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사랑 도대체 네가 뭔데? 4-2 ; Happy together

님프이나 |2005.11.23 08:54
조회 515 |추천 0

 

사랑 도대체 네가 뭔데? 4-2


   그것을 예측이라도 한 듯 신비한 작업실 바닥에는 얼룩진 팔레트와 붓들이 물감통과 함께 조화롭게 흐트러져 있었고 벽면 한 쪽을 향해 세워진 캔버스들은 사건의 완성을 기다리 듯 군데군데 색감과 느낌이 비어있었다.


  “ 훌륭한 작품들인데, 완성된 것은 하나도 없네요.”

  “ 흠! 마치려할 때마다 미쳐버릴 것 같아서?”


   리아는 느낌이 비어있는 캔버스 그림들을 향해 걸어갔고  곧바로 데니스도  보드카잔을 들고 커다랗게 터벅터벅 천천히 리아를 따라  걸어갔다.


   “ 그림을 완성할 때는 가끔 악마들과 맞서 싸우기도 해야 되요.

     근데, 요즘 이상하게 매번 그 싸움에서 졌어요.

     그래서 작품이 하나도 완성이 못된 거죠.”

    “ 재밌네요.”


    “ 데니스, 이건 뭘 그린 거에 요?”

    “ 글쎄요, 관점이 분할된 거니까 큐비즘을 그린 거겠죠?”


    데니스의 말대로 리아가 바라보는 그림은 피카소의 ‘아비뇽처녀’처럼 여러 각도에서 본 것을 동시에 표현하려한 것처럼 보였다. 시점이 정면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측면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인지 캔버스의 인상이 인상이 부서진 유리의 파편 같기도 했다.

      

    “그럼, 이건 관점이 하나니까, 자유연상기법 오토마티즘이겠군요.”

    “글쎄요? 그건 그냥 그렸어요.”

    데니스는 또 다른 캔버스에 노란 물감을 붓으로 흘러 뜨렷다. 제목은 무제였는데, 작렬한 색체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경쾌하고 가벼운 화면을 만들었다. 응집된 한 개의 시점에서 순간의 에센스를 찾으려는 것처럼. 그래서인지 어떻게 보면 화면은 인디밴드들의 격정적인 컴필레이션 앨범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 언뜻 보면 멋지면서도

      어떻게 보면 하나같이 뭐가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

    “ 무의식의 세계를 그린 거니까?”


     “ 설마, 데니스 자신도 뭐가 뭔지 모르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니에요?”

    

    데니스는 시점을 정지시키려는 듯 노란색으로 커다란 점을 캔버스 위로 찍었다.   


   “ 그럴 리가요. 모르면서 뻥칠 만큼 비겁하진 않아요.

     물론, 초현실주의적  구상이던지 꿈이던지 주제는 있어요.

     무엇을 그리던 삶의 반영이니까?  ”

   “ 네! 알았어요, 데니스.

     마구잡이로 칠하진 않았다는 뜻이죠?”


    리아는 노란색 커다란 점을 응시하며 몸을 획 돌렸다.


   “  그럼, 직접 한번 그려 보시겠어요?”

   그러자 데니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리아의 바로 앞에 텅하니 서선 물감 통 옆의 붓을 리아의 오른손에 쥐어주었다. 리아는 머쓱! 오른손에 쥐어준 붓을 동그랗게 입술에 꼬옥 물었다.


   “ 이상하게 그림을 좋아하지만, 데생이 잘 안 돼요.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봐 요.”


   “ 데생을 반드시 잘 할 필요는 없어요.”

   “ 네?”


   리아는 동그랗게 꼬옥 입술에 붓을 문 그대로 데니스를 응시했고 데니스는 다시 한번 말했다. 그리곤 그의 허리까지 올라오는 선반에 올려진 보드카잔에 유혹적으로 얼음을 가득 채웠다.


  “ 데생을 반드시 잘 해야 한다면 그것이 바로 거짓이지요.

  그렇다면, 김정일 초상화를 잘 그리는 사람만이 나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니까?”


  ‘ 데니스!’

  리아는 그만 스르륵 웃음이 나와 버렸다. 예전에 배낭여행 때의 일이 떠올라서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배낭여행 때 어떤 비엔날레에서였다. 그 때 아마 수십 장의 북한에 대한 그림 및 사진들이 전시되었었는데, 그중 특히 촌스런 김정일 초상을 본 것이 아직까지도 리아의 뇌리에 코믹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히틀러 정도의 솜씨였다고나 해야 할 까?


  “ 좋아요, 데니스!”

  리아는 선뜻 데니스의 미완성 캔버스 중 하나 위에 붓을 올렸다. 붓을 올리고선 날아갈 듯이 리듬을 타고 송글송글 붓을 돌렸다. 마치 유치원생들의 댄스처럼 온갖 원색들을 색종이를 방불케 할 만큼 사용해서는 마구 붓을 돌려나가며 캔버스를 가득 채워나갔다.  


  “ 나중에 후회하지 말아요.”

  리아의 말에 데니스는 고개를 끄덕. 리아는 너무나 달콤했다. 그의 앞에서 캔버스를 가득 채워 나가는 것이 너무나 좋았던 것이다. 너무 좋아 정신 나갈 정도였다.


“  이렇게 긁으면 톰블리”

“ 다시 덧입히면 다빈치”

   리아는 캔버스를 색종이 같은 원색으로 가득 매우고 나서는 붓을 헤까닥 탁 돌려 붓끝으로 캔버스를 칙칙 긁었다. 그러자 진짜 톰블리의 그림처럼 칙칙 스크레치 속에서 눈부신 색들이 튀어나와 작업실의 조명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눈부시게 새어나온 색위로 다시 물감을 덧입혔을 때는 오래된 명화의 텍스쳐 질감처럼 우글부글.


  “ You are a genius!”

    데니스는 그의 근사한 두 눈을 휘둥글 하더니, 포켓에서 펜을 꺼내 캔버스 위에 휘리릭 싸인했다.


   리아는 그의 싸인을 재미나게 응시하며 얼음이 가득 채워진 보드카를 쨘 들이켰다. 한참을 여류화가라도 된 듯 즐기며 작업하다보니 세상 모든 것에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데니스가 보여준 세상, 데니스가 그의 커다란 손과 섬세한 손가락으로 싸인해준 원색과 스크래치가 찬란한 캔버스. 


    리아는 자신의 이상형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중학교 때부터 맨날 외고 다니던 것이었는데,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상형 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여자애들의 유치한 상상력을 모두 동원 한다해도 데니스 같이 멋진 남자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리아는 홀깃 고개를 들어 데니스의 근사한 눈동자를 보았다. 작업실의 조명을 받아 더욱 투명하고 깊어보였다.


   ‘ 어떤 남자일까?

     보통은 아니야!

     나면서부터 그 매력이 남들 몇 십 배고

     그걸 자유롭게 조정하는 사람이겠지?’


   그러자 리아는 퍼뜩 이런 남자에게는 여자가 엄청 많을 것만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직감은 리아에게 너도 모르게 한 줄 선 것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리아는 얼음이 잔뜩 든 보드카잔을 멋들어진 그의 싸인이 새겨진 캔버스에 집어던졌다.


   “ 당신 바람둥이지?”

   캔버스에 짠하니 흘러내리는 보드카와 함께 얼음이 줄줄 흘러내리며 빛났다.


  “ 확인해 볼래!”

   대답 대신 데니스는 리아의 뺨에 키쓰했다.


   ‘으흑!’ 리아는 그 자리에서 푹 쓰러졌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