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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31)

운운 |2005.11.30 00:31
조회 1,089 |추천 0

 

 



4장

존재하지 않는 자의 눈물

 

 

 

 

                                                                         

 

풀리는 매듭과 엉키는 매듭

 

 

"머리통이 박살나기 전에 순순히 대답하는 것이 좋을 거야. 서문탁,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 대답하라. 팽가의 가주.”


한영은 집무실 정중앙의 가주와 노부를 노려보며 우직하게 되물었다. 활을 먹인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허공에서 부르르 떨렸다. 더 없이 날카로운 화살촉은, 정확하게 하북성의 주인, 팽용화의 머리통을 겨누고 있었다.

나지막한 한영의 물음은, 큰 돌덩이가 되어 노부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서문탁, 그 놈의 간계(奸計)가 아니라는 것인가?!’


노부는 활을 겨눈 여무사(女武士)를 주의 깊게 보았다. 그리고 그 눈에서 타오르는 증오와 분노를 읽었다. 결코 무사의 지금 행동이 꾸며진 거짓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노부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그 쥐새끼 같은 놈이 아니라면, 감히 어느 세력이 팽가의 가주를 해하려 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하북성의 중심부인 이곳에서……! 잠깐. 서문탁, 그놈을 왜 여기서 찾는 게지?!!!’


길게 늘어진 노부의 흰 눈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들로 인해 잔뜩 찌푸려졌다.

같은 순간, 차분한 여인의 음성이 장내를 휘감았다.


“그대는 누구인가?”


팽용화는 대담한 시선으로 한영을 노려보며, 힘을 실어 물었다. 그 눈빛을 코웃음 치며 되받아친 한영.

동시에 그녀의 오른팔 근육들이 순간적으로 확 수축했다.

찰나의 시간.

수십만 가닥의 가는 근육 섬유들이 포개지며, 절반의 길이로 쭈욱 활주해 들어갔다.


피융-


탄력을 받은 맥궁의 시위에서 빛줄기와 같은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어찌나 속도가 빨랐던지 화살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며 물결무늬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노부의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방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날아오는 화살의 위용은 노부의 머리털을 쭈뼛 서게 했다. 공기를 가르며 나선형으로 날아드는 화살! 그 소름끼치는 파공음이 내원을 정적을 꿰뚫었다.

이미 몇 번 경험한 적이 있었던 터라, 노부는 재빨리 기운을 끌어 올렸다. 전신의 기운을 두 팔에 휘감았다. 노부는 팔꿈치 아래에 맺힌 기운을 온전하게 도(刀)로 주입시켰다. 그리고 안력을 돋우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화살 끝을 보았다.


‘오냐! 오너라! 어깨로구나!’


눈 깜박할 만큼의 순간이었다. 허나 전대의 고수(高手), 노부에게는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화살은 다행히 조카가 아니라 자신의 어깨를 똑바로 노리고 있었다.

노부는 힘껏 자신의 도(刀)를 계산된 방향으로 휘둘렀다.

부우웅-

허나 그의 도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죄 없는 허공을 반으로 가르며,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오른쪽 땅에 쿡 처박혔다.

푸욱-


‘이, 이럴 수가! 화살이 허공에서 스스로 방향을 틀었다!’


노부의 어깨를 정확히 노리고 쏘아진 화살은, 그의 눈앞에서 재빠르게 방향을 틀었다. 제비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수직으로 꺾어진 화살! 정확히 가주의 목덜미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정작 당황한 사람은, 뒤에 서서 다음공격을 기다리고 있던 팽용화였다. 검의 고수가 검로(劍路)를 조정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쏘아진 화살이 경로를 틀다니! 가주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애도를 들어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었다. 노부역시 화살을 향해 몸을 날렸다.

퍽-

그녀의 방어에도 불구하고, 화살은 정확히 가주의 팔뚝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도 모자라 뒷벽에 푹 박힌 후에도, 연신 붕붕거리며 부러질 듯 화살 몸채를 저어대고 있었다.

가주의 장삼자락위에 붉은 피가 서서히 번져나갔다. 노부의 얼굴이 잔뜩 뒤틀렸다.

원거리에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렇다고 다가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 발짝만 발을 떼어도, 곧바로 고슴도치 신세가 될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미소 짓는 한영.


“가주. 이제 대답할 마음이 드는가? 이번엔 네 팔뚝이 아니라 너의 목덜미를 꿰뚫을 것이다. 서문탁 그자를 내 놓아라.”

“너는 누, 누구냐!”


한영은 한영대로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다듬는 중이었다. 비록 이들이 이십 여 년 전, 직접적으로 소북성과 부모를 짓밟은 원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대세가의 하나임은 틀림없었다. 부모를 죽인 원수와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법! 그녀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노부의 외침에 아랑곳없이, 한영은 매끄러운 동작으로 다섯 대의 화살을 동시에 시위에 내걸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맥궁의 궁신을 타고 흘러 내렸다.

끝이 슬쩍 들려진 도도한 눈매는, 거침없이 가주와 노부를 옭아매고 있었다.


떨리는 눈을 들어 한영의 전신을 훑어보는 팽용화. 그녀의 입술이 푸르르 떨렸다.

그래, 틀림없을 것이다. 오만한 눈매, 사내처럼 훤칠한 키. 붉은 경장, 그리고 커다란 활.

무엇보다도 신이 내린 듯한 놀라운 활솜씨. 처음 본 순간부터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환사 위제혁의 손녀. 그리고 20년 전 그의……. 피의 주인, 혈주단영의 조카……!’


팽가주의 입술을 비집고 짙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너는 신궁, 위한영이로구나.”

“어찌……!”


가주의 외침에 놀란 노부가, 고개를 홱 돌려 한영과 조카를 번갈아 보았다. 그 중얼거림을 들은 한영역시 더욱 눈매가 사나워졌다.


“감히 오대세가의 우두머리인 네 입으로, 나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는 말이냐! 이 뻔뻔한!”


한영은 악을 쓰며, 다시 한번 화살에 힘을 먹였다. 언제라도 내뿜을 기세다.

당황하기는 노부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그 순간 노인의 머릿속을 꽉 막은 실타래 한 가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노부의 날카로운 도(刀)는 한영을 정확히 겨누며 예기를 쏘아냈다.

그는 한영을 노려보며 일갈했다.


“그래! 그랬구나! 20년 전의 은원을 빌미로, 오늘 같은 날 가주를 암살하려 잠입한 것이냐!”

“무엇이라? 내가 더러운 오대세가가 한 짓거리를 반복할 것 같으냐! 네놈들의 가주를 죽일 것이었으면, 벌써 죽였다. 수치를 모르는 놈들!”

“그 일이라면 이미 이곳도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 내 아우이자 저 아이의 아비인 전 가주는 스스로 할복하여 자결하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런 행패냐! 사파의 고약한 원흉!”

“흥!! 웃기는 소리! 한 놈 할복하여 죽으면 그걸로 끝이더냐! 네 놈의 동생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라도 있었지. 나의 수백의 가솔들은 무참히 도륙되었다. 젖을 때지 못한 어린 아기까지 하나의 예외 없이! 늙은 놈이 입만 더럽구나!"


말을 잇는 한영의 얼굴이 점점 더 험악하게 일그러져 들었다. 그녀의 눈 꼬리가 더욱 치켜 올라갔다. 한영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깟 사파의 더러운 피와 전 가주의 큰 뜻을 비교하려 하는가! 네 이년!”

“무엇이라? 늙은 놈이 보자보자 하니까 그 입부터 찢어 놓아야겠구나. 무릇 태어나매, 귀한 생명이 있고 천한 생명이 있다더냐! 늙은 것이 오만방자하다! 내 오늘 여기서 끝을 보리라!”


한영은 힘껏 활채를 움켜쥐었다. 이미 머리꼭대기까지 흥분한 그녀는, 더 이상 두고 볼 것이 없었다. 꼭 이자들에게서 서문탁의 숨은 곳을 알아낼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한통속. 쉽게 실토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서 끝을 본 후, 차례로 다 부셔버리면 그만이다.

그때였다.

노부의 곁에 선 용화의 전신으로 무서운 바람이 일었다.

현 하북성의 가주, 강철의 여제인 그녀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주의 옥색 장포자락이 발끝 치부터 펄럭이며 휘몰아쳤다. 마치 굳게 선 그녀를 중심으로, 주변으로 바람이 불어 나가는 듯한 광경이다.

후웅-

팽용화의 애도(愛刀)가 정확히 수평으로 들어올려졌다. 굉장히 느리기도 했지만, 또한 물샐틈없이 빠르기도 했다. 그녀의 도(刀)위로 누런 기운이 일렁거렸다. 그녀의 엄청난 신력은 거대한 도를 거리낌 없이 재차 사선으로 휘저었다. 도의 움직임에 따라 허공이 베이며, 패도적인 힘이 주변의 공간을 어그러트렸다. 그 중심에는 팽용화, 그녀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녀석! 칠련패진도(七鍊覇震刀) 중 다섯 단계를 이미 이루었구나!’


그녀를 바라보는 노부의 눈에 감동과 함께 굳은 신뢰가 가득했다. 이미 조카는 자신이 넘지 못한 경지에 들어 선 듯 했다. 그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자만이라도 좋았다. 그는 자신의 조카를 믿어야했다. 그리고 벌레 보는듯한 눈빛으로 한영 쪽을 노려보았다.


‘아암! 그래야지! 더러운 사파의 검은 피가 흐르는 년! 사마(邪魔)는 결코 정도(正導)를 이길 수 없다!’


노부, 그는 뼛속부터 정파인 고집스러운 늙은 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비록 권력의 그림자 속으로 물러나있지만, 자신의 동생이 가주였을 때만 해도, 그는 무림을 호령하던 정파의 권력자중 하나였다. 또한 평생 바른 길을 걸어왔다 자부하는 그였다. 일체의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았던 보수적인 그의 성품으로 볼 때, 사파라는 존재는 딱 눈에 걸린 가시였다.


한영은 뿌드득 이를 갈았다. 적반하장(賊反荷杖)격인 망언을 지껄이는 노부와, 자신을 향해 도(刀)를 세워 든 가주를 똑똑히 보았다. 새삼스레 과거의 원한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쳐 죽일 놈들! 받아 보거라!’


순간적으로 한영의 동공의 쑤욱 확대되었다. 그와 동시에 도를 쥐어든 팽가주의 전신이 그녀의 뇌리 속에 수십 배로 확대되었다. 그녀를 감싼 공간은 시간마저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넘쳐나는 힘으로 어깻죽지가 터져 나갈 것만 같다. 맥궁과 하나가 된 한영. 가라!


피융-

슈욱, 슉-


다섯 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갔다. 방금 전의 공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가주를 향해 날아가는 다섯 발의 화살! 놀랍게도 화살들은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한 덩이가 되어 날아왔다. 어찌나 빨랐던지, 잔영을 남기는 화살은 마치 흑룡한마리가 벼락처럼 덤벼드는 것 같았다.


‘저런, 고약한! 허나……!’


노부도 똑똑히 화살들을 보았다. 잠시 경악했지만, 그의 자존심은 억지로 불안감을 떨쳐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시선을 옮겨 자신의 조카를 보았다.

꽉 쥐여진 그의 두 주먹에는 땀이 흥건했다.


허나 이어진 상황은 노부의 예상을 완벽하게 뒤엎었다. 그의 용졸한 자존심은 허공에서 무참하게 박살났다. 노부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떠졌다. 아, 아니?!


‘……!!’


털썩-

허무하게 두 무릎을 꿇는 팽용화!

순간이 영원과 같았던 그 시각, 날아드는 화살을 직시한 팽가주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맥궁에서 쏘아져 나온 흑룡(黑龍)은 순식간에 용화의 상체를 짓이겨 들어갈 것만 같았다. 노부는 급히 다급한 기합을 내지르며 조카를 향해 몸을 날렸다. 허나 이미 늦었다. 용화는 고개를 숙인채로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멈추게나, 신궁.”


퍼억-

푹푹푹-

다섯 발의 화살은 용화의 머리 위와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며 뒤쪽의 바닥에 차례로 박혔다. 노부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예상치 못한 가주의 반응에, 맥궁을 쥔 한영의 얼굴에도 의아함이 가득했다. 한영은 일단 화살의 방향을 틀어 그녀의 주변에 내리꽂았다.

표호를 내지르던 흑룡은 지면 아래로 사그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재자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내가 자네에게 머리를 숙이네. 화를 거두게.”


이어지는 팽용화의 담담한 음성.

노부의 얼굴이 흙빛으로 굳었다. 가주가, 가주가 무릎을 꿇다니! 그것도 사파의 요녀(撓女) 앞에서! 노부는 고개를 숙인 팽용화에게 득달처럼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팔을 거칠게 끌어 올렸다.


“지금 무엇 하는 게야! 일어나, 이것아! 너는, 너는 하북성 자체다!”

‘너의 칠련패진도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느냐!’


조카를 만류하는 노부의 눈에는 의문과 함께 당혹감이 고스란히 들어났다. 허나 팽가주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그녀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노부도 노여움을 거두세요.”

“무, 무엇이라?”

‘하나의 무인이었다면, 결코 신궁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숙부’


팽용화는 숙인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애도를 한번 보았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그녀의 몸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떨결에 손을 놓은 노부!

그의 늙은 손이 허공에서 파르르 떨렸다.


“용서해 주게. 과거의 치욕을. 오는 길에 현판을 보았는가? 내 다짐이기도 하지.”

“……!”


한영은 의아한 눈으로 고개 숙인 가주를 보았다. 짧은 순간동안 여러 가지 표정이 그녀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저 여인은 진심이로구나!’


한영은 속으로 몹시 놀랐다. 정파라는 놈들의 끝없는 아집과 자존심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녀다.

더군다나 거대한 세가의 가주가 무릎을 꿇고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다니!


“나는 내 아버님이자 전대가주의 뜻을 받들고 싶소. 혈사가 있기 전날까지도 그분은 가슴을 치고 후회하셨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네.”

“가주! 그래서는 안 돼! 아니되……!”


낮은 탄식을 내뱉는 노부의 몸이 휘청거렸다.

챙강-

그는 자신의 도(刀)를 바닥에 푹 박으며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그제야 팽가주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숙부를 보았다. 팽용화, 그녀의 얼굴은 더없이 엄숙했고, 가득한 위엄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노부의 노안가득 눈물이 고였다.


“숙부, 저는 이제부터 새로운 하북성을 만들어 갈 겁니다. 과거의 빛이라면 한 줌 남김없이 청산하고 싶어요. 아직까지도 제 귀에는 아버님의 마지막 유언이 메아리칩니다.”


「용화야, 넌 결코 부끄러운 이 애비를 닮아서는 안돼. 큰 뜻을 품은 자는 목이 날아간다 해도 의기(意氣)를 꺾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것이 투사(鬪士)다.」


과거를 돌이키는 용화의 눈에는 깊은 슬픔과 회한이 묻어났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그날……! 20년 전 그날 하북성의 뜻은 죽었습니다. 허나 오늘부터 제가 되살릴 것입니다.”


노부는 가주의 외침을 반박하지 못했다. 그저 망연자실하게 그녀를 보았다. 팽용화의 위엄은 전 가주의 전성기의 모습을 판박이로 박아놓은 듯 했다. 가주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한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타오르는 듯한 두 여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무섭게 충돌했다.


“하북성이 그대에게 용서를 빌며 무릎을 꿇었네. 오늘 그대가 과거의 빚을 받으러 왔다면 그 길을 막지는 않겠네. 허나,”


다음 말을 기다리는 한영의 눈빛이 무서운 이채를 띠었다.


“그대 역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네.”


한영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맥궁을 쥔 그녀의 손아귀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복수? 응징? 그래, 어린시절……. 만약 십여 년 전이었다면 죽자고 덤벼들었을 테지. 허나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복수의 허망함을 깨달았다. 또한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피의 주인, 혈주단영. 20년 전 무림을 지옥에 몰아넣었던 끔찍한 혈사.

피를 본 만큼 이미 피로 갚았다. 이제 와서 무엇에 대해 복수를 한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너무나도 허망하게 잘못을 시인하는 적 앞에서.

한영은 쓰라린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리고 툭 던진 한마디.


“이미 말했다. 가타부타 딴소리 말라. 서문탁, 그 놈을 내 놓아라! 가주에게는 볼일이 없다.”

“……!”

“……크흠!”


더욱 놀란 것은 팽용화와 노부!

노부의 늙은 노안이 심하게 떨렸다. 도대체 저자의 정체가 무엇 이길래?

그때였다. 노부의 노안 가득 반가운 기색이 넘쳐흘렀다.



“이 요망한 계집! 멈추어라!”

“멈추어라! 멈추어라! 멈추어라!”


촥촥촥촥-

순식간에 장내를 꽉 채운 백여 명의 정예병력!

웅웅거리는 그들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살을 파고들었다.

제 일렬이 집무실을 빙 두르며 가장 앞에 섰다. 그들은 저마다 가슴높이의 두꺼운 철 방패를 세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빙 둘러 배치된 수십의 궁사들!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장내를 장악했다. 이동과 동시에 굳건한 진이 설치되었다.

가장 앞에선 자는 다름 아닌 가주의 오른팔인 젊은 집주!

쿠쿵!

제 일렬의 병사들이 일제히 방패를 바닥에 찍었다. 근엄한 소리가 바닥을 쩌억 갈랐다.

칼을 높이 빼든 집주의 곁에는, 당가의 여소협 당설희 낭자가 긴장된 표정으로 장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흰 수염의 노인과 키가 큰 무사인 유가가 호위하듯 지키고 서 있었다. 여차하면 공격해 들어올 기세다!

집주는 한영과 가주를 번갈아 노려보며 목청껏 소리쳤다.


“가주님! 괜찮으십니까!! 불초한 소인! 늦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한영은 차분하게 장내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고운 아미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무섭거나 겁에 질린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잠시 동안 한영의 시선은, 집주와 당설희 그리고 그녀 옆에선 유가와 노인에게 머물렀다.

찌릿-

한영은 허공을 향해서 매섭게 두 눈을 빛냈다.

짜증의 폭발!


“진정 오늘 여기서 끝을 보자는 소리인 것 같은데……!”

“제2열 궁조! 발사!!!”


슈슈슈슈-

집주의 외침과 함께 수백 개의 화살이 동시에 허공에 작열했다.

집무실의 천장을 새까맣게 수놓는 검은 빗줄기! 놀라운 속도로 날아간 화살들은, 정확하게 한점을 노리며 포물선으로 솟구쳤다.

피융-피융-

화살들이 몸살을 앓는 소리가 장내를 가득 메웠다.

경악에 물든 팽가주의 얼굴! 허나 그녀의 반응은 젊은 집주의 충성심보다 한 발짝 늦었다.


“머, 멈추……!”


팽가주는 결국 마지막 외침을 내뱉지 못했다.

집주는 보았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가주님의 뒤에 그가 서 있었다.

괴물. 믿기지 않았던 그 괴물!

처음부터 당가의 노인은 이상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저 여무사뿐만 아니라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바로 늙은 노파! 그 모습이 장내에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불쑥-

노부의 등 뒤로 드리워져 있던 검은 그림자에서 작은 인영이 튀어나왔다.

노부의 덩치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지, 한참 전부터 작약은 그들의 뒤에 서있었다.

그저 조용히 서있었을 뿐이지만.

노부와 가주 사이로 슬쩍 발을 옮긴 작약!

눈을 빛낸 노파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신위로 두 팔을 움직였다.

툭-

툭툭툭-

두 사람의 요혈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노부의 척추를 타고 저릿한 벼락이 관통한순간, 그의 몸은 이미 통제 불능의 상태.

방심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온몸을 꼼짝할 수도 없었다. 턱 아래 혀뿌리 깊숙한 곳부터 딱딱하게 굳어왔다. 그는 눈동자를 급히 굴러 자신의 조카를 보았다.

허나 팽가주의 눈동자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화살의 검은 비가 빈틈없이 허공에서 쏟아져 내렸다. 단 한점, 한영을 노린 수백발의 화살. 급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작약은 그저 태연하게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팽가주의 흔들리는 눈동자도 그 모습을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용화는 자신의 몸이 굳어오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이상하게도 노파의 공격은 단순한 제압일 뿐, 살의(殺意)가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두두두둑-

바닥으로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분명 빈틈이 없다. 허나 지켜보는 집주의 마음 한구석에는 불길한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집무실안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아아……!”


없었다. 텅 빈 그 일대에는 가시덤불처럼 빽빽이 화살이 꽂혀 있을 뿐.

집주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작약은 그저 담담했다. 가주의 눈동자에는 묘하게도 안심한 기색이 담겼다. 노부의 눈동자는 황급히 돌아가며 사방을 휘저었다.


그 순간 천장으로부터 검은 그림자가 불쑥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한바퀴 제비를 돌아 유연하게 착지하는 여인!

커다란 활을 어깨에 걸어 멘 그녀는, 양손으로는 각각 한 무더기의 화살들을 쥐어들고 서있었다. 한영은 몹시 화가 났는지, 크게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성큼성큼 가주와 노부 쪽으로 큰 발걸음을 옮겼다.


“멈추어라!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칼을 들이대며 금방이라도 튀어오를 용수철처럼 몸을 들썩이는 사내, 집주.

그리고 재빨리 곁에서 그를 제지하는 노련한 당가의 노인.

한영은 힐끗 그들을 노려보고는, 턱짓으로 작약 쪽을 가리켰다.


“젊은 양반, 상황파악이 안되니?”

“이, 이이!!”


집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뿐이다. 당노인이 다가와 집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집주 진정하게, 지금은 가주님의 안전이 우선일세.”

“집주, 일단은 기회를 엿보아요.”


어느새 다가온 당설희 낭자도, 집주의 한 팔을 잡고 만류했다. 곁에선 유가도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이런……! 우라질!”


한영은 그 모습을 보며 흥! 하며 코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서슴없이 화살을 시위에 먹여 정확하게 팽가주의 머리통을 겨누었다.

흠칫 놀라는 집주와 우왕좌왕하는 팽가의 군사들.


“내 몸을 활로 뚫겠다는 건가? 하하하! 활로……. 말이야.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슈왁-

거침없이 허공을 가르는 화살!

내쏘아진 화살은 정확하게 팽용화의 왼쪽 가슴을 가격했다.

퍼억-

모두의 표정이 경악으로 허옇게 질렸다.


“꺄아아악!!!”


날카로운 당설희 낭자의 비명이 집무실의 정적을 깨트렸다. 그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노성과 흥분된 비명소리! 그 순간 당사자인 팽가주의 이마위에, 죽음의 기운이 흘러 내렸다. 검은 눈동자가 잿빛으로 텅하니 비어버린 팽용화!  절망한 얼굴의 노부!


허나, 팽가주의 주변에는 피한방울 튀지 않았다.

곁에 선 작약은 한영을 흘겨보며 ‘끌끌’하고 혀를 찼다.

그리고 팽용화의 몸에, 아니 정확히 옷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부우욱

장삼자락이 화살촉에 걸려 찢겨 나왔다. 놀랍게도 한영의 화살은 정확히 팽가주의 겨드랑이 사이 옷자락을 관통했던 것이다.

후우우-

집주의 부은 볼에서 큰 한숨이 새어나왔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의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한영은 재차 화살을 먹이며 소리쳤다.


“다음번엔 네놈들의 가주의 터진 심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한영의 외침은 저승사자의 선고처럼 느껴졌다. 집주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1열 물러서라! 제 2열 활과 화살을 앞으로 내던져라!”


정예병의 움직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60여대의 활과 수천발의 화살이 집무실 중앙으로 던져졌다. 작은 언덕을 이루었다.

쿠쿵-

1열은 방패를 내려들고 두발로 땅을 굴렀다. 웅장한 소리가 벽을 후려친다. 곧바로 그들은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노려보는 한영.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었다.


“가주님을 헤치려 하였다간, 내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후에라도 널 응징하겠다!!”

“분위기 파악 못하기는. 가주를 헤치려 하는 것이 아니니 잔말마라.”


짧은 대답. 허나 집주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충직한 젊은 충신(忠臣)은 눈물을 글썽였다.

한영은 저벅저벅 다가와 굳은 가주와 노부를 툭툭 건드려 보았다. 그들의 피부는 이미 쇠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또한 일체의 신체 기능이 멈추어, 체온 역시 싸늘히 식어 있었다. 한영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매섭게 눈을 빛냈다.

재차 밀려오는 짜증의 후 폭풍! 대상은 작약.


“이것도 하나 재대로 처리를 못해서 꼬랑지를 달고 와요?!”

“메, 메야!”


한영은 작약을 보며 빽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홱 돌려 집주와 당가일행을 쏘아 보았다. 작약은 아차 싶었다. 방금 전 자신이 점혈해 둔 아이들인데?

노파가 무엇이라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는 사이, 한영은 거침없이 집주 일행을 보며 소리쳤다.


“서문탁 그자를 내 놓아라. 가주의 피를 보고 싶지 않다면!”


무사의 당황스러운 질문에 집주와 병사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흥! 네놈들도 대답 없이, 딴소리만 해댈 참이냐! 오냐! 한 놈 한 놈 목을 따주마! 그놈이 있는 곳을 불 때까지!”


집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대, 대답만 하면 가주님을 풀어 줄 것이오?!”

“물론.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하, 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서 문 탁, 그자를 찢어 죽이는 일이지!”


그 순간 팽가주의 눈동자는, 심한 충격을 받은 듯 딱 정지했다

곁에서 굳어있던 노부의 눈동자는, 역으로 몹시 심하게 흔들렸다.

자신과 조카의 곁에 서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늙은 노파 또한,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중이었다. 노부는 이 순간 신음성도 내뱉을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노부의 머릿속 한쪽이 청명하게 맑아 오는 것만 같았다. 한참 전에 조카가 한 말이 선명하게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마귀(魔鬼)가 날 뛸 때는, 반드시 하늘은 풀자(解子)를 같이 내리신다 하셨지요.」


“그 일이라면, 내, 내가 돕겠소! 풀어 주시오. 가주님을 어서 풀어 주시오!”

“호오- 그렇단 말이지?”


한영은 묘한 눈길로 병사들을 지위하는 집주를 응시했다. 그녀가 막 뭐라고 말하려 할 때였다.

그 순간, 낮선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팽팽했던 긴장감을 절묘하게 깨트렸다.


“허허허! 내가 한발 늦은 모양이로군요! 아미타불!!!”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 오는 한 인영.

허나 자세히 살펴보면 뛰어 온다는 표현보다는 반쯤 날아온다는 표현이 정확할 터.

놀랍게도 그는 비쩍 마른 몸을 한 노승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집주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곧바로 예의를 갖추며 무릎을 굽혀 부복했다.

쿠쿵-

집주의 명을 따르는 정예 군사들은, 낮게 발을 구르며 그를 따라 깊이 고개를 숙였다.

노승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팽가주역시, 반가운 마음이 눈빛에서도 베어 나왔다.

허나 곧 의문과 걱정의 파장이 두 눈 한가득 일었다.


‘어찌 다시 오셨습니까! 마지막 수행하시는 걸음에 혈향(血香)이 드리워져서는 아니 된다 하셨습니다! 어찌, 어찌!’


노인은 가주와 노부를 향해서 인자한 웃음을 흘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노인의 온몸은, 비쩍 말라서 갈비뼈들이 훤히 들어나 보였다. 희한하게도 두 눈썹 사이인 인중 부근에 삼각형 모양으로 검은 점 세 개가 새겨져있었다. 대머리 노인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뿜고 있었다.


다가오는 인영을 바라보는 작약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장백산을 내려와서 처음으로 의선(醫仙)작약을 긴장하게 만드는 인물. 그런 기색을 눈치 챈 한영역시 단전의 기를 끌어 올리며 만전의 채비를 갖추었다. 귀신같이 다가온 한영은 가주의 목덜미를 화살촉으로 힘껏 겨누었다.


다가오던 노승은 작약 앞에서 딱 멈추어 섰다. 그리고 변함없이 인자한 얼굴로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노승의 시선이 가주의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


“부처의 마음은 헛된 고행에 있는 것이 아니었지요, 가주. 도력이 짧은 소승은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다오. 진리는 중생의 눈물 속에 있는 법. 미천한 소승의 몸뚱어리……. 하북성에서 풍기는 짙은 혈향 속에, 푹 담가 볼까합니다. 아미타불. 그러니 가주는 심려를 거두세요.”


‘아아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혜능스님!’






                                                       *                    *                   *






같은 시각, 초로의 화란부인은 또 다른 이유로, 무섭게 분노하고 있었다. 부인의 분노에 대답하듯 황금빛 장삼에 수놓인 봉황이 끔찍한 비명을 뽑아냈다.


까아아아악-


화란부인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린 왕국주는, 사시나무 떨 듯이 전신을 오들오들 떨어댔다. 쇳소리 같은 봉황의 외침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의 귀를 후벼 파는 것만 같았다. 그는 덜덜덜 떨리는 손을 머리맡으로 힘겹게 끌어올려 두 귀를 막았다.


“다시 말해보게. 왕국주. 홍루각의 노모가 어찌되었다고?!”

“예, 예에……. 부, 부인. 내원에서 죽어있었사옵니다. 살해당한 것으로 보, 보입니다.”

“죽어? 죽었단 말이지?! 감히 내 집 안마당에서 누군가 죽어 나갔다는 말이냐!”

“아이고! 예, 예에,. 심장에 칼이 박혀 단숨에 절명한 것 같습니다. 깨끗한 상처를 볼 때, 범인은 분명히 도(刀)를 다루는 힘이 좋은 사내가 틀림없습니다.”

“그 아이들은? 해루와 홍루라 하였더냐?”

“발견했을 때는 이미 귀신처럼 종적이 사라진 후입니다.”

“무엇이라! 그리하면 납치를 당했다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오라, 아, 아니 제 말씀은……. 일체의 저항의 흔적도 볼 수 없으며 주위가 깨끗했습니다. 아이들의 간단한 옷가지, 역시 없어진 채구요. 아, 아마도 녀석들이 떠난 후 노모가 변을 당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이 갈 곳은 한 곳 뿐이지!”


‘하북팽가!’


왕국주는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화란부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서운 기세가, 천만근의 추처럼 그를 바닥 아래로 짓눌렀다.


‘이런 고얀 놈! 감히 묵운, 그 아이를 감춘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버젓이 초로 안을 활개하고 다닌다는 말인가! 내 눈 아래에서 내 종아리에 핏물을 튀긴다?!’


화란부인은 뼛속깊이 진노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인은, 도화일행을 이용하여 원하던 바를 얻어내려는 계산이었다. 허나, 지금의 그녀는 그런 생각을 싹 거두어 들였다.


“왕국주는 고개를 들게.”


태산 같은 기운이 거짓말처럼 거두어들여졌다. 왕국주는 간신이 큰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얼른 고개를 들어, 떨어질 부인의 명을 기다렸다.


“수하들을 풀게나. 두 녀석은 아마도 하북성 쪽으로 향하고 있을 테지. 아마 노모를 죽이 자가 그 아이들도 쫒고 있을지 모를 일이니. 최대한 인원을 풀어서 알아보도록 하게.”

“예, 부인. 명을 수행하겠나이다.”

“서두르게. 반드시 은밀히 해야 하네. 나가보게나!”

“예! 부인. 명심하겠습니다.”


왕국주는 빠른 걸음으로 화란부인의 방을 빠져나갔다. 창쪽으로 빙그르 돌아선 화란부인. 그녀의 눈 아래에는 초로의 화려한 밤풍경이 뻗어 있었다. 답답한 가슴을 치며 화란부인은 창문을 활짝 열었다.

화악-

서늘한 밤공기가 부인의 전신을 휘감은 후 사그라졌다. 지그시 두 눈을 감고 있던 부인은

밤하늘을 향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일호, 이호, 삼호는 내명을 받들라.”


쑤욱-

천장에서 세 개의 검은 그림자가 뚝 떨어져 내렸다. 작은 소리하나 내지 않았던 세 인영은 조용히 바닥에 부복했다. 그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 복장이었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으나, 주위에 섞여 그 일부로 동화되는 이들.

묵운과 마찬가지인 살수다!

화란부인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담담하게 물었다.


“나와 함께 한 것이 올해로 몇 해가 되었더냐?”

“……스무 해 째입니다.”


가장 오른쪽에서 부복하고 있던 자가 대답했다. 그는 일호라고 불린 사내였다.


“너희들도 속이 타고 있겠지? 묵운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

“혹여 내 처사가 섭섭하더냐? 그의 일을 남의 손에 맡겨 두었으니.”

“아닙니다. 그림자는 생각이 없지요. 주군의 의지에 따라 자연히 드리워지는 법.”

“허나 너희들의 주군은 묵운이 아니었더냐?”

“……. 그분의 뜻이 곧 저희들의 의지입니다.”


자신들의 주군이 목숨을 바쳐 모시는 하늘.

세 명의 사내는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의 주군인 묵운을 떠올리자, 속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나왔다.


“묵운과 함께한 지도, 그래 어느덧 스무 해를 넘겼구나. 좋다. 묵운을 대신하여 내가 명을 내리마.”

“하명만 하십시오.”


화란부인이 돌연 방향을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엎드린 살수들을 굽어보았다.

화르륵-

그녀의 금빛 장삼이 펄럭이며 웅혼한 기운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부인의 얼굴 가득히 거부할 수 없는 위엄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가라! 지금 당장 하북성을 가서 묵운을 구해오라. 그리고 그들을 도와 서문탁의 목을 베라!!”


감격한 얼굴로 화란부인을 올려다보는 살수들!

깊은 감사와 함께 결연한 각오의 의지가 뜨겁게 솟아올랐다.

쿵!

일호와 이호와 삼호는 동시에 자신들의 머리를 힘껏 바닥에 찧었다.


“목숨을 걸고……. 명을 받들겠나이다. 존명!!!”


우렁찬 기합소리. 화란부인은 다시금 창을 향해 빙그르 돌아섰다.

살수들이 우러러보는 그녀의 뒷모습은, 태산과 같은 무게감으로 주변을 압도했다.

그들이 다시금 그림자로 지워지려는 순간, 부인의 음성이 마지막으로 이어졌다.


“내 주변에 그림자를 남길 필요 없다. 살문(殺們)의 주력고수 32인을 모두 동행하라!”


사라지려는 일호의 그림자는 다시 한번 화란부인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허공에서 아지랑이와 같이 흐려지더니 곧 자취 없이 사라졌다.


‘묵운! 부디 무사해라. 늦지 않았기를…….’


홍등을 내려다보는 화란부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초로의 중앙 전각의 꼭대기 방을 중심으로,

서른다섯 개의 그림자가 검은 빛줄기를 남기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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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입니다

다들 잘 지내셨어요?

헤헤헤. 늦어서  죄송합니다. (--)(__)꾸벅! 부디 용서를..

이번주부터 날씨가 한층 더 추워졌지요?

내일부터는 출근 하실 때, 그리고  등교 하실 때 더욱 두꺼운 외투를 입으셔요.

혹여나 찬바람에 몸상하시면 큰일 이시니까요(^_^)

 리플을 달아주시는 고마우신 님들, 그리고 추천 눌러주시는 멋쟁이 님들!

다들 파안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가슴 깊이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천하제일 노인(老人)은 아마 도화보다도 더욱 자주 보실수가 없으실 거에요.

이 글은 '유쾌 상쾌 통쾌' 의 구호를 내건 코믹물(?)인데, 약간 써둔 분량이 있어서... 도화를 연재하기 곤란할때 간혹 땜빵으로......(덜덜덜) 대신 올라오게 될 것 같습니다.. 헉헉

그리고 노인으로도 땜빵할 수 없을 만큼 구멍이 클 때는, (쿨, 쿨럭) 가슴 찡한 로맨스 소설을 보실 수 있을 지도 몰라요(ㅠ_ㅠ) 

오늘도 날아오는 돌덩이를 피하기 위해 날림작가는 후다닥 도망갑니다!!

 

울 사랑하는 님들!

힘찬 하루의 시작 되시길 바랍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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