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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44화> M & L 4막

바다의기억 |2005.11.21 10:05
조회 21,580 |추천 0

안녕하세요,

 

활기찬 한 주의 시작 월요일입니다.

 

.....젠장.

 

모두들 오늘 하루도 힘내시고요,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화이팅~.

 

......젠장.

 

=========================== 다른 사람의 의욕까지 꺾지 마라!! ==========================

 

 

선희 - 왜 그랬어요?


철수 - 미안해....


선희 - 왜 그랬냐고요!


철수 - ......... 알잖아. 이미.



수갑을 차고 죄수복을 입은 철수와


그를 마주하고 앉은 선희.


어느 날인가 주고받았던 대화가


역할만 바꾼 채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선희 - ........



선희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가방 속에서 조그만 종이 한 장을 꺼내보였다.



철수 - 이게 뭐야?


선희 - 당신이 샀던 복권이요.


철수 - 이건 왜...... !!



일순간, 철수의 눈동자가 커졌다.


쓰디쓴 웃음을 짓고 있는 선희와


어쩔 줄 모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철수.


가쁜 숨을 내쉬며 어찌할 줄 모르던 그는


이내 상황이 정리된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책상에 머리를 찧어댔다.



선희 - 왜 그랬어요...



당장이라도 이슬이 되어 유리창에 맺힐 것 같은


눈물어린 선희의 목소리.


잠시 책상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던 철수가


격리벽에 바짝 붙으며 선희에게 속삭였다.



철수

- 그거 가지고 도망쳐.


그 새끼들한테 돈 갚을 생각하지 말고....


그대로 멀리 도망치라고.



선희 - .........



철수의 말에 선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철수는 답답한 듯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격리창에 얼굴을 더욱 가까이 하며


격양된 목소리로 악을 쓰듯 속삭였다.



철수

- 어차피 그거 갖다 박아도 빚은 남아,


그리고 또 순식간에 불어나.


아직까지 당신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내가 이렇게 된 이상, 그것도 금방이야.


지금까지 고생만 시켜서 미안해, 그러니까.....



선희 - ...... 합의 볼 거예요.


철수 - 뭐?


선희

- 당신이.... 찌른 사람....이랑.....


합의만 보면 형이 많이 줄어들 거래요.


우발범죄고.... 초범이라..... 금방.... 나올 수....



그 말을 하며 선희는 끝내 눈물을 쏟았다.


철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무너지듯 자리에 의자에 주저앉았다.



선희 - 왜 그랬어요....왜...


철수

- 실수였어. 경찰들이 오고.... 도망칠 곳은 없고....


뒤로 물러서다 전선에 발이 걸려서 같이 넘어졌는데...


일어나보니 그 사람 몸에 칼이 박혀있었어.


정말로.... 그럴 생각은 없었어.....



참담한 침묵이 무대 위를 뒤덮었다.


그리고 어느새 면회시간이 끝났다.


담당관에게 끌려 나가며 철수는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철수

- 그냥... 그냥 혼자 도망가, 바보야!!!


허튼 생각 하지 말고.... 그냥 ... 날 버려!!



선희 - ....당신도 날 안 버렸잖아요.



=함께 살아가요. 지옥의 나락에서라도.=



잔잔하게 울리는 나레이션이


서늘한 감동의 바람이 되어 불었다.



다시 사채업자 사무실.


내가 소파에 앉아 차트를 확인하고 있을 때


박군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업자 - 갔다 왔나, 어떻게 됐어?


박군 - 형님, 철수 그 새끼, 은행 털다 잡혀갔다는 데요?


업자

- 뭐?....하아... 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여자는 어떻게 됐어? 같이 잡혀갔데?



박군 - 그게....



박군이 말을 흐리는 사이 뒤에서 나타나는 선희.


단정하게 꾸민 그녀의 모습과 표정에선


지독하게 차가운 결의가 흐르고 있었다.



업자

- 어이구? 철수 그놈이 용케 돈은 챙겼나보네.


그래, 얼마나 갚으시려고 이렇게 행차를 하셨습니까?



선희 - ....... 천만 원만 더 빌려주세요.


업자

- 음? 말 뒤쪽이 조금 잘못된 것 같은데,


제가 잘못들은 건가요?



선희

- 아뇨, 제대로 들으신 거예요.


합의도 봐야하고 변호사도 선임해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요. 그러니까....



업자

- 아, 그러시군요. 이쪽으로 앉으시죠,


담보는 있으신가요? 보증인이나, 카드도 환영입니다.



선희 - 농담이 아니에요.


업자 - 하아... 그러세요? 다들 나가있어.



박군 일당이 주춤주춤 사무실을 나간 뒤


난 그녀의 주변을 한 번 천천히 돌아


뒤쪽에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업자 - 이게 지금 사람이 개 호구로 보이나!



난 책상위에 있던 재떨이를 집어 들어


무대 뒤쪽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크게 흠칫한 관객들과는 반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는 선희.



업자

- 안 그래도 이거 개똥 한 번 밟은 셈 치고


넘어가야하나 하고 있는데


천만 원만 더 빌려 주세요?


내가 지금 자선사업 하는 것 같나?!



선희 - 나를 줄게요.


업자 - 뭐?


선희 - 날 원했잖아요, 아닌가요?


업자

- .......풉....... 큭큭큭큭큭....... 크핫핫핫.......


끼리끼리 놀아도 어떻게 연놈이 이렇게 똑같을까....


내 사채 10년에 알아서 신체포기각서 쓰는 놈도 처음이었는데


이젠 그 마누라가 기어와서 몸을 판다네....


재밌어, 재밌어, 아주 미친 듯이 웃겼어!!



선희 - .......



내 말에 선희는 크게 동요한 듯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그녀가 주먹을 꼬옥 쥐며 정신을 가다듬는 사이


서랍을 뒤적이던 난 수표 뭉치를 꺼내들었다.



업자

- 하아..... 천만 원.... 천만 원....


돈 여기 있다. 벗어.



선희 - ........!!


업자

- 응? 왜 그래? 설마 그 =준다=는 게


와서 설거지나 하겠다, 뭐 그런 뜻이었나?



그녀가 입술을 다져물며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한 순간


무대의 조명은 모두 꺼졌다.




그로부터 1년6개월 뒤.


사채업자의 집.



여전히 테이블에 앉아 차트를 보고 있는 나에게


선희가 다가와 차를 따라주었다.


난 보고 있던 차트를 내려놓고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머금었다.



업자 - 맛있군.


선희 - 다행이네요.



아무 정감도 느낄 수 없는 어투.


그녀를 옆에 세워둔 채 두어 모금을 더 마신 난


체념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업자 - .... 그렇게 쌀쌀맞게 굴 거면 차라리 독을 타.


선희 - 그래도 되나요?


업자 - ..... 많이 늘었군.


선희 - 당신 덕분에요.



처참하리만치 어두운 분위기.


주변은 호화롭기만 했고


그녀의 모습도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행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업자

- ..... 당신은 정말 예뻐.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선희 - 고마워요.


업자 - ..... 그 처음이 언제 인지 아나?


선희 - 2년 전 아닌가요?


업자

- 아니, 20년 전이야.


당신과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그 때 난 당신 오른쪽 뒷자리에 앉아있었지.



선희 - ..... 저랑 동갑이셨어요?


업자 - .... 미안하게 됐군.



웃기긴 웃긴데 아무도 웃을 수 없는 상황.


오직 나만이 쓸쓸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어갔다.



업자

- 그때부터 당신을 좋아했어.


그런데 당신은 반장 민수를 좋아했지.


기억나? 그 돈 많은 집 도련님 녀석....



선희 - ..... 미안해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업자

- 뭐... 별로 상관없어. 아무튼....


난 그 때 널 뺏을 수가 없었어.


우리 아버지가 민수네 회사 청소부였거든.


그래서 난 생각했지.


아, 세상은 돈이 제일이구나.



선희 - 그래서 지금까지 온 건가요?


업자 - 어때, 정도면 눈물겨운 순정 아닌가?


선희 - 결국은 소원 성취 하셨네요.


업자 - 그래. 돈이 제일이라는 말이 맞았던 거지.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착잡하게 온몸에 감겨드는 회한의 촉수들.


삶이 허무하다고 느껴질 때 바로 그 느낌이었다.



업자 - .......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알아?


선희 - ........


업자

- 20년 동안 빌어먹을 산타한테 빌어서


죽어라 가지고 싶던 장난감을 받았는데


박스만 있고 속엔 쓰레기가 들어있는 그런 기분이야.



선희 - 술이라도 한 잔 하시겠어요?


업자 - 말해봐. 내가 부족했나?



난 그녀의 허리께를 끌어다


의자 옆에 바짝 붙여 세우며


그녀의 배에 머리를 기댔다.



선희 - 당신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요.


업자 - 난 사랑을 안 믿어. 가질 수 있는 것만 믿거든.


선희 - 사랑을 가질 수 없다고 믿으니까 사랑받지 못하는 거예요.


업자 - 날 사랑할 수 없나.


선희 - 네.



그녀의 목소리보다 먼저


몸을 통해 전해지는 짤막한 울림.


그 울림은 내 가슴 한 구석에 서늘한 서리가 되어 내렸다.



난 그녀를 잡고 있던 팔을 놓으며


의자 반대쪽으로 몸을 기댔다.



업자 - 가.


선희 - .........


업자 - 철수 그 녀석에게 가버려. 어제 빵에서 나왔다더군.


선희 - .........!!



그 말을 들은 선희는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그 표정을 서글프게 지켜보던 난


팔로 테이블 위에 있던 식기들을 바닥으로 패대기치며


발악하듯 소리쳤다.



업자

- 안 들려? 당장 꺼져버리라고!!


가질 수도 없는 걸 가지고 끙끙 거렸더니


머리가 부수어질 것 같아...


숨이 막히고 눈이 뒤집혀서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아!!!!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완전히 미쳐버리기 전에!!!



=피핏!=



그 순간, 콰장창하고 깨어진 도기 조각 하나가


내 손등을 길게 훑고 지나갔다.


뒤늦게 터진 핏줄은 꾸역꾸역 붉은 핏물을 토해냈고


축축하게 흘러내리는 뜨뜻미지근한 촉감이


손가락을 통해 전해졌다.



내가 움직임을 멈추고


짧은 침묵이 흐르는 동안


어느 정도 다시 가라앉은 분위기.



업자

- 사무실 금고 열쇠야.


몽땅 꺼내가. 그게 내 사랑이야.



난 바지주머니에서 열쇠꾸러미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휙 던졌다.


열쇠를 받아든 그녀는 측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


이 장면의 마지막 대사를 하고 돌아섰다.



선희 - 불쌍한 사람.



그리고 그녀가 무대 밖으로 사라지기 직전...



업자 - 마지막으로....



난 대본에 없는 대사들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업자 - 내게 키스해주겠어?


선희 - .........



=툭.... 툭.......툭.....=


무대도, 관객도, 그녀도 완벽하게 침묵한 가운데


흘러내린 핏방울이 바닥에 부딪혀 깨지는 소리만이


시계바늘 소리처럼 귓가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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