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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의 증언(대북지원문제)

cruise |2007.03.15 18:07
조회 157 |추천 0

대북지원 물품은 거의 지배층과 군부가 탈취

 

탈북민 증언 - 김영순 여사 (2003년 입국)

 

북한은 김일성 때부터 줄곧 주민들에게 ‘기와집에 비단옷을 입고 쌀밥에 고기 국을 먹이는 것이 최대의 숙원’이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어도 60년 결과는 수백만이 기아로 아사하는 참담한 비극만을 낳았다.

 

북한은 1990년 상반기 대 아사 발생 직전까지만 해도 유엔식량기구에 ‘쌀이 해결된 나라로, 자급자족의 나라’로 등록 기재됐었다. 그 때 외국에서 들여오는 포대마다 말머리, 소머리가 찍힌 가축사료가 들어 있었다. 외국에서는 사료를 수입한다 하고 들여다가 주민들에게 식량으로 배급하기도 했었다. 북한주민들 속에서는 “해외에서 사료로 들여온 것을 ‘주체돼지’들이 잘 먹는다”라며 야유의 말이 회자되곤 했었다.

 

북한정권은 세계 각국에서 주는 지원식량을 군부로 빼돌려 2호미(전시용쌀)로 저장창고에 항시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남는 지원식량은 평양시의 간부, 군부, 보위부, 안전부 등 특권층에 공급하고 일반 주민들에게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날에만 2일분, 1일분을 주는 외에 전혀 없다.

 

평안북도에서 사는 늙은 부부가 군관(장교)을 하는 아들집에 갔다 돌아 올 때 백미 한 포대를 가지고 왔다. 이 할머니의 옆집 사람이 놀러갔다가 하도 정미가 잘된 쌀이라 물으니 남조선(한국) 쌀이라고 했다.

함흥시의 각 구역에서 성천강 제방 공사에 동원되었을 때의 일이다. 함흥시 간부가 미리 준비된 사람들을 모아놓고 “유엔기구 사찰단이 이제 공사장에 올 것이니, 그들이 물어오면 쌀 2kg씩 공급받았다”고 말하라고 지시했다.

 

흥남항에 태극기를 단 한국의 식량배가 도착 해몇 시간 후면 시장에서 한국 쌀이 팔린다. 이렇게 암거래 속도가 빠른 나라는 없을 것이다. 북한 북부 국경지역 출신 탈북민들은 외국 식량을 공급받은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고작 1~2일분 공급받았다고 말한다.

 

유엔, 적십자 등에서 의료 기구를 비롯해 결핵약, 구급약 등 많은 약들이 북한에 지원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병원에는 약이 전혀 없어 병원에서 알선한 개인집에서 시장 가격으로 사다먹는다.

 

시장에 앉아 구기자, 오미자 등 약초를 파는 사람들의 뒷주머니에는 유엔 약으로 부르는 짐 꾸러미가 따로 있다. 이와 같이 평양이나 함흥 등지의 시장에서 약을 구하려면 이들을 통해 구입해야만 한다.

 

남한에서 보낸 내의류가 1999년과 2000년에 평양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여성용 내의, 팬티, 브래지어, 양말과 남성용 옷, 양말 등이 들어 있었다. ‘조선인민군 협주단’ 남성 합창단원들에게는 1인당 양말 20켤레씩 공급했다. 이 옷들은 평양시 가정별로 ‘국정가격’으로 공급했다. 평양주민들은 다시 2~3배 가격으로 높여 이를 지방에 팔아 이익을 챙겼다.

 

남한에서 국수공장이니 빵공장이니 지어주면 3.8탁아소 등 당국이 특별히 지정해 주는 곳만 공급된다. 또한 유엔에서 사찰단이 들어오면 영양 상태가 좋은 어린이들을 앞에 세우고 부족한 애들은 뒤에 세우기도 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보낸 쇠고기 라면이 평양시의 한 교원대학의 학생들에게 보내진 적이 있었다. 라면 1봉지로는 배를 채울 수 없으니 장사꾼들과 강냉이와 맞바꿔 먹었다고 한다.

 

북한군들도 극심한 식량난으로 허약해져 군 병동에 실려 간 경우가 허다하니 외부 지원물자들이 군부로 흘러들어가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호물자를 어쩌다 공급할 때에는 공급자들을 통해 “우리의 위대한 장군님이 21세기 태양이기에, 군사에서 세계 최강국이기에 두려워서 지원을 해준다”고 사실을 왜곡한다.

 

이렇게 진실을 짜놓은 각본대로 왜곡하고 떠들어대는 북한정권에 대해 올바른 대응조치가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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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에 식량 우선공급, 주민통제 감시 수위 높아져

 

핵실험 후 북한주민들의 권력층들에 대한 불만이 어느 때보다 높다. 주민들은 여전히 살아가기에 지쳐 핵실험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전쟁’이 나든 무관심이라고 한다.

 

한국정부를 비롯한 외부에서 지원되는 쌀은 주민들을 단속 통제하는 국가권력인 당기관, 보위부, 보안성 등에 우선 무료로 공급되고 주민들은 여전히 장마당에서 남한 쌀을 사먹어야 한다. 정말 불쌍한 인민들에게 쓰여야 할 구호품들이 간부들에게 다 뜯겨 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팔려나가니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남한 주민들의 정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부 소식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하고 있는 주민들은 현 남한정부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에 거주하고 있는 이 모 씨는“과거 고난의 행군 시기, 간부나 백성이나 다 같이 허리띠를 조이고 살았는데 지금은 백성들에게만 허리띠를 조이라고 강요한다”며 “간부들은 배부르니까 주민들 단속에 전력하고 있는 게 아니냐” 고 불만을 표출했다.

 

국경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 주민은“외부 지원식량은 권력계층과 독재기관들이 독점한다. 권력기관은 주민들의 생존문제에 아무런 역할도 안하고 있다. 옥수수 쌀이마나 공급 받은 때가 까마득하다”고 말했다.

 

사람을 잡아먹기도 했다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기에는 권력기관 간부들도 먹고 살기 힘들어 장사에 나서다보니 주민들에 대한 단속이 상당히 느슨해졌다. 노동당 간부들도 끼니 걱정을 하던 시기였다.

 

이 당시 배급을 못타는 주민들은 공장을 다니지 않고 장사로 살아가고 간부들도 식량공급이 줄어들자 살기 바쁘기에 급급했었다. 간부들은 뇌물을 받는 데 재미를 보았고, 안전원, 보위부 기관 사람들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단속하면서도 돈, 식량 등을 빼앗은 대가로 눈감아주고 자기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바빴다.

 

단편적인 예로 그 당시 열차 안전원(경찰)들이 단속한 여행객들로부터 빼앗은 물건 1순위가 그들이 갖고 있는 음식꾸러미였을 정도다. 열차안전원들도 배를 곯다보니 이런 방법으로 먹고 사는 것이다. 사회 안전원은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사람에게 트집을 잡아 장사할 물건을 뺏는 인민들의‘도둑’으로 변하기도 했다.

 

외부에서 지원하는 식량이 군대가 먹고, 권력자들이 먹고 나머지 20% 정도가장마당을 통해 팔려 현금이 다시 간부들 수중에 들어간다고 북한주민들은 말한다.

 

탈북민들은 현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옥수수를 보내야 북한주민들에게 제대로 배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옥수수 특성상 보존기한이 짧고 쌀과 비교할 때 가격이 매우 저렴하고, 간부들이 가져갈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에서이다.

 

정부는 그동안 매년 쌀 50만t과 비료35만t을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북한에 지원해 왔다. 이것은 북한의 한 해 식량 부족량 추정치인 89만 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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