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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사히 방송에서 방송한 1973년도 김대중 납치사건)
1973년도 김대중 납치사건이 있었죠.
나중에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한 것으로 밝혀졌었던 사건입니다.
박대통령은 몰랐었죠.
납치당한 김대중씨를 구해낸것은 일본 자위대였는데,
일본 자위대는 미국의 지시를 받고 김대중씨를 구했다더군요.
이유인즉은,
자존심 강한 박정희 대통령을 미국이 아주 싫어했기 때문에, 박정권을 무너뜨릴 대안을 찾고 있었답니다.
박통을 싫어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 스스로 자주를 하기 위해 핵개발을 하려고 했다든지 하는 것등이 있었죠.
일본의 경우도 70년대 다나카수상이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자주하려고 무지 힘을 썼다군요. 특히 석유를 거의 미국에 의존하고 있던터라 그당시에 중국의 유전을 함께 개발한다면, 일본으로서는 크나큰 자원을 얻는 셈이 되는 터였죠. 일본의 경우는 미국의 조종으로 록히드 사건이 터지면서 다나카수상은 정계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대신 한국의 경우, 미국이 김대중이란 인물을 전면으로 부상시켜 박통과 대립시키고 싶어했답니다. 특히, 70년대에도 김대중씨는 북한 정권이랑 연통되어있었기 때문에, 김대중씨를 다리로 해서 북한을 미국영향하로 끌어들이고 싶은 것이었죠.
여기까지만 방송에서 방영된 내용인데 갑자기 보다가 의문이 들었던 것은 70년대에도 북한정권과 내통하고 있었다는게 놀라웠습니다. 김대중씨가 북한으로부터 그당시 정치자금 받아썼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실지로 연통하고 있었다는 사실보도를 보면서 솔직히 지금의 정치를 위해 그때부터 준비해왔나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결국 미국뜻대로는 되지않고 김대중씨도 김정일씨한테 이용만 당한 꼴이 되었지만.. 그래도 노벨상은 타가셨으니, 본인에게는 더이상 바랄것 없이 인생을 사신 거지만, 솔직히 나머지 국민들은 그 덕에 통일의 허상만 보면서 속고있어야하는게 답답할 뿐입니다.
그래도, 가장 큰 배신감은 미국이 들었겠죠.
덧붙여서, 김대통령 김정일씨 만나서 정일이한테 어떻게 당했는지 그러한 장면들 일본이 잘 보존했다가 고이즈미가 평양회담할때 한방 먹였었던 것이 평양회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