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을 생각해도 편안한
토요일 밤입니다.
하지만 이밤이 지나면 다음날은 월요일이 되겠죠.
하아.... 월요병이 점점 심해져가고 있습니다.
===========================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
기억
- 어~~이!! 거기, 좋은 말로 할 때 나와라!!
모자 삐져나온 거 다 보인다!
친구13 - ...제길, 들켰나.
나의 외침에 건물 기둥 뒤 그림자에서 나타나는 친구 13.
기억 - 옳지, 거기 있었구나.
친구13
- 큭? 한 번 떠본 거였냐?
모자 쓰고 있는 건 어떻게 알고?
기억 - 그냥 찍어봤지.
강매 사건의 후유증으로 인해
공대 곳곳에 숨어버린 친구들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고
난 민아와 함께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적당히 기어나오는 녀석들을 상대로 판매를 계속했다.
그리고 남은 건 최후의 한 장.
그 희생양은 아마도 친구13인 듯 하다.
친구13
- 빌어먹을.... 하지만 나도 호락호락 당하진 않는다.
어차피 지방에서 홀홀 단신으로 올라온 몸,
근처에 가족도 친지도 없는 판에 두려울 게 뭐 있겠냐.
못 사! 안 사! 꼬우면 배 째!!
하지만 그전에 옆에 있는 아리따운 처자는 누구시냐?
기억 - 이쪽은 우리 연극부 공주님.
민아 - 안녕하세요, 민아에요~.
친구13
- 아, 저는 지방에서 원대한 꿈을 안고 상경해
처음 만난 친구 기억이를 정신적 지주 삼아
힘든 외지 생활을 견뎌가고 있는 친구13이라고 합니다.
기억이와는 아주 각별한 사이라고 할 수 있지요.
민아 - 아~ 그럼 기숙사에서 지내세요?
친구13
- 유감스럽게도 여러 사정이 겹쳐서
근처에 있는 자취방에서 통학을 하고 있답니다.
1학기 때 기숙사에서 펑펑 놀기만 하다가
학점 펑크 나서 잘렸다고
솔직히 밝히는 게 어떻겠나, 친구?
아니면 내가 대신 밝혀줄까?
민아
- 아. 그건 그렇고, 이번 일요일에
연극부에서 공연을 하거든요,
혹시 기억이한테 소식 들으셨나요?
친구13
- 아, 그럼요. 요즘 기억이가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얼마나 홍보를 많이 했는데요.
아주.... 겁나게 했죠. 말 그대로 겁나게....
민아 - 아.... 그럼 보러 오기로 하신 거예요?
친구13
- 아..... 그건.....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서...
보류하고 있던 중입니다.
보류가 아니라 도피겠지....
민아 - 아이~ 보러 오세요~.
나의 어드바이스와 실전연습을 기반으로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공돌이들을 무력화 시키는 비법을 깨달아 버린 그녀는
가볍게 어깨를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친구13 - 그게..... 시간이 될지 안 될지..
생각보다 질기군. 역시 자취를 하면서
매일 일본 미소녀들과 메딕을 벗 삼아 지내다 보니
면역력이 길러진 건가...
민아 - 아~이~ 진짜 재미있다니까요~.
친구13 -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마님.
다른 녀석들에 비해 질기긴 했지만
결국 ‘필살, 소매 잡고 흔들기’에 무너진 친구13은
그녀로부터 마지막 티켓을 샀다.
이로써 남은 티켓 모두 판매 끝!
민아 - 다 팔았다~!
기억 - 흐음... 생각보다 빨리 팔았네.
민아 -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얘기해 볼 걸.
맞아.... 그랬으면 숨어있는 것들을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는 없었을 텐데.
기억
- 애들이 워낙 단순해서...
다음에도 티켓 남으면 내 친구들한테 팔면 될 거야.
민아
- 그럼 혹시 기억이도 내가 ‘아잉~’ 이러면
다 들어주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올려다보며
어깨로 내 팔을 슬쩍 쓸어 올리듯 미는 그녀.
두근.
기억 - 하.하.하 아니 뭐.... 나야..... 이제 많이 봤으니까...
민아 - 흐음~ 그 어색한 웃음은 뭘까요?
기억 - ...... 그러게 말이야. 핫.핫.
민아 - 아이이이잉~~~.
기억 - ....... 허, 허허허.
계속 어깨로 나를 떠밀며 몸을 기대오는 그녀.
그녀 생각엔 장난을 치고 있는 거겠지만
나로선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머리가 멍해질 지경이었다.
혼자 필 받아서 펌프질을 시작한 심장 탓에
얼굴은 자꾸 달아오르고...
이대로 또다시 스위치가 나가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 난
우선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했다.
기억 - 작전상 후퇴.
민아 - 앗, 비겁해!
이런 걸 두고 비겁하다고 해야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별 수 있겠는가.
우선 살고 봐야지.
저 앞까지만 뛰어간 다음에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가 오면 다른 이야기를 하면 되겠지.
설마 계속 그러겠어?
그렇게 20m 정도를 달아난 난
잠시 자리에 멈춰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민아 - 서라~!
기억 - ...... 아니... 그게...... 에라 모르겠다.
하지만 예상과 전혀 달리
의기충전해서 뛰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난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고
그녀는 바싹 약이 올라서
더욱 필사적으로 날 뒤쫓았다.
너무 빨리 도망가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잡히기엔 상황이 안 좋았기에
난 적당히 거리를 둔 채 마냥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어쩌지? 어쩐다? 이게 아닌데?
근처에 있는 벤치와 잔디밭을 끼고 빙글빙글 돌아
어림잡아.... 한 2~300m 정도 달렸을까.
그녀는 숨을 쌕쌕거리며
손을 무릎에 짚은 채 멈춰 섰고
몹시도 미안한 기분이 든 난
주춤주춤 그녀에게 다가섰다.
기억 - ....... 괜찮아?
민아 - 기억이 너어-!
화난 말투와는 달리
익살스런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날 올려보는 그녀.
기억 - .......
난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웃음은 날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마치 그 웃음이 내 마음이 스며들 듯
훈훈하고 부드럽게.....
곧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마치 마차에서 내리는 공주님처럼
내 손위에 곱게 놓여있는 그녀의 손.
난 자연스럽게 손을 틀어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아이잉= 같은 것 하지 않아도...
내 모든 힘을 다해 들어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나의 공주님이니까.
그렇게 속으로만
멋진 멘트를 줄줄 읊고 있던 중
은근히 귀에 익은 16화음 전자음이 귓가에 울렸다.
=빠바바밤빠밤빠바~ 빠바바밤빠밤빠바~=
운명 교향곡..... 그녀 휴대폰인가?
하지만 별 반응 없이 계속 걸음을 옮기는 그녀.
혹시 너무 익숙해서 못 듣고 있는 건가?
기억 - 전화 온 거 아니야?
민아 - 응? 내 벨소리 아닌데? 기억이 휴대폰 아냐?
기억 - 아냐, 나 휴대폰 없...... 아, 맞다. 있다.
분명 있긴 있지만
워낙 오랫동안 울린 적이 없어서
그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래 그래..... 분명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샀는데...
마지막으로 충전한 게 언제더라?
1화 때 한 통 쓰고 지금까지 안 쓴 것 같은데?
한참을 이곳저곳 뒤적거린 끝에
코트 안주머니에서 나온 애물단지.
분명 휴대폰이 맞다.
기억 - 여보세요.
?? - 나다.
기억 - .... 누구십니까?
?? - 애비다.
기억 - 아, 아, 예.
아버지 - 금일 천팔백 시, 일팔공공시까지 귀가. 이상.
기억 - 예, 알겠....
=띠리릭.=
통화시간 15초.
이걸 위해 넌 지금까지 기다렸던 거냐.
배터리 한 번 안 갈아줘도 일주일, 보름씩을 버티면서.....
망부석 저리가라 할 법한 녀석의 충정에 감격하며
지금껏 시계 값으로 낸 기본요금이
얼마나 될지 셈해보고 있을 때
그녀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민아 - 휴대폰 있었어?
기억 - 아... 응. 그러게 말이야.
민아 - 왜 말 안했어?
기억 - 아니, 전화가 하도 안 와서 잊고 있었어.
민아 - 풋, 농담하지 말고, 번호 몇 번이야?
......... 진담인데.
기억 - ....... 몇 번 이더라?
점점 더 심각한 회의감에 빠져드는 나.
잠시만 기억을 더듬어 보자.
뒷자리는 우리 집 전화번호랑 같았는데....
앞자리가... 앞자리가....
이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녀가
나에게 기사회생의 탈출구를 제시했다.
민아 - 메뉴에 있잖아... 자기 번호 보기.
기억 - 아, 맞다.
=천팔백 시까지 귀가= 라는
절대 명령을 지키기 위해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길.
휴대폰을 꼭 쥐고 있는 내 가슴은
지칠 줄 모르고 두근거렸다.
민아의 휴대폰 번호를 알았다.
이제 언제든 그녀에게 전화할 수 있다.
학교 안에 있을 때도,
집에 있을 때도,
언제 어디서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 이론상으로는.
기억 - 다녀왔습니다.
어머니 - 씻고 저녁 먹어라. 아버지 오셨다.
기억
- 예, 전화 받았습니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아버지 - ....... 음.
거실에 있는 소파에 기대 앉아 책을 보고 있던 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묵직한 콧소리를 내어
=왔냐.= 혹은 =오냐.= 라는 말을 대신하셨다.
.... 별 다른 일은 아니었던 건가.
곧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함께한 식사시간.
평소와 달리 휘황찬란한 단백질들의 향연 앞에
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억 - ....오늘 무슨 날입니까?
어머니 - 아니, 그냥 간만이니까.
기억 - 그럼 아버지께선 무슨 일로 전화를....
그렇게 조금 늦은 질문을 하면서도
오늘따라 더욱 심각해 보이는 아버지의 표정에
난 속으로 마른 침을 삼켰다.
아버지 - 경과보고.
기억 - 예?
아버지 - 여자친구랑 현재까지 경과보고.
기억 - ..... 잘 되고 있습니다.
아버지 - 어디까지.
기억 - ....... 가끔 전화하고 그럽니다.
아버지 - ....장하다. 우리아들.
그렇게... 화목한 식사시간은 계속 되었다.
사실 오늘 전화번호 알았다고는.....
말 못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