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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7화> 판매개시!

바다의기억 |2005.10.27 00:39
조회 15,572 |추천 0

운동하다 목 다쳤습니다.

 

부상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 듯 한데

 

움직이기에 애로사항이 꽃피는 군요.

 

========================== 대체 뭔 짓을 한 게냐 ==========================

 

아무 말 없이 날 바라보고 있는 그녀.


그 때 그 기분은


두근거리기보다는 조금 허탈한 쪽이었다.


난 매일 상상 속에서 멋진 고백 장면을 꿈꿨었다.



백송이 장미꽃에 천 개의 촛불을 켠


드라마틱한 이벤트는 못 하더라도


바람이 부는 강가에서


그녀의 머릿결을 넘겨주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백하고 싶었다.


이렇게... 쩔쩔 매는 자세로


어쩌다 보니 말하게 된 게 아니라.



기억 

- 그냥.... 처음부터.... 좋아했어요.


좀 답답해 보이기도 했겠지만....


미안해요, 서툴러서.



그렇게 어색하게 말을 맺은 난


머쓱한 기분에 반 쯤 몸을 돌렸다.



민아 - ........



그녀의 표정엔 별 변화가 없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이건 고백이라기보다는


=인생 별 거 있나, 그냥 이해하고 삽시다.=


라고 하는 한탄 쪽에 가까웠다.



이런 말에 감동받을 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기가 차서 웃음이나 안 나오면 다행이지.



갑자기 입안이 씁쓸해지며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인생에 몇 장 없을 비장의 카드를


바람결에 날려버린 것 같은 허탈감....



기억 - 하아....



두근거릴 뭣도 없이 맥이 풀려버렸다.


대답을 들을 생각조차 안 들었다.


=될 대로 되라.=


그저 이 상황이 어떻게든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생각만 간절히 들었다.



시간이 제법 흘렀다.


날씨는 추웠고, 분위기는 암울했다.


날 바라보던 민아는 이제 아예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기억 =이렇게 끝인가요?=


민아 =미안해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에요.=



이런 나레이션이라도 들어가면 적당할 상황.



기억 - ...... 티켓.... 많이 팔았어?



마냥 서있기가 어색했던 난


애써 태연한 척 그녀에게 물었다.


민아는 화제가 다른 곳으로 돌아가자


어딘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민아 - 아...아니. 아직 세 장 밖에....


기억 - 응? 어쩌다가?


민아 - 친구들이... 시간이 될지 안 될지 잘 모르겠다고....



난 그녀라면 이미 다 팔고


마진을 올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고 하면


무조건 ‘그럼 다음 기회에’ 로 넘긴 건가?


부탁하는 게 서툰 건지


마음이 약한 건지...



기억 

- 같은 과에 남자들 있잖아?


그 쪽이면 쉽게 팔릴 것 같은데....



민아 - 아..... 그게...... 뭐랄까.....



=그쪽은 별로...=


라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난 대략적인 상황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표를 팔자면 쉽게 팔겠지만


‘Take & Give' 식으로 나중에 다 빚이 된다.


=지난번에 티켓도 사줬는데~.=


이런 식으로.



=얼음여왕.= 이라는 별명처럼


그녀가 철저한 중립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처음부터 아무에게도 부탁하지 않음으로써


사소한 빌미도 두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기억 

- 나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같이 팔러 가 볼래?


내 친구들한텐.... 아마 쉽게 팔 수 있을 거야.


별로 부담 가질 일도 없고.



민아 - ...아, 응.



내가 먼저 몇 걸음을 옮기자


그녀는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조심스레 뒤를 따랐다.



뭔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몇 %인가 부족한 이 기분.


그래프 fitting을 했는데


들쑥날쑥한 추세선은 미지방정식에


표준편차도 전혀 안 줄어들어들었을 때처럼


막막한 답답함이 가슴에 차올랐다.



나도.... 대담해지고 싶다.



기억 - ..........



난 걸음을 멈추고 몸을 조금 틀어


그녀에게 왼쪽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로 가면 아무거나 건네줄 것 같았기에


엄지손가락이 아래쪽을 향하도록


철저하게 각도를 맞춰서.



내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 작게 움츠린 손을 내밀었다.


곧 그녀의 손이 내 손 안으로 들어왔다.


싸늘한 날씨 탓에 조금 차가운 느낌은 들지만


너무 부드러워서 따듯한..... 작고 여린 손가락들이


내 =엄.지.손.가.락=을 감아왔다.



........


대체 왜 그렇게 잡는 거야!?



뭔가 모양새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난 남은 네 손가락으로 그녀의 주먹을 감쌌다.


그렇게 손을 꼭 쥐고 있으니


몸 전체가 훈훈해지는 것 같은 온기가


팔을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손이라면 이전에도 몇 번 잡은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 의미라거나 질적인 측면에서


무게의 차원이 달랐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다.



그렇게 난 평소보다 조금 느린 걸음으로


나의 홈그라운드에 도착했다.



어디보자....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들이.....



그렇게 건물들 주변을 쭉 훑어보던 중


미세하게 흔들거리는 수풀더미를 발견한 난


손가락으로 수풀 근처를 가리키며 그녀에게 말했다.



기억 - 저기 풀숲에 삐죽 튀어나온 거 보여?


민아 - 응? 어디?


기억 - 저어~기. 건물 앞 화단에 갈색 털 뭉치 같은 거 보이지?


민아 - 응. 뭐야 저게?


기억 - 아마... 내 친구6일걸?


민아 - 그래? 왜 저러고 있어?


기억 - 뭐랄까.... 요즘 유행이라 그래. 어~~이! 친구6!!



실컷 그녀에게 뭔가 설명하는 듯한 모션을 취한 뒤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수풀 뒤에 숨어있던 녀석은 쭈삣쭈삣 고개를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땅을 파고 들어가서라도 도망치겠지만


지금은 미모의 공주님께서 함께하고 있으니


앞에 쥐덫이 깔려있어도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억 - 여긴 우리 연극부에 공주님!


민아 - 앗, 야아~.


기억 - 괜찮아, 괜찮아.



내가 그녀를 소개하자


여기저기서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다른 녀석들.


무슨 숲의 요정도 아니고...


대체 왜 다들 나무 뒤 같은 데서 기어 나오는 거냐?!



친구7 - 우워....Girl....Girl.....


친구8 - 여자다.... 우워어....



생각을 잘못했다.


숲의 요정이 아니라


무덤가에서 일어나는 좀비나 구울들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앞에 모인 공돌이는 다섯 명.


학기말을 앞에 두고 밀려든 과제의 압박에 치인 듯


영락없이 술 취한 노숙자 몰골에


등 뒤에선 퀘퀘한 오라까지 뿜어내고 있는 그들의 눈에선


반년여의 공대 생활 속에 정제되고 다듬어진


이성을 향한 집념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오히려 민아 친구들 보다 이 녀석들이 더 위험할지도.



곧 그들은 민아와 악수를 나누며


인사말을 주고 받았다.



민아 - 안녕하세요, 민아라고 해요.


친구6 - 아...예, 저는 기억이의 친구.... 친구6입니다.


친구7 - 안녕하세요, 저는 기억이의 절친한 친구, 친구7입니다.


친구8 - 친구8입니다. 기억이의 BF(Best Friend)라고 할 수 있죠.


친구9 

- 기억이와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전우,


친구9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친구10 

- 친구10입니다. 기억이와는 피를 나눈 의형제 지간으로


그 우정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겁니다.



아, 그러셨군요. 이런 $%#%#@들.....



단지 악수를 몇 초 정도 더 하기 위해


BF며, 의형제를 자처하는 녀석들의 행태에


마음속 깊이 좌절한 난


나중에 사랑과 우정 중에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두 말없이 사랑을 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친구6 - 그런데 이 누추한 곳엔 어쩐 일로...


민아

- 아..... 그러니까 저희 연극부에서


이번 일요일에 연극 공연을 하거든요.


입장권은 한 장에 5천 원이나 하지만...


정~~말 정말 재미있을 테니까


혹시 괜찮으시다면 보러 오시겠어요?


영화 한 편 보신다고 생각하시면


절~~대로 후회하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가슴 앞에 두 손뼉을 마주 대고


생글 생글 웃으며 부탁하는 민아의 모습에


공돌이들의 사고회로가 급격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그들의 일반적인 사고회로에서


기본 항목의 우선순위를 알아보도록 하자.



예쁜 여성의 부탁 > 생명 유지 >일반적인 여성의 부탁 >


청춘사업 > 금전 취득 > 일용할 양식과 술 > 학업 > 취미생활 >


그 외 다수..... 건강관리 > 모든 남성의 부탁



그렇다. 예쁜 여성의 부탁은 생명 유지에 우선한다.



적어도 =관상이 참 좋으시네요, 혹시 도에 관심 없으세요?= 나


=합법적이면서 매우 뛰어난 사업 아이템이 있는데요.= 등


이후 모든 기본 항목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일만 아니라면


사고 판단의 결과 값은 반드시 True, 즉 1 이 나온다.


.....심지어 전자의 경우에도 상대에 따라선 1이 나올 때도 있다.



친구6 - 가겠습니다, 마님.



다른 이들이 아직도 ‘금전취득’ 과 ‘학업’ 등


하위 카테고리와의 우선순위를 비교하고 있는 사이


가장 본능에 충실한 알고리즘으로 연산을 마친 친구6이


최초로 결과값을 출력했다.



민아 - 아, 정말요? 잠깐만요, 제가 표를.... 어디다 뒀더라?



얼굴 가득 화색을 띄며


주머니 이곳저곳을 뒤적거리는 그녀.


내 표를 건네줄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친구6 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민아 - 아, 찾았다. 여기요~.



이윽고 가슴께에 있는 안주머니에서


표 한 장을 꺼내 두 손으로 건네는 그녀.


표를 받아든 친구6의 얼굴에


발그레한 홍조가 떠올랐다.



친구6 - 아....예, 참 따듯하네요.



그의 쑥스러운 한 마디가 공대생들의 본능에 불을 지폈다.


==예쁜 여성의 부탁은 생명유지에 우선한다!!!!==



친구7 - 아앗! 이런 저도 시간이 됩니다!


친구8 - 아니 그럴 수가, 나도 그런데!


친구9 - 전 왠지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군요!


친구10 - 크아앗, 전 못 가면 죽을 것 같습니다!



결국 순식간에 다섯 장 판매.


어안이 벙벙해서 서있던 민아가


다시 활짝 웃으며 친구7의 손을 맞잡았다.



민아 - 정말요? 고맙습니다~.


친구7 - 어유, 별 말씀을.


친구8 - 저도 갑니다. 저도....


민아 - 아, 예~ 친구8씨도 감사해요~.



그렇게 그녀는 다섯 명과 차례대로 악수를 나누었고


공돌이 다섯은 헤벌쭉한 웃음을 지은 채


표 한 장씩을 두 손에 꼭 모아 쥐고 자리를 떠났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추가 마진도 꿈은 아니겠군.


하지만 뭘까....이 찜찜한 기분은.



민아 - 우와~ 벌써 다섯 장이나 팔았어~!


기억 - ..... 음, 그러게 말이야.


민아 - 기억이 친구들 또 어디 있어? 응?


기억 

- 아.... 잠깐만, 그 전에


표는 바깥 주머니나.. 그런데 넣어놓는 게 좋겠다.



민아 - 응? 왜?


기억 - 뭐랄까, 그 쪽이 꺼내주기도 쉽고....


민아 - 아.... 그건 그렇겠다.



그녀가 안주머니에 있던 표를


코트 주머니로 옮기는 것을 보며


난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난.... 사실 굉장히 쪼잔한 성격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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