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주말입니다.
2일 밖에 안 되긴 하지만.....
(늘 주말에 관해선 불만이 많다)
아무튼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지금
서로의 시린 옆구리를 채워줄 퍼즐을
하루 속히 찾으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 너부터 찾으세요 =========================
...... 방금 그건 뭘까.
부사를 말로 한 건가?
(명사를 꾸미면 형용사, 동사를 꾸미면 부사. 밑줄 쫙)
왜?
난 떨어진 펜을 주워 다시 책상에 올려놓은 뒤
정중한 태도로 그녀에게 물었다.
기억 - 연극부 부원이십니까?
?? - 아, 사채업자!
내 질문에는 아랑곳없이
손가락을 튕기며 날 가리키는 그녀.
곧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쪼르르 나에게 다가와선
몹시 부담스러운 친근감을 표했다.
??
- 사채업자의 손을 맞잡으며...
어쩜~. 만나서 반가워요.
이번 연극 너무너무 잘 봤어요.
연극을 그렇게 가슴 졸이며 본 게 얼마만인지...
그녀는 다시금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손을 내저었다.
기억 - .....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대체 누구시냐고요~.
게다가 왜 지시문 같은 걸 말로 하는 거야?
그리고 =그녀는=? 3인칭?
그렇게 묻고 싶은 말은 한 다발이었지만
이미 한 번 찬스를 놓친 상태에서
질문을 반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그저 그녀의 페이스대로 묻어갈 뿐.
?? - 다친 덴 좀 괜찮으세요?
기억 - 네, 뭐 그럭저럭.
??
- 그 땐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하지만 눈도 깜빡하지 않고 연기를 계속 하는 그 근성!
아~주 멋졌답니다.
기억
- 아...뭐 그 땐 긴장해서....
이런 거 저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
- 생각 외로 귀여운 면이 있다고 느끼면서....
그래서 키스까지? 그거 대본에 있던 거 아니죠?
기억 - 아.....그....그건......
점점 질문이 당혹스러운 방향으로 번져가자
난 어떻게든 화두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억
- 저..... 저는 기억이라고 합니다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
- 아차차....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전 유니라고 해요.
기억 - 여기엔 어쩐 일로?
유니
- 잠시 그의 눈치를 살핀 뒤....
저희 오빠한테 전해줄 게 있어서요.
여기서 연출을 맡고 있는데....
기억 - 아~ 연출선배 동생분이세요?
유니 - 네. 오빠가 알콜 중독에 영 칠칠치를 못해서 늘 신세가 많죠?
기억 - 딱히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유니 - 아녜요, 아녜요~. 정말 취한 걸 못 봐서 그래요.
요모조모 살펴봐도
술 마시고 개 됐다가 사람으로 덜 돌아온 듯한 연출과는
다분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그녀였지만
말하는 내용이나 어투로 볼 때
의심할만한 여지는 없는 듯 했다.
기억 - ......저..... 그런데 실례지만 나이가?
유니 - 몇 살로 보이는데요?
기억 - 스.....스물 하나?
유니 - 너무했다..... 저 아직 고등학생이에요.
기억 - 예? 설마 하긴 했지만....학교는 어떡하고요?
유니 - 오늘 개교기념일이거든요.
기억 - 아.... 그렇군요. 왠지 좀 어려 보인다 했어요.
고등학생이면 열아홉? 열여덟?
연출이 스물다섯인가 그럴 텐데....
나이차가 심하게 나네...
유니 - 저기요~ 오빠라고 불러도 되요?
기억 - 예?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난 깜짝 놀라 되물었다.
평소 연하의 여성을 만날 일도 없는데다
몇 안 되는 조카나 사촌들과도 나이차가 많이 나는 탓에
내 호칭은 언제나 =삼촌= 아니면 =아저씨= 였고
=오빠= 라는 호칭은 발음부터 낯 뜨거운 단어였던 것이다.
유니
- 응? 왜 갑자기 얼굴이 빨개져요?
오빠라는 말 처음 들어요? 오빠오빠오빠?
기억 - 아니 그게.... 오빠보다는.... 업자나 뭐 그런 쪽이...
유니
- 정말 생각 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오빠 너무 귀엽다~.
그리고 이제 그냥 말 놔요~.
그래, 이대로 있다간 질질 끌려가게 생겼다.
나도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해!
까짓거, 말 놓는 거야!!
기억 - .....그럴까?
유니 - 응!
기억 - ....서로 놓자는 거였어요?
유니 - 당연하죠.
.....
요즘 고등학생들은 다 이런 걸까?
이제 만난지 10분도 안 됐는데...
지끈하고 두통이 오는 듯한 느낌에 이마를 짚고 있자
말똥말똥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쳐다보는 그녀.
왠지 고양이를 닮았단 생각이 든다.
유니 - 오빠?
기억 - 응?
유니 - 오빠오빠오빠?
기억 - .....예.
유니 - 오빠오빠오빠오빠~ 까르륵. 재밌다...
사람 뻘쭘해 하는 걸 보는 게 그렇게 즐거운가?
기억 - 그런데 고등학생이면.. 이번에 수능 치는 건가?
유니 - 에이~ 그럼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요? 내년에 봐요.
기억 - 으음... 하긴 며칠 안 남았구나.
다행이 적당한 대화주제를 찾는 데 성공한 난
20여분 정도 그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것도 다 민아와 있으며서 면역이 생긴 덕이겠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왠지 교과과정이 많이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교육부가 오락가락하는 게 어제오늘 일인가?
좌우지당간에 이공계를 살리란 말이다!! 이공계를!!
아... 이공계 얘기하니까 흥분해버렸다.
아무튼 이제 사람들이 올 때가 됐는데....
유니 - 아...시간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기억 - 예? 잠시 후면 연출 선배랑 다 올 텐데...
유니
- 흐음.... 에이, 그냥 들어갈래.
대신 이것 좀 전해줄래요?
기억 - ....응. 그래.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금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는 그녀.
난 그녀에게 연습장 한 권을 건네받고
짐 정리를 도와주었다.
유니 - 그럼, 다음에 또 봐~. 오, 빠~♥
기억 - 그래, 자.... 잘 가~.
그녀가 두툼해 보이는 숄더백을 어깨에 지고
손을 흔들며 출입문을 나서려는 찰나
바깥에서 누군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연출 - 어? 누가 벌써...
유니 - 앗......
연출 - 어라, 선배님 오셨어요?
유니 - 아쉬움에 혀를 차며..... 제길, 비켜 인마.
연출 - 예? 아니, 왜 그러세요?
유니
- 아무것도 아냐.
일평생 도움이 안 되는 놈...
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엉거주춤 당황해서 서있는 연출을
밀치듯 옆으로 비켜 세우고 밖으로 나가는 그녀.
그녀가 문을 나선 뒤에도
연출은 황당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고 서있었다.
연출 - 나 오기 전에 무슨 일 있었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 연출.
하지만 연출보다 더 당황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기억 - ..... 선배님이요?
연출 - 응. 연극부에 대본 쓰는 선밴데...
기억 - 실례지만 저 분 나이가?
연출 - 스물여섯인가? 아마 그럴 걸?
기억 - 예? 저한텐 아직 고등학생이라면서...선배 동생이라고....
연출
- 뭐? 고등학생?!
아니 저 할망구가 이제 뻥을 쳐도 아주...
믿지 마, 믿지 마.
너 표준전과 보고 있을 때 수능치신 분이다
낼 모레면 서른이라니까?
.......
유니 '이병! 유~니! 오늘부로 육군어절씨구~ 명 받았기에, 지금 신고합니다!'
기억 '오~ 드디어 내 밑으로도 쫄병이... 그래, 사회 있을 때 뭐했냐?'
유니 '이병! 유~니! 고등학교 다녔습니다!'
기억 '그래, 짜식. 형은 다음달이면 일병인데.. 넌 대체....앗, 연출상병님!'
연출 '어 기억아. 어라, 유니 병장님 오셨습니까?!'
유니 '이런 짜식이.. 너 때문에 산통 다 깨졌잖아 인마!'
갑자기 육군 홍보 드라마의 한 장면이
오버립되어 다가오는 건
내가 지금 똑같은 꼴을 당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내가 생로병사와 불로장생의 비밀에 관한
심각한 회의에 빠져있는 사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부원들은
저마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박군 - 오올~~왔쏘?
김군 - 짜~식. 한 턱 쏴야하는 거 아냐?
어깨 -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회계 - 여, 상처는 좀 나았냐?
사실, 제멋대로였던 당시 행동으로 인해
한 소리 듣는 게 아닐까 걱정도 많이 했었지만
연극에 대한 호응이 좋았던 덕에
나의 행동에 대해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안군 - ...여어. 연극 잘 봤다.
...... 한 사람만 빼놓고.
사람들의 주의가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를 기다려
내 옆자리로 자리를 옮긴 안군은
나와 시선을 나란히 하고 앉아 중얼거리듯 말했다.
안군 - 생각보다 간덩이가 큼직하던 걸.
기억 - 그러게 말입니다.
안군 - .... 객기가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기억 - 주의하지요.
서로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무미건조하게 입만 잠깐씩 여닫아 이어가는 대화.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볼 땐
그냥 말없이 앉아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안군 - 난 아직도 모르겠다. 왜 민아가 너한테 그렇게 호의적인지.
기억 - 저도 가끔 의문입니다.
안군 - ..... 어째 남의 얘기 하는 것 같다?
기억 - 기분 탓이겠죠.
이제 슬슬 안군에 대한 대응방법을 깨달아 가는 것 같다.
일명 =어, 그래.= 화법.
뭐든 적당~적당히 받아치지 않고 흘려버리면
말꼬투리 잡힐 일도 없고 당할 일도 없다.
안군 - .... 나한테 보여주려고 그런 거냐?
기억 - 그땐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만.
안군 - 하긴, 생각아 있으면 그 짓을 못했지.
...... 아직 수련이 부족하다.
안군 - 분명히 말해두지만... 만용은...
추종자1 - 오빠, 안녕하세요! 응? 이야기 중이셨어요?
안군 - 아, 아냐 아냐. 후... 나중에 이야기하자.
그렇게 나와 내공싸움을 벌이던 그는
슬슬 그의 추종자들이 모여듦에 따라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이정도면 그럭저럭 선전했다고 만족하고 있는 나에게
안군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대뜸 물었다.
안군 - 혹시 식스센스라는 영화 봤나?
기억 - .... 안 봤습니다만.
안군
-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으로 나오는 영환데
빌려줄 테니까 한 번 봐라.
친구한테 빌려줬던 건데 오늘 가지고 와서....
아마 재밌을 거다.
내가 미처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는 가방에서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꺼내 휙 던져주고 돌아섰다.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식스센스.... 공포영환가?
이거 무슨 반전으로 유명했던 것 같은데....
간접 메시지라도 담겨있는 건가?
혹시 재생하면 자동적으로 폭발한다거나...
그렇게 비디오테잎을 들고
이런 저런 가설들을 세워보고 있을 때
어느새 도착한 민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민아 - 왔어? 어, 그건 뭐야?
기억 - 아......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그녀와 키스했던 그 순간의 감각이 번뜩 되살아나면서
뺨이 확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표정 관리에 애쓰는 사이
옆으로 바짝 다가온 그녀는
비디오 케이스를 살펴보곤 반색을 했다.
민아 - 식스센스? 나 이거 보려다가 못 봤는데...빌린 거야?
기억
- 응? 으응... 안군선배가...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으로 나온다면서 재밌다고...
민아 - 언제 볼 거야?
기억 - 아...아마도 오늘...
민아 - 잘 됐다, 같이 보자. 우리집에서 볼래?
기억 - .....네, 마님.
..... 이게 왠 횡재인가.
그녀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고 있던 난
생각 외로 술술 풀리는 상황에 쾌재를 불렀다.
안군, 설마 이런 건 예상하지 못했겠지? 캬하하.
....그런데.... 설마 표지만 식스센스고
내용물은 에로물이라거나 하진 않겠지?
오감을 초월한 정사...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