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이야기
은경이는 나에게 쏘아 붙인다
그깟 3만원 자기에게 달라면 못 줄꺼 같냐면서 뭐라고 한다..
나도 속상한데 은경이의 말이 나를 더 속상하게 한다..
지금은 그나마 헉헉 대면서 말을 해도 그땐 정말 숨이 딱 막혀서 숨을 못 쉬는 듯 했고 억울해서 눈물만 나왔다.
은경이는 맞벌이를 하면서 남편 몰래 나에게 한달에 얼마씩 (10만원은 넘고 30만원은 안된다) 돈을 준다..
그래도 난 괜찮다면서 만류하지만 자기가 번 돈인데 남편이 그것까지 왈가왈부 할수 없는 거라면서 괜찮다면서 곧이 곧대로 돈을 주곤 한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결혼을 자기 돈 3백만원만 갖고 해서 엄마 아빠가 부담이 많이 갔을 텐데 이걸로 차감하는 셈 치잔다.
난 그래서 매달 그 돈을 받지만 미안해서 더 이상 달라고 하진 못한다..
그만큼 은경이가 돈을 못 모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다..
나의 이야기
몇일 후 ..
내가 대학교를 다니고 동생이 고등학교를 다니자 엄마는 우리가 다 컸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결혼하고 정말 처음으로 부부 동반으로 무슨 모임에서 설악산을 일박이일로 가셨다
당시 철이 없던 나는 “았싸~가오리~!!”라는 생각으로 밤에 여자친구들 (나의 베스트인 :친구1(숙), 친구2(영)) 불러서 맥주를 사서 맥주를 마시며 담배를 피며(<_그당시) 집에서 놀았다
우리집 장식장엔 언제나 양주가 비치되어 있었구 나는 맥주만 먹지 말고 저기 저 양주도 맛만 보자 하여 양주도 먹었다
딤플. 임폐리얼, 썸씽스페셜, 아그레망꼬낙, 콘코든, 시바스리갈, 발렌타인마스터스, 이사벨라, 칼튼힐, 딕페리옹xo, 꼬낙까뮤, 까뮤나폴레옹, 헤네시, 에펠타워브랜드, 캡틴큐.... 등등
그게 초록색에 길고 네모난 양주였는데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짜피 먹었던 양주라 크게 티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먹었는데..
양주는 너무 쓰고 맛도 이상하고 역시 내 스탈은 아니였다..
몰래 먹는 짜릿함에 온몸이 전율 했지만, 난 그 후로 양주 맛은 보지 못했다
난 일부로 내 돈으로 술을 사 먹는 스탈이 아니기 때문에 난 술을 항상 등한시 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굳이 비치되어 있는 양주를 일부로 먹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추억이나 기억들이 많고 결혼을 했다면 정말 좋았을 껄 난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사실 추억거리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많치는 않다
나는 엄마가 언니 때문에 항상 힘들어 하는 걸 알고 있다
또 엄마는 언니가 자기 가슴에 못 한 개를 박아 놓아서 살면서 평생 가슴이 아플꺼라고 하였다.
나는 언니 처럼 엄마 가슴에 못 1개를 박아 놓치는 않고 한 10개쯤은 박아 놓았다.
그 이유는 내가 정상적으로 결혼을 한게 아니고 처녀로써 아기를 가지고 부모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너는 언니보다 더 나쁜 년이야.. ** 보다 못한 년이야.. 넌 엄마 눈에서 꺼져버려.. 너 같은 자식 둔 적도 없으니깐.. 차라리 호적 파고 짐 싸들고 나가!! 언니는 엄마의 잘못으로 가방 끈이 짧아서 엄마가 어떻게든 잘해 주려고 노력하고 좀더 이뻐할려고 노력 했는데 너는 그런 생각 조차도 안들어!! 너 같은 년한텐 그런 생각조차 안들어.. 엄마가 자식 없는 셈 치께.. 엄마 눈에서 사라져 너만 보면 아주 그냥 치욕 스럽고 배신감이 더 생겨.. 믿는 도끼에 더 발등 찍혀서 더 후회대.. 알아?!’
이렇게 까지 말씀을 하셨을 때 난 임신부로써 너무 큰 충격에 휩싸였다..
나의 이야기
엄마는 남편을 대면하고 결혼 승낙까지 했으면서도 불구하고 집안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거나 나를 볼때면 항상 그러셨다.
'**보다 못한년이라고.. 내가.. 내가..지금?? 엄마가 뭐라구 그러신거야? 나에게 뭐라고 하신거야? 뭐 보다 못한년이라구? 뭐 보다??'
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차마 따지지는 못하고 고개를 숙이곤 내방으로 가서 이불을 깔고 잤다
원래의 승질빼기 같으면 다짜고짜 따졌을 텐데, 그놈의 임신부라고 아이가 날 제어 했을지도 모른다.
'엄마, 좋은 환경에서 좋은 모습과 맛있는 음식으로 태교해야 해요. 좋은 것만 듣고 항상 웃으면서 사셔야 해요'
라고
자는 척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기를 죽일수도 살릴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사실 난 죽일 마음은 전혀 없었다
어린나이에 책임감 같은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죽이면 살인이기 때문에 평생 마음의 죄를 갖고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에게 아기를 가졌다고 말을 한 것은 어느 일요일날 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아기를 가졌다고 말한 것은 3개월정도 였고 배는 부르지 않았지만 어쨌든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던 나는 일요일날 자고 일어나니 11시쯤이었고 아무도 없던 집에서 난 갑자기 아기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임신을 했다고 했다..
엄마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별의 별 욕을 다 하셨지만 내가 기억나는 한 단어는 “아기를 죽여라” 였다
아기를 지우라는 것도 아니였고 단호히 죽여라 였다..
난 내가 행복할 자신이 있다고 해도 엄마는 믿지 않았고 아기를 죽이라고 나에게 그랬다..
그래야만 니가 행복해 질수 있고 너의 미래가 평탄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당장 갈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난 그 당시 청양 시댁에 있던 남편에게 전화를 하였고
나:강00씨 댁이죠 강00씨 있어요?
작은 아버님: 잠깐 개울에 갔는데 실례지만 누구시라고 전해 드릴까요?
나: 훌쩍 훌쩍.. 여자친군데요..
남편: (울며 전화하는 나에게) 이그 넌 어른한테 먼저 인사 부터 해야지 니 할말만 쏙 하니..
나: 지금 충격 먹어서 ㅡㅡ 그렇단 말야
남편: 충격은 왜? 목소리가 왜 그래?
나: 엄마가 애기 죽이래.. 지우래도 아니고 죽이래.. 나.. ㅜㅜ 어떻게.
남편 :우선 우리집에 (동아아파트)에 가 있 금방 갈께.,
그 당시 동아아파트의 열쇠를 가지고 있던 우선 핸드폰을 꺼 놓고 짐을 싸서 택시를 타고 동아아파트에 갔으며 당분간 집에 들어 가지 않았다.
짐을 싸고 집을 나오는 순간에도 “엄마가 당장 갈 테니 기다려”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아 엄마를 마주칠까봐 두리번 두리번 불안해 하며, 기본요금만 나오는 그 거리를 난 택시를 타고 갔다.
엄마의 이야기
몇 달전인가 은경이가 아프다며 자다 일어나서 까스활명수를 먹었을 때 난 그냥 별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자 채 한거 같기도 하고 감기기운 같기도 하고 속이 울렁 거리면서 잠을 도저히 잘수 없을꺼 같다고 했다..
그랬을 때도 난 그러려니 하며 말았다..
그리고 점점 시간은 지나는데 생리대는 줄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난 은경이에게 생리를 하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은경이는 생리를 한다고 말을 하였다.
난 이상했지만, 그래 딸을 믿어야지 누굴 믿어.. 하면서 생각을 하였고 한달 두달 지나면서 역시 이상했지만 내가 사 놓은 생리대는 싫어서 뭐 다른 생리대를 사서 쓰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였지만 불안함은 지속되었다..
아뿔싸!
그러던 은경이는 어느날 갑자기 임신했다면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 때 당시 집이 아닌 밖에 있던 나는 정말 황당했다.
법원을 취직한지 한 3개월 정도 되었었는데, 그 좋던 직장은 어떻하고 갑자기 임신을 했다니 난 정말 당황했다.
난
“너 같은 년은 딸도 아냐! 왜케 엄마 속을 썪이고 그래!! 차라리 나가 디져 버렸으면 좋겠어.,.. 아기를 당장 죽여야 돼! 아기를 죽여야만 니가 행복하고 니 미래가 평탄 할 꺼야.. 엄마가 지금 당장 갈 테니 꼼짱 말고 집에서 기다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갔지만 은경이는 없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도 핸드폰이 꺼져 있었고 은경이는 몇날 몇일 집에 들어 오지 않았다..
나는 몇일 후에 은경이에게 핸드폰 음성을 남겼다.
“은경아 엄마야.. 엄마가 니가 말하는 그 남자를 한번 만나 봐야 겠어.. 그래야 결혼을 시키던지 아기를 어떻게 하든지 하지.. “
나는 울면서 힘없이 말을 하였다
속상한 나의 마음을 아는지 은경이에게 바로 연락이 왔고 그 남자와 몇일후 어디 양주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남편의 이야기
은경이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엄마가 보자고 한다고 했다..
아마 아기 그리고 결혼 때문에 그러는 거니 신중하게 할말을 잘 생각하고 가면 말 조심을 하라고 했다..
몇일후 터미널에 있는 어디 양주집 (지금은 없어졌다.)을 갔다.
난 정장을 차려 입고 약속한 장소에 10분 정도 일찍 갔으나 훗날 장모님 될 사람은 먼저 와 계셨다..
손님이 그 테이블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은경이랑 닮으셨기 때문에 난 쉽게 알아 볼수 있었다..
어머님을 본 순간 그 테이블 앞에 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어머님을 본 후
“안녕하세요,, 강00 입니다..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하며 난 그 앞에서 무릎을 끓었다..
엄마의 이야기..
난 정말 아기를 지웠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난 은경이가 행복할 자신이 있다고 했을 때 난 그건 아니라고 본다며 반대를 했고 은경이는 아마 아기를 빌미로 결혼을 할려고 했던 모양이다
저번에 언젠가 이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였을 때 나는
“나이가 띠동갑이었고 시누이4명에다가 고향은 청양이고 맏며느리면 니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된지 않겠니” 라면서 반대를 했을 때 은경이는 나와 남편이 10살 차이 난다면서 물고 늘어 졌었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정말 행복하지 않냐고 나에게 오히려 반문을 했었다.
근데 난 정말 아이를 지웠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려고 했다..
근데 아주 키가 크고(183cm) 듬직하고 띠동갑으로는 보이지 않는 동안인 잘생긴 남자가
“안녕하세요,, 강00입니다..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라며 인사를 한 후 내 앞에서 무릎을 끓었다
난 너무 당황하여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한 후 끝내 어쩔수 없이(?) 결혼을 찬성을 하고야 말았다.
나의 이야기
남편이 결혼 승낙을 받았다고 했다..
난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님을 등한시 하는 것 같은 죄책감에 휩싸였고 난 얼마후 집에 들어 갔다..
그러나 결혼승낙은 엄마와 지금의 남편만 하였던 것이기 때문에 상견례를 하기 까지는 또 다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아빠를 설득하기 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 와서 말하지만 아빠는 형부처럼 내 남편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상견례를 하기 전에 집에 와서 인사를 드릴라 치면 온 사람을 내쫒거나 한건 아닌데 등한시 했다.
아빠한테 절을 하면 쳐다보지도 않고 인사도 안 받고, 말을 시키면 그나마 대답은 했지만 쳐다 보지는 않으셨다.
그리고 내가 "오빠" 라고 하며 어쩌구 저쩌구 아빠한테 이 남자에 관해서 설명을 하고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자랑을 하면
"니가 오빠가 어딨어 이 새끼야" 하면서 사람을 무안 시키기도 하였고. "청양촌놈" 이라고 무시하기 까지 했다.
그런 아빠가 상견례를 하고 변하셨다..
남편과 나 그리고 아빠랑 당구를 치러 가시기도 했다
아빠는 다마수가 500(아빠는 당구를 좋아하셔서 지금 당구장을 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남편은 다마수가 200, 난 포켓만 다마수가 50 이다..
모르겠다 포켓은 점수를 따지는 기준이 없어서..
하지만 난 포켓부였지 않았는가?
교복 입고 당구 치러 다니지 않았던가?
우리의 아지트 (내가 술 먹고 꼬장 부렸던)에는 당구다이가 2대나 있지 않았던가?
하나는 사구와 쓰리큐션 다이, 하나는 포켓 다이.. ㅎㅎ
아빠랑 남편이랑 당구를 친 몇일 후였다.
어느날 아빠는 오므라이스를 해줄테니 돼지고기 반근만 사 오라고 시켰다..
아빠는 요리사 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가끔 오므라이스와 카레라이스를 해 주시곤 했다. 아빠가 기분 좋을 때만..
난 핸드폰을 들고 정육점으로 가면서
"오빠 난데.. 우리 아빠가 오므라이스 해 준다고 오빠도 불르라고 하셔.."
하며 거짓말을 하여 좀더 친목 도모를 위해 애 썼다.
남편은 정장을 입고 20분 정도 후에 도착을 했고 거의 오므라이스가 완성 될 쯤에 왔다.
남편이 오기 10분 전쯤에 저녁 하러 집에 도착한 엄마에게 난 남편을 불렀다고 하자
"싸가지 없는 년 시키지도 않은 짓은 잘해.. 청소도 안해 놨는데 어쩔꺼냐? 제발 좀 나서지 좀 말어라 좀 조신하게 살고 너때메 엄마가 엄마 명에 못 살겠다"
라고 하였고. 남편은 나 덕분에 우리 아빠가 만든 요리를 먹을수가 있었다
엄마는 집에서 나만 보면 아주 별에 별 욕을 다 하셨고 난 기가 죽어 내 방에 들어 가 있는 날이 많았다
난 과일이 먹고 싶어도 먹을수도 없었다
과일을 싫어 하는 편인데 어쩌다 한번은 그렇게 먹고 싶을수가 없었다.
엄마는 너 같은 년에겐 과일 사주는 돈도 아깝다며 먹을 꺼 역시 전혀 사주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난 내가 받았던 월급으로 먹고 싶은 걸 사 먹곤 했다.
그리고 일을 그만 두고 돈이 없을 때는 지금의 남편에게 사달라고 해서 먹곤 했다.
남편이 빚이 있다는 걸 몰랐을 경우니 사달라고는 하였으나 그리 자주 사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실질적인 부부가 아니니깐..
과일은 임산부에겐 무조건 좋은 음식이니깐.
난 임신5개월인 7월달에 상견례를 하고 6개월인 8월달에 법원을 그만 두었고 9월달에 결혼을 하였는데..
그러던 엄마가 과일을 사주신건 상견례를 하여 결혼날짜를 잡은 후 였다.
딸을 보낸다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때문인지 엄마는 그 후 과일을 아주 많이 사주셨다..
그것도 질리도록….
과일을 줘도 안 먹는 나는 아이 엄마 라는 타이틀 때문에 억지로 억지로 입 속으로 꾸역 꾸역 집어 넣기 일쑤 였다.
어느날 난 딸기가 무척 먹고 싶어 졌다..
나의 생각에 딸기는 크면 클수록 맛있었고, 빨가면 빨갈수록 맛있었고, 싱싱하면 싱싱 할수록 맛있었고, 딸기를 씻어서 딸기 표면에 살짝 묻어 있는 물은 입에 군침을 돌게 하였으며,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러움과 딸기씨의 살짝 바삭이는 씹는 맛, 그리고 살짝 찍어 주는 센스의 설탕은 딸기의 맛을 더욱 감질나게 하였다.
그런 난 딸기를 먹을수 없었다.
내가 딸기를 먹고 싶었던건 한여름이었지만, 난 가을쯤에야 먹을 수가 있었다.
엄마는 이상하다고 했다.
평소에 과일을 줘도 안 먹는 아이가 갑자기 한여름에 딸기 타령을 한다고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니가 먹고 싶은게 아니라 뱃속 아이가 먹고 싶은거 아니냐며 나한테 오히려 반문 하였다.