10월 정모가 성공리에 치러졌습니다.
제 평생에 남자랑 단 둘이 커플석에서 영화보는 날이 올 줄은....
모두들 시간 약속을 잘 지키시길....
...... 그래도 여자분 한 분 오셨었습니다.
단, 남자친구가 있는.
=========================== 내 인생이 그렇지 ========================
자고로 모든 일은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나와 그녀에 관한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던 연극부도
어느덧 평소 상태로 돌아왔고
연습도 순조롭게 계속되었다.
단지 달라진 점이라면
경찰서 사건 이후부터
다시 연습실에 보이기 시작한 안군 정도일까.
분명 안군과 민아 사이에
무슨 일인가 있었던 건 확실했다.
지난 번 김양과의 대화에서 추정해보면
=안군이 민아를 꼬셨었는데 안 넘어왔다.=
그게 사건의 전말인 듯 했지만....
그 이상의 뭔가가 있는 걸까.
연습시간 중 쉬는 시간.
오늘도 수많은 여인네들에게 둘러싸여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안군.
젠장. 만날 꽃밭에서 샤방그르하면서
뭐가 부족해가지고 난린가?
사실.... 말할 것도 없이 뻔한 일이긴 하지만
난 그녀를 제외한 다른 여자부원들과는
거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김양과 질의응답시간을 가진 정도일까.
그런 이유로 여자회원들 사이에
내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이 못 됐고
(물론 그렇게 된 데는 다른 요인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번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민아가 아깝다거나, 실수하는 거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사실........나도 어느 정도 동감하긴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열심히 해야지.
연출 - 오케이 안군, 거기까지 하고 연습시작 합시다.
여인네들 - 아아~ 치던 것까지만 마저 듣고 끝내요~!
안군의 연주를 멈추려는 연출의 말에
여인네들은 아쉬운 살기가 어린 눈빛으로
=죽고 싶냐?=
고 외쳤다.
안군 - 에이, 모두 연습해야지~. 나중에 또 쳐줄게.
여인네들 - 예~. 꼭이에요~.
적당히 자중하는 건지, 오히려 뻐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곧 의자에서 일어서는 안군.
적어도 대부분의 여성회원들에게 있어
그가 미치는 영향력은 연출보다 훨씬 강력한 것 같다.
안군이 나중에 부장직을 맡게 된다면
개인적인 하렘 같은 게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랄까...
내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 사이
안군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전혀 예상 못했던 그의 행동에
난 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 인간이 무슨 생각으로 이쪽엘 온 거야?
안군은 내 반응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같이 연습실 중앙을 바라보며
슬쩍 옆구리를 찌르는 듯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안군 - 옛말에 틀린 말 없다는 말이 맞네.
기억 - ......
안군
-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거나....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거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거나....
흠.....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
그건 좀 아닌가?
역시나 그가 내게 할 말이란 건 뻔한 것이었다.
비유적으로 말을 한다고 하곤 있지만...
대놓고 시비를 걸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건
내가 대인관계에 서툴기 때문일까....
기억 - 그래서 축하해주러 오신 겁니까?
안군 - 응? 뭘 축하해? 둘이 사귀기로 하기라도 했나?
괜히 한 번 비꼬아 봤다가 도로 당했다.
젠장..... 은근히 신경 긁는 스타일이네...
그냥 확 받아버릴까....
기억 - 그럼 뭐 하러 오신 겁니까?
안군
- 별 거 있나. 이야기나 하자고 온 거지.
왜, 뭐 불편한 점이라도?
기억 - 유감스럽게도 많네요.
안군
- 오호라.... 설마 했는데 강하게 나오네?
그럼... 한 마디만 더 하고 가지.
오르지 못할 나무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무진장 높아서 삐끗하면 떨어져 죽을 나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억 - 이미 마침표 한 번 들어갔습니다만...
안군 - 그런가.... 유감이네.
그는 서늘한 기운이 남는 조소를 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안군이 떠난 이후에도 그가 앉았던 자리엔
회색빛 위기감의 덩어리가 뭉실뭉실 남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방해하지 마.
절대로..... 가만두지 않아.
갑자기 마음속에 치솟는 적의를 깨닫는 순간
계속 나를 노려보고 있던 회색의 연기가
씨익...하고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그건... 위기감과는 다른 감각.
지금까지 잠들어있던 수컷의 본능이었다.
세상엔 오르지 못할 나무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무진장 높아서 도저히 오를 수 없는 나무고
다른 하나는 발목을 잡아 끌어내릴
누군가가 숨어있는 나무다.
그리고 공연 D-7.
연습은 마무리 단계에 다다랐다.
돈 안 꿔간 사람으로부터도 이자를 받아낼 수 있다는
싸가지 없는 카리스마 사채업자 기억.
죄 없는 자도 감히 돌을 던질 수 없는
무한 눈물의 샘 민아.
각종 스포츠의 헐리웃 액션에 있어 타의 모범이 되는
궁상 액션의 극치 김군.
김군의 능력을 궁극으로 끌어올려주는 허리반동을 가지고 있는
냉혹한 조폭 박군일당.
외모, 말투, 행동까지 모든 것에서 연륜을 내뿜는
밀수 업계의 대부 회계.
바텐더 역의 김양을 비롯한 수많은 엑스트라들.
모든 준비가 마무리 된 지금
남은 건 관객을 모으는 일 뿐.
연출 - 자, 얘들아 오늘부터 티켓을 판다.
대학에서 제공하는 동아리 후원금은
말 그대로 쥐꼬리 수준이었기에
연극 한 번에도 소품, 의상을 비롯한
대규모 준비가 필요한 연극부에선
티켓 판매가 필수불가결의 요소였다.
연출
- 한 사람당 15장씩이다, 15장.
이거 못 팔면 자기 돈으로 사!
대신 15장 판매 이후부터는 20%씩 자기 마진이다.
혼자 다 팔 자신이 없으면
새끼 판매책들을 끌어들여!
새끼 판매책의 마진은 15%니까
5%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날로 먹는 거야!
새끼마담들이 또 새끼를 치면 거기서 또 마진이 나오고!
그럼 수입도 기하급수로 뛰는 거지.
정말이라니까, 나도 처음엔 안 믿었는데
첫 달 월급 받아보고 깜짝 놀랐단 말이야.
투잡시대에 이런 부업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물론 이 사업은 합법적으로 공인 된.....
.... 이런 판매법을
다단계, 혹은 피라미드라고 한다.
만약 주변에서 누군가 이런 사업을 제시한다면
←↙↓↘→↘↓↙← + C 를 입력한 뒤
공격이 끝날 때 추가타 A+C를 눌러서
인연을 끊기 바란다.
그렇게 한 장에 5천 원짜리 티켓 15장을 들고
길거리로 내몰린 우리.
다시 말하지만
지금껏 내 생활신조는
‘혼자라도 잘 먹고 잘 살자.’ 였고...
지금은 친구들과 같이 듣는 수업조차 없다.
오죽하면...
친구들 중 대다수는 내가 휴학했다고 믿고 있으며
재수를 한다느니, 군대에 갔다느니 하는
웃지 못 할 속설까지 나돌고 있다.
지금까지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도 불투명한 지금....
15장이나 되는 티켓을 팔라는 건
자동차 15대 팔고 오라는 것만큼이나
막막한 이야기였다.
....... 역시 방법은 강매뿐인가.
...........
기억 - 여!! 친구1!
친구1 - 응? 오랜만이네? 휴학한 거 아니었어?
기억 - 휴학은 무슨,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는데.
친구1
- 워낙 안 보이니까 알 수가 있나.
이 근처에 무슨 볼일 있어서 온 거야?
생각보다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는 그의 반응에
난 =친구들이 아직 날 잊은 건 아니구나.= 라고 안도했다.
하긴... 예전에 물리 공부할 때도 제법 도움이 됐었고...
숙제도 잘 보여주고 했으니
그렇게 안면몰수를 당하진 않을 것이다.
기억 - 응, 별 거 아니고. 연극 티켓 하나만 구입해라.
하지만 이 한 마디로
친구라 불렸던 남자의 표정은 돌변했다.
친구1 - 오, 오랜만이긴 한데.... 누구시더라?
기억 - .... 그러기야?
친구1 - 아, 기억이 가물가물한 게....
기억 - 누가 가물가물하다고?
친구1 - 저.... 혹시 도를 믿으십니....
왠지, 이럴 줄 알았다... 는 느낌이랄까.
어쩐지 좀 잘 풀린다 싶었다.
뿌린 데로 거두는 것이 세상이요,
쌓아도 쌓아도 부족한 것이 인덕(人德)이니
남는 건 하나 밖에 더 있겠는가?
기억 - 좋게 말로 끝내자.
친구1 - 도와주세요!! 여기 이상한 사람이!!
기억 - ..... 어쭈? 도망가?
후다다다닥, 두두두두두, 슈슈슛 파팟, 푸덕덕덕, 꼬끼요!!
기억
- 하아...하아.... 잡았다 이 새끼...
좋게 말 할 때 알아서 까라. 응?
친구1 - 흑....흑..... 어, 얼만데요?
..... 그렇게 난 친구 한 명을 잃었다.
기억 - 여! 친구2!
친구2 - 헉?!
기억
- 어쭈? 보자마자 튀어?
이 새끼가 이미 냄새를 맡았구먼?
....... 뭐 인생 별 거 있는가?
맨바닥에서 시작하려면 발품이라도 팔아야지.
친구2 - 살려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기억 - 소매치기야!! 앞에 그 놈 좀 잡아주세요!!
친구2 - 허걱?! 아, 아니에요!! 쫓아오는 놈이 나쁜 놈이에요!!
기억 - 그거 교재살 돈 이란 말이야 나쁜 색꺄!!
아저씨 - 이엽!!
친구2 - 아악! 아저씨, 잡지 마세요!
기억 - 어이구, 고맙습니다!! 아직 사회에 정의는 남아있군요!!
잠시 후, 근처 화장실.
기억 - 후우.... 쯧. 그러게 왜 도망을 쳐 인마...
친구2 - 흐흑..... 자, 잘못했어요.
기억 - ....... 연극 꼭 와라.
뭐, 아마 안 오겠지만.....
표는 팔았으니 목적은 이룬 셈이다.
그렇게... 피해자가 속출하면서
나의 악명은 공대 전체로 퍼져나갔고
순식간에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종적을 감췄다.
기억
- 후후후후... 다들 어디 숨은 거야?
잡히면 예뻐해 줄 테니까, 좋게 말할 때 나와....
‘사사삭,’
기억 - 거기냐!!!
친구들 - 야, XX, 들켰다! 뛰어!!
기억 - 구에에에 스엇꺼라아아아~!!!!
연극 D-5
현재 판매량 7장.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