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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my guitar gently weeps (8)

온단테 |2005.11.28 13:56
조회 164 |추천 1

8. 벚꽃축제

 

해마다 4월이 되면 한강아파트에서는 벚꽃축제가 열린다. 20여 년 전 처음 아파트를 지을 때 심었던 벚꽃나무는 매년 해를 거르지 않고 화려한 벚꽃을 피어서 절경을 이루었고, 며칠 후 아스라한 추억을 남겨놓은 채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한강아파트의 벚꽃은 서울시내에서 꽤 유명하였으며, 1단지 아파트의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부녀회와 반상회에서 준비하는 각종 장터와 행사들은 사람들의 흥을 북돋아주었다. 국회의원과 구청장까지 참가해서 인사를 하고, 가끔은 유명한 가수가 초대되어 공연을 할 정도로 꽤 큰 규모의 행사였는데 미영과 처음 데이트를 한 것은 이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성현이한테서 응답이 오기까지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성현은 하교길에 나에게 말하였다.

 

“너 오늘 시간있냐?”

 

방심하고 있던 나는 시큰둥한 얼굴로 “뭐, 별로 약속 같은 것은 없는데 왜? 나 오늘 저녁에 좋아하는 ‘우리들의 천국’하는 날이어서 저녁에 만나기 곤란한데……”라고 말하였다.

 

“그래?”

 

성현은 얄미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미영이와 만나기로 하는 것은 취소해야겠네.”

 

“허-헉”

 

나는 숨이 탁 막혀와 바로 이야기를 하지 못하였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비굴한 태도로 성현이의 팔을 붙잡았다.

 

“헤헤헤 그런 일이면 진작 이야기를 해야지. 그런 약속이면 내가 새벽이라도 달려간다.”

 

“어쭈! 나하고 약속보다는 TV프로그램이 더 중요하면서 여자와의 약속은 새벽에라도 달려간다고?”

 

성현은 짓궂게 말하였다.

 

“아……그거야. 너하고 매일 볼 수 있으니까. 바쁜 일이 아니면 약속시간을 조정하자는 거였지 약속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었다고.”

 

“어라. 이제 말도 안 되는 변명까지?”

 

“자, 자, 그러지 말고 몇 시에 보기로 한 거야?”

 

“맨입으로?”

 

결국 성현이의 양손에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쥐어주자.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밤 10시다.”

 

성현은 입맛을 다시며 말하였다.

 

“10시? 왜 그렇게 늦게 만나자는 거야?”

 

난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이, 미영이가 너같이 시간이 널널한 줄 아냐? 매일 학교 끝나면 학원 다녀야 한다고. 주말에는 대학생한테 과외를 받고 말이야. 시간은 학원 끝나고 집에 오는 때 말고는 없다고 하더라.”

 

“그래……”

 

난 미영이와 아주 잠시 만날 수 밖에는 없다는 점이 아쉬었지만 그래도 감지덕지하게 여기면서 성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떻게 하고 가야지?”

 

내가 한숨을 쉬고 말하자. 성현은 피식 웃었다.

 

“뭘,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그래도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가는 것인데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있냐. 어떻게 하던 멋지게 보이도록 해야지.”

 

“아서라 괜히 노는 애처럼 보였다가는 미영이한테 찍힌다고. 차라리 수수하게 하고 나와.”


“그래도 사복이라도 입고 나와야 겠지?”

 

“맘대로 해 어차피 미영이는 교복인 채 일 테니까. 학교 끝나고 바로 학원으로 가거든.”

 

“그래? 그럼 나도 교복을 입을까?”

 

“넌 집에서 쉬다가 나올 거잖아. 그런데 교복을 입고 나올 필요가 있을까?”

 

“그런가?”

 

“아무튼 교복이던 사복이던 미영이는 전혀 상관 안 할 테니까. 그리 알고 맘 편안하게 나와.”


“알았어.”

 

그날 저녁은 내가 좋아하던 드라마를 보아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학교 숙제도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해치우고 난 베란다에서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성현아, 같이 나가서 벚꽃이나 보고오자”

아버지가 멍하니 있는 나에게 말하셨다.

 

“오빠가 좋아하는 강수지도 온다는데.”

여동생은 좋아라 하며 떠들썩하니 말하였다.

 

“그래, 가서 맛있는 음식도 사먹고 말이야.”

어머니는 음식으로 나를 꼬셨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 괜찮으니까 같이 나갔다 오세요. 그리고 오늘 밤에 잠깐 나갈게요. 성현이가 잠깐 보자고 하던데요.”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걱정도 할 법이지만 부모님도 이미 성현에 대해서 알고 있는 터라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난 홀로 남은 거실에서 오디오로 강수지의 ‘시간 속의 향기’를 반복해 들으면서 마음속의 두근거림을 부채질 하였다. 마침내 10시가 되었다. 두근거림으로 지쳐버린 나는 녹초가 된 채 성현이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로 나갔다. 우리는 2단지 후문에 있는 시계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후문으로 나가 길을 건너면 상업지구가 나오고 그곳에 미영이 다니는 학원이 있었다.

 

“야! 어깨에 힘좀 빼라.”

 

성현은 잔뜩 긴장해 있는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성현과 나는 느릿한 걸음으로 한강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아파트의 건너편에는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화려한 거리가 보였다. 밤늦게 상업지구로 들어가 본적이 없어서 나는 좀 긴장하였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상점들과 음식점, 학원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거리를 오가였다. 성현은 거리의 기분이 익숙한 듯 이것저것을 기웃거리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갔지만 난 분위기에 잘 적응이 안되는 대다 한시라도 빨리 미영이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성현의 어깨를 흔들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마해. 아직 학원수어비 끄나지 않았어”

 

성현은 붕어빵을 한입에 삼켜 우물거리면서 말하였다. 성현은 붕어 한 마리를 내게 내밀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10시 30분이 조금 지나서였다. 성현이는 걸음을 멈추었고 “한강학원”이라는 간판이 써있는 건물 앞에서 서성거렸다. 곧 아이들의 왁자지껄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왔고, 까르르 웃는 요란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떼의 고등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아이들을 피해 문에서 떨어져서 미영을 놓치지 않게 유심히 살펴보았다.

 

“성현아!”

 

다행히도 미영은 먼저 우리를 알아보고 무리에서 빠져 나와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교복을 입은 채로 다소 피곤한 표정이었다.

 

“어이! 오늘도 변함없이 녹초가 된 얼굴이군.”

 

성현은 웃으면서 미영을 맞았다.

 

“휴~ 머리 나뿐 나는 이렇게라도 해야지 겨우 너를 따라가지…….”

 

“어허 전교 일등인 네가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뭐, 사실 네가 머리가 좀 나쁘기는 하지.”


성현은 허물없이 그녀에게 농담을 던졌다.

 

“뭐야!”

 

미영은 귀엽게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살짝 손바닥으로 쳤다.

 

“아, 그건 그렇고. 이 애가 바로 강민이야.”

 

성현은 둘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나의 팔을 잡고 끌고 와 미영의 앞에 세우며 소개하였다.

 

“응, 알고 있어.”

 

 미영은 나를 쳐다보면서 웃으며 말하였다.

 

“아…..안녕하세요.”

 

나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였다.

 

“야! 같은 나이인데 무슨 존댓말을 쓰고 그러냐!”

 

성현은 어이없다는 듯이 날 책망하였고 난 “그래, 그러면 반말하기로 할까.”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그때부터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가방 무거워 보이는데 줘.”

 

성현은 미영의 가방을 어깨에서 걷어내었다.

 

“자, 네가 기사도를 발휘해야지.”

 

성현은 내게 가방을 건네었다.

 

“아…..아니야. 내가 매고 갈게.”

 

미영은 손을 내저으며 가방을 다시 빼앗으려 했지만 이미 가방은 내 손에 넘겨졌고 난 가방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나 이래뵈도 힘이 쎄다고”

 

이렇게 말은 했지만 교과서와 참고서로 가득 찬 그녀의 가방은 묵직하였다. 이렇게 밤늦게 까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움직여야 하는 그녀의 생활에 약간 측은함이 느껴졌다.

 

“이제 슬슬 움직일까?”

 

성현은 앞장서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성현을 사이에 두고 나와 미영은 나란히 걸어갔다. 성현이는 우리 둘 사이가 어색하지 않게 다리역할이 되어 이쪽과 저쪽의 말들을 자연스럽게 풀어가 주었다. 처음에는 긴장하여 제대로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버벅거렸지만 차츰 성현의 유수 같은 말솜씨에 나의 말 또한 휩쓸려서 미영을 향해 무리 없이 흘러갔다. 이 대화를 통해서 난 미영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 그녀가 싫어하는 것, 그녀가 되고 싶은 것, 그녀가 두려워 하는 것 등등

“너도 강수지 노래 좋아한다고 했지? 강민이도 좋아한다던데.”

 

성현이 말하였다.

 

“그럼 오늘 강수지 공연한 것 봤겠네?”

 

미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이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공연 보러 가는 건데.’ 하고 자신을 원망하며 힘없이 말했다.

 

“아니, 못 봤어. 숙제가 좀 밀려있어서 말이야.”

 

“그래, 나도 학원 때문에 못 갔는 걸 뭐.”

 

미영은 아쉬워 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가수가 왔는데 학원을 하루쯤 빠지고 보지 그랬어.”

성현이 말하였다. 그러자 미영은 성현을 빤히 쳐다보더니 투덜거렸다.

 

“넌 뻔히 내 사정을 알면서 그러니? 그랬다가 아버지가 알아버리면 어떡하라고.”

 

“알았다, 알았어…… 맞아, 넌 부모님한테 꼼짝 못하지.”

 

“꼼짝 못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뭐. 힘들지만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참는 거지. 부모님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 무조건 부모님의 말이 옳다고 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반대한다는 것은 유치한 일이잖니. 어차피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나중에 잘 될 수 있다는 것은 뻔한 일이잖아.”

 

나는 고개를 돌려 야무지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습은 귀엽고 순진하게 생겼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주관이 있고, 약간 고집도 있어 보였다. 다시 2단지 후문 시계탑 앞에 도착하게 되자 성현은 우리 둘 사이에서 멀어지며 말하였다.

 

“자, 이쯤에서 방해꾼은 사라져 줄 테니까. 너희 둘이서 잘 이야기해 봐.”

 

나와 미영은 당황해서 그를 말렸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작별을 고하였다. 성현이라는 다리가 사라진 우리 둘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자리잡았고,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깊은 사이를 메울 수 없을 것 같아 초조해졌다.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말들이 맴돌았지만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고, 차츰 시간의 흐름이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강민아, 나하고 같이 벚꽃 축제하는데 가주지 않을래. 학원 다니느냐 3일 동안 한번도 못 봤거든.” 비록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내게는 너무나 당차게 들렸고, 나의 불안을 쫓아주었다.

 

“물론이지.”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미영이와 함께 1단지로 향하였다.

 

축제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붐비었던 사람들도 자리를 떠나갔지만 우리들의 축제는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 둘은 걸어가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미소를 짓고 벚꽃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그녀와 교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 교감만으로도 그녀와 나 사이에 아무런 장벽도 느껴지지 않았다. 밝고, 아름다운 분홍빛 벚꽃은 바람에 휘날려 그녀의 고운 머리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 광경을 나는 숨이 막혀하며 바라보았다.

 

마침내, 중앙공원에 이르자 우리 둘의 축제는 절정에 이르렀다. 수천 송이의 벚꽃들이 휘날리는 그 한가운데서 그녀는 살며시 눈을 감고 산뜻한 봄 바람을 들이마셨다. 따뜻한 가로등불은 그녀를 비추었고, 그녀의 고운 피부와 그녀를 둘러싼 벚꽃들은 가로등 빛에 반사되어 수백까지의 형형색색을 비추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한 채 이 이미지를 영원히 잊지 않으려 머릿속에 그리고, 또 그렸다. 이 모든 것은 모두 나와 그녀를 위해 연출된 하나의 영상이라고 느껴졌다. 모든 것은 운명처럼 받아들여졌고, 정처 없이 허공을 맴도는 벚꽃 하나, 지나가던 벌레 하나도 마치 당연히 꼭 있어야 되는 필연의 세계 속의 한 부분으로 느껴졌다. 나는 이 광경과 이 모든 것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때 난 깨달았다. 벚꽃이 지는 곳에 서있는 한 소녀의 이미지는 내 평생 절대 잊지 못할 내 영혼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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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주말을 잘 보내셨나요? 주말 동안 연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길게 내용을 전개해 보았습니다. 이번 주에는 본격적으로 강민이와 미영이의 연애담이 펼쳐지니까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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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님의 의견을 잘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글씨가 더 커지면 다른 게시물하고 맞지 않을 것 같네요. 저번에 작게 느껴진 이유를 생각해 보니까 글씨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돋움체로 통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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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영님은 친정에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이번 주에는 내용이 슬슬 전개 되기 때문에 분량도 늘고 세부적인 이야기도 많이 할 것이랍니다.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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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연재자 분들을 보니까. 답글을 바로 리플 형식으로 달아주시더군요. 저도 앞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번 회 부터 리플을 달아주시면 바로 답글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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